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시정부 이후 1번이 홍범도"…백선엽은 빠진 전쟁기념관 대형연표
[편집자주] '보통 사람으로는 생각할 수 없을 만큼 뛰어난 능력을 가진 사람'이라는 사전적 의미를 지닌 초인은 이육사의 시 '광야'에서 민족의 구원자로 등장한다. 일제 강점기부터 6·25전쟁 등 역사의 질곡 속에서 조명 받았던 민족의 구원자는 누구였는지, 역사적 평가에서 이들의 위치가 영구불변할 것인지 논란을 분석하고 시사점을 찾는다.
최근 국가보훈부가 국립대전현충원 누리집에서 '친일반민족행위자' 문구를 삭제한 6·25 전쟁영웅 백선엽 장군은 대형 연표에는 이름을 올리지 않았다. 전쟁기념관은 대형 연표에 독립군 전투 등 독립활동 관련 기록이 9칸에 달하는 반면 6·25전쟁은 1칸으로 끝나는 이유가 무엇인지 묻는 머니투데이 더300(the300)의 질의에 "선사시대부터 광복까지 전시된 전쟁역사실 전시내용 중심으로 대형 연표를 구성하다보니 시설 내 별도 전시관들이 있는 6·25전쟁보다는 독립군 관련 내용이 더 많이 포함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럼에도 '호국의 전당'으로 불리는 전쟁기념관의 대형 연표가 홍범도 장군을 '임정 이후 1번'으로 조명하고 있다는 사실은 육군사관학교가 교정에 설치했던 홍범도 장군 흉상을 그의 공산당 가입 이력을 근거로 교정 외부에 이전하는 상황과 맞물려 묘한 위화감을 낳는다.
"백마 타고 오는 초인(超人)이 있어 이 광야에서 목놓아 부르게 하리라." 독립유공자 이육사 시인이 애타게 찾은 진정한 '초인'은 누구일까. 이승만과 백선엽, 홍범도와 김원봉 등이 민족의 영웅인지 아닌지를 둘러싼 좌우 진영 간 '역사 전쟁'이 또 다시 불붙었다.
일례로 지난달 31일 찾은 전쟁기념관에서 한 시민은 홍범도 관련 전시물을 보며 "그때는 레닌 시대가 아니었느냐"라고 했다. 홍범도 장군이 소련 공산당과 접점을 맺기 시작한 시기는 6·25전쟁 이후 스탈린의 소련이 아니라 1920년대 극동에서 일본과 맞섰던 시기의 소련이라는 시각에서 홍범도 장군을 두둔한 것이다.
반면 신원식 국민의힘 의원은 "문재인 정권이 5년 동안 국군의 뿌리를 붉게 물들게 하기 위해 어떤 반국가적 행위를 했는지 살펴보겠다"며 문재인 정부의 홍범도 조명이 사실상 '국군 정체성 파괴'라는 입장을 냈다. 홍범도 장군에 대한 보수진영의 공세는 문재인 정부 시절 좌익 계열 민족주의 운동가 김원봉을 재조명한 데 대한 반작용 성격도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북핵 고도화, 중국의 대만 침공 위협 등으로 한반도를 둘러싼 안보지형이 불안정해짐에 따라'자유 민주주의' 수호라는 가치에 부합하는 인물을 찾을 필요성이 정부 차원에서 높아졌다는 주장도 나온다. 반중 정서가 강한 대만 민중진보당 집권과 시진핑 중국 주석의 3연임, 중국의 대외 팽창 의지에 대한 서방의 경계 등 대외 정세가 한국 사회의 이념 논쟁과도 맞물린다는 논리다.
국가보훈부가 일각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국립대전현충원 누리집에서 한국전쟁 영웅 백선엽 장군에 대한 '친일반민족행위자' 문구를 삭제한 것도 안보 상황과 무관치 않다는 해석도 존재한다. 백 장군은 한미동맹의 발전을 상징하는 인물처럼 보수층이 조명해 왔다. 육사는 박근혜 정부 때 백 장군의 어록을 모티브로한 '내가 물러서면 나를 쏴라'는 웹툰을 온라인에 공개했다가 문재인 정부 때 비공개로 전환한 데 이어 최근 다시 공개로 방침을 바꿨다. 백선엽 장군은 6·25 당시 다부동 전투에서 북한군을 격멸한 중대 전과를 올린 전쟁 영웅으로 추앙받아왔다. 일제의 간도특설대 복무 관련 논란이 있지만, '무결점·무오류의 영웅'을 찾긴 어렵다는 점에서 그런 이유로 백선엽 장군을 평가절하할 순 없다는 게 보수 진영의 주장이다.
신율 명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신냉전이 시작되면서 새로운 버전의 이념 갈등이 생길 수밖에 없는데 단순하게 영웅을 정치적 논리로 재단하는 측면은 아니라는 것"이라며 "중요한 것은 어떤 사람이 영웅인지 아닌지 여부는 지금의 상황에 의해서도 재해석될 수 있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논란의 대상 중에는 광주시가 기념 공원 조성을 추진하는 인물인 정율성처럼 호국·보훈의 관점과는 완전히 동떨어져 있다는 평가를 받는 인물도 있다. 정율성은 중국을 위해 인민해방군가를 작곡했고 북한 공산당을 위해 조선 인민군 행진곡을 작곡했다.
보훈은 안보와도 직결되는 문제이지만 특정인물에 대한 우상화 또는 비판 등 이념적 투쟁보다는 '보훈 민생' 해결을 위한 제도 보완에 집중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일례로 6·25 전쟁에 참전했던 이름 없는 소년병에 대한 국가 유공자 인정은 아직 국회에서 해결되지 않은 숙제로 남아 있다.
정치권에서는 독립 운동가 후손단체인 광복회 가입 대상을 직계비속으로 확대하는 법안도 나온 상태다. 광복 이후 세월이 지나며 애국지사의 직계존속들이 점점 자취를 감추고 있기 때문이다.
김지훈 기자 lhshy@mt.co.kr 김지영 기자 kjyou@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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