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 소부장 사태 악몽, 2023 한미일 협력이 재발 막는다"

조철희 기자 2023. 9. 3.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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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데이 모닝 키플랫폼] 새로운 한일관계의 패러다임 - 이지평 한국외대 융합일본지역학부 교수 인터뷰
[편집자주] 머니투데이 지식·학습 콘텐츠 브랜드 키플랫폼(K.E.Y. PLATFORM)이 새로운 한주를 준비하며 깊이 있는 지식과 정보를 찾는 분들을 위해 마련한 일요일 아침의 지식충전소 <선데이 모닝 키플랫폼>

(서울=뉴스1) 오대일 기자 = 윤석열 대통령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가 18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DC 인근 대통령 별장인 캠프 데이비드에서 한미일 정상 공동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대통령실 제공) 2023.8.18/뉴스1 Copyright (C) 뉴스1.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일본의 지난 2분기 실질 GDP(국내총생산)가 전 분기 대비 1.5%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시장 예상치 0.8%를 2배 가까이 넘어섰고, 연율로 환산하면 6.0%에 달하는 수치다. 2분기 실질GDP는 액수 기준으론 560조7401억엔으로 사상 최고 기록이다. 3분기 연속 플러스 성장세로 일본 경제가 '잃어버린 30년'(1990년대 초반 이후 장기침체 기간) 을 뒤로 하고 부활에 시동을 거는 것이 아니냐는 얘기까지 나온다.

때마침 한국 윤석열 대통령, 미국 조 바이든 대통령, 일본 기시다 후미오 총리가 미국 캠프데이비드에서 한미일 간 협력 강화를 선언하고, 윤 대통령은 이미 앞서부터 일본과의 관계개선을 추진해 왔기에 일본 경제의 회복이 한국 경제에 미치는 영향이 적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변화하고 있는 일본 경제의 실제를 들여다보고, 한일관계의 바람직한 개선 방향을 모색하기 위해 국내 최고의 일본 전문가들을 만나 이야기를 들어봤다.

이지평 한국외국어대 융합일본지역학부 특임강의교수는 머니투데이와 인터뷰에서 기업들의 투자 의지가 살아나기 시작하고, 임금도 오르고 있는 일본 경제가 올해 플러스 성장은 하겠지만 3%를 넘는 수준의 성장세를 이루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전망했다. 다만 디플레이션만큼은 잃어버린 30년에서 벗어났다며 물가가 오르는 경제가 됐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한미일 정상들의 협력 강화 선언이 시의적절하게 이루어졌다며 지금은 스탠스를 한미일에 두고 기술 교류나 공급망 협력을 통해 우리 경제와 산업의 기회를 넓히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이 교수는 LG경제연구원에서 30년 넘게 일하며 한국·일본 경제와 기업들을 분석했다. 일본 경제 연구지 '재팬 인사이트'를 출간하는 등 일본 경제, 한일 경제 관계, 일본 기업 경영 등에 대한 연구 활동을 활발히 하고 있다.

이지평 교수


#일본 경제 , 정말 회복되고 있는 것인가?

일본의 2분기 '깜짝 성장'은 코로나19 엔데믹에 따른 외국인 관광객 유입 증가와 자동차 수출 등 늘어난 해외 수출 수요가 기여했다.최근 일본 경제는 회복 신호인 물가, 임금, 실업률 지표 향상이 지속되고 있어 디플레이션 탈출 기대감이 높아졌다.
2분기 실질 GDP 성장률은 연율 6%, 명목 GDP 성장률은 12%입니다. 디플레이션 시기 땐 실질 GDP보다 명목 GDP가 낮았습니다. GDP 디플레이터가 마이너스인 경우도 많았습니다. 그러나 최근엔 명목 GDP가 훨씬 높아졌습니다. 소비자 물가도 높아지고 있습니다. 일본 경제가 이제 디플레이션의 악순환에서 벗어나고 있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

왜 이렇게 됐을까요. 금융완화 효과를 이야기하기도 하지만 이제 일본 기업들의 투자 마인드가 많이 변한 덕분입니다. 긍정적인 마인드로 변했습니다. 또 코로나 팬데믹 때 물가가 많이 올랐지 않습니까. 몇 년 동안 지속돼 인플레이션 기대 심리가 살아나는 것을 자극했습니다. 일본인들도 이제 '물가가 오를 수 있다'는 기대가 조금 생겼습니다.

임금도 상승하기 시작했습니다. '아베노믹스' 시기엔 주로 고령자와 여성의 고용이 이뤄져 전반적인 임금 상승은 부진했습니다. 그러나 최근엔 기업들이 사람 구하기가 어려워져 임금을 슬슬 올리고 있습니다.

일본 기업들은 경제 버블 붕괴 이후 디플레이션 시기 동안 주주 배당에나 신경을 써왔는데 최근엔 이에 대한 비판이 높아지고 임금을 올려야 하지 않느냐는 사회적인 분위기가 생겼습니다. 기업의 모든 이해관계자, 즉 스테이크 홀더(stakeholders)에 이익이 돌아갈 수 있도록 고르게 균형 잡혀야 한다는 시각입니다. 그래서 주주 배당만 늘리는 것이 아니라 종업원의 임금 및 교육이나 미래 사업에도 균형 있게 투자하려는 방향으로 바뀌고 있습니다.

일본 경제 2분기 지표에서 내수는 부진하게 나타났다. 개인 소비는 전 분기 대비 0.5% 감소했다. 3분기 만에 마이너스로 전환했다.
2분기 성장률이 너무 높았기 때문에 3분기 성장률은 소폭일 것 같습니다. 마이너스가 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하반기 전체로 보면 플러스가 될 것이고, 올해 연간 성장률은 예상보다 조금 높을 수 있습니다. 2%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1% 이상은 충분히 가능해 보입니다.

2분기 지표는 조금 변칙적으로 나온 측면이 있습니다. 내수는 오히려 조금 어려워졌습니다. 물가와 임금이 올랐지만 물가보다 임금이 덜 오르고 있습니다. 일본 경제는 물가가 올라 디플레이션을 벗어나면 좋지만, 물가가 너무 오르고 예상보다 길게 지속되다 보니 소비에 부담이 되고 있습니다.

경제 지표가 향상되자 지지율은 낮지만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의 경제 정책에 대해선 호평도 나온다. 기시다 총리는 30년 만에 처음으로 높은 수준으로 임금이 오르고 기업들이 투자 의욕을 가지면서 디플레이션의 악순환을 끊을 도전이 시작됐다고 자평한 바 있다.
아베노믹스 때는 대기업 낙수효과(trickle-down economics)가 약했습니다. 그 반발로 직접적으로 서민층을 두텁게 해야 한다는 것이 기시다 총리의 경제 정책이고, 최근의 회복은 그 정책이 통한 효과입니다. 기시다 총리가 최저임금도 1000엔으로 올려 전반적인 임금 상승 효과가 나타났습니다. 한국 경제의 경우 문재인 정부 때 '소득주도성장' 정책은 계속 오르던 임금을 또 올리자고 한 것이라 역효과가 났지만, 일본은 30년 동안 임금이 동결됐기 때문에 그러한 과정이 필요한 것입니다.

기시다 총리 이전의 아베노믹스를 평가하자면, △대담한 금융 정책을 통한 양적 완화 △정부의 재정 지출 확대 △공격적인 성장 전략 추진 등 '3개의 화살'이 핵심이었는데, 초기에는 엔저 정책과 금리 완화 정책이 효과가 있었지만 재정 정책은 큰 효과가 없었습니다. 성장 전략은 계속 고민만 하다가 잘 되지는 않았습니다.

아베 정권이 들어서면서 이전 민주당 정권 때보다 소비가 위축됐습니다. 기업의 투자도 늘어나지 않았습니다. 아베 신조 전 총리는 그래서 엔저 정책을 폈습니다. 그 효과로 대기업들은 수익이 늘어났지만 설비 투자 등을 하진 않았습니다. 수익성을 좇아 해외 투자를 주로 했습니다. 그런 탓에 국내에서 좋은 고용이 늘지 않았습니다. 주로 돌봄 일자리만 늘었죠. 임금도 오르지 않았습니다. 전체 취업자 수는 증가했지만 15~64세 남성 취업자는 계속 감소했고, 고령자와 여성 취업자가 주로 늘어 전체 임금은 낮았습니다.

일본에선 잃어버린 30년을 뒤로 하고 경제가 회복할 것이라는 기대가 크다. 반면 한국에선 올해 1998년 외환위기 이후 25년 만에 경제성장률이 일본에 역전되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가 나온다. 한국 경제는 일본 경제처럼 고도성장의 역사를 이뤘다. 그처럼 일본의 잃어버린 30년은 한국에 반면교사가 될 수 있다.
일본 경제가 디플레이션만큼은 잃어버린 30년에서 벗어난 것 같습니다. 물가가 오르는 경제가 됐습니다. 임금도 오르고, 소비도 되고, 부동산에도 투자가 이뤄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저출산 고령화로 성장 잠재력이 떨어져 있죠. 생산성 향상에 한계가 있습니다. 해결이 쉽지 않은 저출산 고령화 문제로 인해 저성장의 굴레는 지속될 것입니다.

일본 경제는 장기불황 이전엔 연 4% 성장했고, 고도성장기 땐 10%씩 성장했습니다. 잃어버린 30년 동안에는 평균 1% 아래에 머물렀습니다. 4%에서 1%로 급락한 것이죠. 아베노믹스 이전에는 0%대였습니다. 그러다 지금 다시 1%대가 됐는데, 회복이 된 셈이지만 2~3%까지 가긴 힘들 것입니다. 1% 수준을 앞으로 1~2년은 유지할 것 같습니다.

일본 경제를 보고 얻을 수 있는 교훈은 거시경제 정책만으로는 회복이 힘들다는 것입니다. 아베노믹스는 성장 전략에 한계가 있었습니다. 금융정책은 초기에는 효과가 있었지만 만성화되다 보니 엔저 효과나 금리 효과가 약했습니다. 거시경제 정책과 미시경제 정책이 믹스가 잘 돼야 합니다.

경제는 투자가 중요한데 일본은 막연하게 제조업만 확대했습니다. 최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도 강조한 'Modern Supply-Side Economics'(MSSE·현대공급중시경제학)을 일본 게이단렌(일본경제단체연합회)도 주목하고 있습니다. MSSE는 단순히 세율만 낮추는 것이 아닌 인프라 투자 등 공급 확대를 동반하는, 과감한 재정 지출을 통해 생산과 노동 공급을 부양하는 정책입니다.

기업의 투자를 어떻게 자극하느냐가 관건입니다. 최근 일본에선 몇십년 만에 새로 공장을 세웠다는 기업이 나오고 있습니다. 해외에 나갔다 유턴해 돌아오는 기업도 있습니다. 해외 기업 유치도 중요한데, 일본은 과거 산업 정책에서 일본 기업을 중시했지만 요즘엔 많이 달라졌습니다. 최근 대만 기업 TSMC 등 해외 반도체 기업을 유치하기도 했습니다. 경쟁력이 약한 부분은 생산성 높은 해외 기업을 유치할 필요도 있습니다. 그래야 국가 경제의 생산성이 향상되고 경제 성장을 할 수 있습니다.

자료=월간 Japan Insight


#일본 경제의 성장이 한국 경제에 나쁜 일일까?

올해 한국과 일본의 경제성장률이 역전될 것이라는 전망이 최근 연일 회자되는 것은 그만큼 우리가 일본 경제를 경쟁적으로 바라보고 있다는 뜻이다. 일본 경제가 잘나갈수록 우리 경제는 어려워지는게 아니냐는 선입견이 있다.
일본 경제는 내수 비중이 높습니다. 수출 비중은 20% 정도입니다. 경제 구조가 우리와 많이 다릅니다. 일본 경제가 성장했다고 해서 우리경제가 피해를 보는 것은 아닙니다. 자세히 보면 반도체 산업도 한일은 협력 관계입니다. 분업하는 구조입니다.

그래서 한미일의 경제 협력 합의는 중요한 의미가 있습니다. AI, 반도체, 배터리 등의 주요 물자 공급망 협의를 했지만 앞으로는 그뿐만 아니라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에 같이 투자한다든지 기술 개발을 공동으로 한다든지 할 수 있습니다.

일본이 지금 반도체 산업에 매우 신경을 쓰고 있습니다. 미국도 일본의 양산 기술을 돕는 등 반도체 산업을 지원하고 있습니다. 일본이 반도체를 양산하더라도 시장 수요가 관건입니다. 일본은 디지털 기기 생산 규모가 작기 때문에 수출을 해야 할텐데 아직 자동차, 드론, 우주 분야와 같은 신산업에서도 반도체 수요는 크지 않습니다. 지금 대규모로 자율주행을 하는 건 아니지 않습니까. 결국 양산에 있어서 한국과 협력을 해야 합니다. 일본은 소재와 부품에 경쟁력이 있고, 한국은 디지털 기기를 많이 생산하기 때문에 협력의 시너지 효과가 클 것입니다.

한미일 정상은 지난달 미국 메릴랜드주 캠프데이비드에서 3국간 경제·안보 협력을 강화하기로 합의했다. 경제 협력과 관련해선 공급망 조기 경보시스템 구축, 첨단기술 분야 공동연구 등이 거론됐다. 앞으로 실질적인 협력이 어떤 분야에서 어떻게 얼마나 이뤄질지 주목된다.
2019년 소부장(소재·부품·장비) 사태 때처럼 여차하면 우리는 반도체 생산을 못할 수도 있습니다. 일본이 반도체 장비 분야에서 매우 강한데, 일본이 너 죽고 나 죽자 하고 우리와 대립하면 우리는 불리합니다. 불화수소만 봐도 일본이 1억달러도 안되는 수출을 멈추면 한국은 1000억달러 규모의 피해를 입습니다. 그래서 우리로선 일본, 미국과 반도체 공급망을 협력하는 게 중요합니다. 이번 한미일 협력 합의로 앞으로는 지난 소부장 사태와 같은 일은 일어나지 않으리라고 기대합니다.

안보도 중요하지만 한미일 간 기술 협력을 통해 우리의 차세대 경쟁력을 높이고 비즈니스를 유지하는 게 중요합니다. 일본은 광반도체, 탄소나노튜브 반도체, 양자 컴퓨팅 반도체 등에서 앞서 나가고 있습니다. 우리가 뒤처진 분야는 일본, 미국과 협력하는 것이 우리로선 중요합니다. 자동차 산업은 경합되는 부분이 있지만 오히려 최근에는 중국과의 경합이 더 주되기 때문에 배터리 분야에서 한일간 협력하는 구조로 변하고 있습니다.

미국은 디지털 산업의 설계력이 강하고 일본은 부품과 소재에 강하고 우리는 이를 모듈로 결합하는데 강합니다. 한미일이 협력해 전기차와 같은 산업의 생태계가 잘 유지되는 것이 우리 산업에도 도움이 됩니다.

그리고 일본이 지금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과 그린 이노베이션을 하고 있는데 여기에 우리가 협력할 수 있는 게 많습니다. 탄소중립을 하긴 해야 하는데 철강제 생산을 줄이면 포스코는 매출에 타격을 입고 우리 경제에 악영향이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생산 감축을 하기 보다 화석연료 대신 수소를 사용해 철을 생산하는 수소환원제철을 일본과 협력해 할 수도 있죠. 이런 기술은 양산과 상용화가 중요한데 우리 포스코 혼자만 쓰는 것보다, 일본제철 혼자만 쓰는 것보다 함께 쓰면 훨씬 낫죠. 이런 구체적인 협력이 중요한 시점입니다.

이번 한미일 협력 강화가 중국을 견제하는 것이 핵심이기 때문에 중국과 맞닿아 대중(對中) 전선의 최일선에 있는 한국이 중국과의 관계에서 더 어려워지는 것이 아니냐, 중국 시장을 잃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와 논란도 나온다. 우리 정부가 어떤 대중 정책을 취해야 할지 전략적으로 중요한 시점이다.
우리의 중국 사업이 타격을 받을 수 있다는 분석도 있지만 중요한 것은 어부지리를 찾는 것입니다. 미중 패권경쟁의 결과 지금까지 인도, 인도네시아, 멕시코가 수혜를 입었는데, 가장 득을 본 게 한국이 아니냐는 분석도 있습니다.

우리는 스스로 글로벌 경제 구조를 바꿀 수 없는 소규모 개방 경제입니다. 글로벌 경제 환경에 순응할 수밖에 없습니다. 다만 조금이라도 유리하게 해야겠죠. 지금은 스탠스를 한미일에 비중을 두고, 변화 흐름에 순응하면서 한미일 간 기술 교류나 공급망 협력을 통해 우리 산업의 기회를 넓히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런 면에서 지금 시의적절하게 한미일 협력 강화가 이뤄졌다고 볼 수 있죠.

미국의 중국에 대한 방침은 반도체, AI 등 첨단 분야만 규제한다는 것입니다. 문제는 파운드리인데, 우리의 주력 분야는 아닙니다. 그리고 미국으로선 한국의 반도체 산업이 강해야 한미일 협력도 강해지기에 우리 산업이 망가지는 것은 바라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가 중국 시장에서 부진해 반도체 산업이 약해지면 한미일 공급망에도 부정적이기 때문에 우리의 메모리 반도체 중국 사업을 미국이 어느 정도는 허용할 것입니다.

중국에 반도체 관련 수출을 하고 싶은 것은 일본도 마찬가지죠. 비슷한 사정의 한국과 일본이 협력을 해서 미국을 설득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우리가 경쟁력이 약한 분야에서 중국의 우수 기업을 유치하는 것도 중국과의 관계에 좋겠습니다. 소재 기업이나 우리에 공급 규모가 큰 기업을 유치해 한국에서 생산하게 한다든지 하면 좋을 것 같습니다. 부담이 없는 분야에선 미국도 중국과 교류를 하고 있으니, 중국 유학생 유치나 관광객 유치는 활발히 해도 좋겠습니다.

지난 3월 정부가 일제 강제징용 해법을 발표하면서 한일관계 변화 흐름은 급물살을 탔다. 윤석열 대통령은 정치적 리스크를 감수하고 관계 개선 정책을 지속하고 있다. 최종적인 평가가 어떻게 이뤄질지는 미지수이지만 우리에게 이익이 되는 결과를 바라는 것은 모두 같은 마음일 것이다. 그렇기에 앞으로의 정부 정책이 매우 중요하다.
한일관계에서 정치와 경제는 따로라는 말도 하지만 사실 정치가 한일관계를 주도해 왔습니다. 한일 교류가 시작된 것도 한일협정과 같은 정치적 역사였습니다. 정치가 주도하기 때문에 우리로선 대통령 시스템이 중요합니다. 일본은 한국의 정권이 바뀌면 어떻게 될지 모른다는 불안감을 가지고 있습니다. 따라서 정권이 바뀌어도 변하지 않는 시스템으로 가야 합니다.

윤 대통령이 과감하게 판을 만들었는데, 이를 장기적인 구조와 틀로 구축하는 게 중요합니다. 한일 간의 장기적인 협력이 필요한 프로젝트나 펀드를 만드는 등 시스템으로 가는 게 중요합니다.

협력적 한일관계의 단기적 성과를 내는 것도 중요합니다. 비즈니스가 잘 됐고, 돈을 벌었고, 고용이 확대됐다는 구체적인 성과가 필요합니다. 경제가 좋아졌다는 느낌을 줄 수 있는 프로젝트를 구체적으로 추진해야 합니다.

과거사도 중요하겠지만 한일관계 개선에 따른 실익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면 국민들의 의식도 좋아질 것입니다. 일본과 협력하면 반도체 산업도 발전하고, 공급망도 안정되고, 중국에 대한 견제도 잘된다는 실익 말입니다.

물론 우리는 과거사에 대해 일본에 깊은 반성을 요구해야 합니다. 다만 그것 때문에 모든 게 올스톱 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일본인들이 과거사 반성이 글로벌 스탠다드이자 인류 공통의 인식임을 인정해야 할텐데, 그것을 너무 대결적으로 하려 하거나, 인식의 차이가 있는데 무조건 비판을 하기보다는 역사 연구라든지 교류를 하고 대화와 소통을 하면서 그런 인식을 공유해야 합니다. 예전에 우리가 독립투쟁을 하던 시대나 못살았던 시절과는 다르기 때문에 투쟁적인 방법만이 아니라 소통과 협력의 방법을 통해 과거사에 대한 인식을 같이 해야 하지 않나 싶습니다.


#일본 기업들이 변하고 있다?

최근 일본 경제의 향상에 기여하고 있는 것은 단연 기업들의 성과다. 일본 기업들은 최근 수익성 개선과 함께 설비 등에 대한 투자를 확대하고 있다. 특히 디지털 전환 등 이노베이션에도 활발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 기업들이 눈에 띄게 늘었다. 보수적인 조직 문화의 일본 기업들이 얼마나 변모할 수 있을지 주목된다.
일본 기업들은 고도성장이 끝나고 인구도 감소해 새로운 시장과 노동력이 없다 보니 설비에 투자를 안하고 20~30년을 운용하고, 투자는 해외에만 주로 했습니다. 그러면서 기업들은 쇠퇴했죠. 하지만 최근 일본 기업들은 디지털 전환과 그린 이노베이션에 발맞춰 생산 설비와 시설을 교체해야 하는 시기가 왔다고 인식합니다. 새로운 기술로 교체해 한국이나 신흥국들보다 경쟁력을 더 갖추자는 마인드가 생겼습니다.

그린 이노베이션의 경우 많은 투자가 이뤄지고 있습니다. 철강, 화학 산업 등의 설비를 교체해야 되는데 이는 빨리 할수록 유리합니다. 관련 신기술, 신공법을 먼저 개발해야 합니다. 주력 산업 혁신을 누가 먼저 하느냐가 관건입니다. 일본은 돈도 있고 기술도 있습니다. 에너지 기술, 중공업 기술에 강합니다. 또 그린 이노베이션과 디지털 이노베이션이 서로 연결돼 둘 다 잘하면 제조업이 부활할 수 있다고 믿습니다.

불황기에 일본 기업들은 상시적인 구조조정을 했습니다. 구조조정은 1~2년만 딱 해야 하는데, 일본 기업들은 조금씩 조금씩 했죠. 해고를 하지는 않았지만, 원가 절감과 임금 동결·삭감, 그리고 신입사원을 뽑지 않는 것으로 구조조정을 했습니다.

그렇게 30년 동안 기존 직원들은 퇴사하고 조직은 슬림해졌습니다. 하지만 설비는 오래되고, 젊은 직원도 없고, 모티베이션도 나빠졌습니다. 회사에 대한 직원들의 충성심은 크게 떨어졌죠. 과거엔 회사가 기숙사를 마련해 줬는데 지금은 기숙사를 다 팔아버렸습니다. 복리후생은 줄어들었고 회식도 안했습니다. 회식을 해도 직원 스스로 돈으로 내고 합니다. 신입사원 때 첫 회식 때만 유일하게 안냅니다.

기업이라면 직원들의 모티베이션을 키우고 임금도 올려 사기를 높이며 미래에 대한 투자를 해야 합니다. 일본 기업들도 최근엔 조금씩 바뀌었습니다. 일례로 미츠비시중공업 계열의 한 기업은 1년에 신입 직원 5명만 뽑아 나이든 사람들만 다니던 기업이었는데 일본전산이 인수해 신입사원을 몇십명 뽑고 나서 활력을 얻어 성장하기 시작했습니다.

한국과 일본의 기업들이 협력한다면 서로 비즈니스의 혁신 효과를 낼 수 있고, 한일 양국 산업의 위상도 강화될 수 있다. 양국 경제에 긍정적인 영향을 주면서 다양한 수요를 창출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새로운 기회를 만들 수 있는 중요한 시기다.
일본이 그간 낙후됐던 디지털 혁신을 만회하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아직 우리보다 경쟁력은 약하지만 AI나 자율주행 벤처기업들도 많이 나왔습니다. 일본 정부는 새로운 기술에 도전하는 스타트업을 열심히 육성하고 있습니다. 우리보다 유니콘(기업가치 10억달러 이상 비상장 스타트업) 수는 적은데 다양한 분야에서 스타트업들이 활발합니다.

일본은 지방대학도 강한데 거기서 많은 스타트업들이 나옵니다. 꾸준히 기술을 연구해 혁신을 창출하는 딥테크 스타트업들이 많습니다. 우리는 디지털 기술을 유통에 접목한다든지 가볍게 빨리 움직이는 스타트업들이 강한데, 일본의 딥테크 스타트업들과 협력하면 좋은 성과를 낼 수 있을 것입니다.

일본은 글로벌 시장을 겨냥한 스타트업들이 우리보다 많습니다. 경쟁력이 강한 기초기술 분야가 모노즈쿠리(장인정신을 바탕으로 한 일본의 제조업 문화)와 잘 연결됩니다. 이런 일본 기업들과 활발히 교류해 우리도 장인정신이 강한 스타트업들을 많이 배출하면 좋을 것 같습니다.

조철희 기자 samsara@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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