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중 갈등과 충돌은 양국 모두 다 지는 게임이다
한·미·일 안보협력 강화에 따른 ‘對中 리스크’ 관리 필요해
(시사저널=김흥규 아주대 교수 (미중정책연구소 소장))
윤석열 정부는 이전 문재인 정부의 대중(對中) 굴종 외교를 비난하면서, 상호 존중과 호혜에 입각한 당당한 대중 외교를 추진하겠다고 공언한 바 있다. 국내 여론은 2016년 사드 사태 이후 중국에 대한 반감이 크게 상승했고, 새 정부의 이러한 정책을 환영했다. 문 정부는 북한과의 관계 개선을 외교·안보의 최우선 순위로 설정하면서, 북한에 대한 중국의 강한 영향력을 고려해 대중 관계를 우호적으로 유지하려 노력한 바 있다.
윤 정부는 그간 상대적으로 소원했다고 평가하는 미국과의 동맹 강화를 최우선 외교·안보 과제로 설정했다. 미국은 미·중 전략 경쟁 시기에도 여전히 세계 최강의 국가이며, 한국의 안보와 발전에 가장 긴요하다는 전제를 담았다. 동시에 중국과의 관계는 상대적으로 격하시켰다. 중국의 대북 역할이 미미하며, 같은 사회주의권 국가로서 북·중은 실질적 동맹이라는 이데올로기적인 불신을 강하게 담고 있는 탓이다.
윤 정부는 인수위에서 준비한 120대 국정과제나 지난해 12월 인도·태평양 전략을 발표할 때까지만 해도 중국을 자극하는 언사는 자제하는 분위기였다. 그러나 올해 들어 이념을 중시하는 윤 정부의 냉전적인 대외관계 인식은 좀 더 분명해졌다. 한·미·일 3각 안보협력 강화 정책도 구체화되었다. 이는 3월 발표한 국방혁신 4.0 기본계획서, 윤석열 대통령의 4월 로이터통신 인터뷰, 대일관계 개선과 한일 정상회담, 한미 정상회담 그리고 이번 8월 캠프 데이비드에서의 한·미·일 정상회의에서 그 정점을 찍었다. 윤 정부의 외교안보 정책은 그간 탈냉전기 한국 역대 정부의 외교안보 정책과 비교해도 사뭇 다른 패러다임으로의 변혁을 추진 중이란 것을 알 수 있다.
시진핑, 미국 중심의 국제 질서 타파 시도
역대 탈냉전기 한국 정부는 보수와 진보를 막론하고, 한미 동맹을 가장 중시하면서도 중국이나 러시아를 적대적인 관계로 설정하지는 않았다. 한미 동맹과 미일 동맹의 구조하에서 한일 간에 안보협력이 제한적으로는 이뤄졌지만, 한·미·일 3국 안보협력을 명시적으로 구체화하는 데는 역시 주저했다. 한·미·일 안보협력이란 개념을 최초로 문서화해준 정부는 문 정부였다. 그러나 이 협력 기제를 중국과 북방 사회주의권을 겨냥해 제도화하고 정례화한다는 의지를 담은 것은 윤 정부가 최초다. 또 역대 정부는 북한에 대한 적대관계를 명시화하는 데 좀 더 신중했지만, 윤 정부는 주저하지 않았다. 윤 정부의 정책노선 변화는 현 국제 안보 상황을 신냉전이라고 명시적으로 규정한 북한에 이어, 실제적으로 새로운 냉전 상황이란 점을 적극 수용한 것으로 보인다.
미·중 전략 경쟁 시기에 한반도와 동북아는 어느 지역보다 군사적 충돌 위험이 커지고, 강대국들의 정치적 영향력 확대에 따른 위협이 크게 증대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미·중 전략 협력 시기에 한미 동맹 강화와 자유민주주의 연대는 한국의 국가 위상과 안보를 증대시키는 역할을 했다. 그러나 미·중 전략 경쟁 시기에 냉전화하는 한반도는 전혀 다른 그림을 그려낸다. 빛과 어둠의 세계가 공존하듯이 평화를 위한 노력과 전쟁의 위험이 동시에 고양되는 새로운 현상을 맞이하고 있다. 대만에서의 미·중 군사적 충돌은 필연적으로 한반도에서의 군사적 충돌로 전이될 것으로 보인다.
한미 동맹과 한·미·일 안보협력의 강화는 상대적으로 중국과 러시아와의 적대관계를 강화하고, 북·중·러의 안보협력을 이끈다. 이는 상관관계라기보다는 인과관계에 가깝다. 북·중·러는 과거 사회주의권이었다는 공통점 외에는 근본적으로 전략적 비전과 이해가 다른 국가들이었다. 특히 한국의 입장에서 가장 우려할 점은 중국과의 충돌 개연성이 크게 증대했다는 사실이다. 중국은 한국의 최대 무역국이면서 동시에 직접적인 군사·안보·경제적 위해를 가할 수 있는 가장 강력한 역량을 지닌 국가이기 때문이다.
시진핑 3기 체제에서 중국의 가장 중요한 대외전략 변화는 미국이 주도하는 일극 중심의 국제 질서를 더 이상 수용하지 않고 새로운 다극화된 국제 질서를 추진할 것임을 공식화한 것이다. 중국은 최근 들어 글로벌 발전 구상(GDI), 글로벌 안보 구상(GSI), 글로벌 문명 구상(GCI)을 연이어 발표하고, 중국과 러시아가 주도하는 새로운 다극화된 국제 질서를 구축하려 노력하고 있다. 미국의 인도·태평양 전략이 실제로는 미국이 중국과 러시아를 봉쇄·포위하기 위해 배타적이고 폐쇄적인 자신들만의 울타리를 통해 진영 간 상호 적대적 대결을 유발하고 있다고 비난하면서, 중국을 적대하는 행위에 대해 중국 역시 피하지 않고 눈에는 눈, 이에는 이로 보복할 것임을 거듭 천명했다.
그러나 중국의 실제 대외정책은 좀 더 복잡하고 신중하다. 대외정책에 대한 적용은 실용주의에 입각해 유연하게 추진하고 있다. 중국은 자국의 안보 환경을 지정학-지경학-국제 질서 체계의 3차원으로 접근하면서, 불리한 지정학적 요인은 최소화하고, 지경학적인 주도권은 최대한 확대하고, 국제 질서 체계에서는 변혁을 추구하려 하고 있다. 중국이 공세적인 대외정책을 추진한다는 서방의 우려와는 달리 지정학적 충돌은 가급적 자제하는 대신 공급망을 중국에 우호적으로 재편성하고, 미국 중심의 금융체제를 약화시키면서 다자주의를 적극 활용해 중국에 유리한 새로운 국제 질서를 창출하려 노력 중이다. 중국은 러시아뿐만 아니라 브릭스(BRICS), SCO(상하이협력기구), 중동, 중앙아시아, 아프리카, 남미 지역 등과 같은 글로벌 사우스(Global South) 국가들과 정치-경제-안보 연대와 협력을 적극적으로 확대시켜 나가기 시작했다.
경제 침체 빠진 중국, 대외 강공책 어려울 듯
윤 대통령의 지난 4월 로이터통신 회견과 한국 정부의 급속한 친미(親美)화 추이에 대해 중국은 관망 태도에서 벗어나고 있다. 윤 정부의 이념과 가치 중심의 외교 강조는 향후에도 중국과의 대립을 더 강화할 것으로 추정된다. 5월22일 방한한 류진쑹 중국 외교부 아주사 사장(아시아 담당 국장)은 중국의 마지노선인 4대 불가 방침을 우리 정부에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①중국 핵심이익 침해 시 협력 불가 ②친미·친일 일변도 정책으로 나갈 경우 협력 불가 ③한중 관계 긴장 지속 시 고위급 교류 불가 ④악화된 정세 아래 한국의 대북 주도권 행사는 불가하다는 것이다.
지난 6월에 발생한 싱하이밍 중국대사의 발언 사태는 한국 정부의 기대와는 달리 개인의 일탈이나 친강 전 외교부장의 전랑(늑대)외교에 따른 결과물이 아니다. 중국 최고 지도부 차원에서의 대(對)한국 정책의 변화에서 기인한 것으로 판단해야 한다. 중국은 정치·경제적으로 한국과의 탈동조화와 무시 전략을 추진하고, 압박 시나리오를 고려 중인 것으로 보인다.
물론 중국의 국내 경제가 침체에 빠지고 청년실업 문제가 매우 심각하다는 점은 중국 대외정책의 걸림돌일 수 있다. 일설에 의하면 청년 실업률이 45%를 넘어선다고 한다. 미국 국내 정치 상황도 중국의 국익에 반해 더 악화할 개연성도 존재한다. 내년 공화당이나 트럼프의 득세는 미·중 간에 더 심각한 충돌을 야기할 것이다. 중국은 강공의 대외정책보다는 신중한 태도를 취할 것으로 예상된다. 한국이 추가적으로 자극하지 않는 한 당분간은 경제·외교적 압박이나, 군사적 강공책을 주요 정책 수단으로 삼지는 않을 것이라는 합리적 추론이 가능하다. 단 이를 일각의 주장처럼 "한국 외교의 승리"로 오인해서는 안 된다.
중국은 현재 한국과의 접촉선을 최소화해 나가는 조치를 취하고 있다. 올해 내 시진핑 주석의 방한이나 윤석열 대통령의 방중은 모두 어려워 보인다. 현재 한중의 강대강 대립은 2030 부산박람회 유치를 어렵게 하고, 올해 말 한국에서 개최할 예정인 한·중·일 정상회담 자체를 무산시킬 개연성도 존재한다. 만약 중국이 한국에 대해 강공책으로 나온다면, 군사적으로 한국을 포위하고, 정치외교적으로 한국을 괴롭히고, 경제적으로 한국을 어려움에 직면하게 하는 정책을 종합적으로 채택할 수도 있다. 동시에 북·중 전략적 협력관계는 강화할 것이다.
한·중 관계가 우리 외교안보의 최대 도전 될 것
이렇듯 윤석열 정부의 외교안보에서 최대 도전은 한중 관계에서 올 개연성이 상당하다. 윤 정부가 친미 노선과 한·미·일 안보협력을 공개적으로 천명하는 상황에서 중국과의 디리스킹(위험 완화)이 아닌 리리스킹(위험 재강화) 위험이 크게 상승하고 있는 게 사실이다. 중국의 대한국 디커플링(탈동조화) 정책이 이미 시작된 셈이다.
우려할 점은 한국을 포함해 주변 각국에서 강경론이 확산하는 추세라는 점이다. 한반도와 동북아는 불안정하고 군사적 충돌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 점차 강경화하고 있는 주변국들의 대외정책 분위기 속에서 우리 또한 강경론에 편승하거나 정치화된 이데올로기 외교에 경도되어서는 결코 한국의 국가 이익을 보전하기 어렵다.
따라서 우리 정부는 한중 관계의 미래를 위해 중국을 향해 다음의 3가지를 강조해야 할 것으로 본다. 첫째는 한국의 정체성이 더 이상 '청(淸)나라-조선' 시기의 위계적인 세계관에 기반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한국은 2차 세계대전 이후 자유민주주의 체제에서 번영하면서 국가 간 상호 평등성에 기초한 정체성을 지니고 있다는 점을 알려야 한다. 둘째, 중국이 한국과 같은 주변 국가와 평화를 유지하지 못하고 압박외교로 전환한다면 더 이상 세계적인 강대국으로 인정받기는 곤란하다는 점을 말해야 한다. 셋째, 주변 국가들과 경제적 협력 기반을 닦는 비전을 제시하는 것은 미래의 지역 안정과 평화에 대단히 긴요하다는 점을 강조해야 한다.
윤 정부가 가치를 중시하고 북한 위협에 대비하기 위해 한·미·일 안보협력을 추진하지만, 중국과의 협력을 배제하는 것이 결코 아니라는 점을 주지시키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한국은 중국과 경제적 협력 공간을 창출하는 데 적극적이며, 기후변화·의료·환경·에너지·서비스 산업 등 다양한 측면에서 협력을 증진시킬 의지를 보여줄 수 있어야 한다. 한중 갈등과 충돌 강화는 결국 양국의 Lose-Lose(모두 패자가 되는) 게임이라는 인식을 공유하는 것이 중요하다. 갈등의 확대보다는 관리에 집중해야 한다. 윤 정부 역시 중국과의 갈등과 충돌 강화는 중장기적으로 큰 부담이 될 것이므로, 중국과의 관계를 관리하기 위한 노력을 강화해 나갈 것으로 전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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