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계인 만났다” 거짓말로 한 시대 풍미한 ‘UFO 괴담’의 아버지
“외계인과 만나” 미국서 첫 주장
접시 모양 유에프오 사진도 공개
일본 통해 한국 어린이 잡지 등장
1980년대 전세계적 신드롬으로
이것은 인류 역사상 가장 대범한 사기꾼 중 한명에 대한 이야기다. 조지 아담스키 이야기다. 조지 아담스키라는 이름을 보는 순간 나와 비슷한, 그러니까 40대 이상의 독자 중에서는 ‘오랜만에 들어보는 이름이구나’ 하고 탄식하는 사람이 분명히 있을 것이다. 그렇다. 조지 아담스키는 1980년대 어린 시절을 보낸 사람들에게는 꽤 익숙한 이름이다. 당신이 1980년대에 초등학교나 중학교 시절을 보냈고, 어린이 잡지를 즐겨 봤다면 더욱 그럴 것이다. 그 시절은 어린이 잡지 전성시대였다. 1970년대에 창간된 어린이 잡지들은 1980년대에 전성기를 누렸다. 인터넷도 없고 신문은 한자어로 뒤덮인 시대라 어린이들이 세상의 정보를 얻을 만한 매체는 어린이 잡지밖에 없었다. ‘소년중앙’, ‘새소년’, ‘어깨동무’라는 3대 잡지 외에도 여러 잡지가 출간됐다.
당대 어린이 잡지들은 아이들을, 아니 아이들을 위해 돈을 지불한 어른들을 위해 온갖 교양을 강조하는 기사들을 전면에 실었다. 진짜 킬러 콘텐츠는 따로 있었다. 잡지 후반부에 온갖 무시무시한 일러스트와 함께 실린 미스터리 이야기였다. 필리핀에서 사람들을 공격한 투명인간 이야기, 밤마다 나타나 이불 밖으로 삐져나온 발목을 잡는 미국 귀신 이야기, 20세기 초 영국 강령회에서 사진에 찍힌 플라스마 형태의 유령 이야기. 내가 이렇게 구체적으로 소재를 인용할 수 있는 건 저 기사들이 그 후로 오랫동안 나의 트라우마가 됐기 때문이다. 나는 발목을 잡는 미국 귀신 이야기를 초등학교 2학년 시절 읽은 이후로 적어도 20여년간 이불 밖으로 발을 빼지 못했다. 어린 시절의 트라우마는 이토록 질기다.
‘로즈웰 사건’에 불 지피며 등장
가장 인기 있는 기사는 유에프오(UFO, 미확인 비행 물체) 관련 이야기들이었다. 엠제트(MZ)세대 독자들에게는 낯선 이야기겠지만 1980년대 유에프오는 전세계 대중문화에 신드롬을 불러일으킨 세계적 현상이었다. 스티븐 스필버그가 인간과 유에프오의 접촉을 다룬 ‘미지와의 조우’(1977)와 ‘이티’(E.T.)(1982)로 전세계 박스오피스를 휩쓸던 시대다. 유에프오 목격담은 심지어 진중한 신문에도 종종 실리곤 했다. 어린이 잡지들은 매달 관련 기사를 기괴한 일러스트와 함께 실어 전국 어린이들을 악몽에 시달리게 했다. 나는 특히 유에프오와 직접 접촉했다고 주장하는 몇몇 인물들의 기사를 좋아했다. 가장 유명한 사람이 조지 아담스키였다. 나는 지금도 유에프오라는 단어를 보는 순간 저절로 이 이름을 떠올린다. 아담스키 가문에서는 싫어하겠지만 아담스키라는 이름을 가진 폴란드인 중 가장 유명한 사람인 건 사실일 것이다.
조지 아담스키는 미국에서 외계인과 접촉했다고 주장하기 시작한 첫번째 인물이다. 1950년대는 유에프오 음모론이 미국 사회로 퍼져나가던 시기다. 인류 역사상 가장 유명한 유에프오 음모론인 ‘로즈웰 사건'이 발생한 게 1947년이었다. 미국 뉴멕시코주 남동부 로즈웰 인근에 유에프오가 추락했고, 이를 미국 정부가 숨기고 있다는 음모론은 사회를 뒤흔들었다. 그래서 우리는 반세기가 더 지난 지금도 로즈웰 사건이 이런저런 할리우드 영화나 드라마에서 인용되는 것을 보게 된 것이다. 음모론이 확산하면 음모론을 이용하는 사람들이 등장하게 마련이다.아담스키는 1950년대 초반 금성에서 온 외계인을 직접 만났다고 주장하며 센세이션을 일으켰다. 그는 당시 ‘비행접시’라 불리던 유에프오 사진 수백장을 공개했다. 우리가 유에프오를 생각하면 곧바로 떠올리는, 특유의 엎어진 접시 모양은 아담스키로부터 나온 것이다. 아직도 유에프오 연구가들은 이런 모양을 ‘아담스키형 유에프오’라고 부른다.
“달에 갔더니 네발 달린 동물 있더라”
폴란드 이민자 2세인 아담스키는 청년 시절부터 동양철학에 심취한 인물이었다. 제대로 된 동양철학이라기보다는 티베트 밀교 등 서구에서 지나치게 신비화한 동양철학에 빠져든 인물이었다. 그는 1930년대 중반 제자들을 모아서 괴상한 동양철학을 가르치는 모임을 조직했다. 1944년에는 캘리포니아 팔로마산에 천체관측 기구를 설치하고 자신의 철학을 우주적인 무언가로 확장하기 시작했다. 그가 최초로 유에프오를 목격한, 아니 그랬다고 주장한 건 1952년이다. 유에프오를 촬영한, 아니 그랬다고 주장한 사진들이 언론을 통해 퍼져나가자 그는 꽤 영향력 있는 유명인이 됐다. 이후 그는 금성에서 온 외계인과 함께 태양계 여러 행성을 방문했다고도 주장했다. 달에 갔더니 산소도 있고 네발 달린 동물도 있더라고 말했다. 슬프지만 1969년 인류는 생각보다 지나칠 정도로 빠르게 달에 사람을 보냄으로써 아담스키의 ‘구라’를 파괴했다. 아담스키는 1965년 74살 나이에 심장마비로 사망했으므로 인류의 달 착륙을 보지 못했다. 그로서는 다행이었을 것이다.
아담스키가 한국에서 유명해진 것은 실은 일본의 영향이었다. 1980년대 한국 어린이 잡지들은 사실 일본 잡지의 기사들을 몰래 번역해서 실은 것이 많았다. 특히 유에프오 기사들은 대부분 일본 잡지에서 베낀 것이었다. 일본은 예로부터 미스터리나 오컬트 문화의 든든한 팬층이 두껍기로 잘 알려진 나라다. 공상과학(SF)소설 팬층 역시 미국 다음으로 굳건한 나라다. 아담스키가 생전에 쓴 책들은 미국에서도 20만부 이상이 팔릴 정도로 인기가 있었는데 일본에서는 그를 뛰어넘는 압도적 베스트셀러가 됐다. 위키피디아에서 아담스키 항목을 보면 “일본에서 특히 큰 인기를 누렸고, 종전 후 일본 문화 속 유에프오 묘사에 큰 영감을 주었다”는 문장이 있을 정도다. 지금에야 우리 모두 잘 아는 사실이지만 1990년대 일본 대중문화 개방 이전까지 한국의 거의 모든 분야는 일본의 것을 카피하며 성장했다. 어린이 잡지도 당연히 그랬다. 그러니 당대 한국 어린이 잡지의 가장 인기 있는 콘텐츠였던 유에프오 기사들도 일본 기사를 중역한 것이라는 걸 충분히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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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 의회에서 ‘UFO 증언’ 나왔지만…
내가 조지 아담스키의 영향력으로부터 탈출한 건 재미있게도 한국에 정식으로 출간된 책 덕분이다. 아담스키의 ‘유에프오와 우주법칙’은 1996년, 지금은 사라진 고려원에서 출간했다. 금성에서 온 우주인을 만난 경험담을 정리한 책이다. 시작부터 끝까지 모든 게 엉터리인 책이다. 만약 이 책이 1980년대 초반에 출간됐다면 어린이인 나를 설득할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1996년의 나는 그러기에는 지나치게 나이가 많았다. 그 책을 기점으로 나는 유에프오에 대한 모든 환상을 버린 야박한 어른으로 훌륭하게 성장했다. 스마트폰 시대가 되자 오히려 유에프오 사진이나 목격담이 줄어든 것도 내 환상의 파괴에 한몫을 했다. 모든 사람들 손에 고화질 카메라가 들린 시대에 오히려 유에프오 사진이 점점 줄어든다는 것은 필름 카메라 시대에 찍힌 유에프오 사진이 대부분 조작된 것이라는 증거였다. 그렇게 나는 유에프오를 떠나보냈다. 어른이 된다는 건 재미없는 일이다.
지난 7월27일 놀라운 뉴스가 등장했다. 미국 정부가 유에프오와 외계인의 존재를 수십년간 숨기고 있었다는 주장이 미국 의회 청문회에서 제기된 것이다. 미국 정보요원 출신인 전 공군 소령은 7월26일 연방 하원 감독위원회에 출석해, 미국 정부가 유에프오 관련 기기들과 그것을 조종한 ‘인간이 아닌 존재’의 유해를 보관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미국 정부가 추락한 유에프오를 회수하고 역설계했다는 이야기도 나왔다. 그는 미국 정부가 유에프오 관련 정보를 대중뿐 아니라 의회에도 숨기고 있다고 폭로했다. 뉴스는 전세계로 퍼져나갔다. 가만 생각해보면 놀라운 일이다. 미국 의회가 최초로 유에프오의 존재에 대해 어느 정도 인정했다는 의미다. 나는 뉴스를 보며 내적 환호성을 질렀다. 잊었던 유에프오 사랑이 다시 폭발했다. 세상이 뒤집어질 뉴스다. 그렇게 믿었다.
세상은 뒤집어지지 않았다. 누구도 딱히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 내 속의 어린이는 이토록 고요한 무관심을 믿을 수가 없었다. 정치계도 관심 없었다. 종교계도 관심 없었다. 오랜 유에프오 애호가들도 딱히 관심은 없는 듯했다. 며칠 뒤에는 나도 관심을 잃었다. 뉴스를 틀자 2023년이 뺨을 때렸다. 푸틴은 프리고진이 탄 비행기를 격추했다. 중국 경제는 빨간불이다. 미국 경제는 식어간다. 서울 아파트값은 다시 오른다. 한국 정치는 어디로 가고 있는지도 잘 모르겠다. 유튜브를 검색하다 유에프오 청문회 관련 동영상을 하나 찾았다. 10대로 보이는 미국 젊은이가 말했다. “외계인이 등장하면 제 학자금 빚이라도 갚아주나요?” 나는 깨달았다. 2023년은 1983년이 아니다. 2023년의 아이들은 더는 유에프오 이야기를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않는다. 인간의 지성은 진화한다. 우리는 40년 전보다 더 이성적인 존재가 됐다.더 이성적으로 골치 아픈 세상에서 살기 위해 선택한 진화다. 조지 아담스키의 시대는 완벽하게 막을 내린 것이다.
문화 칼럼니스트
영화 잡지 ‘씨네21’ 기자와 ‘허프포스트코리아’ 편집장을 했다. 사람·영화·도시·옷·물건·정치까지 관심 닿지 않는 곳이 드문 그가 세심한 눈길로 읽어낸 인물평을 싣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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