'한국 야구 몰락의 주범(?)'도 흐뭇하게 바라본 기대주 포수가 등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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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1일) 문학 경기다.
타이거즈와 랜더스가 붙었다.
오랜 포수난에 허덕인 타이거즈 아닌가.
한국 야구의 몰락을 성토할 때면 한 번씩 등장하는 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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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SEN=백종인 객원기자] 어제(1일) 문학 경기다. 타이거즈와 랜더스가 붙었다. 2만 3000명이 관중석을 가득 메웠다. MBC Sports+가 중계했다. 부스에는 한명재 캐스터, 정민철, 박재홍 해설위원이 자리했다.
2회 초 원정팀 공격 때다. 무사 1루에 8번 타자가 등장했다. 갑자기 박 위원이 바빠진다. 멘트 점유율이 급상승한다.
“한준수 선수가 이제 9번째 선발로 출전하고 있는데, 가능성이 굉장히 큰 선수예요. 타격하는 것도 그렇고, 진갑용 수석코치가 워낙 좋은 포수였잖아요. 그런데 ‘수비 능력도 앞으로 굉장히 좋아질 거다’라고 하고 있어요. 관심이 가는 선수입니다.” (박재홍)
말을 마치기가 무섭다. 카운트 2-1에서 4구째였다. 141㎞ 직구가 존으로 들어온다. 부드러운 스윙이 반갑게 마중 나간다. 동시에 강력한 파열음이 폭발한다. 환호와 탄식이 랜더스 필드에 가득하다. 타구가 우측 담장 너머로 사라진다. 스코어는 2-0에서 4-0으로 바뀐다.
박 위원 신났다. 소개한 보람이 있다. 톤이 한층 높아진다.
“지난 경기 때도 타격에 굉장한 재능이 있다고 평가했는데, 그 모습이 바로 나오네요. 보면 배트를 돌릴 줄 알아요. 포수들이 대개 수비에 신경을 쓰면서 배트 스피드가 빠르지 않은데, 한준수 선수는 힘이 있습니다.” (박재홍)
한명재 캐스터가 묻는다. “홈런 나온 이후에 박재홍 위원의 표정도 함께 밝아졌는데, 이유가 있어요?”
박 위원이 조금 멋쩍다. “실은 한준수 선수가 제 후배 아들이거든요. 그동안은 좀 다른 곳에 정신을 팔았나 봐요. (야구에) 집중 안 하고, 다른 곳에…. 뭐 이게 없는 얘기가 아니니까. 지금은 이제 운동에만 전념하는 분위기인 것 같습니다.”
올해 24살 포수다. 어제는 한준수의 날이었다. 2회 쐐기 투런(2호)이 전부가 아니다. 4회에도 큼직한 2루타를 터트렸다. 더 놀라운 것은 세 번째 타석이다. 4-3으로 쫓기던 2사 1, 2루였다. 고효준-이흥련 배터리는 무척 조심스럽다.
왜 아니겠나. 한껏 신바람 난 타자다. 괜히 좋은 공 줬다가는 낭패하기 십상이다. 초구 스트라이크(129㎞ 슬라이더) 이후 계속 유인구로 덫을 놓는다. 낮게 떨어지는 슬라이더만 연달아 3개다. 그런데 꿈쩍도 않는다. 한 점 흐트러짐조차 없다.
쉽지 않은 일이다. 당사자 심정은 뻔하다. 모처럼 선발 출장이다. 타격감은 한껏 올랐다. 관중도 가득 찼다. 이럴 때 뭔가 보여주리라. 그런 마음이 굴뚝 같을 것이다. 그런데 아니다. 차분하고, 꿋꿋하다. 카운트 3-2에서 마지막 변화구도 참아낸다. 볼넷이다. 6연속 슬라이더 공략을 이겨냈다.
광주 동성중학교와 고등학교를 졸업했다. 2018년 1차 지명(계약금 1억 6000만원)으로 타이거즈 유니폼을 입었다. 입단 당시의 포부가 기억에 남는다. “부상으로 선수 생활을 접은 아버지의 꿈을 이뤄드리겠다.” 부친은 광주일고 출신으로 알려졌다. 박재홍 위원과 함께 뛴 후배다.
입단 초에는 순탄치 않았다. 박 위원의 말처럼 야구에 집중하지 못했다. 2021년 군에 입대했다. 상무에 지원했지만, 합격자 명단에 들지 못했다. 일반병으로 22사단 수색대에서 근무했다. 만기 전역 후 올해가 복귀 시즌이다.
그동안 철이 들었다는 주변의 평가다. 몸매부터 달라졌다. 25㎏이나 감량했다. 김종국 감독도 깜짝 놀란다. “예전에는 엄청 뚱뚱했다. 자기 관리에 소홀하다는 느낌이었다.”
이젠 성실함과 진지함이 엿보인다. 그러면서 차츰 출전 기회가 늘어난다. 벌써 26게임째 출장이다. 42타수 11안타(0.262), 2홈런, 8타점을 기록 중이다. 오랜 포수난에 허덕인 타이거즈 아닌가. 반가운 가능성 하나가 추가된 셈이다.
커뮤니티를 떠도는 얘기가 하나 있다. 한국 야구의 몰락을 성토할 때면 한 번씩 등장하는 썰이다. 마치 을사오적처럼 주범 4명이 있다는 지적이다. 물론 우스갯소리다.
① 아들 하나만 낳은 이종범
② 딸만 셋 낳은 박찬호
③ 50살 넘어 장가간 양준혁
④ 그리고 여전히 솔로인 박재홍
그래서 하는 얘기다. 한준수는 어깨가 무겁다. 10년 포수를 기다리는 고향 팬들의 기대가 절절하다. 못다한 부친의 꿈도 이뤄야 한다. 그리고 또 하나 있다. (조금 과장하면) 입에 침이 마르고, 숨이 가쁠 정도로 칭찬을 쏟아냈다. 그런 아버지 선배의 애틋함도 헛되게 하면 안 될 것이다. 그게 ‘몰락…’의 허물을 조금이나마 덜어주는 일일 것이다.
/ goorada@ose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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