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대표적 ‘북한통’ 리처드슨 전 유엔대사 별세

전혼잎 2023. 9. 3. 08: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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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대표적인 '북한통' 빌 리처드슨 전 유엔 주재 미국대사가 별세했다.

리처드슨 전 대사는 북핵 문제 해결과 억류 미국인 석방을 위한 대북 협상가 역할로 한국에도 잘 알려져 있다.

뉴멕시코주에서 연방 하원의원과 주지사 등을 지낸 리처드슨 전 대사는 재임 기간은 물론, 퇴임 후에도 북한과 미얀마, 러시아, 이라크 등에 억류된 미국인 석방을 위한 협상에 참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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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등 인질 석방에 ‘헌신’
“미 인질 외교 최초의 거인”
빌 리처드슨 전 유엔 주재 미국대사가 2일 별세했다. 사진은 2012년 9월 미국 캘리포니아주 로스앤젤레스에서 열린 정책 심포지엄에서 질문을 하는 리처드슨 전 대사의 모습. 로스앤젤레스=로이터 연합뉴스

북한처럼 미국과 사이가 나쁜 나라에 억류된 미국인이 풀려나도록 하는 데 생애 내내 헌신하고, 북핵 문제 논의 등을 위한 대북 창구 역할도 맡았던 빌 리처드슨 전 유엔 주재 미국 대사가 75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리처드슨 글로벌 관여 센터’(RCGE)는 2일(현지시간) 성명을 통해 리처드슨 전 대사가 전날 미 매사추세츠주(州) 채텀의 자택에서 숨졌다고 발표했다. 미키 버그먼 센터 부이사장은 “고인은 인질로 잡혀 있거나 해외에 부당하게 구금된 사람들이 석방되도록 만드는 일을 포함해 다른 사람을 돕는 데 평생을 바쳤다”고 회고했다. 사인은 공개되지 않았다. RCGE는 외교와 평화 유지를 위한 세계 곳곳의 노력을 증진시킬 목적으로 고인이 2011년 세운 비영리단체다.

뉴멕시코주에서 연방 하원의원과 주지사 등을 지낸 리처드슨 전 대사는 재임 기간은 물론, 퇴임 후에도 북한과 미얀마, 러시아, 이라크 등에 억류된 미국인 석방을 위한 협상에 참여했다. 특히 북한에 억류된 미국인 석방과 미군 유해 송환을 위해 여러 차례 방북했다.

주한미군 헬기가 휴전선 인근에서 비행하다 북한에 격추됐던 1994년 12월 당시 하원의원 자격으로 평양을 방문하고 있었던 리처드슨 전 대사는 조종사 송환 협상을 맡았다. 교섭으로 데이비드 하일먼 준위의 유해를 돌려받고, 생존 조종사 보비 홀 준위를 사건 발생 13일 만에 판문점을 통해 데려왔다.

또 1996년에는 빌 클린턴 당시 미 대통령의 특사로 북한을 방문해 밀입국 혐의로 억류된 한국계 미국인 에번 헌지커의 석방을 끌어냈다. 2009년 탈북자 문제를 취재하다 국경을 넘어 북한에 붙잡힌 중국계 미국인 로라 링 기자 석방에도 기여했고, 2016년 대학생 오토 웜비어의 북한 구금 시에는 뉴욕에서 북한 외교관을 만나 석방을 요청하기도 했다.

빌 리처드슨 당시 유엔 주재 미국대사가 1998년 3월 미국 뉴욕 유엔본부에서 이라크의 유엔 무기 사찰 협정 위반을 규탄하는 결의안에 찬성표를 던지고 있다. 뉴욕=AFP 연합뉴스

빌 클린턴 행정부에서 에너지부 장관(1998~2000년)과 미국 유엔대사(1997~1998년)를 지내며 북한 측 인사들과 관계를 맺은 그는 정부직에서 물러나고도 북한과의 비공식 대화 창구 역할을 했다.

북한이 핵확산금지조약(NPT)에서 탈퇴한다고 선언한 2003년 1월에는 한성렬 유엔 주재 북한 차석대사가 그를 찾아가 핵 문제를 논의하기도 했다. 2007년 4월에 북한을 방문해 한국전쟁에서 전사한 미군 유해 6구 송환 약속을 받아냈으며, 민간인이었던 2013년 1월에는 에릭 슈밋 구글 회장과 북한을 찾아 핵실험 유예와 한국계 미국인 케네스 배 석방을 요청했다.


클린턴 행정부서 고위직 지내고도 오바마 지지

미국인 석방에 관한 한 북한은 리처드슨 전 대사가 활약한 무대의 일부다. 미 뉴욕타임스는 고인이 미국의 적성국에 억류된 미국인과 미군 80명가량이 석방되는 데 기여했다고 전했다. 그는 자신의 협상 원칙을 “적이라도 존중하고 체면을 살려 주는 것”이라고 말해 왔다고 한다. 외교 상대방을 무장해제시킨 고인의 힘은 따뜻함과 유머였다는 게 친구들의 전언이라고 미 워싱턴포스트(WP)는 전했다.

2019년에는 북한을 상대로 비공식 외교를 활발하게 한 공로로 노벨평화상 후보로 추천됐다. 또 해외 억류 미국인 석방에 이바지한 점을 인정받아 노벨평화상 후보로 총 다섯 차례나 지명을 받았다.

1982~1996년 14년간 뉴멕시코주에서 연방 하원의원으로 활동한 고인은 클린턴 행정부에서 주유엔 대사와 에너지부 장관을 맡은 데 이어 2003~2011년 뉴멕시코 주지사를 지냈다. 첫 히스패닉계 미국 대통령이 되겠다며 2008년 민주당 대선 경선에 도전했다가 힐러리 클린턴 대신 버락 오바마 후보를 지지하며 사퇴했다. 그가 클린턴 행정부에서 고위직을 지낸 만큼 배신으로 받아들이는 사람도 많았다. 오바마 행정부 출범 뒤 상무부 장관으로 지명됐지만 부패 스캔들이 터져 자리를 포기했다.

정계 은퇴 이후로는 자신이 세운 RCGE에서 미국인 석방 활동을 이어갔다. WP의 칼럼니스트 제이슨 레자는 리처드슨에 대해 “미국 ‘인질 외교’의 최초의 거인”이라고 평가했다.

전혼잎 기자 hoihoi@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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