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준법위 거쳤나요?” 삼성서 더는 낯설지 않은 이 말 [방영덕의 디테일]
그도 그럴 것이 준법위 1기는 삼성그룹 준법 경영의 ‘파수꾼’ 역할을 처음 부여받아 어떤 기업도 가보지 않은 길을 걸었고, 그러면서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의 대국민 사과와 경영권 승계 포기, 무노조 경영 철폐 등 대대적인 변화를 이끌어냈기 때문입니다.
이와 달리 ‘인권 우선 경영, 공정하고 투명한 경영, ESG 중심 경영’을 3대 중점과제로 내세운 준법위 2기는 상대적으로 조용하다고 느낄 수밖에요.
그런데 최근 준법위 2기가 존재감을 확실히 드러냈습니다. 삼성의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 복귀 문제를 두고 섭니다. 삼성의 전경련 복귀에 조건부 승인 결정을 내리며 전경련 재가입에 결정적 역할을 한 겁니다.
삼성의 ‘컨트롤타워 복원’이란 화두도 던졌습니다. 내년 2월까지 임기가 약 5개월 남은 상황에서 준감위 2기는 ‘뉴삼성’을 위한 컨트롤타워 복원이나 삼성의 지배구조 개선을 이끌 수 있을까요. 관심이 집중됩니다.
이름 그대로 삼성 관계사에 대한 준법 감시 역할을 하기 위해섭니다.
당시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의 국정농단 사건 파기환송심 재판부가 ‘실효성 있는 준법감시제도를 마련하라’고 권고했고요. 그리하여 설립된 곳이다보니 출범 당시 준법위를 바라보는 시선은 곱지 않았습니다.
‘옥상옥(屋上屋)’이란 지적이 나왔습니다. 이 회장의 사법 리스크가 해소되면 준법위 또한 사라질 것이란 관측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준법위 활동은 현재 3년 이상 이어오고 있습니다.
준법 경영에 대한 이재용 회장의 의지 역시 확고해 보입니다. 이 회장은 지난해 10월 12일 준법위 정기 회의에 참석해 “준법위가 독립성을 갖고 지속적으로 운영될 수 있도록 최대한 협조하겠다”고 약속했습니다.
준법위는 출범 초기부터 삼성의 경영권 승계, 노동 등 민감한 사안에 관하여 권고하고, 대외후원· 내부거래 관련 적극적인 의견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또 별도 홈페이지에서 직접 관계사의 준법의무 위반에 관한 제보 접수를 받는 등 다양한 활동을 통해 회사에 자극과 긴장을 주고 있습니다.
준법위 이찬희 위원장은 최근 발간된 준법위 2022 연간보고서에서 “‘준법감시위원회의 검토를 거쳤나요?’란 말이 삼성 안에서 더 이상 낯설지 않은 말”이라며 “준법위와 삼성은 준법경영이란 공동의 목표를 향해 달려가는 2인3각의 동반자란 신뢰가 형성됐다”고 평가했습니다.
김우진 서울대학교 경영대학 교수이자 준법위의 위원 역시 “일반적으로 재벌기업에선 총수일가에 누가 될 수 있는 것들은 얘기하지 못하는 분위기가 있는데 지금 삼성 임직원들에겐 합병 이슈를 포함해 그 어떤 주제로든 자유롭게 강의를 한다”며 “삼성이 많이 변했고, 점점 세련돼지고 있다는 것이 느껴진다”고 밝혔습니다.
이 위원장은 “컨트롤타워가 없으면 효율성과 통일성 측면에서 문제가 있다”며 “삼성이 국내 경쟁에 매몰되지 않고 세계적 기업이 되기 위해서는 컨트롤타워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는데요.
삼성은 2017년 박근혜 정부에서 국정농단 사태에 연루된 후 그룹 컨트롤타워였던 미래전략실(미전실)을 폐지했습니다.
과거 미전실에는 최소 과장급 이상 ‘에이스’ 임직원 200~250명을 배치해 삼성을 진두지휘하는 역할을 맡겼던 게 사실입니다.
하지만 지금은 사업지원(삼성전자), 금융경쟁력제고(삼성생명), EPC(설계·조달·시공) 경쟁력 강화(삼성물산) 등 사업 부문별로 쪼개진 3개의 태스크포스(TF)를 운영 중이고요. 이들 TF는 각각 정현호 부회장과 이승호 부사장, 강병일 사장이 이끌고 있습니다.
삼성 안팎에선 이런 구조로는 그룹의 미래 비전을 제시하기에 한계가 있다는 얘기가 나옵니다.
이 위원장은 “삼성 미래전략실의 과오가 분명 있으나 시대 흐름이 바뀌었고 컨트롤타워에 대한 시각도 시대 흐름이 바뀌는 것에 따라야 한다. 그 흐름을 따라갈 때 항상 역사는 발전한다”고 밝혔습니다.
그러면서 이 위원장은 “준법위는 ‘숨어있는 1인치의 위법 가능성’조차 선제적으로 제거하는데 최선을 다하겠다”고 강조했습니다.
다만 그룹 컨트롤타워가 부활할 경우 ‘과거로 회귀한다’란 비판에 직면할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려워 조심스러운 부분 역시 큽니다.
이 위원장은 이와 관련 준법위 2022 연간보고서에서 “수직적 지배구조의 개선과 관련해서 아직 명쾌한 해법을 찾아내지 못하고 있다”며 솔직하게 답변했습니다.
현재는 수면 아래 가라앉아 있지만, 일명 ‘삼성생명법’으로 불리는 보험업법 개정안이 통과될 경우 삼성 지배구조 문제는 핵심 이슈로 떠오를 수 있습니다.
개정안이 통과되면 삼성생명은 삼성전자 지분을 총자산의 3%만 보유할 수 있어 26조원에 달하는 나머지 지분은 모두 팔아야 합니다.
그럴 경우 오너일가→삼성물산→삼성생명→삼성전자로 이어지는 지배구조가 취약해질 수밖에 없어 대응 방안이 필요하죠.
어떤 형태가 가장 바람직한지 정답도 없고, 준법위가 구체적인 방향을 제시하기 어려운 측면이 있습니다.
이같은 지적에 대해 이 위원장은 “위원회와 회사 모두 다양한 모델을 연구 검토하며 최선을 다하고 있다”며 “지배구조 개선을 비롯한 2기 위원회 활동과 관련해 좋은 의견이 있으시면 언제든지 연락을 달라”고 밝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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