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 뒷문 상장인가…적자기업 태반 '스팩합병' [신현아의 IPO그후]
이중 7곳 영업익 감소 혹은 적자
스팩, 부실기업 상장 발판 됐나
금감원 "공시작성·과대평가 책임 강화"
올 들어 상장한 스팩(기업인수목적회사·SPAC) 합병 상장 기업 총 11곳 가운데 7곳의 영업이익(상반기 기준)이 작년 대비 감소하거나 적자전환·지속한 것으로 나타났다. 다른 1곳은 지난 3년간(2020~2022년) 영업적자 상태였던 것으로 파악됐다. 유망 기업의 자금 조달을 적기에 지원하겠단 취지의 스팩 합병 상장이 자격 미달 기업의 상장 경로로 악용될 수 있단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또 상장 과정에서 부실기업의 기업가치가 부풀려지면서 투자자 손실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어 투자 주의가 필요하단 게 금융당국의 조언이다.
3일 한국거래소 기업공시채널(KIND)에 따르면 올해 스팩 합병으로 상장한 기업은 총 11곳(라이콤·화인써키트·메쎄이상·라온텍·엑스게이트·코스텍시스·셀바이오휴먼텍·벨로크·슈어소프트테크·팸텍·크라우드웍스)이다.
스팩이란 기업과의 합병을 목적으로 설립된 서류상 회사다. 증시 진출을 원하는 비상장사의 우회 상장 발판으로 활용된다. 일반적으로 스팩 합병을 통한 상장은 직상장보다 상장까지 기간이 짧아 외부 변수 영향을 비교적 덜 받는 만큼 안정적인 상장 루트로 인식된다. 수요예측 절차를 거치지 않아도 돼 기관투자자의 평가에서 자유롭단 이점도 있다.
스팩의 당초 취지는 잠재력 있는 기업에 안정적인 자금 조달 기회를 제공하겠단 것이었다. 하지만 상장 이후 스팩 합병 기업의 실적과 주가 흐름이 부진하다는 점에서 의도와 달리 직상장 기준에 못 미치는 부실기업의 상장을 돕는 수단으로 남용될 수 있단 지적이 나온다.
스팩 합병 과정에서 증권사 등 스폰서(스팩 설립·경영·합병 등 사무전반을 주도)가 합병 실패에 따른 손실을 줄이고, 막대한 수수료를 취득하려는 목적으로 합병을 무조건 성사시키려고 한다면 달리 막을 재간이 없단 점도 문제다.
올해 상장한 스팩 합병 상장사(11곳)의 올 상반기 실적은 대부분 부진했다. 라이콤(상장일 2월 14일), 코스텍시스(4월 3일), 벨로크(4월 28일), 팸텍(5월 23일) 등 4곳은 전년 반기 대비 영업이익이 적자전환했고, 라온텍(3월 9일)은 작년 상반기에 이어 올해도 적자를 지속했다. 화인써키트(2월 17일), 엑스게이트(3월 16일) 2곳은 영업이익이 작년 상반기 대비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달 31일 코스닥 시장에 상장한 크라우드웍스는 올 1분기 영업이익이 9억6770만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흑자전환했지만, 지난 3년간(2020~2022년) 영업적자 상태를 지속했다.
주가 흐름이 시원치 않은 곳도 7곳이다. 라이콤과 화인써키트, 셀바이오휴먼텍은 스팩 합병 첫날 모두 상한가를 기록했지만, 이후 내리막이다. 지난 1일 라이콤, 화인써키트, 셀바이오휴먼텍의 종가는 상장 첫날 종가와 비교해 각각 13%, 49%, 50% 하락했다. 코스텍시스(-3.4%), 벨로크(-9.6%), 펨텍(-27%) 등은 상장 첫날 종가보다 하락했고, 메쎄이상은 보합세를 나타냈다.
합병 추진 과정에서 불안정 기업의 기업가치가 고평가될 수 있단 점도 문제라는 지적이다. 스팩 합병 상장은 별도의 수요예측을 거치지 않고, 절대적인 기업가치를 바탕으로 합병 비율·가액 등을 결정한다. 때문에 기업가치에 대한 시장의 평가를 제대로 알기 어렵다. 상장을 준비하는 기업엔 부담 경감 요인으로 작용하지만, 기업가치가 부풀려질 여지가 있어 상장 후 주가 하락 시 자칫 일반투자자의 피해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는 얘기다.
금융감독원은 이미 한차례 이같은 스팩 합병 체계를 지적하면서 투자 유의를 당부했다. 금감원은 지난 3월 "증권사(대표발기인)는 낮은 투자단가, 자문업무 수행, 합병 실패 시 손실 등으로 일반투자자의 이익에 반하는 합병 추진 가능성이 있다"며 "스폰서가 비우량기업이더라도 합병을 진행할 유인하는 만큼 제도적 보완이 필요하다"고 짚었다. 또 "스팩 투자 및 비상장법인과의 합병이 반드시 높은 수익으로 연결되는 것은 아니다"며 "합병이 성사되더라도 투자 손실이 발생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업계도 이를 문제로 인식하고, 전문가들로 구성된 간담회 등을 통해 해결방안을 모색하고 있다. 금감원은 스팩 설립 건수, 합병 성공·실패 건수, 합병 후 주가 추이 등 합리적인 투자 판단에 필요한 정보가 충분히 공시되도록 스팩 기업공개(IPO)·합병 증권신고서 공시서식을 개정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또 스폰서의 과대 평가에 대한 책임을 강화하는 방향의 제도 개선을 검토하고 있단 입장이다.
금감원 관계자는 "서식 개정이 100% 완료는 안됐지만, 이미 실무에선 발기인들이 공시할 때 앞서 안내됐던 내용들을 반영하고 있다"며 "공시 강화와 관련해선 어느 정도 개선이 됐다고 보인다"고 설명했다.
이 관계자는 이어 "IOSCO(감독국제증권감독기구)에서 올 5월 '스팩 투자 시 고려사항'이란 내용의 보고서를 발표했고, 내용은 회원국을 대상으로 실태조사한 뒤 투자자 입장에서 개선할 수 있는 방향의 권고안이 담겼다"며 "금감원도 국내 시장에 실정에 맞게 이를 어떻게 적용할 수 있을지 검토하고 있다. 금융위원회와 협력할 예정"이라고 전했다.
신현아 한경닷컴 기자 sha0119@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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