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수·진보, 서로 얼굴만 봐도 “혐오감…화가 난다”[최고야의 심심(心深)토크]
최근 공해 수준의 막말로 문제가 된 정당 현수막에 적힌 말들이다. 상대 정당을 견제하기 위한 건전한 비판이 아니라, 감정적이고 원색적인 비난에 가깝게 들린다. 상대 진영을 향해 무분별하게 드러낸 혐오감에 지켜보는 국민은 정치 자체에 혐오를 느끼기도 한다.
혐오스럽고 역겨운 느낌은 원래 배설물이나 썩은 물질 같은 진짜 더러운 것에 느끼는 감정이다(우리는 왜 서로를 혐오하나 1편 참고). 그런데 정치적 영역에서도 상대 진영을 향해 ‘더럽다’ ‘썩었다’라는 표현을 자주 쓴다. 더럽고 썩은 것을 가까이 두고 싶은 사람은 없다. 그래서 정치에서의 혐오는 사이를 더 멀어지게 만들고, 대화와 타협을 방해한다. 소모적 혐오를 거둘 방법은 없을까.
반대 정당 지지자 얼굴만 봐도 혐오감 느껴
정치 영역에서 혐오는 상당히 강력한 에너지다. 때로는 이성적 판단을 마비시키기도 한다. 말 한마디 섞어 보지 않은 사람에 대해서도 지지하는 정당 성향만 보고 많은 것을 판단해 버리게 한다. 처음 보는 사람에 대해 밑도 끝도 없이 “역겹다”는 혐오감까지 느낀다. 상대 정당 지지자라는 게 이유다.
지난 3월 미국 심리학회지에 ‘구역질 나는(disgusting) 민주당원, 역겨운(repulsive) 공화당원’이라는 다소 도발적인 제목의 연구가 소개됐다. 영어 단어는 달라도 어쨌거나 서로 혐오스러워한다는 의미다. 양당제 정치 형태를 띠는 한국 상황에도 적용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연구는 공화당원 290명, 민주당원 310명을 대상으로 진행됐다. 이들에게 남성 10명의 얼굴 사진을 보여줬다. 각각의 이름, 나이, 가족 관계, 취미 등과 함께 정치 성향을 알려줬다. 10명 중 각 절반씩 공화당, 민주당 지지자로 소개됐다. 예를 들어 ‘김○○ 씨는 40세이고, 부인과 자녀 2명이 있으며, 영화 감상이 취미이고, 지난 선거에서 민주당 후보에게 투표했다’는 식이다.
정치 성향 다르면…다친 사람보고도 “지나칠 것”
생긴 것만 보고도 혐오스럽다고 느끼는 관계에서 도움을 주고받을 가능성은 매우 낮다. 어떤 경우엔 최소한의 인류애도 발휘되지 않는다.
누군가 넘어져 다쳐서 피 나고 아파하는 모습을 목격했다고 상상해보자. 인근에서 열린 정치 시위 농성에 참여했던 사람이 인파에 밀려 넘어진 것이다. 꽤 아파 보이는데 주변에 나 말곤 딱히 도와줄 사람이 없어 보인다. 그런데 가까이 가서 보니 내가 싫어하는 정당을 상징하는 티셔츠를 입고, 나와 정반대의 정치적 입장이 적힌 농성 피켓을 가지고 있다. 계속 다가가서 끝까지 그를 도와줄 것인가? 혹은 외면하고 가던 길을 갈 것인가?
위와 같이 다친 시위 참가자에 관한 이야기를 담은 기사를 보여주고, 다친 사람이 △보수정당 지지자 △진보정당 지지자 △정치적 성향을 알 수 없는 마을 주민일 때 각각 어떻게 할 것인지 물었다. 그 결과 자신과 정치 성향이 같거나, 정치 성향을 알 수 없는 마을 주민이 다친 경우에는 나서서 돕겠다는 사람이 많았다. 그러나 자신과 정치 성향이 다른 이가 다쳤을 땐 도와주겠다고 하는 빈도가 훨씬 줄었다. 이런 결과는 연구에 참여한 3개국에서 비슷하게 나타났다.
인격체 아닌 벌레 취급할수록 비정해져
다친 사람을 못 본 척 지나가겠다는 연구 결과는 차갑고 비정해 보인다. 정치 성향을 모르는 마을 주민을 돕겠다고 나서는 인류애는 있으면서, 왜 상대편에게는 잔인한 결정을 내릴까.
상대편을 인격체로 여기지 않기 때문이다. ‘○○충’처럼 벌레 취급하는 등 감정을 공유하는 인간으로 보지 않기에 더 쉽게 외면하고, 욕하고, 공격할 수 있다. 이는 신념과 행동이 모순될 때 나타나는 인지부조화를 해소하려는 노력의 일환이다. 우리는 어렸을 때부터 ‘혐오나 차별은 나쁜 것’이라는 신념을 교육받고 자란다. 그래서 누군가를 혐오하고 차별하는 행동을 하면 신념과 행동이 모순돼 마음이 불편해지는 인지부조화를 겪는다. 이때 혐오 대상을 인간이 아닌 벌레, 쓰레기 취급하면 혐오와 차별이 타당성을 얻는다.
혐오 줄이는 법? ‘팩트 체크’로 오해 바로잡기
여러 연구에 따르면, 정치적 혐오감은 극단적 성향의 일부 사람들에 의해 강화되는 경향이 있다. 과격하게 발언하고 행동하는 일부가 평범한 다수보다 눈에 더 잘 띄어서다. 이런 오해는 어떻게 풀 수 있을까.
기사를 본 이들은 상대편에게 악의가 없다는 것을 알게 됐고, 자신도 ‘폭력에 반대한다’는 답변을 훨씬 더 많이 했다. 기사를 본 유대인 중에 ‘폭력에 반대한다’고 답한 비율은 기사를 보지 않고 ‘폭력에 반대한다’고 밝힌 유대인보다 2.6배 많았다. 아랍인의 경우 3.5배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처럼 서로를 향한 오해를 바로잡을 수 있는 사실관계를 알 때와 모를 때 정치적 견해가 달라질 수 있다. 서로 혐오하고 멀리하면서 대화를 거부할 땐 진실을 몰랐지만, 실체를 알고 나니 의견이 바뀌는 것이다. 연구팀은 “복잡한 절차 없이도 현실에 기반한 실제 데이터를 알려주는 것만으로도 오해를 푸는 효과가 있었다”며 “오해가 풀리면 집단 간 폭력성과 혐오를 멈추는데 효과적일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와 반대로 우리 편 입장만 강조하는 선동적인 유튜브 또는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 콘텐츠만 소비하면 오해와 편견이 강화될 수밖에 없다. 없는 이야기를 지어내서 혐오를 조장하고, 상대의 의견을 의도적으로 왜곡하는 콘텐츠는 경계해야 한다. 단단한 오해가 쌓인 관계일수록 단순한 사실관계를 아는 것만으로 혐오가 누그러질 수 있다고 하니, 어쩌면 대화와 타협은 그리 멀리 있는 게 아닐지 모른다.
최고야 기자 bes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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