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바리캉 폭행남' 피해자 "제 머리를 보고도 연인이라고 봐줄 수 있나"
7월 7~11일 오피스텔에 감금돼
개 취급하며 수시 폭행·협박
"피해자가 직접 증거 수집해야"
"가해자 엄벌, 제2 피해 없어야"
약자를 지키고자 군인을 꿈꿨던 스물한 살 여성 A씨의 삶이 송두리째 뒤바뀐 건 지난 7월. A씨는 한때 남자친구였던 이로부터 끔찍한 협박과 폭행을 당했다. 그는 바리캉(이발기)으로 A씨 머리를 밀고 오피스텔까지 빌려 4박 5일간 감금하고 폭행했다. A씨의 얼굴에 소변을 누거나 침을 뱉고, 나체로 무릎을 꿇리게 하는 등 고문 수준의 가혹행위도 했다.
구사일생으로 탈출했지만, A씨와 그의 부모는 악몽 같은 시간을 보내고 있다. 정신과 입원 치료를 받다 최근 집으로 돌아온 A씨는 매일 밤 베란다에서 웅크린 채 잠을 청한다. A씨의 부모는 생업도 멈춘 채 딸 곁을 지키고 있다. A씨는 1일 본보와의 인터뷰에서 "가해자에 대한 처벌이 제대로 이뤄지고, 이 사건이 잊히지 않아야 나와 같은 피해자를 막을 수 있다"고 강조했다. 그가 어렵게 인터뷰에 나선 이유다.
의정부지검 남양주지청 형사1부(부장 손정숙)는 지난달 4일 A씨의 전 남자친구 B(26)씨를 강간,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위반, 특수협박, 감금, 강요, 폭행 혐의로 재판에 넘겼다. B씨는 "피해자와 약혼한 사이로, 모든 범행은 피해자도 동의한 것"이라며 혐의를 모두 부인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어떻게 지내고 있나.
"병원에서 치료를 받다, 최근 집으로 돌아왔다. 그러나 침대에서 눈을 붙이려고 하면, 오피스텔 침대에서 당한 일들이 떠오른다. 잠깐이라도 잠들면 여지없이 가해자에 시달리는 꿈을 꾼다. 그럴 때면 놀라서 소리 지르고 깨 베란다로 뛰어가게 된다. 좁은 베란다에서 잠깐이나마 잘 수 있다."
-언제부터 폭행이 시작됐나.
"지난 7월 7일 오피스텔에 감금되기 사흘 전인 4일 밤부터 집을 나오라고 협박했다. 아파트 지하 주차장에서 밤새 기다리며, 나오지 않으면 부모님까지 전부 죽이겠다고 했다. 안 나가면 정말 뉴스에서나 봤던 사건들이 일어날 것 같아 다음 날 오전 5시쯤 맨몸으로 나갔다. 차에 타자마자 휴대폰을 빼앗고 주먹과 발로 때렸다. 그의 집으로 끌려간 뒤, 계속 폭행을 당했다."
-오피스텔에 감금한 이유는 뭔가.
"이틀간 자신의 집에서 때리다가 7일 오후 경기 구리시의 한 신축 오피스텔을 제 이름으로 계약하게 했다. '주변 사람들이 소리를 듣고 신고할 수 있으니 마음껏 너를 때리기 위해서'라고 했다. 우리 부모님이 들어준 적금을 해약해 보증금과 월세를 내도록 했고 그날부터 그곳에 갇혔다.
다섯 가지 규칙을 메모로 적어 외우게 했고 물어봤을 때 바로 대답하지 못하면 뺨을 때렸다. 말 두 번 하게 하지 않기, 말할 때 다른 거 하지 말고 집중하기, 알았어라고 대답하기, 남자 어떤 언급도 안 하기, 최대한 붙어 있기였다. 내가 맞은 대수를 기억하는 건, 맞을 때마다 30대, 60대, 100대 등 맞는 횟수를 소리 내어 세게 했기 때문이다. '얼굴을 때려야 하니 스스로 안경을 벗어라'고도 했다."
-오피스텔에 반려견이 있었다.
"오피스텔에 있던 반려견은 그가 분양받았다. 저희 가족이 강아지를 키우고 있었고, 제가 강아지에 정이 많은 걸 알고 있었다. 저한테 다른 남자와 연락했다고 솔직하게 말하지 않으면 개를 죽이겠다고 협박했다. 개를 죽여서 제 얼굴에 비비겠다는 엽기적인 말도 많이 했다. 반려견과 같은 취급도 당했다. 강아지 배변패드에 용변을 하라고 했다. 무릎을 꿇린 채 옷을 벗게 하고선 '너는 저 개처럼 취급받아야 한다'고 하기도 했다."
-이번 사건 전 교제 당시 문제는 없었나.
"1년 6개월간 교제할 동안 폭행은 없었다. 저희 집에 온 적도 있고, 부모님과 만나기도 했다. 하지만 주식으로 큰돈을 잃고 나서부터는 언성이 높아지거나 심한 말을 하기 시작했다. 같은 과 동기 중 남성이 많다는 이유로 의심했고, 휴대폰을 수시로 검사하고 몰래 가져가 포렌식까지 했다. 제게 마약을 구하는 법을 상세히 설명해주기도 했다. 실제 마약을 해보지 않겠냐는 권유도 했다."
-가해자는 감금이 아니라 동거였다고 주장하고 있다.
"가해자가 제가 머리를 밀어달라고 해서, 제가 때려달라고 해서 한 것이라고 경찰조사에서 주장했다고 들었다. 근데 제 머리를 보고도 그런 말을 할 수 있나. 참 슬픈 게 성폭행을 당했는데 연인이라는 이유로 빠져나가려고 하는 자체가 말이 안 된다고 생각한다. 경찰도 (가해자의 주장대로) 연인 사이니 합의된 게 아니었냐는 질문을 했다. 저를 보면서 그런 말이 나올 수 있나 싶었다. 심지어 현행범으로 체포됐지 않았나. 가해자는 엄벌을 받아야 한다."
-교제 폭력 사건마다 피해자에 "왜 당했나"는 비난이 쏟아진다.
"가까운 관계였기 때문에 오히려 피할 수가 없었다. 저희 가족 집이 어딘지, 부모님이 무슨 일을 하는지, 가족들의 얼굴은 물론 인적사항도 다 알고 있었다. 그는 절 가둬놓고 '고소하면 너랑 너의 가족들 어떻게든 다 죽일거다', '우리 집 돈 많고, 우리 아버지는 합법적인 일만 하는 것은 아니다. 필리핀, 중국 애들 시켜서 네 심장을 도려내겠다' 등 협박을 계속했다. 어찌보면 가스라이팅 같은 걸 계속했던 것 같다."
-수사 과정에서 문제는 없나.
"피해 증거를 수집하는 과정이 힘들었다. 가해자 혐의를 입증할 폐쇄회로(CC)TV가 있는 편의점은 개인정보 보호를 이유로 제가 직접 가야 영상을 보여줬다. 영상을 보고 과호흡이 와서 쓰러졌다. 이게 말이 되나. 가족들도 생업을 중단하고 증거를 찾아야 했다. 옥상에서 내려오면서 안경을 벗고 뺨을 맞는 장면이 담긴 CCTV 영상도 아버지가 여러 차례 관리사무소장에게 읍소해 겨우 얻어 경찰에 제출했다. 압수수색 영장이 늦게 발부되면서 가해자 범행이 담긴 차량 블랙박스와 흉기 등도 확보하지 못했다고 한다. 경찰이 좀 더 적극적으로 신속하게 수사할 수 있도록 제도가 바뀌어야 한다."
-용기 내 인터뷰에 응한 이유는.
"군인이 되고 싶었다. 강자가 약자를 지켜주는 모습이 멋있어 보였다. 그런데 범죄 피해자가 됐다. 이번 일로 다시는 나 같은 제2의 피해자가 안 나왔으면 한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 가해자가 제대로 처벌을 받고, 이 일이 잊히지 않고, 아무도 이런 일을 겪지 않았으면 한다. 이런 피해를 당한 사람이 있다면 참지 말고 꼭 용기 내 경찰에 신고하라고 전하고 싶다."
원다라 기자 dara@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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