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암암리에 다 돕는데"…'부모 찬스 3억'이 가져올 효과
[편집자주] 서울 평균 아파트 가격이 약 12억원에 달하는 시대다. 청년층이 결혼해도 부모의 도움없인 전세조차 얻기 어렵다. 정부가 증여세 면제 한도를 1인당 5000만원에서 1억5000만원, 부부 기준 1억원에서 3억원으로 높이려는 이유다. 9월1일 국회에 제출된 내년도 세법 개정안에 담긴 내용이다. 그러나 계층간 불평등을 키운다는 반론도 없지 않다. 이 감세안의 실효성과 공정성을 짚어본다.
"한 마디로 고육지책(苦肉之策·자기 몸을 희생하는 방책)이다."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소속 한 국민의힘 의원은 정부의 세법개정안 중 '결혼자금 증여세 공제 확대' 방안에 대해 이같이 평가했다. 인구절벽에 직면한 가운데 저출산 해결을 위해 세수가 줄어드는 것도 감수하겠다는 의지라는 뜻이다.
그러나 이 감세안의 진짜 의미는 결혼을 통한 출산 장려가 아닌 음성적 증여를 양지로 끌어내는 세제 합리화, 즉 공제한도 현실화에 있다는 평가도 나온다.
29일 국무회의에서 확정 의결된 정부의 '2023년 세법개정안'에 따르면 혼인신고일 전후 각 2년 이내에 부모로부터 증여받은 재산에 대해 1억원까지 증여세가 면제된다. 현재 부모가 자녀에게 재산을 증여할 때 10년 간 5000만원(성인 기준)까지는 세금을 물리지 않는 만큼 결혼 시 최대 1억5000만원의 증여세 공제 혜택을 받을 수 있는 것이다. 양가에서 받으면 최대 3억원까지 공제가 가능하다.
◇결혼 증여세 감면 효과? 정부 "추정 곤란"
정부는 이를 저출산 대책이라고 홍보했다. 급격한 물가 상승을 감안할 때 결혼비용 부담을 덜어주면 저출산 문제 해결에 도움이 되리란 것이다. 기획재정부는 1억원이란 금액은 전세가격을 고려해 결정했다고 했지만 구체적 근거를 대진 못했다.
증여세는 그 특성상 구체적 정책 효과 파악이 어렵다. 자녀 혼인 시 부모의 재산 증여가 암암리에 이뤄지는 경우가 많아서다. 국민의힘 관계자는 "기재부에 근거 데이터를 문의했는데 파악이 어렵다고 한다"고 전했다.
지난 25일 국회 기재위 소속 진선미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개최한 세제개편 토론회에서 채은동 민주연구원 연구위원도 기재부가 결혼자금 증여공제 효과를 '추정 곤란' 처리했다고 밝혔다. 세수추계가 불가하단 입장을 냈단 것이다. 그는 "자료 부족과 부실한 추계에 대한 비판을 사전 차단한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장혜영 정의당 의원은 지난해 부모로부터 1억원 이상을 증여받은 30대는 14%에 불과하다고 밝혔지만 국세청의 증여세 납부 자료를 근거로 했단 점에서 현실을 반영했다고 보기 어렵다.
◇"결혼 증가 기대 어려워…부의 대물림 촉진 측면도"
전문가들은 '혼인 증여재산 공제' 신설을 어떻게 평가할까. 정부의 취지엔 공감하나 혼인 증가나 저출산 문제 해결을 기대하긴 어렵다고 입을 모았다.
김우철 서울시립대 세무학과 교수는 "증여세 부담이 과중해서 부모님이 지원해주지 않아 결혼을 미뤄온 사람이 몇 명이나 있겠나"라며 "그런 경우는 없을 것이다. 대부분 증여세를 회피해왔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는 "증여세 부담이 혼인에 장애가 된 게 아니기 때문에 이 제도로 혼인 증가의 효과를 보긴 어려울 것"이라고 밝혔다.
정세은 충남대 경제학과 교수는 "결혼이 인륜지대사인데 1억원 공제로 결혼 안 할 사람이 하겠나"라며 "결혼하기로 한 사람들 세금 깎아준다, 결혼 축하금 준다는 의미"라고 했다.
재정적 문제로 혼인의 어려움을 겪는 건 저소득층·서민인데, 중산층·고소득층에 혜택이 쏠린다는 지적도 나왔다. 정 교수는 "한국에서 결혼 못 하고 아이 못 낳는 사람들은 대개 저소득층"이라며 "공제한도가 5000만원인 현재도 고소득층은 자녀들에게 암암리에 해주는 게 많다. 자녀가 서른이 넘은 경우 2억원까진 자녀의 재산일 수 있다고 보고 조사하지 않는 가이드라인이 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공제를 더 해주잔 것인데 중산층, 고자산 계층에게 좋을 뿐 서민들에겐 씁쓸한 일"이라며 "양극화된 사회에서 부의 대물림을 촉진할 수 있다. 저소득 신혼부부에게 월세를 보조해주는 게 혼인율을 높이는 데 도움될 것"이라고 했다.
박기백 서울시립대 세무학과 교수도 "혼인율 제고가 목적이라면 출산 지원, 아동 수당처럼 관련된 모든 이들에게 혜택이 돌아가는 방식이 맞다"고 밝혔다.
◇ "저출산 해결보단 세제 합리화 효과"
이번 세법개정안이 증여세 공제한도를 현실화하는 의미는 있다는 평가다. 김 교수는 "자녀 혼인 시 부모의 증여는 상류층만의 전유물이 아니며 서민층도 여력이 되는 만큼 전세 보증금이라도 돕거나 돈 없으면 보증금 빼서라도 자녀에게 빌려주는 게 우리 결혼문화"라며 "과세당국이 지금껏 책임을 방기했고 납세자들도 회피해서 불안하고 찜찜하지만 신고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이어 "이번 개정으로 과세 사각지대를 투명하게 하고 세제를 합리화하는 효과가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정 교수는 "정부가 지금까지 증여세를 제대로 파악할 의지가 없었던 것"이라며 "세금은 공정성 실현과 소득재분배 의미가 있는데, 재원이 부족한 상황에서 고소득층 감세 정책을 펴는 것이 적절한가"라고 했다.
최인혁 한국조세재정연구원 부연구위원은 '재정포럼' 8월호에서 "주택취득가액이나 채무상환금액 등이 일정금액에 미달할 경우 증여추정이 배제되는 등의 이유로 실제 증여가 발생했으나 신고가 누락되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며 "또 애초에 부모로부터 증여받을 수 있는 재산이 적은 경우 혼인공제 도입에 따른 결혼비용 부담 완화 효과가 매우 제한적"이라고 분석했다.
이어 "혼인공제 도입의 의의는 기존의 증여세 공제 한도를 현실화했다는 측면에 두는 편이 더 적절할 것으로 보인다"며 "실제 혼인을 장려하기 위해서는 혼인 시 세제, 청약, 대출 등에서 불리해지는 '결혼 페널티'를 우선적으로 해소하는 편이 더 효과적일 것"이라고 밝혔다.
기획재정부는 지난 6월 발표한 '하반기 경제정책방향'에서 결혼자금 증여세 공제액 확대 계획을 처음 밝혔다. 당시 기재부는 공제액 '확대'가 아닌 '확대 검토'로 수위 조절을 했다. 계층 간 갈등 조장, 부의 대물림 등 논란이 적잖은 이슈라고 봤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기재부는 이후 약 한 달 동안 의견 수렴을 거쳐 7월 '세법개정안'을 통해 공제액 확대 추진을 확정했다. 혼인신고일 전후 2년 이내 직계존속으로부터 받은 재산은 1억원까지 증여세를 공제하도록 했다. 이런 내용을 담은 '상속세 및 증여세법'(이하 상증세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하면 종전의 5000만원 공제를 포함해 총 1억5000만까지 부모로부터 결혼자금을 받아도 증여세를 내지 않아도 된다.
기재부는 공제액 확대를 추진하는 이유로 △늘어난 결혼 비용 △세계 최고 수준의 증여세 부담 등 '현실 반영'을 들고 있다.
우선 기재부는 자녀 대상 재산 증여 공제액이 2014년 5000만원으로 정해진 이후 줄곧 변화가 없었던 것에 문제가 있다고 본다. 기재부에 따르면 소비자물가지수는 2014년 1월 93.7에서 올해 6월 111.1로 18.6% 올랐고 같은 기간 주택가격은 14.5% 상승했다. 업계 추정치로 올해 기준 평균 결혼 비용은 3억3000만원에 달한다. 이런 현실을 고려할 때 기존 '공제액 5000만원'은 너무 작다는 판단이다.
기재부는 한국의 증여세 부담이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회원국 중 최고 수준이라는 것도 공제액 확대 추진의 배경으로 들었다. 38개 OECD 회원국 중 증여세를 물리는 국가는 24개인데 이 가운데 한국의 증여세 최고세율(50%)은 1위 일본(55%) 다음으로 높다는 것이다. 반면 한국의 자녀에 대한 증여재산 공제 한도는 벨기에·헝가리·룩셈부르크·핀란드에 이어 아래에서 다섯 번째 수준이다.
기재부는 또 이미 많은 부모가 자녀의 결혼 비용을 지원하고 있는 현실 등도 고려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문제는 공제액 확대를 추진하는 궁극적인 목표인 '결혼·출산 증가' 실현을 장담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기재부도 이번 대책 추진에 따른 결혼·출산 영향, 세수 감소 규모 등은 추정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더불어민주당 일부 의원이 기본 공제액을 7000만원까지만 늘리고 '출산'에 1억원 추가 공제 조건을 넣어야 한다는 의견을 제시한 것도 이런 문제의식이 바탕에 깔린 것으로 보인다.
국회의 세법개정안 심의 과정에서 논란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기재부는 아직 야당의 공식적인 입장이 나오지 않아 '출산 시 1억원 추가 공제' 등 아이디어에 대해 별도 입장을 밝히기는 곤란하며 심의 과정에서 충실히 소통하겠다고 밝혔다.
박소연 기자 soyunp@mt.co.kr 김성은 기자 gttsw@mt.co.kr 안재용 기자 poong@mt.co.kr 세종=유선일 기자 jjsy83@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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