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법안 돋보기] “중소기업 살리기” vs “부자 감세” 싸움에 갇힌 가업 승계법

민영빈 기자 2023. 9. 3. 0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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尹정부, 지난 7월 세법 개정안에 가업승계 세 부담 완화에 방점 찍고 발표
올해 발의된 가업승계법안 7건은 모두 ‘계류’ 중
與 “중소기업 승계 원활해지도록 반드시 통과시킬 것”
野 “총선 생색내기용에 불과… 논의 더 필요하다”
경제 활력 회복하겠다는 獨, ‘성장기회법’ 4년간 한시 적용하기로 합의
전문가들 “與野, 총선 앞두고 지지층 결집 노릴 것… 원안 통과 어려울 수도”

윤석열 정부가 가업승계 지원제도를 개정하는 내용이 담긴 세법 개정안을 발표한 가운데 가업승계 세제법을 둘러싼 여야 싸움은 첨예하다. 총선 표심에 영향을 미칠 사안이다 보니 법안 통과에 한 치의 물러섬이 없는 것이다.

중소기업계에서는 경제 위기에 승계까지 어려우니 ‘헐값’에라도 기업을 파는 게 낫다는 ‘웃픈 소리’도 나온다. 일각에서는 최근 중소기업의 법인세 감면을 놓고 ‘부자 감세법’ 싸움을 멈춘 독일 연립정부의 행보를 주목해야 한다는 시각도 있다. 전문가들은 내년 총선을 앞둔 마지막 정기국회인 만큼 여야 대치 상황은 극에 달할 것이라고 전망한다. 정부가 발표한 세법 개정안이 그대로 통과될지도 미지수인 것이다.

조응천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30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전체회의에서 한덕수 국무총리에게 질의를 있다. 2023.8.30/뉴스1 ⓒ News1 송원영 기자

3일 국회 의안정보시스템에 따르면 제21대 국회가 발의한 가업승계 관련 법안은 총 28건이다. 이 중 지난해 국회를 통과한 세법 개정안의 예산부수법안에 반영돼 폐기된 법안을 제외하고 올해 발의된 법안은 모두 7건이다.

법안은 모두 상임위원회에 계류된 상태다. 윤 정부의 세법 개정안과 같이 중소·중견기업이 가업 승계를 포기하지 않도록 세 부담을 완화하거나 가업상속공제 사후관리 요건인 업종 변경 허용범위를 확대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윤석열 정부는 지난 7월 세법 개정안을 발표하면서 가업승계 지원 정책을 추진하기로 했다. 자녀가 부모로부터 가업승계를 목적으로 주식 등을 증여받는 경우 적용하는 10%의 가업승계 증여세 저율 과세 구간을 기존 60억원에서 300억원으로 올렸다.

‘연부연납(상속세나 증여세 납부 세액이 2000만원 넘을 시 부동산 등을 담보로 맡기고 일정 기간 세금을 분납하는 것)’ 기한도 현행 5년에서 20년으로 늘린다고 했다. 여기에 기업상속공제 혜택을 받는 기업인이 사후 관리기간인 5년간 산업분류상 ‘중분류’ 내에서만 업종을 변경하도록 한 제한 조치도 ‘대분류’로 확대했다.

윤재옥 국민의힘 원내대표(오른쪽 사진 속 앞줄 왼쪽) 와 박광온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왼쪽 사진 속 앞줄 왼쪽으로부터 두 번째)가 김기문 중기중앙회 회장과 나란히 서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뉴스1 갈무리

◇중소기업계의 세법 개정안 국회 통과 요청에 與野 온도 차 ‘극명’

중소기업계는 지난달 여야 원내대표를 만나 윤 정부 세법 개정안의 조속한 통과를 요청했다. 김기문 중기중앙회 회장은 “중소기업을 승계하고 싶어도 제도가 미흡해 기업을 헐값에 팔거나 문을 닫고 있어 국가적으로 큰 손해”라며 “여야 대선 후보들도 지난 대선에서 공약으로 제시한 만큼 이번 국회에서 마무리됐으면 좋겠다”고 했다.

국민의힘은 이번 마지막 정기국회에서 세법 개정안을 반드시 통과시키겠다는 입장이다. 윤재옥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지난달 23일 중소기업계 인사들을 만난 자리에서 “중소기업 승계를 원활하게 하는 법안은 예산 부수법안으로 처리될 것”이라며 “반드시 통과될 수 있도록 챙기겠다. 너무 걱정하지 않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반면 더불어민주당은 정부의 세법 개정안 통과를 놓고 반대 공세를 퍼부을 준비를 하고 있다. 민주당은 그동안 정부의 세법 개정안을 ‘포퓰리즘’, ‘부자 감세’라고 평가해왔다.

지난달 31일 민주연구원 주최로 진행된 ‘윤석열 정부 세법 개정안의 문제점과 대안 토론회’에서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야당 간사인 유동수 민주당 의원은 “정부의 세법 개정안은 총선 생색내기용”이라며 “감액을 중심으로 한 세법 개정안을 내놨는데, 서민층과 중산층을 위한 합리적인 세법 개정안을 준비하겠다”고 했다. 또 민주연구원에서는 가업승계 증여세 특례와 가업상속공제를 놓고 “정부 개정안은 증여가액 70억원 이상의 수십명 소수인원에게만 혜택을 주는 것”이라며 부정적인 입장을 피력했다.

올라프 숄츠 독일 총리(가운데)가 크리스티안 린트너 재무부 장관(왼쪽), 로베르트 하베크 부총리 겸 경제기후부 장관과 함께 29일(현지 시각) 베를린 인근의 영빈관 슐로스메세베르크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이들은 '성장기회법' 등 열 가지 경기부양책을 발표했다. /연합뉴스

◇선진국들, 장수기업 위해 가업 승계 적극 지원… 獨 ‘부자 감세’ 싸움 멈추기도

그렇다면 선진국들은 어떻게 하고 있을까. 일본은 2008년부터 ‘경영승계원활화법’을 통해 가업 승계를 적극적으로 지원하고 있다. 지역경제와 고용을 지탱하는 중소기업이 가업을 포기하고 폐업하는 일이 늘어나자 대책을 마련한 것이다. 또 이 법을 기반으로 2018년엔 특례사업승계제도를 도입해 상속·증여세 전액을 납부 유예 또는 면제해주고 있다. 제도 도입 이전과 비교했을 때 승계 신청 건이 10배 이상 증가했다는 통계가 있다.

일본 정부는 여기서 멈추지 않고 2020년 ‘중소기업성장촉진법’을 시행해 자녀에게 경영을 승계하는 경우는 물론 제삼자에게 경영권을 넘길 때에도 승계가 체계적으로 이뤄지도록 다각도로 지원하고 있다. 자녀가 가업 승계를 원하지 않더라도 회사 임원이나 직원 중 경영을 승계할 만한 인물이 있을 경우에는 일정 조건하에 지원해 우수한 기술과 고용을 유지하도록 한다는 것이다.

100년된 장수기업이 1만개가 넘는 독일은 기업 상속의 조세부담을 완화하고 상속 재산을 과세 대상에서 감면해주는 등 기업승계를 적극 지원하고 있다. 때문에 독일 사회에서는 가족이 기업을 승계하는 것 자체가 일반적이다. 여기에 독일 정부는 지난달 29일(현지 시각) 연간 70억유로(약 10조1000억원)의 법인세 감면을 골자로 한 ‘성장기회법’을 발표했다. 성장기회법은 독일 경제의 근간을 이루는 ‘미텔슈탄트(직원 500명 이하 매출 5000만유로(약 718억원) 이하인 중소기업)’를 대상으로 4년간 50종류에 달하는 법인세 감면 혜택을 준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해당 법안을 놓고 당초 독일 연립정부의 일원인 녹색당은 ‘부자 감세법’이라며 반대했다. 하지만 경제 위기에서 벗어나는 게 급선무라는 데 공감하면서 연간 60억유로 규모의 초안보다 크게 증가한 감세안에 합의했다. 그동안의 대치 상황이 무색할 정도로 독일 연립정부는 국제통화기금(IMF)과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전망한 ‘역성장’을 타파하기 위해 연정을 이룬 것이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달 29일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열린 제36회 국무회의를 주재하며 의사봉을 두드리고 있다. /뉴스1

◇전문가들, 회기 종료로 폐기 가능성도 제기… “尹정부 원안대로 국회 통과 어려워”

일부 전문가는 야당에서 이른바 ‘있는 자들의 증여세 완화’라는 ‘부자 감세’ 카드를 재가동한 만큼 가업승계 관련 법안이 포함된 정부의 원안이 그대로 통과되기 어려울 것이라고 전망한다. 총선 전 마지막 정기국회인 만큼 지지층 결집 차원에서 여야 협상 없이 회기를 끝낼 가능성도 높다는 것이다.

박상병 인하대학교 정책대학원 초빙교수는 “총선을 앞둔 마지막 정기국회의 숙명은 지지층 결집에 있다. 정부·여당은 중소기업의 지지를, 야당은 그 기업 노동자의 지지를 받는다”며 “대대로 중소기업을 운영하도록 한다는 법 취지는 모두 공감하겠지만 총선 표를 생각하면 여야가 생산적인 논의로 법을 통과시키기보다는 회기 종료로 법안을 폐기할 가능성이 더 크다”고 말했다.

신율 명지대학교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증여세와 상속세 등 중소기업이 직면한 환경이 기업의 영속성을 해치는 방향인 건 맞는다”면서도 “지금은 핵심 지지층에게 적극적으로 어필해야 하는 시기이기 때문에 정쟁 공세는 더 심해질 것”이라고 했다. 이어 “다만 연말이 다가오면서부터는 중도층을 공략해야 하기 때문에 그때엔 또 국회 상황이 달라질 수도 있다”며 “정기국회 끝까지 어떻게 될지 지켜봐야 한다”고 했다.

여야간 정쟁은 줄이고 간극을 좁힐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는 조언도 나온다. 이현출 건국대학교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경제의 한 축을 담당하는 중소기업을 살려야 한다면서도 ‘부자 감세’로 안 된다고 하면 누가 가업을 승계하겠나”라며 “여야도 각자 입장만 주장만 할 게 아니라 대승적 차원에서 협력해서 이견을 좁히고 합의점도 찾아봐야 한다”고 말했다.

이준한 인천대학교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100년 중소기업을 대대로 이어갈 수 있도록 한다는 취지겠지만 ‘가업승계’라는 특혜성 용어가 법 취지를 퇴색하는 면도 있다”며 “여야가 용어적인 측면에서 프레임을 짜서 정쟁을 이끌어가는데, 이보다는 실질적으로 중소기업을 살릴 수 있는 방안을 더 논의하도록 여야가 머리를 맞대야 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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