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승진‧전태풍, “여전히 전주는 제2의 고향이다”
프로스포츠에서 프랜차이즈 스타, 원클럽맨 등으로 불리는 선수들은 해당팀 팬들에게 유독 많은 사랑을 받는다. 거기에 해당하는 선수 또한 자신을 각별하게 생각하는 소속팀 팬들에 대해 애정이 깊을 수밖에 없다. 하지만 선수의 말년 혹은 은퇴 후에는 관계가 살짝 달라지는 경우도 있다.
해태‧KIA 타이거즈 출신 이종범이 대표적이다. 구단의 사려깊지않은 태도에 다소 상처를 입고 은퇴를 선택해야만 했다. 당시 이종범은 분노했고 속상한 마음을 그대로 행동으로 옮긴다. 은퇴를 선언하기 무섭게 교육상의 이유를 들어 자녀들부터 수도권으로 전학시켰고 이는 결과적으로 이정후의 히어로즈행으로 이어졌다.
이정후 또한 자신의 미니홈피에 타이거즈에 대한 분노를 쏟아냈고, 한 인터뷰에서 "내 고향은 나고야다"라며 타이거즈는 물론 자신이 성장한 광주마저 외면하는 속내를 드러냈다. 이종범은 이후에도 감정이 풀리지 않은 듯 타이거즈와 거리를 두는 듯한 태도를 취하고있으며 이정후는 이젠 미움도 애정도 없는 모습이다. 물론 그것과는 관계없이 대다수 타이거즈 팬들은 이종범 부자가 잘되기를 진심으로 기원하는 분위기다.
반면 이종범과 동시대에서 활약했던 양준혁은 조금 다르다. 그는 자신이 어린 시절부터 애정을 보이던 삼성으로부터 이종범보다 훨씬 많은 상처를 입었다. 쌍방울 레이더스의 2차 1순위 지명을 받게 되었지만 입단을 거부하고 상무에 입대하는 전략을 짜야만했던 상황이 그랬고 이후에도 곽채진, 황두성과 함께 현금 20억 원까지 더해져 임창용과 트레이드되는 굴욕(?)을 겪었다.
이종범과 마찬가지로 은퇴 과정 역시 매끄럽지 못했다. 하지만 무수한 상처에도 불구하고 양준혁은 스스로를 "푸른 피가 흐르는 남자다"고 칭하며 삼성에 변함없는 애정을 드러내고 있다. 양준혁 역시 삼성에 서운한 감정이 없을리는 없다. 하지만 선수와 팀과의 관계에는 구단만이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오랜 시간동안 자신을 응원해준 팬들이 있다.
양준혁은 바로 그러한 팬들을 위해서 많은 아픔을 툭툭 털어낸 것이다. 어찌보면 이종범 부자가 지극히 평범하다. 사람은 대부분 내 이익이나 감정 위주로 생각하고 움직일 수밖에 없다. 다만 그런 부분에서는 양준혁이 조금 특별했을 뿐이다. 자신을 응원하던 팬들을 생각해서 나쁜 마음을 최대한 지워냈다고 보는게 맞다.
현 KIA 서재응 투수코치같은 경우 메이저리그에서 뛸 때부터도 연고팀 타이거즈에 각별한 애정을 밝힌바 있다. 비시즌에 종종 함께 훈련을 하는가하면 한 TV프로그램에서는 ‘지금은 미국에서 뛰고있지만 내 마음은 언제나 타이거즈와 함께 한다. 또 다른 꿈은 언젠가 타이거즈 소속으로 뛰는 것이다’고 강조했고 무슨 이유에서인지 당시 사회자가 급하게 서재응의 말을 끊어내는 해프닝이 벌어지기도 했다.
최근 연고지 이전으로 시끄러워지고 있는 KCC 이지스에도 양준혁, 서재응같이 팀과 연고지역에 유달리 애정이 큰 선수가 둘 있다. 다름아닌 하승진(38‧221.6cm)과 전태풍(43‧179cm)이다. 하승진의 KCC 사랑, 전주 사랑은 ‘다른 팀, 다른 연고지에서 뛰기 싫어서 은퇴해버렸다’는 말 하나로 그 크기를 알 수 있다. 잘 모르는 이들같으면 오버 아니냐고 할 수도 있겠으나 실제로 하승진은 그렇게 했다.
하승진의 찐친 전태풍 또한 KCC 사랑, 전주 사랑이 남다르기로 유명하다. KCC외에 고양 오리온스, 부산 kt 등에서 뛰기도 했지만 이는 혼혈선수 제도로 인해 어쩔 수 없었던 부분일뿐 전태풍의 의지가 아니었다. 전태풍은 시종일관 KCC팀, 전주 팬들과 함께 하기를 원했고 실제로 본인에게 선택권이 주어지자 전주로 돌아왔다.
팬들도 알고있다시피 하승진, 전태풍은 선수생활 말년 KCC와 살짝 매끄럽지못한 부분이 있었다. 그들도 사람인지라 정도의 차이만 있을뿐 서운한 감정은 분명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둘은 은퇴 후에도 ‘KCC가 잘됐으면 좋겠다’, ‘전주는 최고의 도시다’며 팀과 연고지를 향한 좋은 마음을 지속적으로 표현해왔다. 현역시절 자신들을 응원해주던 팬들을 잊지않고있기 때문이다.
그런 둘인지라 최근 시끄러웠던 연고지 이전에 대해 관심이 없었을 리가 없다. 전태풍은 얼마전 본지와의 인터뷰에서도 “연고지 이전 얘기가 나오기 무섭게 (하)승진이와 제일 처음 나눈 대화가 우리 전주 팬들 어쩌지라는 내용이었다. 비즈니스의 세계에서는 무슨 일도 일어날 수 있겠지만 그런 것을 떠나 전주 팬들 걱정부터 1차로 들었다”고 말했다.
사실 둘은 전주, 호남지역이 고향도 아니다. 하승진은 서울이며 전태풍은 미국 애틀랜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들이 데뷔해서 뛰고 팬들과 함께 호흡한 인연으로 누구보다도 해당지역에 대한 애향심이 깊다. KCC와 전주, 호남 팬들도 그런 하승진과 전태풍에 대해서 수시로 감사한 마음을 표현하고 있다. 프랜차이즈 스타와 연고팀 팬들이 가져갈 수 있는 최고의 장점이 바로 이런 것이다.
하승진은 최근 자신의 유튜브 채널에 전태풍과 함께 나와서 현재의 아쉬운 상황에 대해 심정을 털어놓기도 했다. 일차적으로 일을 이지경까지 만든 전주시의 실책을 지적하는 등 객관적으로 상황을 풀어서 대화를 나누는 모습이었지만 전주 팬들 얘기가 나올 때는 안타까움 가득한 시선으로 서로를 쳐다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하승진은 여전히 전주는 ‘제2의 고향’이라고 표현했으며, 전태풍 역시 본인 또한 그렇게 생각하고 살았는데 지금은 조금 혼란스럽다고 대답했다. KCC는 부산으로 떠났고 그 과정에서 전주시는 명분을 제공하는 실책을 범했다. 전주, 호남 팬들은 물론 전국의 모든 KCC팬들이 안타까워하며 발을 구르고 있다. 타팀 팬들 또한 농구 인기에 찬물을 끼얹는 최악의 사건이다며 아쉬운 분위기 일색이다. 모든 아픔은 고스란히 팬들의 몫이 되어버렸다. 이제 호남과 충청지역에는 농구팀이 하나도 존재하지 않는다.
#글_김종수 칼럼니스트
#사진_하승진 유튜브 채널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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