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동료 둘을 잃었다"…전국서 온 20만 교사 국회 앞으로(종합)
교사 목숨끊은 양천구 초교 추모행렬…학교 담장 둘러 근조화환 500여개
(서울=연합뉴스) 최윤선 최원정 기자 = 목숨을 끊은 서울 서이초 교사의 49재를 이틀 앞두고 검은 옷차림을 한 전국 각지의 교사들이 2일 오후 국회의사당 인근을 뒤덮었다.
주최측은 20만명으로 추산했다. 7주째 토요일마다 열린 교사들의 자발적 집회 중 가장 큰 규모로, 국회 정문에서 여의도공원 방향으로 난 8개 차로가 꽉 찼고 공원 주변 도로는 물론 국회에서 1㎞ 떨어진 5호선 지하철역 여의도역까지 교사 행렬이 이어졌다.
집회 사회자는 "무더운 올여름 매주 빠지지 않고 5천 명이 20만 명이 될 때까지 교사 생존권을 이야기했음에도 또다시 2명의 동료를 잃었다"며 침울한 목소리로 운을 뗐다.
최근 경기 고양과 전북 군산에서 초등학교 교사가 잇따라 목숨을 끊은 사건을 언급한 것이다.
사회자는 "교사의 죽음을 개인의 문제로 축소하는 건 7주 전과 다름이 없다"며 "서이초 사건이 알려진 지 40여 일인데 관리자와 교육부·교육청, 국회는 도대체 어디서 뭐 하고 있느냐"고 비판했다.
서이초 교사의 전 동료라고 밝힌 한 교사는 연단에 올라 "7주째 모여 철저한 진상규명과 공교육 정상화를 외치고 있지만 법 개정에 진정이 없는 현실에 화가 나고 답답하다"고 말했다.
교사들은 서이초 교사의 49재인 4일에 임시 휴업 후 집단행동에 나서는 경우 불법 행위로 엄정히 대응하겠다는 교육부를 비판했다.
경기 지역 7년차 교사는 연단에서 "법과 원칙을 지키지 않은 것은 과연 누구냐"고 반문하면서 "법과 원칙을 지키다가 돌아가신 선생님들의 죽음을 함께 슬퍼하고 추모하는 게 동료 교사로서의 법이자 원칙"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선생님들을 죽음으로 내몰아 공교육을 멈추게 만드는 사람들을 벌하고 교육활동을 하는 교사를 보호하는 게 진정한 법과 원칙"이라며 "법과 원칙에 따라 엄정하게 요구한다. 죽음에 대한 진상을 명확하게 밝히고 정당한 교육활동을 하는 교사를 보호하는 실효성 있는 방안을 마련하라"고 촉구했다.
앞서 교육부는 4일 임시 휴업을 강행한 학교장이나 당일 특별한 사유 없이 연가·병가를 사용한 교원에 대해 최대 파면·해임 징계까지 가능하고 형사 고발할 수 있다고 밝혔다.
교사들은 이날 아동복지법 개정과 학생·학부모·교육당국 책무성 강화, 분리 학생의 교육권 보장, 통일된 민원 처리 시스템 개설, 교육 관련 법안·정책 추진 과정 교사 참여 의무화 등 8가지 내용을 담은 정책요구안을 발표했다.
이들은 특히 아동의 정신건강 및 발달에 해를 끼치는 정서적 학대행위를 금하는 아동복지법 제17조5의 법안 개정을 요구했다.
정서적 학대행위가 광범위하게 적용돼 교사의 정당한 교육활동이 무분별하게 아동학대로 신고당하고 있다는 주장이다.
교사들은 집회 내내 '공교육 정상화의 그날까지 우리들은 함께 한다', '교육활동은 아동학대가 아니다 아동복지법 즉각 개정하라', '진실 없는 사건수사 진상규명 촉구한다' 등의 구호를 외쳤다. '악성민원인 강경 대응'이라 적힌 손팻말을 흔들기도 했다.
이날 집회에는 전국 교사들의 후원으로 제주도 등 섬 지역에서 1만5천여명의 교사가 항공편 등으로 상경했다고 주최측은 전했다. 전국 각지에서 대절한 버스도 600여대라고 덧붙였다.
교사 일부는 집회를 마치고 지난달 31일 경기 고양에서 목숨을 끊은 교사 A(38)씨가 근무한 서울 양천구의 초등학교를 찾아 고인을 추모했다.
이 학교 앞에는 전날 밤부터 '동료 교사 일동', '살아남아 미안한 교사' 등의 문구가 붙은 근조화환 500여개가 배달돼 담장을 둘러 늘어섰다.
화환에는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와 함께 '몇 명이 죽어 나가야 바뀔 건가', '악성 민원인 엄벌 촉구' 등 조문을 적은 리본이 달렸다.
교문에는 추모의 뜻을 담은 포스트잇이 줄지어 붙었다. 포스트잇에는 '동료 교사로서 정말 부끄럽고 참담하다', '수업 시간이 선생님 덕분에 재밌었다. 감사합니다' 등의 글이 적혔다.
교문 안쪽에는 이날 오전 9시께 추모 공간이 생겼다. 학교 관계자는 "추모 공간을 만들면서 국화 2천송이를 준비했는데 추모객이 많이 찾아와 모두 동이 난 상황"이라고 전했다.
추모를 마친 경기 광명시 철산초등학교 교사 권현수(38)씨는 "소식을 듣고 '바뀌는 게 없구나. 또 이런 일이 생기지 말라는 법이 있겠나'라는 생각이 들었다"며 "교육청과 교육부가 (교사들에게) '너희들은 보호받을 수 있다'는 믿음을 주지 못한 결과"라며 눈시울을 붉혔다.
1일 유서를 남기고 숨진 교사가 근무하던 전북 군산의 초등학교에도 근조화환이 잇따라 당도했다. 화환에는 '선생님, 그곳에서는 고통 없이 편히 쉬세요', '그곳에서는 부디 편안하시길', '지켜드리지 못해 죄송합니다' 등의 메시지가 적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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