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움과 채움...올 때마다 좋더라"…'병산서원 스테이'

이수지 기자 2023. 9. 3. 0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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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 병산서원 입교당에서 본 만대루 (사진=한국문화재재단 제공) 2023.09.03. photo@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뉴시스] 이수지 기자 = 짙은 초록으로 물든 산이 강을 끼고 병풍처럼 펼쳐진다. 그 속에서 자연과 내가 하나 된다.

조선시대 중기 문신 서애(西厓) 류성룡(1542~1607) 선생은 마지막 숨을 거둘 때 "산은 말이 없으나 내 마음은 이미 충분하네"라며 자연과 인간이 하나가 되는 '물아일체'를 이야기했다.

그의 학문과 업적을 기리는 병산서원에는 병산의 산수를 즐기며 '예'(禮)를 배우면 '인'(仁)에 다가갈 수 있다는 가르침이 곳곳에 스며있다.

[서울=뉴시스] 병산서원 (사진=한국문화재재단 제공) 2023.09.03. photo@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


문화재청과 한국문화재재단이 오는 8일부터 17일까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한국의 서원' 중 하나인 병산서원을 배경으로 2023년 세계유산축전 기획 프로그램 '병산서원 스테이'를 총 4회 운영한다. 1박2일 체험형 숙박 프로그램으로 주제는 '비움과 채움'이다.

프로그램 운영 시작 전 지난 1일부터 1박2일간 서원에 머물며 성리학적 사유를 하는 다담과 산책, 선비문화를 체험하는 종갓집 음식 맛보기 등 다양한 프로그램이 진행됐다.

탐욕을 비우다…복례문, 만대루, 광명지

[서울=뉴시스] 병산서원 복례문 (사진=한국문화재재단 제공) 2023.09.03. photo@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

지난 1일 오후 안동역에서 내려 차로 20~30분 떨어진 병산리 마을 길에 휘돌아 흘러가는 낙동강 옆으로 병산의 푸른 절벽이 펼쳐졌다. 이 비경은 다음 날 아침 참가자들이 산책한 '유교문화의 길'까지 계속됐다.

매년 7월부터 9월까지 안동 배롱나무 명소로도 유명한 병산서원 앞에 만개한 배롱나무 꽃길이 놓여 있다. 그 길 끝에 서원 첫 관문 '복례문'이 서 있다.

이 편액에는 사람마다 욕망과 탐욕의 유혹을 이기고 예(禮)로 돌아가 인(仁)을 실현하려 했던 류성룡의 가르침이 담겼다.

[서울=뉴시스] 병산서원 광영지 (사진=한국문화재재단 제공) 2023.09.03. photo@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


누각 '만대루'와 정원 '광영지'에도 그의 가르침이 이어졌다.

광영지에는 네모난 연못에 둥근 섬이 조성됐다. '연못을 맑게 하려면 신선한 물을 끊임없이 공급하듯 사유의 근원인 책 읽기를 게을리하지 말라'는 그의 가르침이 반영됐다

그 옆에 보이는 만대루는 병산의 산수를 보면서 '격물치지(자연을 연구해 사유하며 지식을 넓히다)'를 사유하는 공간이다.

[서울=뉴시스] 병산서원 만대루 (사진=한국문화재재단 제공) 2023.09.03. photo@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


입교당 마루에 앉으니 만대루 기둥들 사이로 흐르는 강물과 푸른 절벽이 한눈에 펼쳐졌다.

다듬지 않은 주춧돌 위에 휜 나무 기둥 7개가 누마루를 떠받친 누각의 풍경은 한 폭의 산수화였다. 누각에는 인공 장식과 단청 없어 그 모습 그대로 자연과 하나가 됐다.

누각 이름은 당나라 시인 두보(701-762)의 시 '취병의만대(翠屏宜晚對)'에서 유래됐다. '푸른 절벽은 오후 늦게 대할 만하다'라는 뜻이다.

[서울=뉴시스] 병산서원 만대루 (사진=한국문화재재단 제공) 2023.09.03. photo@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


오후 6시 후 참가자들에게만 공개된 누각은 붉게 물든 노을과 병산에 둘러싸여 '한국 서원의 백미'를 자랑했다.

성현의 가르침을 채우다…입교당과 존덕사

[서울=뉴시스] 병산서원 만대루 (사진=한국문화재재단 제공) 2023.09.03. photo@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

서원 중심에 자리한 입교당은 '하늘로 부여받은 착한 본성에 따라 인간윤리를 닦는 가르침을 바르게 세운다'라는 뜻을 가진 강당이다. 유생들은 성현의 가르침을 받아 자기 몸을 바로 세우고 나아가 선비로서의 사명을 바로 세우는 공부를 했다.

참가자들이 숙소로 사용한 동재와 서재는 입교당과 만대루 사이 마당을 가운데 두고 서로 마주하고 있다. 좌고우저(左高右低)의 원리에 따라 동재에는 상급생이, 서재에는 하급생이 지냈다.

[서울=뉴시스] 병산서원 존덕사 (사진=한국문화재재단 제공) 2023.09.03. photo@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


동재와 서재에 짐을 푼 참가자들은 존덕사에 올라 묵념의 시간을 가졌다. 남자 참가자들은 왼손을 위로, 여성 참가자들은 오른손을 위로 두 손을 모아 인사한 후 존덕사 영역에 들어섰다. '류성룡의 학문과 덕행을 높이 우러른다'라는 뜻의 존덕사에는 류성룡의 위패가 모셔있다.

묵념을 마친 참가자들은 고직사에서 저녁식사로 '온휴반상'을 즐겼다. 선비정신과 문화를 경험할 수 있는, 소박하되 영양을 담긴 반상이었다.

전복비빔밥, 낙지소고기탕, 문어숙회 등으로 구성된 반상은 김동기 셰프가 류성룡 종갓집 상차림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했다.

[서울=뉴시스] 병산서원 스테이 온휴반상 (사진=한국문화재재단 제공) 2023.09.03. photo@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


김 셰프는 식사 전 "전공이 프랑스 요리지만 류성룡 종가인 충효당에서 5시간 배웠다"며 "한식에 사용할 수 있는 다양한 종류가 있지만 식초, 오일 등을 사용해 외국인들도 즐길 수 있도록 했다"고 소개했다.

식사 후 참가자들은 만대루에서 다과와 풍경을 즐기며 별유사(조선 시대 서울과 지방에서 공무를 하는 사람)와의 다담을 기다렸다. 류한욱 별유사와의 다담은 삶의 지혜가 담긴 성리학 이야기를 함께 나누는 시간이었다.

[서울=뉴시스] 병산서원 스테이 다담 (사진=한국문화재재단 제공) 2023.09.03. photo@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


류 별유사는 서원 유래와 기능, 류성룡 업적과 충효정신 등을 설명했다. 특히 인성교육을 강조했다. "서애 선생님이 돌아가시기 전 자손들을 불러놓고 '역염선사(力念善事), 힘을 다해 선한 일만 생각하고, 역행선사(力行善事), 힘을 다해 선한 일만 행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사람 됨됨이가 중요합니다."

병산서원의 좋은 점에 대한 질문에 그는 단체로 사원을 찾았던 한 관람객의 일화로 답을 대신했다. "입교당 앞 매화꽃 필 때, 병산 절벽 나무들 잎이 파릇파릇할 때, 배롱나무꽃 필 때, 단풍 들 때, 눈 왔을 때 등 다른 사람들의 다양한 대답에 이 질문을 했던 분은 '나는 올 때마다 좋더라'고 말하더군요."

☞공감언론 뉴시스 suejeeq@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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