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절 비집고 피어난 극우화…깨우자, 연결의 감각
코로나 이후 타인 고통에 눈감자
윤 대통령, 소수 지지층 정치 몰입
북한도 봉쇄 뒤 통제·규율 강화
타자·역사와 확장적 연결 시급
연결의 중요성을 다시금 절감한다. 한국 사회 곳곳의 파열과 코로나 팬데믹 직후 국경 봉쇄를 단행한 북한에서 단절의 폐해를 읽기 때문이다. 한국에서는 파편화한 개인들이 고립감으로 하나둘 쓰러지고 있다면 북한은 장마당 경제를 기반으로 한동안 나아졌던 경제 상황이 국경 봉쇄로 인해 심각한 타격을 입게 되었다. 경제적으로 부유한 남한에서는 사람 사이의 단절이 촉발한 사회적 갈등이 임계점을 넘어섰다면, 북한에서는 북-중 국경에서의 비공식 교류가 제한되면서 먹고사는 문제가 곤란해진 것이다. 둘 사이에 성격의 차이는 존재하지만 궁극적으로 외부와, 주변과, 타자와 연결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나타낸다는 점에서 궤를 같이한다. ‘타자’ 없이 ‘나’(주체)가 존재할 수 없다는 자명한 사실이 역설적으로 단절된 사회의 병리적 현상의 면면으로 확인되는 것이다.
역대 대통령, 빈말이라도 통합 강조했는데
코로나19를 기점으로 한국 사회의 단절은 더욱 가속도가 붙었다. 이미 연결이라는 감각은 희미해지고 있었는데, 팬데믹 상황에서 사람들 사이의 물리적 접촉이 제한된 것이 결정적이었다. 특히 팬데믹으로 경제적 격차가 극단화되면서 소수의 가진 자들은 자신들만의 성을 쌓고 주변의 곤란에 눈을 감았다. 자본을 가진 이들에게 노동계층의 고통은 자신들의 삶과는 상관없는 일에 불과하며 하루하루 살아가는 것이 급급한 소시민에게는 주변과의 연결을 도모할 여력이 없다. 일터에서 노동자들이 죽어 나가도 공장 기계는 멈추지 않으며, 새벽배송 업무를 하다 과로사가 속출해도 그들의 죽음에 모두가 연루돼 있다는 것을 애써 망각하려 한다. 이태원 참사나 오송 지하차도 참사 등 사회적 재난에 잠시 분노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자신은 안전하다는 사실에 안도하기도 한다. 사회 구성원 모두가 연결돼 있다는 감각이 무뎌진 상황에서 더더욱 자신의 안위에 집중하게 되는 것이다.
더욱 심각한 것은 단절된 사회의 틈새를 극우적인 정치인이 비집고 들어온다는 데 있다. 법의 공정한 집행 등을 강조하며 집권한 윤석열 대통령이 이토록 극우·반공적인 언설을 쏟아낼 수 있는 이유는 연결의 감각을 잃어버린 유권자들을 간파했기 때문이다. 다른 말로 하면 윤 대통령은 유권자들이 서로의 고통을 감각하며 연대하지 못할 것이기에 자신의 강성 지지층이 원하는 것에 집중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국가를 운영할 수 있다고 믿는 것이다. 역대 권력자들은 다수의 유권자를 두려워하면서 빈말이나마 국민 소통과 통합을 국정 운영의 원칙으로 내세워왔다면 윤 대통령은 대놓고 소수 지지 세력을 위한 정치를 천명하기까지 한다.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에 반대하는 국민 대다수를 과학을 믿지 못하는 불온한 집단으로 몰아세우는 것이나, 민주주의 국가에서 국정을 함께 운영해야만 하는 야당이나, 정부와 권력을 견제하는 것이 존재 이유인 언론을 ‘공산주의자’, ‘종북세력’ 등으로 규정하며 말살하려는 것이 예가 된다.
☞한겨레S 뉴스레터를 구독해주세요. 클릭하시면 에스레터 신청 페이지로 연결됩니다.
☞한겨레신문을 정기구독해주세요. 클릭하시면 정기구독 신청 페이지로 연결됩니다.
‘붕괴된 연결’ 재생 가능성
하긴 분단선의 북쪽에서도 비슷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 국경이 봉쇄되자 북한 주민들과 외부 세계가 단절되고 만 것이다. 북한은 수십년간 북-중 사이의 공식·비공식 교류가 활발하게 발전해왔다. 북-중 접경지역은 교역의 공간뿐만 아니라 사람들 사이의 무수한 연결을 가능하게 하는 교류와 접촉의 장소였다. 경제난 이전에도 국경지역 주민 사이의 비공식적인 접촉과 연결이 지속됐다는 점을 감안할 때 팬데믹 상황에서의 국경 봉쇄는 역사상 유례를 찾아보기 어려운 단절의 경험이었다.
국경이 봉쇄되자 그동안 조금씩 발전해온 장마당 경제의 활기도 빛바랬고, 북한으로 유입되는 정보와 물류도 감소했다. 하지만 김정은 정권에는 코로나 팬데믹 상황이 위기만은 아니었다. 무엇보다 권력 강화라는 측면에서 2019년 하노이 노딜로 상처를 입은 김정은 위원장의 상징성을 회복하는 기회이기도 했다. 예컨대 노동신문과 조선중앙텔레비전에서는 전세계가 경험하고 있는 팬데믹 상황을 세세하게 보도하면서 빠른 국경 봉쇄를 통해 인민의 안전을 지켜낸 지도자의 능력을 선전하는 것을 잊지 않았다. 북한 내부에 깊숙하게 파고든 외부 문화를 통제하기 위해 ‘반동사상문화배격법’과 ‘평양문화어보호법’을 제정하면서도 인민들의 생활 향상을 최우선으로 하는 인민대중제일주의 정치를 천명하기도 한다. 정보·물류·사람들의 연결망이 차단된 팬데믹 기간 동안 느슨해진 사회 규율을 강화하고, 시장 통제력을 회복함으로써 지금까지 어렵사리 구축한 북한 사회 변화 전반을 다시금 국가와 지도자 중심으로 전환하려는 시도를 하는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지난 27일 무려 3년7개월 만에 북한 정부가 국경을 다시 개방하기로 한 것은 분명 환영할 만한 일이다. 이제 조금씩 끊어진 연결선들이 이어질 것이다. 국경 무역을 필두로 사람들이 오가고 정보와 물류가 들어가며 북한 사회와 경제에 활력을 불어넣을 것이다. 언제나 그래왔듯이 통제와 규율을 뛰어넘는 접촉과 연결은 끊임없이 생성될 것이다. 향후 이러한 연결선이 어떻게 변화할지는 좀 더 지켜봐야 하겠지만 단절된 선이 복구됐다는 것만으로도 가능성은 존재하는 셈이다.
물론 사회적 연결이 붕괴된 한국 사회에도 가능성은 존재한다. 적어도 한국 사회에서 물리적 단절은 제한적이라는 점에서 북한보다는 나은 환경이다. 그렇다면 지금까지 우리가 망각한 연결의 감각을 일깨우는 것에서 시작하면 어떨까? ‘타자’의 안녕이 ‘나’의 안전에 다름 아니라는 것을 감각하는 것이다. 좀 더 전복적으로 ‘타자’의 범위를 인간뿐만 아니라 자연 전체로 확장해도 좋겠다. 현재에만 매몰될 것이 아니라 역사의 연속성도 중요하다. 모두가 시공간을 넘어서 연결됐다는 것을 인지할 때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와 홍범도 장군 관련 역사 왜곡도 좀 더 무겁게 접근 가능하다. 오염수는 인간에 미치는 영향 여부는 별개로 해양 생태계 전반의 문제로 확장돼야 하며, 역사 왜곡을 통해 복원하려는 과거가 사실은 현재와 미래를 바꾸려는 시도라는 측면에서 심각한 ‘사태’로 다뤄져야 할 것이다.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
영국 에식스대에서 사회학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성공회대, 싱가포르국립대를 거쳐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로 재직 중이다. 북한 사회와 탈분단 문화를 연구하며, ‘갈라진 마음들’ 등 다수 학술 논문을 냈다.
Copyright © 한겨레신문사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 [현장] 검은 옷 입은 교사 30만명 “악성 민원, 남 얘기 아냐”
- 호날두·드록바 넘은 손흥민, 네번째 해트트릭…‘손톱’이 옳았다
- ‘호국’ 한다며 ‘독립·민주’ 걷어차기…그러면 나라 지켜지나
- ‘정서적 내전’ 끝낼 분권형 개헌, 대통령이 나서야
- “홍범도 장군 모셔갔으면 제대로 모셔라” 카자흐서 동포들 항의
- 윤 대통령이 외압 몸통? 해병대 수사단장 폭로 전말 [논썰]
- 하루 3초 근육운동, 얼마나 하면 효과 볼까
- 미식의 나라, 타이에서 만난 ‘지속가능한’ 요리 [ESC]
- 서양 억새 아래 인생사진 찰칵…‘인스타 핫플’ 태안
- 박정훈 전 해병대 수사단장 구속영장 기각…군사법원 이례적 결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