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 된 자동차세 개편
자동차세 본질 논의 없이 증세 명분 찾기 돌변
[주간경향] 국민의 의무인 ‘납세’의 정의를 실현하기 위해 국가는 ‘조세부과의 원칙’을 준수한다. 국가나 지방자치단체 등이 강제적으로 부과·징수하는 조세가 국민 재산권의 중대한 제한을 가져올 수 있기 때문에 제약을 둔 것이다. 한국은 헌법 제38조 “모든 국민은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납세의 의무를 진다”, 제59조 “조세의 종목과 세율은 법률로 정한다”는 조항을 근거로 ‘조세 법률주의’를 준수하고 있다. 이를 기반으로 조세의 종목과 세율은 법률로 정해야 한다는 ‘과세요건 법정주의’, 과세요건은 명확해야 하며 불확정개념이나 개괄조항을 사용해서는 안 된다는 ‘과세요건 명확주의’ 등이 도출된다. 쉽게 말해 한국에서 조세의 부과 및 징수는 ‘명확한 근거와 형평에 어긋나지 않는 적절한 수준에서 법률에 근거해 이뤄져야 한다’는 뜻이다.
‘조세부과의 원칙’을 준수하는 것은 국민주권주의와 법치주의를 근간으로 하는 국가들에서 나타나는 공통 원리다. 그런데 해당 원칙이 존재한다는 것과 일상에서 국민이 조세가 정말 ‘공정하다’고 느끼느냐는 것에는 온도차가 있다. 조세부과의 기준이 변화한 시대상을 반영하지 못하거나, 조세가 소득재분배 기능에 역행하거나, 조세 부과 목적이 무엇인지 모르겠다 등이 대표적 이유다. 특히 개편 방안이 ‘증세’에 초점을 맞춘 것 아니냐는 의심을 받는 경우 더 큰 문제가 된다. 어느 정부를 막론하고 ‘증세’라고 설명하지는 않으므로 국민은 세금 고지서를 받고 나서야 그것이 ‘증세’였음을 알게 된다. 이 모든 의심이 한꺼번에 나타나고 있는 것이 바로 대통령실에서 불을 댕긴 ‘자동차세 개편’ 논란이다.
대통령실이 직접 운영하는 ‘국민제안’ 웹사이트가 있다. 윤석열 대통령 취임 이후 이곳에선 모두 4개 사안에 대한 국민 참여 토론이 이뤄졌다. 해당 사이트에 노출되는 토론 주제는 대통령실이 선정한다. ‘다수 민원이 제기된 사안’이라는 설명이 붙지만 토론장을 마련한 주체가 대통령실인 만큼 ‘여론 확인용’(테스트 베드)이라거나 지지자를 결집하는 ‘여론 조성용’이라는 비판도 있다. 실제로 TV 수신료 징수방안, 집회·시위 요건 및 제재 강화 등이 토론 주제로 선정됐고, 여기서 논의된 내용은 정부가 추진한 정책을 뒷받침했다.
‘국민 참여 토론’이 사실상 정부의 정책 방향을 확인할 수 있는 풍향계가 된 상황에서 네 번째 토론 주제로 ‘자동차세 등 배기량 중심의 자동차 재산기준 개선’이 등장했다. 지난 8월 1일부터 21일까지 진행된 토론에는 2200여개가 넘는 댓글이 달렸다. 1500여개에 달하는 추천도 붙었다. 댓글에서는 “배기량 기준으로 자동차세를 부과하는 것은 시대 변화를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는 비판이 주를 이뤘다. 상대적으로 ‘가격’이 비싼 고급차가 배기량이 낮아 자동차세를 적게 내는 사례가 발생한다는 것이 원인이었다. 전기차·수소차 등 배기량이 따로 책정되지 않는 차량의 보급이 늘어나고 있다는 점 등도 지적됐다.
정부는 토론 내용 등을 숙고해 개선 방안을 만들겠다는 입장이다. 그런데 해당 논의가 국산 내연기관차와 외제차, 전기차 등의 차주 간 갈등으로 흐르는 사이 반드시 짚어야 할 두 가지 사안이 교묘하게 빠졌다. 첫째는 자동차세 개편이 어떤 식으로 이뤄지든 향후 세 부담이 ‘증가’할 가능성이 높다는 점이다. 특히 자동차세의 가격 반영은 과세권자가 세수 확대를 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다. 현대차그룹을 포함해 한국에서 판매 중인 주요 차량 중 시간이 지남에 따라 차량 가격을 내린 경우는 사실상 전무하다. 새로 차를 구매하는 사람들은 비싸진 차량 가격만큼 더 세금을 내게 될 것이라는 의미다. 또 전기차·수소차 등에 대한 자동차세도 대폭 인상될 가능성이 높다. 기존에 내연기관 차량을 보유하고 있는 소유주가 증세 기조를 비껴갈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자동차세 개편은 조세 감면이 아니다. 특수한 몇몇 경우를 제외하고 세금은 ‘하방경직성’을 갖는다. 전기차·외제차에서 더 걷는 만큼 국산 내연기관차의 세금을 줄여줄 가능성은 희박하다. 부족한 세수를 메우는 데 활용될 수 있다는 의미다. 일부 경차를 제외하면 오히려 세금 현실화를 명목으로 자동차세가 오를 가능성이 높다는 지적은 이미 나오고 있다. 본질은 ‘증세’인 셈이다.
두 번째 사안은 보다 근원적인 부분임에도 논의가 되지 않았다. ‘대체 왜 매해 자동차세를 내느냐’는 조세 목적성 부분이다. 대통령실이 밝힌 토론 발제문에서조차 “자동차세의 취지를 재산가치와 환경오염, 도로파손 가능성 등을 감안한 세금으로 이해한다면”이라는 말이 나온다. 납세의무자가 자동차세를 무슨 이유로 내는지도 명확히 알지 못하는 상황이다. 법에 나온 대로라면 자동차세는 ‘지방재정 확보’가 과세 근거다. 재산, 환경오염, 도로 문제 등은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식으로 사후 명분을 갖다 붙였을 뿐이라는 뜻이다.
일단 내고, 사후 정당화하는 자동차세
자동차세를 규정하고 있는 것은 지방세법이다. 해당 법 제10장 1절에 따르면 정확히는 ‘자동차 소유’에 대한 자동차세다. 같은 법 제9장에서 재산세를 별도로 규정하고 있다는 점, 자동차세는 소유자가 매해 낸다는 점에서 ‘보유세’에 가깝다. 그런데 기존 자동차세를 둘러싼 비판, 토론 댓글 등을 보면 국민의 인식은 자동차세를 재산세 혹은 사치세에 가깝게 생각한다. 상대적 고급차, 즉 ‘가격’은 비싸지만 배기량이 낮아 자동차세를 덜 내는 차량들에 대한 불만에서 논의가 시작되고 있다는 점이 이를 방증한다.
자동차세를 재산 보유에 따른 세금으로 본다면, 차량 가격을 기준으로 세금을 부과할 경우 조세 형평성이 달성될 가능성이 가장 높다. 비싼 물건에 더욱 높은 세금을 부과하는 방향이다. 언제까지 자동차를 사치재로만 볼 거냐는 반론이 있지만, 쌓인 불만은 해소될 수 있다. 문제는 가격 기준으로만 단순화할 경우 세금의 정책적 활용 여지가 사라진다는 점이다. 자동차세가 ‘환경’도 생각하고, ‘도로의 유지·보수’도 따지는 것이 되면 향후 ‘증세’, ‘활용’ 면에서 재량의 폭이 커진다. 자동차세 과세표준을 두고 ‘이산화탄소 배출량’, ‘차량의 무게’, ‘운행거리’ 등 온갖 기준이 섞이기 시작한 상황은 이와 무관치 않다. 궁극적으로 납세자들은 왜 이 세금을 내는지 모르거나 각자 세금을 내는 이유가 다른 상황에 이르게 된다.
정부가 자동차세 개편에 대해 한국지방세연구원에 의뢰한 결과에서도 과세표준은 한 가지가 아니었다. 자동차세 부과 기준을 ‘가격 기준’과 ‘환경지표’로 이원화했다는 점이 핵심이다. 여기서 환경지표는 또 세분화된다. 내연차량의 경우 이산화탄소 배출량, 전기차는 중량이 과세표준이 된다. 이처럼 과세표준을 세분화할 수밖에 없는 근원에는 전기차의 보급 확대가 있다. 전기차는 내연기관 차량과 구동방식이 다르기 때문에 별도의 배기량이 없다. 이에 따라 ‘배기량’ 기준인 현행 자동차세 체제에서는 10만원(교육세 포함 13만원)만 1년 자동차세로 납부한다. 결국 전기차에도 과세를 해야 하는데 명분이 필요해진 것이다.
실제로 가격 기준으로 자동차세를 부과하면 정부 스스로 정책적 모순 상황을 만들게 된다. 한쪽에선 전기차 보조금 지급 등을 통해 가격 부담을 낮추려고 노력하고, 또 다른 한쪽에선 전기차에 세금을 부과해 부담을 올리는 모양새다. 이는 친환경차 보급을 확대하겠다는 정부의 장기적 목표와도 상충한다. 여기에 전기차 시장 확대에 나선 한국 자동차 산업까지 고려하면 문제는 더욱 복잡해진다. 환경오염을 기준으로 세금을 부과하는 것도 유사하다. 환경오염을 따지면 기존 내연기관 차량보다 전기차의 자동차세가 낮은 것이 정상이다. ‘무거운 전기차가 도로를 파손한다’는 가정까지 동원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된 것이다.
이렇듯 하나의 세금을 두고 납세의무자마다 사유가 다른 상황은 다시 근원적 의문을 촉발한다. 차량 소유주들끼리 누가 더 내고, 덜 내고가 아닌 ‘대체 이 세금을 왜 내느냐’이다.
자동차세, 왜 낼까
행정안전부에 따르면 자동차세는 1968년 도입됐다. 처음에는 4기통 이하 차량에 대해서만 배기량에 따라 차등 부과했다. 1991년에 이르러서야 본격적으로 전체 차량에 대해 배기량을 기준으로 자동차세를 부과하기 시작했다. 1995년에는 ‘기타 승용차’라고 해서 전기차·알코올 등의 연료를 이용하는 차량에 대해서도 과세를 시작했다. 영업용 2만원, 비영업용 차량 10만원 기준이 이때 탄생했다. 2010년에 이르러 수소·전기차, 태양열, 알코올 연료 차량 등으로 보다 세분화됐다.
자동차세는 과세 대상을 확대하는 방향으로 발전했다. 하지만 애초에 이 세금이 왜 부과됐느냐가 여전히 불분명하다. 재산세를 이유로 하기에는 자동차를 구매할 당시 취·등록세를 내고 있다. 보유세를 주장하기에는 여타 보유세에 비해 실질 세율이 높은 편이다. 게다가 차종에 따라 감가상각도 천차만별인데, 일괄적으로 세금을 부과할 수 있느냐도 문제다. 환경오염을 이유라고 한다면 친환경차 보급과 함께 자동차세 부담은 점차 소멸하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 결국 재정을 뒷받침하려는 명목으로 걷어온 세금을 다양한 이유로 포장해 오다가 사실상 증세를 하겠다는 것이다. 이마저도 차량 소유주들 간 불평등과 불만 등에서 개편 이유를 찾고 있다. 국가에 국민이 어떻게 길드는지를 잘 보여주는 대목이다.
정부 역시 해당 문제를 잘 알고 있다. 행정안전부 관계자는 기자와의 통화에서 “자동차의 어떤 부분에 왜 세금을 부과해야 하느냐는 결국, 사회적 합의의 문제”라며 “반드시 자동차의 어떤 부분에 세금을 부과해야 한다고 정해지거나 한 것은 아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자동차세 문제는 쉽지 않기 때문에 개편을 논의 중이지만 어떤 과세 기준을 정할지, 언제 결론이 나올지 등에 대해서는 말해줄 수 있는 것이 없다”며 “특히 전기차 자동차세를 올릴지 내릴지는 정해진 것이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업계가 충격 받을까봐 조심스럽다. 자동차세 개편 논의는 과세형평성을 제고하기 위한 것이고, 증세를 목적으로 하는 것은 아니다”고 덧붙였다. 종합하면, 세금은 무조건 내야 하는데 무슨 명분으로 낼지는 사회구성원들이 각자 정해보라는 것이다.
대통령실 ‘국민제안’ 웹사이트에서 논의된 것은 사실상 돈을 내야 할 당사자들이 앞으로 더 많이 돈을 낼 명분을 찾는 일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자동차세 개편을 둘러싼 논의는 “너도 더 내라”가 아닌 “이 세금을 왜 걷는가”, “정확히 어디에 쓸 것인가”에 대한 것이어야 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김찬호 기자 flycloser@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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