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제 키스’ 정직당한 스페인축구협회장, 사퇴 대신 ‘버티기’ 선언
시상식에서 여성 축구선수에게 ‘강제 키스’를 했다는 이유로 90일 정직 징계를 받은 스페인축구협회의 루이스 루비알레스 회장이 사퇴는커녕 결백을 입증하기 위해 버티겠다고 선언했다.
스페인 뉴스통신 EFE에 따르면 루비알레스 회장은 1일(현지 시각) 성명을 통해 “정말 후회되는 실수를 몇 차례 저질렀다. 이에 용서를 구하고 있다”며 “월드컵 우승이 얼마나 감격스러운지와 별개로 지도자에게 모범적 행동이 요구된다는 사실도 배웠다”고 밝혔다.
그러면서도 “난 전국을 넘어 전 세계적으로 정치권, 미디어로부터 전례 없는 ‘린치’를 당했다”며 “진실을 입증하기 위해 나 자신을 계속 변호하겠다”고 강조했다.
이어 “공정한 재판 없이 페미니즘의 이름으로 한 남자를 축출하려 하면 안 된다. 평등은 동등한 권리에서 시작한다”고 덧붙였다.
특히 루비알레스 회장은 사퇴를 압박하는 스페인 정치권에 날을 세웠다. 루비알레스 회장은 “권력분립을 보장해야 할 이들이 사법부가 판단하게 두기는커녕 나에 대한 압박에 동참하도록 요구하는 상황이 우려스럽다”고 밝혔다.
이어 “내 지위를 지키기 위해 국제축구연맹(FIFA)의 절차를 따르고 있다”며 “잔인할 정도로 정치권·언론의 압박이 이어지고 수많은 정보 조작·거짓말·검열이 나타나는 중이지만 이 문제를 담당하는 독립적인 기구들을 신뢰한다”고 덧붙였다.
독일의 DPA통신 등에 따르면 이날 스페인의 스포츠행정재판소(TAD)가 루비알레스 회장의 기습 키스를 ‘심각한 행동’으로 분류해 정식으로 유죄 여부를 따져보기로 했다.
이보다 높은 등급의 ‘매우 심각한 행동’으로 분류됐다면 스페인 정부가 루비알레스 회장을 즉시 끌어내릴 수 있었을 테지만, 일단 TAD의 결정을 기다리게 됐다.
해외 언론들이 ‘원치 않는 키스’ ‘키스 게이트’로도 지칭하는 이 사건은 전 세계 시청자들이 TV로 시상식을 지켜보고 있는 상황에서 벌어졌다. 20일 결승전이 끝난 뒤 루비알레스는 우승한 선수들을 축하하기 위해 스페인 왕위 계승 1순위 레오노르 공주 등과 시상대에 올랐다. 루비알레스는 자신의 앞으로 온 공격수 헤니페르 에르모소(33)를 양팔로 힘껏 껴안은 후 두 손으로 에르모소의 머리를 잡고 입을 맞췄다.
이 장면은 TV 화면에 고스란히 포착됐고, 이후 소셜미디어를 통해 급속도로 퍼지면서 부적절한 행동이었다는 비판이 쏟아졌다. 루비알레스는 이틀 뒤 “내가 실수를 했다는 것을 자각하고 있다. 최고로 흥분되는 순간에 악의 없이 했다”고 했다. 그러면서도 해당 행동이 “사전에 합의된 것”이라고 했다. 사과인 듯 사과 아닌 듯 자기변명에 급급한 모습으로 비치면서 그를 향한 비난은 더욱 거세졌다. 여기에 ‘강제 키스’를 당한 에르모소가 “(루비알레스의) 당시 행위를 정당화하는 발표를 하라는 지속적인 압력을 받았지만 굴복하지 않았다”고 폭로하면서 파문은 걷잡을 수 없이 확산했다.
이후 대표팀의 주축인 에르모소를 포함한 스페인 여자축구 선수 80여명이 선수노조 풋프로를 통해 보이콧 의사를 밝혔고, 정치권·프리메라리가 구단들까지 규탄 행렬에 동참하며 비판 여론이 가열됐다.
FIFA는 지난달 26일 징계위원회를 열고 국내외적으로 축구와 관련된 루비알레스 회장의 모든 권한을 90일간 정지했다. 아울러 루비알레스 회장이 에르모소에게 당분간 접근하지 못하도록 명령했다. FIFA는 추후 조사 결과와 최종 징계를 발표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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