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시정부 이후 1번이 홍범도"…백선엽은 빠진 전쟁기념관 대형연표

김지훈 기자, 김지영 기자 2023. 9. 3. 06:30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초인의 지정석]①
[편집자주] '보통 사람으로는 생각할 수 없을 만큼 뛰어난 능력을 가진 사람'이라는 사전적 의미를 지닌 초인은 이육사의 시 '광야'에서 민족의 구원자로 등장한다. 일제 강점기부터 6·25전쟁 등 역사의 질곡 속에서 조명 받았던 민족의 구원자는 누구였는지, 역사적 평가에서 이들의 위치가 영구불변할 것인지 논란을 분석하고 시사점을 찾는다.

국방부 산하 공공기관 전쟁기념사업회가 운영하는 전쟁기념관(서울 용산)에 있는 대형 연표 설치물에는 홍범도 장군이 1919년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이후 가장 앞선 순번(사진에 붉은 박스 표시)으로 등장한다. /사진=김지훈 기자
국방부 산하 전쟁기념사업회가 운영하는 서울 용산구 전쟁기념관에 설치된 대형 연표에는 홍범도 장군이 1919년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이후 첫번째로 등장한다. 2015년 박근혜 정부 때 세워진 이 대형 연표에는 임정 이후 광복까지 홍범도 장군의 봉오동 전투(1920년)를 필두로 '한중 연합군'이 일본군을 격파한 쌍성보 전투, 자유시 참변, 대일 선전포고 등 사건이 9개 열거된 반면 6·25전쟁(1950년)과 정전협정 조인(1953년)은 각각 단 한 칸씩만 배정받고 마무리된다.

최근 국가보훈부가 국립대전현충원 누리집에서 '친일반민족행위자' 문구를 삭제한 6·25 전쟁영웅 백선엽 장군은 대형 연표에는 이름을 올리지 않았다. 전쟁기념관은 대형 연표에 독립군 전투 등 독립활동 관련 기록이 9칸에 달하는 반면 6·25전쟁은 1칸으로 끝나는 이유가 무엇인지 묻는 머니투데이 더300(the300)의 질의에 "선사시대부터 광복까지 전시된 전쟁역사실 전시내용 중심으로 대형 연표를 구성하다보니 시설 내 별도 전시관들이 있는 6·25전쟁보다는 독립군 관련 내용이 더 많이 포함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럼에도 '호국의 전당'으로 불리는 전쟁기념관의 대형 연표가 홍범도 장군을 '임정 이후 1번'으로 조명하고 있다는 사실은 육군사관학교가 교정에 설치했던 홍범도 장군 흉상을 그의 공산당 가입 이력을 근거로 교정 외부에 이전하는 상황과 맞물려 묘한 위화감을 낳는다.

(칠곡=뉴스1) 공정식 기자 = 6·25전쟁 정전 70주년과 백선엽 장군 3주기를 맞아 5일 오후 경북 칠곡군 다부동전적기념관에서 열린 고(故) 백선엽 장군(1920~2020) 동상 제막식을 통해 공개된 백선엽 장군 동상이 우뚝 서 있다. 높이 4.2m, 너비 1.56m 크기의 백 장군 동상은 동서남북 사방으로 대한민국을 지키고 수호한다는 의미에서 360도 회전할 수 있도록 제작됐다. 2023.7.5/뉴스1 Copyright (C) 뉴스1.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백마 타고 오는 초인(超人)이 있어 이 광야에서 목놓아 부르게 하리라." 독립유공자 이육사 시인이 애타게 찾은 진정한 '초인'은 누구일까. 이승만과 백선엽, 홍범도와 김원봉 등이 민족의 영웅인지 아닌지를 둘러싼 좌우 진영 간 '역사 전쟁'이 또 다시 불붙었다.

일례로 지난달 31일 찾은 전쟁기념관에서 한 시민은 홍범도 관련 전시물을 보며 "그때는 레닌 시대가 아니었느냐"라고 했다. 홍범도 장군이 소련 공산당과 접점을 맺기 시작한 시기는 6·25전쟁 이후 스탈린의 소련이 아니라 1920년대 극동에서 일본과 맞섰던 시기의 소련이라는 시각에서 홍범도 장군을 두둔한 것이다.

반면 신원식 국민의힘 의원은 "문재인 정권이 5년 동안 국군의 뿌리를 붉게 물들게 하기 위해 어떤 반국가적 행위를 했는지 살펴보겠다"며 문재인 정부의 홍범도 조명이 사실상 '국군 정체성 파괴'라는 입장을 냈다. 홍범도 장군에 대한 보수진영의 공세는 문재인 정부 시절 좌익 계열 민족주의 운동가 김원봉을 재조명한 데 대한 반작용 성격도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북핵 고도화, 중국의 대만 침공 위협 등으로 한반도를 둘러싼 안보지형이 불안정해짐에 따라'자유 민주주의' 수호라는 가치에 부합하는 인물을 찾을 필요성이 정부 차원에서 높아졌다는 주장도 나온다. 반중 정서가 강한 대만 민중진보당 집권과 시진핑 중국 주석의 3연임, 중국의 대외 팽창 의지에 대한 서방의 경계 등 대외 정세가 한국 사회의 이념 논쟁과도 맞물린다는 논리다.

(광주=뉴스1) 김태성 기자 = 극우정당인 자유통일당과 보수단체 회원들이 28일 광주 남구 양림동에서 정율성 기념사업 철회를 요구하며 집회를 한후 정율성 거리를 둘러보고 있다.2023.8.28/뉴스1 Copyright (C) 뉴스1.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국가보훈부가 일각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국립대전현충원 누리집에서 한국전쟁 영웅 백선엽 장군에 대한 '친일반민족행위자' 문구를 삭제한 것도 안보 상황과 무관치 않다는 해석도 존재한다. 백 장군은 한미동맹의 발전을 상징하는 인물처럼 보수층이 조명해 왔다. 육사는 박근혜 정부 때 백 장군의 어록을 모티브로한 '내가 물러서면 나를 쏴라'는 웹툰을 온라인에 공개했다가 문재인 정부 때 비공개로 전환한 데 이어 최근 다시 공개로 방침을 바꿨다. 백선엽 장군은 6·25 당시 다부동 전투에서 북한군을 격멸한 중대 전과를 올린 전쟁 영웅으로 추앙받아왔다. 일제의 간도특설대 복무 관련 논란이 있지만, '무결점·무오류의 영웅'을 찾긴 어렵다는 점에서 그런 이유로 백선엽 장군을 평가절하할 순 없다는 게 보수 진영의 주장이다.

신율 명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신냉전이 시작되면서 새로운 버전의 이념 갈등이 생길 수밖에 없는데 단순하게 영웅을 정치적 논리로 재단하는 측면은 아니라는 것"이라며 "중요한 것은 어떤 사람이 영웅인지 아닌지 여부는 지금의 상황에 의해서도 재해석될 수 있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논란의 대상 중에는 광주시가 기념 공원 조성을 추진하는 인물인 정율성처럼 호국·보훈의 관점과는 완전히 동떨어져 있다는 평가를 받는 인물도 있다. 정율성은 중국을 위해 인민해방군가를 작곡했고 북한 공산당을 위해 조선 인민군 행진곡을 작곡했다.

보훈은 안보와도 직결되는 문제이지만 특정인물에 대한 우상화 또는 비판 등 이념적 투쟁보다는 '보훈 민생' 해결을 위한 제도 보완에 집중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일례로 6·25 전쟁에 참전했던 이름 없는 소년병에 대한 국가 유공자 인정은 아직 국회에서 해결되지 않은 숙제로 남아 있다.

정치권에서는 독립 운동가 후손단체인 광복회 가입 대상을 직계비속으로 확대하는 법안도 나온 상태다. 광복 이후 세월이 지나며 애국지사의 직계존속들이 점점 자취를 감추고 있기 때문이다.

김지훈 기자 lhshy@mt.co.kr 김지영 기자 kjyou@mt.co.kr

Copyright © 머니투데이 & mt.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AI학습 이용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