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기국회 개막 여야 주도권 다툼...'이념' vs '단식'
■ 진행 : 함형건 앵커
■ 출연 : 이종근 시사평론가, 유용화 한국외대 초빙교수
* 아래 텍스트는 실제 방송 내용과 차이가 있을 수 있으니 보다 정확한 내용은 방송으로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인용 시 [YTN 뉴스와이드] 명시해주시기 바랍니다.
[앵커]
9월 정기국회가 어제 막이 올랐습니다. 내년 총선 전 마지막 정기국회인 만큼 여야 모두 총력전을 예고하고 있는데요. 홍범도 장군 흉상 이전 문제 등'이념 논쟁'이 이어지는 가운데민주당 이재명 대표는 '단식'이라는 승부수를 띄웠습니다. 이종근 시사평론가, 유용화 한국외대 초빙교수 두 분과 함께 정국 이슈 짚어보겠습니다. 안녕하세요. 한 주 내내 정치권에는 역사 이념논쟁이 계속 이어졌습니다. 한가운데 홍범도 장군 흉상 이전 문제가 있기도 했는데. 결국에는 육사에 설치되어 있었던 흉상 바깥으로 이전하기로 결정했죠. 이 과정, 여러 가지 갑론을박이 있었습니다마는 어떻게 보셨습니까?
[이종근]
일단 홍범도 장군만이 아니라 음악가로 알려진 정율성 씨의 광주와 화순군에 있는 각종 유적지와 관련된 논란도 함께 이어졌습니다. 한 가지 제가 생각이 나는 건 뭐냐 하면 우리가 독립운동가들이라고 알려진 사람들의 행적을 사실상 지난 정권들 특히나 보수정권들에서 제대로 알리지 않았구나 하는 생각이 많이 들었어요. 일단 홍범도 장군과 관련된 문제를 보면 홍범도 장군으로 인해서 예를 들어서 지난번 문재인 정권 때 홍범도 장군의 유해를 봉안하면서 이렇게 강조를 했습니다. 우리나라 국군의 뿌리다. 또 국군의 뿌리라고 기억하는 게 독립운동가라고 이야기하는 김원봉과 관련해서 그 바로 직전 해에 문재인 대통령이 현충일날 추념사를 통해서 이렇게 얘기합니다. 김원봉이야말로 국군의 뿌리다. 이렇게 국군의 뿌리라고 이야기하는 이 두 사람의 행적에 대해서 사실 그 전에 잘 알려지지 않았거든요. 일단 김원봉과 관련해서는 이 사람이 독립운동을 한 것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그 이후에 6.25전쟁 때 대구까지 내려와서 6.25 전쟁이 한창 벌어지고 있는 와중에 당시에 김일성으로부터 훈장을 받습니다. 즉 6.25 전쟁의 영웅으로서 그리고 장준하 선생이 직접 이 사람을 비난을 해요. 이 사람은 원래 독립운동가로서 분열을 일으킨 사람이다. 이 두 가지 사실과 관련해서 도저히 국군의... 그날 현충일날 6.25 전쟁 때 참혹하게 희생된 분들과 또는 희생된 분들의 유족들 앞에서 김원봉 같은 사람을 칭찬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그때도 비판이 일었고요. 이번 홍범도 장군만 하더라도 국군의 뿌리라고 지금까지 주장해 왔던 광복회가 몇 년도에 결성이 됐냐면 41년도에 결성됩니다. 그런데 홍범도 장군의 항일 그러니까 독립운동은 23년도에 멈춰져요. 23년도에 멈춰진 이유가 1921년도 6월달에 생긴 스보보드니, 자유시라고 해석되는 그 시에서 독립운동의 참혹한 학살이 일어납니다. 그 학살은 정확하게 어떤 배경이냐 하면 어찌됐든 간도라든지 혹은 만주에서 활약했던 독립운동가들이 봉오동전투나 혹은 청산리전투 때문에 일본이 굉장히 혹독한 토벌작전을 펼칩니다. 그 토벌 작전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연해주 쪽으로 이동을 합니다.
그러니까 연해주 쪽으로 이동하는데 당시에 소련이죠. 소련이 무장해제를 요구합니다. 무장을 해제하고 와라. 무기를 다 반납하고 와라 이렇게 요구했을 때 당시에 김좌진 장군과 이범석 장군은 이렇게 얘기합니다. 지금 조선에 있는 우리의 민중들이 자신이 못 먹고 정말 아껴서 내놓은 군비를 갖고 우리가 마련한 무기다. 이것을 내려놓고 와라, 이것을 반납해라? 있을 수 없다고 거부하고 다시 간도로 돌아옵니다, 자유시로 가지 않고. 그런데 자유시로 간 사람들 중에 홍범도는 무장을 해제하고 그쪽 그러니까 고려혁명군과 대한의용군 이렇게 두 가지 파로 나뉘는데 고려혁명군에 투항을 합니다. 무기를 다 버리고. 그런데 투항하지 아니한 대한의용군의 한 천 명 가까운 사람들이 당시에 무장해제를 당하는 와중에 소련군, 적군파와 그다음에 적군파에 합류한 고려혁명군에 의해서 30여 명이 죽고 60여 명이 행방불명됐고 그다음에 860명이 당시에 재판을 받습니다. 무장해제를 당하고. 이와중에 홍범도 장군은 이쪽 무장해제를 가하는 쪽에 서서 나중에 860명에 대한 재판의 재판위원, 지금으로 얘기하면 어쨌든 재판부의 일원으로서 참여를 해서 상당히 많은 수의 860명 중에 독립군들을 당시의 시베리아라고 하죠. 시베리아에 유형을 보내는 그런 판결을 내리는 데 앞장섰습니다. 이것이 화근이 돼서 제가 갖고 온 논문들, 홍범도의 러시아 적군 활동과 자유시 사변 등 여러 논문들에 의하면 홍범도의 일생에 대해서 두 가지로 나뉘는데 21년 이전은 그의 업적에 대해서 논란의 여지가 없으나 21년 재판 과정에서 위원을 맡은 이후에 굉장히 불행해졌고 장군으로서의 긴 여정은 마친다 이렇게 표현되어 있고요. 그 이후에는 어떻게 됐냐면 농사꾼으로서 1937년 연해주 집단농장 그러니까 1937년까지 연해주의 집단농사에서 농사꾼으로서 여생을 마칩니다. 물론 그 이후에 카자흐스탄으로 이주를 해서 고려극장에서 경비원으로서 마지막 여생을 마치지만. 제가 강조하고 싶은 건 이렇습니다. 과연 지금 문재인 정부가 주장했듯이 광복군 그러니까 국군의 뿌리라고 이야기하는 독립군의 일원으로 우리가 기릴 수 있는 행적을 가졌느냐. 1921년 이후에 1945년까지 끝까지 항일 투쟁을 했던 사람 많습니다. 그리고 아시다시피 상해 임시정부도 끝까지 일본에 저항하는 그런 활동을 벌였고요. 그렇지만 다시 말씀드립니다마는 홍범도 장군은 1921년에 동지들의 재판 과정을 벌이는 쪽에 섰기 때문에 당시에 상당히 많은 비난과 비판과 또 암살의 대상이 됐고 실질적으로 김창수와 두 명. 그러니까 대한의용군 쪽에 섰던 사람들이 2년여 추적해서 암살하려고 했으나 실패를 하고 레닌이 준 총으로서 두 사람을 사살했다 이런 기록까지 있거든요. 그렇기 때문에 육사에 이 사람을 계속 기릴 것이냐. 그것이 아니라 독립행적. 그러니까 21년 이전의 그런 행적은 인정하니까 독립기념관으로 옮기는 건 인정하되 그러나 그 이후에도 싸웠던 수많은 사람들. 예를 들어서 함께 흉상이 있는 김좌진 장군이나 이범석 장군 같은 그런 행적과 별개로 다르게 우리가 바라봐야 된다는 그런 시각으로 육사에서 이전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앵커]
홍범도 장군의 항일 무장 투쟁의 공로는 분명히 군도 인정하는데 그 이후에 소련 공산당 가입 이력이라든가 방금 말씀하신 그 당시 자유시 참변과 연관된 그런 기록들 이런 게 문제시 된다. 이것도 군이 설명하고 있는 내용 중의 하나인데요. 그렇지만 역사학계도 보면 홍범도 장군이 자유시 참변에 어느 정도 개입했는지 이게 사실 확증적으로 확인된 바는 없다 이런 견해도 분명히 있습니다. 그래서 의견이 좀 더 토론이 필요한 것 같은데 어떻게 보고 계신지요.
[유용화]
제가 역사학자는 아니지만 논란되는 걸 그렇게 마치 결정적인 것처럼 얘기하는 건 역사논쟁을 굉장히 왜곡하는 거라는 생각이 들어요. 일단 문재인 정부를 빗대서 김원봉 씨하고 홍범도 장군의 과거 행적에 대해서 진짜 목숨을 걸고 희생하면서 싸웠던 우리의 독립투쟁가들을 상당히 왜곡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 수밖에 없는데. 대한민국 임시정부 충칭으로 옮겼을 때 김구 선생과 김원봉 씨 그리고 이렇게 해서 광복군이 창립됐는데 거기 부사령관을 김원봉 씨가 합니다. 충칭에 있는 대한민국 임시정부. 정확한 역사적 사실이에요. 이런 걸 갖고 평가를 일단 해 볼 필요가 있고. 그다음에 홍범도 장군을 자유시 참변을 소환해서 뭘 어쩌자는 거예요. 저는 참 이해를 못하겠어요. 거기에 객관적으로 나온 사실은 당시 우리나라 공산주의 운동에 상해파하고 그 외에 그 두 파 간의 갈등과 대립 속에서 나타난 현상이었고 러시아의 소비에트 적군도 아니었어요, 개입한 측이. 그리고 홍범도 장군은 거기에서 중간파였기 때문에 재판에 참여했던 것인데. 그래서 어떻다는 거예요, 도대체? 홍범도 장군이 거기 재판에 참여해서 흉상을 없애는 데 무슨 근거가 된다는 건지. 정말 참 이해를 못하겠어요. 깎아내릴 게 없어서 그런 걸 갖고 깎아내립니까? 홍범도 장군이, 광복군이라는 게 뭡니까? 신민무관학교 그리고 대한제국시대의 군대 이어지면서 그것이 해방 이후에 대한민국의 국군의 시원 아니에요, 결국. 광복군 활동했던 분 아닙니까? 대한총사령관을 했었고요. 목숨 걸고 싸웠던 분 아니에요. 백두산 호랑이 홍 대장이라고 백성들한테 불렸고. 그분을 그러면 흉상을 옮기고 싶으면 옮기면 된다 그러지. 공산주의자도 아니에요, 홍범도 장군은. 정확히 아셔야 돼요.
당시에 민족대회에 참석했었고 27년도에 입당하는데 그 입당한 거 하나예요. 여러 언론에서도 누차 나왔지만 당시에 우리나라 독립운동이라는 건 일본 제국주의와 싸우는데 일본 제국주의와 싸운 게 우리나라만 한 게 아니라 중국이라든가 중국의 국민당, 중국의 공산당 또 러시아 이렇게 싸웠단 말이죠. 연합한 거 아니에요, 연합. 그들이 예를 들면 우리나라 침략했어요? 김일성 장군하고 같이 침략했었어요? 아니잖아요. 그들은 일본 제국주의와 싸웠던 연합세력이에요. 거기에 만약에 우리가 독립운동가들이 자금도 없고 물적 지원, 인적 자원 아주 빈약하지 않았습니까? 그래서 협력한 게 지극히 당연한 거고 연합군의 일원으로서 싸우려고 했던 거 아니에요. 그런데 그걸 갖고 공산주의 활동을 했다? 아니, 한번 얘기해 보세요. 홍범도 장군이 공산주의자로 활동한 경력이 뭐가 있어요? 토론해 보자고요. 1923년도에 거기에 입당한 거 하나예요. 당연히 수단이었겠죠, 수단. 살려고 했던 거겠죠. 같이 싸우려고 했던 거겠죠. 그걸 끄집어내서 다시 한 번 말씀드리지만 제가 분명하게 시청자분들한테 말씀드리는데 홍범도 장군은 공산주의자로 활동한 적이 한번도 없어요. 입당했을 뿐이지. 공산주의자로 활동했던 사람은 당시 조선공산당이라든가 많아요. 그분들하고 달라요. 나중에 쫓겨서 농부로 활동했다고요? 먹고 살기 힘드니까, 일본이 다 침략해 오니까, 만주, 연해주에 침략해 오니까 먹고 살려고 쫓겨나서, 우리나라 독립군들이 밀려나잖아요. 광복군 했던 그 당시 봉오동전투라든가 청산리대첩에서 성공했던 이 사람들이 밀려나서 연해주로 가고 저 멀리 가고. 거기 한 일원이었어요. 그러다가 결국에는 스탈린의 강제이주정책을 통해서 거기에서도 고려인들을 위해서 활동하잖아요. 카자흐스탄에 홍범도 장군의 동상이 있어요. 그런 분을 왜 갑자기... 육사에서 쫓아내고 싶으면 그냥 쫓아낸다고 그래요. 왜 이 사람을 공산주의라는 멍에를 씌워서 진짜 목숨을 걸고 희생하고 투쟁하고 전 가족이 투쟁하잖아요. 이런 사람을 어떻게... 나는 진짜 해도 너무한 거 아닙니까?
[앵커]
알겠습니다. 일주일 동안 역사적인 사실에 대한 어떤 세부적인 여러 가지 토론과 논쟁이 계속 이어졌고요. 지금 두 분이 말씀하신 것도 거기에 해당되는 내용입니다마는. 정치권의 반응, 주장도 짚어보겠습니다. 일단 민주당 같은 경우는 역사 쿠데타다, 이렇게 독립영웅을 부관참시하는 거라고 굉장히 거세게 비난하기도 했고. 여당 같은 경우는 사실 미묘하게 의견이 엇갈리는 측면도 있습니다. 물론 군의 입장에 대해서 동조하는 의원도 있고요. 반면에 지도부 같은 경우에 말을 아끼는 듯한 모습을 보였고. 또 오히려 당 지도부, 최고위원 같은 경우에도 과유불급이다. 이런 의견도 나왔고요. 더 나아가면 흥미로웠던 지점은 윤석열 대통령의 멘토로 불리는 이종찬 광복회장이 여기에 대해서 굉장히 거세게 반발했죠. 흉상 이전 문제에 대해서. 이런 모습은 어떻게 보셨습니까?
[이종근]
일단 부관참시라고 표현되는 부분들은 과했다. 예를 들면 우리가 지금 이 논쟁이 어떤 논쟁이냐면 친일과 반공의 논쟁으로 대치가 돼요. 문재인 정부에서는 반일을 한 사람은 친공 쪽으로 섰더라도 우리는 기려야 된다. 대표적인 인물이 김원봉이거든요. 말씀하셨던 부분 중에서 이 사람들 중에 무슨 김일성과 함께 내려온 사람이 누가 있느냐. 내려온 사람이 딱 두 사람입니다. 김원봉과 그다음에 정율성. 이 사람들은 기록에 다 있는 것이고요. 표창장 다 받았습니다. 대구라는 것이 아시다시피 서울 함락 후에 그다음에 부산으로 내려가다가 대구에서 잠시 멈추거든요, 인민군이. 그런데 그 인민군이 멈췄을 때 바로 김원봉한테 표창장을 주는 것. 함께 내려간 것이고요. 정율성도 마찬가지입니다. 서울 함락될 때 인민군과 함께 내려가서 49년에 김일성으로부터 표창받은 거 지금 화순군에 있는 고향집에 김일성으로부터 표창받은 게 그대로 드러나 있습니다. 그러니까 그건 사실이고요. 그다음에 아까 역사학자로부터 어디까지냐라고 말씀하셨는데. 제가 지금 인용한 논문들은 사실 홍범도 장군을 비판하는 논조가 아니에요. 굉장히 항일 업적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논조인데. 역사학회도 마찬가지입니다. 여기서 제가 말씀드리는 건 딱 사실이에요. 어떤 사실이냐. 재판부에 참여했다. 그건 역사학회도 다 인정해요.
[유용화]
참여했어요.
[이종근]
제가 말이 아직 안 끝났거든요. 참여했다는 것이고요. 참여한 사실 때문에 참여해서 눈물을 흘렸다. 독립운동가 한 100여 명이 사살된 것에 대해서 눈물 흘렸다. 이 두 가지를 역사학회에서는 실질적으로 총을 들고 이 사람을 죽이지는 않지 않았느냐. 그러니까 참여하지 않았다는 식으로 말을 하고 있는데 실질적으로 보면 이 논문 속에 나와 있습니다. 상해파 그러니까 말씀하셨던 대한의용군 쪽에서 바로 김규면, 이 사람도 독립운동가들이고요. 이 사람들이 얘기하는 건 바로 소련 국제공산당에 홍범도가 이용당해서 조선독립군의 총지휘자처럼 모스크바에 가서 레닌을 만났다. 그러니까 재판위원으로 참여하고 자유시 참변제 하나의 주역이기 때문에 지금 그다음 해에 레닌으로부터 상금을 받고 권총을 하사받았다. 이것도 역사적으로 지금 다 기록에 남아 있는 거거든요. 당시에 이런 논란이 있었다는 건 기록으로 남아 있는 것이지 후대의 추정이나 추측으로 이어진 게 아니라는 점이고요. 부관참시는 사실 백선엽 장군 논란과 관련돼서 파묘를 하겠다는 그런 주장을 했던 사람들이 사실 부관참시를 한 것이고 이건 흉상을 옮기는 거지 않습니까? 그러니까 부관참시라는 용어가 부적절하다고 봅니다.
[유용화]
당시에 1919년도에 3.1운동 이후에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만들어지잖아요. 그때 민족주의 계열의 독립운동가, 사회주의를 받아들였던 사람들이죠. 그 당시 1917년에 볼셰비키 혁명이 워낙 대단했던 상황이었습니다. 그걸 받아들인 사람들은 다 참여해요. 그리고 레닌한테 자금 받았다는 사건은 대한민국 임시정부에서 파견한 사람이 그걸 받아오고. 그 사건에서 문제가 있었던 것으로 제가 알고 있는데. 하여튼 그건 그 당시에 있었던 아주 일상적인 일인데 100년이 지난 지금 소환해서 뭘 어쩌자는 거예요? 저는 참 이해를 못하겠어요. 그리고 레닌을 만난 사실이 뭘 어쩌자는 거예요, 그걸. 그걸 갖고 지금 홍범도 장군이... 그렇게 홍범도 장군의 부인 같은 경우는 고문을 당해서 돌아가시고 아들도 전투에 참여해서 전사하고. 홍범도 장군이 그렇게 무장투쟁을 하고 독립전쟁을 하고 자기 목숨을 바쳐가면서 침공작전을 벌이잖아요, 실제로 광복군들이. 그런데 그 사실들은 완전히 그러면 희석화시켜보겠다는 거예요, 레닌 만난 거 하나 가지고요? 그 당시에 많은 독립운동가들이 볼셰비키 사람들도 만나고 중국 공산당 사람들도 만나고 중국 국민당 사람들도 만나고 그랬잖아요. 그래서 어떻게 하자는 거예요, 도대체. 나는 이해를 못하겠어요. 이런 걸 소환해서 지금 대한민국 역사에서 반공과 공산주의, 과거 100년 전에 공산주의적 경향이 있었다는 걸 가지고 지금 무엇을 얻으려고 그러는 거예요? 대한민국 국가발전에 도움이 돼요? 민주주의 사회에 도움이 되는 겁니까? 남한이라고 하죠, 북한, 남한. 한국에 공산주의 세력이 있어요? 공산당이 있어요? 지금요? 무엇을 얻으려고 하는지 참 이해를 못하겠다는 거예요. 역사를 왜곡하고 말이죠. 진짜 목숨을 걸고 한국의 독립을 위해서 총과 칼을 들고 그 열악한 환경에서 했던 분들을 더 이상 폄훼하지 말았으면 좋겠다 생각이 듭니다.
[앵커]
알겠습니다. 역사적인 사실에 대한 차분한 토론은 시간을 두고 할 수는 있습니다마는 일단 두 분의 말씀을 듣다 보니까 지금 시간이 상당히 많이 지나가서요. 좀 더 진도를 빨리 나가도록 하겠습니다. 역사 이념문제에 대한 논란, 토론에 대해서 마무리를 짓기 위해서 잠수함 이름을 바꿀 건가 말 건가. 그리고 또 오늘은 윤미향 의원의 조선인 학살 추모식 참여 문제를 놓고 여러 가지 말이 많았는데요. 이 부분은 정치권에서도 다음 주에도 계속 이어질 것 같고. 하지만 이런 역사이념 논쟁이 불거진 배경에는 최근에 윤석열 대통령이 실용보다 이념이 중요하다 그러면서 역사 이념 문제, 국가 정체성 문제를 계속 강조한 부분도 자리하고 있습니다. 대통령의 발언이 이렇게 이념 부분에 대해서 빈도가 높아지고 발언 수위도 높아지고 배경은 어디에 있다고 보십니까?
[이종근]
일단 지난 5년간 너무나 친중적인 행보가 있었고 또 한미동맹이 굉장히 많이 흔들렸다. 한미동맹이 굳건했다고 주장하는 민주당 의원들도 있지만 그러나 당시에 존 볼튼이라든지 또는 당시 회고록이라든지 트럼프의 회고록에도 보면 사실상 한미동맹이 굉장히 균열된 시각으로 미 행정부가 바라보고 있었던 부분들이 많이 있거든요. 그것을 어떻게 복원시키느냐. 그리고 역대 어떤 정부에서의 한반도 상황보다 굉장히 고도화돼 있고 위기의 상황이 계속 중첩되어 있다. 이것이 지난 문재인 정부 때 과연 평화라는 이름으로 했던 대외정책이 뿌리를 진짜 내릴 수 있었다면 그 당시에 과연 북한이 어떤 태도를 취했느냐. 북한이 지난 정부에서 취한 태도도 우리 국민을 바다에서 사살한다든지 또는 우리가 세운 우리의 자산인 개성공단의 연락사무소를 파괴한다든지 또 핵과 미사일을 고도화시켰다든지 그런 상황들이 과연 지난 정부의 외교정책으로 그것을 계속 승계할 수 있을 것이냐라는 점. 그리고 말씀하셨던 부분이 국립외교원 60주년 기념식 축사에서 나온 부분인데. 여기서 나온 이야기는 앞으로 전략적 모호성으로서는 살 수 없는 그런 글로벌 환경이라는 걸 강조하기 위해서 이야기됐던 부분이 분명히 있는 것 같고요. 제가 지난 시간에도 분명히 강조했지만 스웨덴이나 핀란드 남의 일이라고 말씀들을 하시지만 남의 일이 아닌 게 지난 민주당과 그다음에 진보학자들이 김동춘 교수도 있고요. 많은 논문과 논문 지상 칼럼을 통해서 우리가 스웨덴과 핀란드로 가야만 한다고 주장을 지금까지 해 왔습니다. 왜? 지정학적 위기가 똑같기 때문이다. 러시아를 앞에 두고 이쪽은 EU가 있고 그 와중에서도 전략적 모호성을 택해야만 된다. 우리도 스웨덴이나 핀란드 같이 중립국으로 선언해야 된다. 수많은 민주당 의원들과 수많은 학자들이 주장해 왔는데. 그래서 스웨덴이 어떻게 됐느냐는 겁니다. 야당의 주장대로 전선을 전부 다 미루고 징병제를 모병제로 바꾸고 한 다음에 지금 후회가 되니까 중립국을 포기한 상황이 됐거든요. 이게 전략적 모호성으로서 지금의 블록화를 견딜 수가 없단 것이고요. 그 어디에도 손을 들어주지 않으면 그 어디에도 친구가 될 수 없다는 진리입니다. 그래서 그것을 강조한 그런 측면에서 지금의 전체주의와 같이... 그러니까 자유민주주의의 대립이라고 표현하는 것. 물론 지금 이념이 많이 얘기가 됐다고 하지만 윤석열 대통령이 취임사부터 지금까지 계속 권위주의와 자유민주주의의 블록화고 그다음에 우리는 가치연대를 해야 한다는 말은 계속해 왔거든요. 거기에 공산이라는 말이 들어갔을 뿐이라는 겁니다.
[앵커]
대통령이 이렇게 이념의 선명성을 계속 강조를 하다 보니까 또 발언의 맥락을 보면 오염수 방류에 반대하는 사람들에 대한 언급이라든가 분명히 우리는 어떤 세력을 비난하고 있는지, 비판하고 있는 건지 알고 있죠, 사실은. 민주당이라든가 야권을 대통령이 얘기하는 세력의 핵심으로 많은 분들이 이해하고 있습니다마는. 이렇다 보니까 사실은 조금 이따가 이재명 대표의 단식 문제도 우리가 이야기하겠습니다마는 여와 야 서로 접점을 찾고 대화와 타협을 하기는 점점 더 어려워지는 게 아닌가 이런 분위기이기는 합니다. 최근에 대통령의 발언과 정치권의 분위기 어떻게 보고 계십니까?
[유용화]
진짜 정치가 국회라는 수단과 기제가 있는데 거기서 여야가 협력하고 그래서 정치활동을 통해서 국민의 이익과 국가의 이익을 해야 되는 게 맞는 거죠. 그런데 그런 정치의 기능과 수단이 지금 전혀 활용되고 있지 못하는 것이죠. 그런데 이것은 지금 대통령이, 대부분 다 대통령에 취임하거나 활동할 때 언론이라든가 야당에서 비판할 때 국민통합을 이야기합니다. 대통령은 국민통합을 위해서 일해야 한다. 왜냐 대통령은 어느 정파에, 어느 유튜브를 대표하는 사람이 아니잖아요, 대통령은. 대통령은 국민을 대표하는 사람이고 헌법에 다 보장돼 있고요. 헌법적인 권한과 권리를 갖고 있습니다. 그러면 국민통합을 위해서 얘기해야 되는 것이고. 국민의 갈등과 대립을 해소해나가야 돼요. 그건 왜 그러냐. 그래야 국가가 발전하거든요. 그런데 윤석열 대통령은 취임부터 지금까지 과연 그런 일을 해 왔느냐. 최근에 와서는 더 심해진다. 자꾸 이념이라는 것을 갖고, 역사를 갖고 자꾸 국민을 갈라치기하고 그러면서 특히 야당 대표와는 한번도 만나주지 않고요. 최근에 국회 같은 경우에 있어서는 아예 국회에서 통과된 입법권을 거부하고 앞으로 통과시키면 또 거부권 행사하겠다. 그리고 최근에 보면 국무위원들도 출석을 안 하잖아요, 아예. 지금 국감 같은 경우에도 나오는 얘기가 자료제출도 제대로 하고 있지 않고 증인도 안 나올 것 같다 이런 얘기까지 나와요. 그러니까 국회를 아예 인정하지 않는 거죠. 그냥 통법부죠. 이게 민주주의인가? 대통령이 이야기하는 자유민주주의인가. 이런 부분들이 나오는 거죠. 대통령은 국회하고 항상 소통해야 하고 야당 대표와 또 야당 국회의원들과 정치권과 소통하면서 뭐가 문제인지, 자기 정책에서 뭐가 문제인지, 국민들이 뭘 원하는지. 그래야만 나라가 제대로 가잖아요. 그런데 자꾸 대통령이 이야기하는 건 있지도 않은 공산 전체주의 세력이 있다고 하고 후쿠시마 오염수 반대하는 사람들에게 1+1은 100도 모르는 사람이라고 하고 말이죠. 그거 아까도 이것이 했지만 홍범도 장군이라든가 민족의 해방을 위해서 투쟁했고 목숨을 바친 사람들의 흉상을 옮기려고 그러고. 일본이 이건 싫어하는 거죠. 일본이 좋아하는 것만 해요, 국민의힘 보면. 참 신기해요, 여권이. 오염수를 처리수라고 하고 강제동원 해법을 제3자 변제로 하고. 나라가 참 이상해져가고 있다, 정말. 이런 상황에서 또 이념논쟁을 불러일으키고. NBS 조사에서도 대통령 지지율이 5% 떨어지고 부정도 5% 올라가고. 또 뉴스토마토 여론조사에서도 65.9%가 홍범도 장군의 흉상을 철거하는 걸 반대한다고 그러고. 28일부터 30일까지 조사한 것인데요. 상황이 이렇단 말이에요. 갤럽조사에서도 나왔죠. 75%가 지금 후쿠시마 오염수에 대해서 걱정이 많다고. 이런 문제를 해결해야 되는데 이건 안 하고 있잖아요, 지금. 진짜 걱정됩니다.
[앵커]
알겠습니다. 역사이념 논쟁 얘기는 거기까지 하고요. 이재명 민주당 대표가 정기국회 시작 하루 앞두고 단식을 시작해서 오늘로 사흘째를 맞았는데 이 문제도 얘기해 보겠습니다. 사실 제1야당 대표가 정기국회를 앞두고 이렇게 단식을 시작하는 것도 상당히 이례적인 일이긴 한데요. 지금의 이 상황은 어떻게 보고 계시는지요.
[이종근]
일단 단식이라는 건 정확하게 목표가 뚜렷해야 된다고 생각을 해요. 왜냐하면 단식은 자신의 목숨을 거는 일이거든요. 그런데 자신의 목숨을 걸려면 내가 목숨을 걸 만큼의 정당성, 공감대를 이룰 수 있는 목표 이런 것들이 뚜렷해야 사람들이 같이 공감을 하고 함께 응원도 하고 함께 그에 편에 서서 그의 요구를 관철시킬 수 있도록 목소리를 함께할 수 있는 그런 정치인으로서 마지막 정치행위라고 보여집니다. 그런데 지금 이재명 대표가 요구하는 안은 굉장히 모호하다는 거죠. 개각을 하라? 개각이라는 건 예를 들어서 정부의 권한이고 정부가 자신들의 국정 스케줄에 따라서 하는 것이지 갑자기 단식을 하면서 개각하라 마라 야당 대표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고요. 또 후쿠시마와 관련된 부분도 이해가 안 가는 게 만약에 정말 진정성 있게 후쿠시마 관련된 단식을 하려면 후쿠시마 방류 전에 일본 대사관 앞에서 일본을 향해서 이건 절대 방류하지 마라는 그런 레드라인으로 단식을 한다든지 이런 식의 좀 더 정확한, 스케줄에 따라서 요구조건을 관철시키게끔 만드는 것이 저는 단식이라는 정치행위라고 보여지고요. 이전의 정치인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이를테면 김영삼 대통령의 23일 간의 단식도 역시 뚜렷했어요. 기존에 구속되어 있는 민주열사를 석방하라든지 혹은 황교안 당시 자유한국당 대표가 요구하는 것도 지소미아의 복원이라든지 이렇게 뚜렷한데. 지금은 출구가 모호하거든요. 세 가지나 되고. 세 가지가 굉장히 포괄적으로 돼 있기 때문에 단식이라는 행위가 끝나는 것이 그냥 자신이 병원에 입원하는 더 이상 못 견디는 상황이 단식이 끝나는 시점이다. 이렇게 여겨지게 되니까 이것이 어떤 요구사항을 관철시키려는 것보다는 정치적인 목적 또 자신의 지지자를 결집한다든지 자신의 리스크를 해제한다든지 이런 목표, 그러니까 실질적으로 정치적인 행위라기보다는 자신을 위한, 자신의 스케줄을 위한 그런 사적인 행위라고 보여진다. 이런 비판이 계속 일어나고 있다는 겁니다.
[앵커]
사실 이재명 대표의 단식을 놓고 지금 말씀하신 것처럼 그렇다면 단식을 시작했으면 어떤 목표가 충족되면 마무리되는 거 아니겠습니까? 그 부분이 지금 당장 윤석열 대통령이 단기적으로 받아들일 가능성이 굉장히 희박한 상황인 것 같기도 하고요. 그렇다면 어떻게 출구전략을 갖고 갈 것인가 이런 것도 많은 사람들이 궁금해하고 있는 부분이거든요. 어떻게 보십니까?
[유용화]
일단 먼저 충분히 대한민국 정부라면 상식적이고 정상성을 갖고 있다는 대한민국 정부라면 받아들일 요구조건을 갖고 있죠. 국제해양법재판소에 제소하라는 겁니다. 이건 윤석열 정부가 분명히 해야 됩니다. 지금 대한민국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위협하고 있고 인류에 재앙을 불러일으키는 자신들의 후쿠시마 원전 폭발물, 핵폐수를 바다에 버리고 있는데 가장 이웃 국가인 대한민국 정부가 아무 소리도 안 하고요. 반대하지 않고 국민의힘 의원들은 오히려 찬성하는 듯한 태도를 보이고 있고 그걸 과학이라고 그러고 오염처리수라고 부르고 있잖아요. 이건 바꿔야 되는 거 아닙니까, 정말? 자신들이 국회의원이고 국민의 세금을 먹고사는 정부의 일원이라고 그러면. 국제해양법 재판소에 제소해야죠. 왜 이거 안 합니까? 이거 하라는 거 당연한 거 아니에요? 야당 대표가 국제해양법 재판소에 제소하라는 것까지 단식을 해야 되는 상황이에요, 지금. 굉장히 국가적으로 국민적으로 위험한 상황에 처해있는 거죠. 지금 시간이 있는지 모르겠습니다마는 30년까지도 그 이상 걸릴 수도 있는 거고. 후쿠시마 원전 폐로도 봉쇄하지 못한다는 거 아니에요, 현재. 엄청난 일이 발생하는데. 대한민국 국민의 생명 또 자손들, 후손들. 젊은 청년들은 애 안 낳겠다고 하잖아요, 지금. 이런 정도 상황인데 왜 대한민국 정부는, 국민이 선출한 대한민국 정부는 국제해양법재판소에 제소를 안 하는 겁니까? 이것에 대해서 윤석열 대통령은 답을 해야 되는 거 아닙니까? 그래서 야당대표가 단식을 하고 있다고 얘기할 때 그 명분을 어떻게 얘기할 수 있겠어요. 그리고 앵커께서 말씀하신 그리고 정치권에서 얘기하는 이 단식을 통해서 자기 개인적으로 정치적인 이해관계를 얻으려고 하는 거 아니냐 하는 건데 지금 단식한 지 오늘이 이틀인가 3일째 아닙니까? 저는 결국 국민의 호응이라고 보여집니다. 정치적 행위로 보고 이재명 혼자 살려고 하는 것인지, 정말 이재명 대표가 얘기하는 대로 이제는 할 수 있는 수단이 없다. 이거라도 해야 되겠다. 그래서 싸워야겠다. 국민항쟁을 하겠다는 부분들에 진위가 있는지 여부는 저는 국민들이 어떠한 태도를 보이느냐. 어떠한 입장을 보이느냐. 이거에 따라서 저는 이재명 대표의 단식에 대한 판단이 결과적으로 나올 것으로 생각합니다.
[앵커]
이재명 대표의 이른바 무기한 단식이 언제까지 지속될지 이것도 물론 기간의 한계는 있겠습니다마는 지금 9월, 예상되고 있는 검찰의 소환조사 그리고 과연 영장을 칠지 그리고 체포동의안이 국회로 날아올지 과연 이런 상황에서 그것이 가능할지. 이런 걸 좀 더 지켜봐야 될 것 같습니다마는. 지금 말씀하신 대로 거기에 연동해서 여론이 어떻게 움직일지도 굉장히 중요한 문제거든요. 아까 여론조사 말씀도 하셨는데 여론조사 문제를 다시 한 번 얘기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아까 갤럽조사와 NBS조사 그리고 미디어토마토조사 세 가지를 말씀하셨는데 그 부분을 좀 더 명확하게 다시 한 번 설명을 해 주시겠습니까? 여론조사 기관과 기간이 어떻게 됐었나요?
[유용화]
뉴스토마토 여론조사는 28일부터 30일까지. 이건 ARS 여론조사고요. 홍범도 장군 흉상 철거에 반대한다는 비율이 65.9%. 찬성한다는 비율이 22.1% 나왔던 것이고요. 그리고 지금 갤럽 여론조사는요. 일본 원전 후쿠시마 이건 전화면접조사죠. 그런데도 해양수산물 오염이 걱정되십니까 했는데 걱정된다가 75%, 걱정되지 않는다가 22%. 이건 한국갤럽에서 29~31일까지 3일 동안 18세 이상 1002명을 대상으로 한 겁니다. 그리고 NBS 조사도 28~30일까지. NBS 조사는 4개의 기관이 함께하는 건데요. 전화면접 조사로. 74%가 후쿠시마가 해로울 것이다라고 답한 겁니다. 그리고 대통령 지지율도 2% 기존에 2주 전에. 그다음에 5%. 긍정률이 떨어져서 33%가 된 거고. 부정률은 5% 더 오른 이런 상황으로 NBS가 발표했습니다.
[앵커]
지금 상황을 보면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 같은 경우에는 사실 민주당으로서는 반사이익을 받을 수도 있을 상황인데. 지금 현상적 측면으로 보면 별 반사이익을 못 보고 있는 것 같기도 하고요. 그리고 국민의힘은 국민의힘대로 지지율이 별 변화가 없이 계속 가고 있고. 지금 상황은 어떻게 분석하고 계신지요?
[이종근]
일단 많은 여론조사를 말씀하신 부분들에 대한 제 생각을 말씀드리면 그중에 후쿠시마 말씀을 많이 하셨어요. 여론조사 기관들별로. 한 70% 초반대가 안전하지 않다고 나오고 있고요. 저도 여론조사를 하나 찾아왔습니다. YTN을 괴롭히는... 여론조사, 계속 얘기하면 괴롭히게 되는데 2008년도입니다. 2008년 6월에 미디어리서치 조사고요. 조선일보가 의뢰해서 미디어리서치가 조사한 거고.
[앵커]
조사기간도 구체적으로 설명해 주시겠습니까?
[이종근]
그걸 찾아오지 않았는데... 조종실에서 찾아주시면 좋겠습니다. 2008년도입니다. 6월 기사가 나왔을 겁니다. 당시 광우병입니다.
광우병과 관련돼서 안전하다, 안전하지 않다는 인식조사에서 안전하지 않다가 78.8%가 나왔고요. 안전하다가 17.1%가 나왔습니다.
광우병 당시에 2008년도 6월이면 광우병이 한창 많은 시민들이 걱정을 하고 또 민주당이 광화문에서 집회를 하고 있었던 그런 시점에서 78%는 안전하지 않다고 나왔던 것이거든요. 광우병 그다음에 어떻게 됐죠? 당연히 지금 미국산 소고기 다 잘 드시고 계시지 않습니까? 안전하지 않다고. 그러니까 안심을 할 수는 없다. 안전에 대한 문제보다는 안심할 수 없다는 그런 생각은 많은 분들이 갖고 계신 거 저도 인정을 합니다. 그런데 지금 그것을 그렇다고 해서 민주당이 지금까지 시위라든지 각종 집회를 한다든지 또는 민주당이 지금까지 그것과 관련돼서 지지율이 높아졌다든지 그런 기록이 없다는 건 지금 후쿠시마 관련해서 안심할 수는 없다는 여론은 나타나고 있으나 그렇다고 해서 민주당의 주장을 그대로 고스란히 다 받아들이지는 않고 있다는 게 지금 여론조사의 결과라고 보여집니다.
[앵커]
알겠습니다. 시간이 넘쳐서 마무리해야겠네요. 오늘 말씀은 여기까지 듣겠습니다. 이종근 시사평론가, 유용화 한국외대 초빙교수 두 분과 함께했습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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