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범도 흉상 이전에 박노자 “정부, 무능 덮으려 독립 영웅 부관참시”

김정화 기자 2023. 9. 2. 18: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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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사 홍 장군 흉상 외부 이전 추진에 쓴소리
“총체적 난국에 대중 관심 돌릴 연막 공작”
카자흐 고려인들도 “큰 충격…계획 철회를”
카자흐스탄 고려인 동포들이 1일(현지시간) 알마티 고려극장에 있는 홍범도 장군의 대형 사진 앞에서 흉상 이전 계획 철회를 촉구하고 있다. 2023.9.1 연합뉴스

육군사관학교가 홍범도 장군 흉상을 교내에서 외부로 이전하기로 한 데 대해 러시아 출신의 귀화 한국인인 박노자 오슬로대 한국학과 교수가 “정부가 무능과 실정을 덮으려고 독립 영웅에 이념 시비를 거는 꼴”이라고 밝혔다. 또 “홍 장군은 50만 고려인들의 집단적 정체성의 상징이기도 하다”며 “이를 모독하는 게 사회 통합에 도움이 되느냐”고 지적했다.

역이민자인 고려인 동포들의 삶을 연구하는 박 교수는 2일 자신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육사에서 벌어지는 홍 장군 흉상 철거의 촌극은 그야말로 ‘연막 공작’”이라며 이같이 밝혔다.

그는 “홍 장군은 단순히 독립운동 영웅이 아니다”며 “50만명 고려인의 5분의 1은 지금 국내에 거주하고 있으며, 한국은 그들을 사회적으로 통합해야 하는 과제를 짊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과연 그 상징인 홍 장군을 이처럼 모독하는 게 사회 통합, 나아가 구소련 고려인 디아스포라와의 좋은 관계 구축에 도움이 됩니까”라고 지적했다.

박노자 교수 페이스북

특히 현재의 흉상 이전 논란이 정부의 무능을 덮으려 벌어지는 일이라고 짚었다. 박 교수는 “수출 부진으로 경제 성장률 전망치도 세계 전체 평균보다 2배나 낮고, 일본의 오염수 방류 등 한국 정부가 종범이 된 대형 환경 범죄도 감행되고 있다”며 “흉상 철거와 그 철거가 초래한 이념 시비는 결국 대중의 눈을 돌릴 만한 소재”라고 말했다. 이어 흉상 이전은 홍 장군에 대한 “부관참시”라고까지 하며 “염치 없는 패당이고, 정부라고 부르기도 뭐하다”고 강하게 비판했다.

앞서 흉상 이전 소식에 국내외에서 큰 반발이 일어나는 가운데 홍 장군이 말년을 보낸 카자흐스탄의 고려인 동포들 역시 이전 계획 철회를 촉구했다. 리 류보피 카자흐스탄 국립아카데미 고려극장 예술감독과 박 드미트리 홍범도 장군 기념사업회 카자흐스탄 지회장 등 고려인 동포들은 지난 1일(현지시간) 알마티 고려극장에서 흉상 이전 계획에 항의하는 기자회견을 가졌다.

이들은 고려극장 안에 있는 홍범도 장군의 대형 사진 앞에서 ‘항일독립전쟁 영웅 홍범도 장군, 모셔갔으면 제대로 모셔라’, ‘홍범도 장군 공산당 이력이 문제면 내 가족과 고려인 동포 50만명도 모국의 적인가?’라고 써진 플래카드를 들고 이전 반대의 뜻을 나타냈다.

국방부가 육군사관학교 교내뿐 아니라 국방부 청사 앞에 설치된 고(故) 홍범도 장군 흉상에 대해서도 필요시 이전을 검토하고 있다고 밝힌 28일 서울 용산구 국방부 청사 앞에 설치된 고 홍범도 장군 흉상 모습. 연합뉴스

2021년 홍범도 장군 유해봉환 현장에 있었다는 박 지회장은 “당시 홍범도 장군이 아름다운 해방된 조국의 품에 안겨 영면하시겠다고 생각하면서 마음 뿌듯해했고 한국이라는 나라를 자랑스럽게 느꼈다”며 “카자흐스탄 국민들도 같은 마음이었다”고 말했다.

그는 그러나 “다섯 분의 독립전쟁 영웅 중에서 홍범도 장군의 흉상만 철거한다는 소식에 더 큰 충격을 받았다”며 “그렇다면 공산당원이었던 돌아가신 나의 부친도, 옛 소련에서 태어나고 인생의 절반 정도를 소련 체제 속에서 살았던 나도 제거 대상인가. 21세기에 공산당도 소련도 더 이상 존재하지 않은 지 30년이 넘었는데 이게 말이 되는가”라고 반문했다.

리 예술감독은 “체제와 정권이 바뀔지라도 홍범도 장군은 우리 민족의 독립전쟁 영웅”이라며 “그가 8천만 겨레의 기억 속에서 영원히 사라지지 않도록 고려극장은 있는 힘을 다하여 노력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김정화 기자 clea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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