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랫폼은 '공장의 종말' 아닌 새로운 '디지털 팩토리'

2023. 9. 2. 14: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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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연 기자(daramji@pressian.com)]"체감온도가 33도일 때 휴게시간은 하루 1번 15분, 체감온도가 35도일 때는 하루 1번 20분 휴게시간을 줍니다. 저희 정말 더워 죽을 것 같아요."

쿠팡과 아마존과 같이 온라인 플랫폼을 기반으로 한 소비·경제 변화가 일어나면서 일하는 방식이 변하고 '공장제도에 근거한 노동법은 낡았다'라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는 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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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시안 books] <디지털 팩토리> 모리츠 알텐리트 지음. 권오성·오민규 옮김

[박정연 기자(daramji@pressian.com)]
"체감온도가 33도일 때 휴게시간은 하루 1번 15분, 체감온도가 35도일 때는 하루 1번 20분 휴게시간을 줍니다. 저희 정말 더워 죽을 것 같아요."

지난달 1일 파업에 나선 쿠팡 물류센터 노동자의 말이다. 전국 대부분의 지역에서 체감온도 35도를 기록한 날이었다. 정성용 공공운수노조 전국물류센터지부 쿠팡지회장은 "폭염 속에서 고통을 받고 있다가 참다 못해 파업하게 됐다"며 "물류센터 현장에는 에어컨이 없고 휴게시간이 거의 없다"고 어려움을 호소했다. (관련기사 : [단독] 쿠팡에 노동부 장관 다녀간 날, 물류센터 노동자 더위로 쓰러졌다)

쿠팡의 폭염 문제는 미국의 IT·유통 기업인 아마존과 무척 닮아있었다. 2011년 아마존은 무더위 기간에 냉방시설을 갖추는 대신 구급대원을 외부 구급차에 주차시키고, 업무에 복귀하지 못하는 노동자들을 집으로 보내거나 인근 병원으로 이송시켰다. 이들을 치료한 의료진은 아마존의 노동환경이 '안전하지 않은 환경(unsafe environment)'이라며 신고했다. (관련기사 : Inside Amazon's Warehouse )

쿠팡과 아마존과 같이 온라인 플랫폼을 기반으로 한 소비·경제 변화가 일어나면서 일하는 방식이 변하고 '공장제도에 근거한 노동법은 낡았다'라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는 현실이다. 하지만 이러한 현실에 일침을 가하는 책이 나왔다. <디지털 팩토리>(모리츠 알텐리트 지음. 권오성, 오민규 옮김. 숨쉬는 책공장)다.

▲쿠팡 물류센터 노동자들이 휴게시간 보장 등 폭염 대책 마련을 요구하며 하루 파업에 나선 1일 인천시 서구 오류동 쿠팡 인천4물류센터 앞에 센터 내 체감온도가 34.5도에 이른다는 현수막이 걸려 있다. ⓒ연합뉴스

<디지털 팩토리>는 디지털 자본주의사회에서 노동의 전환, 특히 과거 전통적인 공장에서만 존재한다고 여겨지는 노사관계를 발생시키는 현장을 중점적으로 다룬다. 마치 쿠팡과 아마존의 물류창고처럼 말이다.

"아마존 풀필먼트 센터 전체에 걸쳐서도 그렇지만, 여기(포장작업)에서도 마찬가지로 디지털 측정 시스템은 다소 구닥다리처럼 보이는 엄격한 작업장 감시 시스템을 통해 완성된다. 포장 라인 끝에 있는 작으 망루는 작업장 리더와 구역 관리자가 작업장 규율을 잡기 위해 사용되곤 한다. 풀필먼트 센터 내에서 동료와의 대화는 금지되며, 사소한 작업규율 위반도 면밀한 조사대상이 된다. 위반이 발생하면 직원은 지나가는 리더에게 질책을 받거나 상사와 공식적인 '피드백 대화'에 불려갈 수도 있다"

책은 아마존 물류센터에서의 노동이 아주 세세한 부분까지 표준화되어 있으며 매우 전통적인 통제를 받는다고 지적했다.

"예를 들어 노동자들은 화장실에 가는 휴식 빈도에 대해 질문을 받고 몇 분이라도 늦게 돌아오면 주의를 받는다고 말한다. 휴식시간은 많은 풀필먼트센터에서 제기되는 주요한 불만사항이다. 거대한 센터에서 매점과 지정된 휴식 공간까지 걸어가는 데 시간이 오래 걸릴 뿐만 아니라 보안 검사로 인해 시간이 길어지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최악의 경우 작업자들은 제 시간에 식사하고 근무지로 돌아갈 시간이 부족해진다"

글로벌 IT·유통기업인 아마존에서도 물류를 움직이는 노동자들의 '휴게시간'은 충분히 보장되지 못했다. 쿠팡 물류센터 노동자들도 파업에 나선 이유는 간단했다. 휴게시간을 달라는 것, 특히 고용노동부가 제시한 휴게시간 가이드라인을 지키라는 것이었다.

<디지털 팩토리>의 저자는 쿠팡과 닮은 아마존의 예시를 들며 "디지털 자본주의가 공장의 종말이 아니라 오히려 폭발, 증식, 공간 재구성과 기술적 변이과정을 통해 디지털 팩토리로 전환된다"고 짚었다.

▲지난해 일자리가 없거나 생활비가 필요해서 어쩔 수 없이 특수형태근로종사자(특고)가 된 사람이 19만 명에 달했다. 사진은 이날 서울 시내에서 배달원이 이동하고 있다. ⓒ연합뉴스

4장에 등장하는 '분산된 공장'에서는 전 세계 디지털 작업자에게 업무를 할당하는 크라우드워크 플랫폼을 다룬다. 이 크라우드워크는 한국의 배달노동자에게 '콜'을 배정해주는 플랫폼의 '알고리즘'과 닮아있다.

"크라우드워커의 노동은 실제로 다양한 방식으로 숨겨져 있다. 대부분 공공장소의 외부와 개인의 가정에서 이루어진다. 다른 형태의 노동보다 지리적으로 분산되어 있고 눈에 잘 띄지 않는다. 또한 여러 형태의 노동법 규제와 전통적인 형태의 노사갈등의 영향권 밖에서 진행된다. 게다가 알고리즘의 마법 뒤에 숨어있다."

결국 IT 기업, 플랫폼 역시 오늘날 디지털 자본주의의 전형적인 공장인 셈이다. 이 책을 옮긴이들도 "과거에는 공장이라는 물리적 공간 내에서만 존재했던 위계구조가 디지털 기술을 통해 공장 담벼락을 넘어 모든 생활공간으로 확장된 것이 오늘날 플랫폼 경제의 본질"이라고 분석했다.

이밖에도 <디지털 팩토리>는중국에서 미국게임사의 그래픽 작업을 하는 하청 노동자, 필리핀의 콘첸트 모더레이터, 그리고 여러 소셜 미디어 상의 홍보마케팅 노동자에 이르기까지 IT 기업에서 필수적인 노동을 하면서도 철저히 은폐되고 서열화되는 디지털 노동의 현주소를 보여준다. 책에 등장하는 구체적인 예시를 통해 디지털 자본주의가 만든 디지털 공장의 실체를 만날 수 있길 바란다.

[박정연 기자(daramji@press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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