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계대출에 기름부은 50년만기 논란…5대은행 21개월내 최대증가
연체율은 2년새 두배로…커지는 대출부실 위험에 한은·당국 '고심'
(서울=연합뉴스) 신호경 박대한 민선희 기자 = 5대 은행의 가계대출이 1년 9개월 만에 가장 큰 폭으로 뛰고, 전체 대출 연체율까지 지난해의 약 두 배에 이르면서 한국은행과 정부의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특히 한은의 경우 이자 부담에 따른 연체율 상승 등의 고통을 감내하고라도 물가를 억제하고 가계대출 수요를 줄인다며 통화 긴축 기조를 고수해왔지만, 긴축 효과는 갈수록 사라지고 부작용만 커져 난감한 입장이다.
일단 금융당국이 50년 만기 주택담보대출 한도 축소 등 건전성 정책으로 대응에 나섰지만, 규제 도입 과정에서 오히려 가계대출 가(假)수요가 몰리면서 어려움을 겪고 있다.
8월 주담대 2.1조↑…8개월만에 2조원대 증가
3일 금융권에 따르면 5대 은행(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의 지난달 말 가계대출 잔액은 680조8천120억원으로 집계됐다. 7월 말(679조2천208억원)과 비교해 한 달만에 1조5천912억원 늘었다
5월 이후 4개월 연속 증가일 뿐 아니라, 8월 증가 폭(1조5천912억원)은 2021년 11월(2조3천622억원) 이후 1년 9개월 만에 최대 기록이다.
특히 최근 가계대출 증가세를 주도하는 주택담보대출의 경우 8월에만 2조1천122억원(512조8천875억원→514조9천997억원)이나 뛰었다. 2조원대 주택담보대출 월별 증가액은 2022년 12월(2조3천782억원) 이래 8개월 만에 처음이다.
이런 추세로 미뤄 전체 은행권과 금융권의 가계대출 증가세도 4월 이후 8월까지 5개월 이어졌을 것이 확실시된다. 지난달 은행권과 금융권 가계대출은 각 6조원, 5조4천억원 불어난 데 이어 8월 증가 폭이 더 커졌을 가능성도 있다.
'50년만기 막히기 전에'…농협에서만 5영업일 주담대 5천억원↑
8월 가계대출 급증에는 50년 만기 주택담보대출 논란이 가장 큰 영향을 미쳤다는 게 은행권의 분석이다.
우선 5대 은행의 50년 만기 주택담보대출 잔액이 7월 말 8천657억원에서 지난달 24일 2조8천867억원으로 2조원 넘게 불었다.
더구나 이례적으로 이들 은행의 주택담보대출이 8월 25∼31일, 단 5영업일 만에 513조3천716억원에서 514조9천997억원으로 1조6천281억원 급증했는데, 상당 부분이 50년 만기 상품 대출로 추정된다.
지난달 10일 당국이 50년 만기 주택담보대출을 최근 가계대출 증가의 주범으로 지목한 뒤 은행권은 스스로 50년 만기 상품에 '만 34세 이하' 등 연령 제한을 두거나 아예 잠정적 판매 중단 방침을 밝혔다.
여기에 같은 달 하순에는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산정 기준 조정에 따른 50년 만기 상품의 실제 한도 축소가 임박했다는 소식까지 더해지면서 당장 필요하지 않은 주택담보대출 수요까지 몰렸다.
이달 말까지만 50년 만기 주택담보대출을 취급하겠다고 예고한 NH농협에서 지난달 25∼31일 주택담보대출이 5천82억원이나 폭증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개별은행 연체율 등 건전성지표 2∼3년내 '최악'
이처럼 가계대출이 빠르게 다시 늘어나는 가운데 연체율 등 건전성 지표까지 계속 나빠지면서, 부실 위험에 대한 우려와 긴장이 더 고조되고 있다.
5대 은행의 7월 말 기준 단순 평균 대출 연체율(1개월 이상 원리금 연체 기준)은 0.31%(가계대출 0.28%·기업대출 0.34%)로 집계됐다. 한 달 전 6월 말의 0.29%(0.26%·0.31%)보다 0.02%포인트(p) 높아졌다.
고정이하여신(NPL)비율도 한 달 사이 평균 0.25%에서 0.29%로 0.04%p 상승했다.
각 은행이 건전성 지표 관리 차원에서 6월 말 부실 채권을 집중적으로 상·매각을 통해 털어내면서 잠시 주춤했던 연체율 등의 오름세가 다시 시작되는 분위기다.
앞서 수년과 비교하면 5대 은행의 건전성 악화는 더 두드러진다.
지난해 7월 말 5대 은행 평균 연체율과 NPL 비율은 각 0.18%, 0.23%로 올해 같은 시점보다 각 0.13%p, 0.06%p 낮았다.
새로운 부실 채권 증감 추이가 드러나는 신규 연체율(해당월 신규 연체 발생액/전월 말 대출잔액)도 7월 말 0.08%로 1년 전(0.04%)보다 0.04%p 오른 상태다. 불과 1년새 지표가 거의 두 배로 뛴 셈이다.
더구나 개별은행의 내부 시계열을 보면, A 은행의 7월 말 전체 대출(가계+기업) 연체율(0.27%)과 기업 연체율(0.26%)은 모두 지난 2019년 11월(0.33%·0.32%) 이후 2년 8개월 내 가장 높은 수준이다.
B 은행의 7월 말 전체 대출 신규 연체율(0.09%)도 2019년 7월(0.10%) 이후 3년 만에 최고점을 찍었고, C 은행의 기업 고정이하여신비율(0.33%)은 2021년 6월(0.40%) 이후 2년 1개월 내 기록이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높은 금리와 실물경기 둔화로 회복 탄력성을 상실한 한계 기업과 가계를 중심으로 대출 부실이 늘어나고 있다"며 "여러 가지 유예 등 지원 정책과 함께 이연된 부실이 시간이 갈수록 점차 현실로 드러나는 상황"이라고 진단했다.
한은 "대출 규제 먼저"·당국 "50년만기 한도 축소"…회의론도
이창용 한은 총재는 지난달 24일 기준금리 동결을 결정한 뒤 가계부채 문제에 대해 "가계부채가 연착륙하도록 노력하겠다"며 "규제 등 미시적 정책이 먼저고, 그다음이 거시정책이라고 생각한다. 지금은 (거시정책을 쓸) 상황까지는 아니라고 판단한다"고 밝혔다.
가계대출이 너무 많이 늘어나면 기준금리를 더 올릴 필요가 있지만, 경기 위축이나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부실 문제 등을 고려할 때 한은으로서는 쉽게 인상을 결정하기 어려운 입장이다. 따라서 일단 문제 해결 주도권을 금융 당국에 넘긴 것으로 해석된다.
결국 실제로 당국은 지난달 은행권 등과 여러 차례 회의를 거쳐 50년 만기 주택담보대출, 인터넷은행의 공격적 주택담보대출 영업 등을 가계대출 증가의 주요 원인으로 꼽고 해결 방안을 강구하고 있다.
논의 결과로서 50년 만기 상품을 40년 만에 갚는 것으로 가정하는 새로운 DSR 산정 방식이 이르면 이번 주부터 모든 은행에서 시행될 전망이다.
하지만 50년 만기 상품 관련 억제책만으로 가계대출 증가세가 잡히지 않을 수도 있다는 회의적 시각도 있다.
시중은행 관계자는 "50년 만기 상품 수요 증가는 원인이 아니라 현상일 뿐"이라며 "주택담보대출 급증의 더 근본적 원인은 주택담보대출 LTV(담보인정비율) 상한 완화, 부동산규제지역 해제, 민간택지 내 분양가상한제 지정 해제, 특례보금자리론 도입 등 부동산 경기 경착륙을 막기 위한 정부의 규제 완화"라고 지적했다.
은행권에서는 당국이 8월 가계대출 지표를 최종적으로 확인한 뒤 가계대출 대책을 마련하겠다고 밝힌 만큼, 50년 만기 DSR 산정 기준 변경 외 다른 규제가 추가될 가능성도 거론되고 있다.
shk999@yna.co.kr, pdhis959@yna.co.kr, ssu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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