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과 강, 자연을 담은 7폭 병풍…병산서원서 만난 선비의 품격
세계유산축전 맞춰 총 4차례 열려…"행사 확대·외국인 지원 등 검토"
(안동=연합뉴스) 김예나 기자 = "'역염선사 역행선사'(力念善事 力行善事), 힘을 다하여 선한 일만 생각하고 행하라는 뜻이지요. 서애 선생이 남긴 말씀입니다."
지난 1일 늦은 오후 경북 안동 병산서원 만대루(晩對樓).
평소라면 관람객이 모두 돌아가고 어둠이 서서히 내려앉았을 보물 누마루가 인생의 지혜와 교훈을 이야기하는 공간으로 바뀌었다.
누군가 '오늘날 서원에서 무엇을 배울 수 있느냐'고 묻자, 류한욱 별유사는 서애 류성룡(1542∼1607)의 삶과 주요 말씀을 소개하며 "사람의 됨됨이"라고 답했다.
류 별유사는 "옛날처럼 공자, 맹자, 그리고 성리학을 가르치면 올 사람이 없을 것"이라며 "병산서원의 역사, 의미를 나누며 인성 교육 쪽으로 나아가려 한다"고 말했다.
한국 서원 건축의 백미로 꼽히는 만대루에서 맞은 '불금'(불타는 금요일을 뜻하는 말)은 일상에서 잠시 벗어나 선비 정신과 문화를 배울 수 있는 색다른 시간이었다.
병산서원에서 1박 2일간 머무는 '병산서원 스테이'는 문화재청과 한국문화재재단이 국내 주요 세계유산을 주제로 선보이는 '2023년 세계유산축전' 프로그램의 하나다.
이달 8∼10일, 15∼17일에 총 4차례 유료로 운영된다.
병산서원에 도착한 뒤, 가장 먼저 한 일정은 서원 내에서 가장 엄숙하고 중요한 공간으로 여겨지는 존덕사(尊德祠)를 찾아 인사를 올리는 것이었다.
류종하 유사를 따라 안으로 들어가자 '영의정문충공서애류선생'(領議政文忠公西厓柳先生)이라 적힌 위판이 놓여 있었다. 평소에는 닫아뒀다가 인사를 올릴 때만 연다고 한다.
병산서원 관계자는 "바닥에 놓인 대나무 자리만 하더라도 역사적 산물"이라며 "1614년(존덕사에 서애의 위판을 봉안한 때)부터 이곳에 있는 것"이라고 귀띔했다.
예를 갖춘 뒤에는 서원 곳곳을 자유롭게 둘러볼 수 있었다.
'자기를 낮추고 예(禮)로 돌아가는 것이 곧 인(仁)이다'는 문구에서 이름을 붙인 복례문(復禮問)부터 만대루, 입교당(立敎堂) 등을 따라 걸으면 과거 성리학의 산실로 기능한 역사를 느낄 수 있었다.
입교당 앞 무궁화나무 1그루는 1919년 3·1운동 전에 심은 것으로 전해져 특히 눈여겨볼 만하다.
그러나 가장 눈길을 끄는 건 만대루 너머로 보이는 풍경이다.
정면 7칸, 측면 2칸의 건물 기둥 사이로 낙동강이 흐르고, 병산이 그림처럼 펼쳐진다. 서원에서 머무는 동안에는 해가 질 무렵, 밤, 새벽 등 다양한 시간대 자연이 만들어낸 '7폭 병풍'을 볼 수 있다.
류한욱 별유사는 입교당에서 자연 풍광을 바라볼 때 만대루는 '있어도 없는 듯, 없어도 있는 듯'한 역할을 한다고 웃으며 말했다.
1박 2일간의 프로그램에서는 류성룡 선생의 종가 상차림을 재해석한 '선비의 음식'도 맛볼 수 있다.
음식을 담당한 김동기 셰프는 "한국인뿐 아니라 외국인이 와도 호불호 없이 음식을 즐길 수 있도록 다양한 재료와 요리법을 활용해 구성했다"고 소개했다.
부모님과 함께 멕시코에서 여행 왔다는 데이비드 씨는 "정말 원더풀하다. 오랜 역사를 가진 곳은 많지만, 병산서원과 같은 아름다운 공간은 처음"이라며 방문단을 부러워하기도 했다.
다만, 서원의 특성상 제한된 인원만 참가할 수 있는 점은 아쉬운 부분이다.
동재, 서재, 전사청 3곳이 숙소로 쓰이는데 회당 정원은 14명이다. 총 4차례 열리는 행사 인원을 다 합쳐도 56명. 지난달 예매가 시작되자 1분 만에 마감됐다고 한다.
재단 관계자는 "내년에는 5월, 9월 등으로 행사를 확대 진행하는 방안을 고려하고 있다"며 "외국인 관광객을 위한 통·번역 서비스 등도 준비 중"이라고 말했다.
이달 23∼24일에는 일본 여행업체와 연계해 재일교포 관광객 등을 초청할 예정이다.
재단과 서원 측은 화장실 이용, 샤워 공간 부족 등의 문제도 문화유산 활용 부분과 함께 고민할 계획이다.
여러 문화유산 가운데 병산서원을 꼭 와봐야 할 이유는 무엇일까.
류 별유사는 평소 병산서원을 자주 찾는 '마니아'들이 언제가 가장 좋고, 아름다운지 논하며 나눴던 대화 일부를 살짝 들려줬다.
"누군가는 매화가 피는 때가 좋다고 했고, 단풍이 한창일 때가 좋다는 사람도 있었어요. 그런데 처음 질문한 사람이 말하더라고요. '나는 올 때마다 좋더라.'" (웃음)
yes@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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