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 동성애에 관한 과학적 변곡점이 된 ‘생물학적 풍요’[화제의 책]
어마어마한 번역서 하나가 출간됐다. 브루스 배게밀의 문제작 ‘생물학적 풍요’(이성민 옮김 / 히포크라테스)다. 1356쪽의 방대한 분량의 이 책은 지구 생명체의 성적 정체성에 관한 웅장하고 파격적인 울림은 전한다.
캐나다 출신의 생물학자이자 언어학자인 배게밀이 동물 성애에 대한 과학적 분석을 집적한 이 책은 20세기 후반까지 과학적으로 문서화된 450여 종의 동물 동성애 사례 중 190여 종의 포유류와 조류, 파충류, 양서류, 어류, 곤충, 거미 등의 동성애 목록이 사진·삽화와 함께 종합적으로 정리돼 있다. ‘동물 섹슈얼리티에 대한 최초의 백과사전’으로 불릴 만하다. 동성애와 양성애, 트랜스젠더를 포괄한 동물의 여러 섹슈얼리티에 대한 배게밀의 분석은 그 범위와 깊이에서 압도적이며 웅장하다.
배게밀의 이런 방대한 작업은 차후 연구를 위한 출처로 기능하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동물 동성애에 대한 과학적 연구는 동성애를 바라보는 인간 관점의 역사와 궤를 같이하기에 배게밀이 던진 논쟁거리는 자연스레 인간의 동성애, 양성애, 트랜스젠더에 대한 과학의 해석 문제로 옮겨간다.
그는 1700년대부터 2~3세기에 걸쳐 동물학과 생물학에서 이루어진 동물 동성애에 관한 연구를 고찰하면서 그들의 논증 방식, 즉 잘못된 전제·가정·유추·일반화의 문제를 짚어낸다. 이는 객관성의 최전선에 있다고 여겨지는 과학계에서도 암묵적으로 통용되고 있던 이데올로기를 직시하게 만든다.
더욱 흥미로운 것은 생물학자 마이클 지머만의 평가처럼, 그런 이데올로기에 도전하는 배게밀의 대응 방식이다. 그는 자신의 분석 자료를 동성애의 수용을 주장하는 정치적 문장으로 바꾸지 않고 과학적 기록이 스스로 말하는 방식을 택했다. 과거 ‘옳고 그름’의 문제로 다뤄지던 것을 ‘맞고 틀림’의 문제로 환치하는 배게밀의 시도 속에서 이데올로기를 해체하는 과학의 힘을 느낄 수 있다.
그간 동물학과 생물학계를 지배한 이데올로기는 ‘동물 세계에 대한 인간의 자기 투사’라고 표현할 수 있다. 동성애, 양성애, 트랜스젠더를 포괄한 동물의 다양한 섹슈얼리티를 인간이 가지고 있는 신념이나 감정과 바람을 담아 해석해 온 것이다. 이성애와 번식 중심주의로 대표되는 인간의 자기 투사는 동성애 활동에 대한 용어상의 부인, 부적절하거나 일관성 없는 적용, 정보의 누락이나 억압 등의 형태로 나타난다. 같은 성 동물 사이의 마운팅이나 기타 성적인 활동을 이성애를 보조 또는 대체하는 활동쯤으로 보거나 잘못된 성 식별과 병에 의해 발생하는 오류로 치부하는 시선에는 동성애에 대한 혐오가 짙게 서려 있다.
배게밀은 방대한 현장 연구 자료를 통해 이런 시선의 문제를 폭로한다. 포유류(영장류, 해양 포유류, 유제류, 유대류, 설치류 등)와 조류에서 나타나는 동성애, 양성애, 트랜스젠더, 비번식적 성적 행동의 수많은 사례를 ‘잘못된 해석’을 반박하기 위해 일일이 열거할 뿐만 아니라(제1부) 해당 종에 속하는 개별 동물들의 섹슈얼리티 프로파일까지 별도로 정리해 제시한다(제2부).
그가 열거한 동물의 성 활동은 이성애와 동성애라는 구분을 무색하게 할 만큼 다양하고, 일관되게 적용할 범주가 없을 만큼 혼잡하다. 개체의 삶, 다양한 공동체, 다른 종 사이, 시간의 순서 등에 따라 무한히 다양한 형태로 표현되는 것이다.
결국 배게밀이 보기에 그동안 사람들이 가져 온 생물학의 무지는 동성애, 양성애, 트랜스젠더, 비번식적 성 활동 등으로 나타나는 동물의 다양한 섹슈얼리티를 오직 ‘생식(生殖)’에 기반해서만 설명하려는 외골수적인 시도에서 비롯된 일이다. 그리고 이런 외골수적인 시도나 비뚤어진 시선은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
그러나 영국의 생리학자이자 유전학자인 존 홀데인이 “자연계는 우리가 아는 것보다 더 기이하다. 그리고 ‘기이한’ 동물의 삶은 우리가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더 다양하다”라고 말했듯이, 동성애나 양성애 등과 관련한 문제도 자연을 해석하는 인간이 아니라 자연 그 자체로 봐야 한다. 배게밀이 ‘생물학적 풍요’에서 하고픈 얘기도 이것이다.
엄민용 기자 margeul@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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