맨덜리 저택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긴장감 이어가는 치밀한 극 전개와 화려한 무대세트 압권
(시사저널=조용신 뮤지컬 평론가)
알프레드 히치콕(Alfred Joseph Hitchcock·1899~1980) 감독의 1940년 동명의 영화로 잘 알려진 뮤지컬 《레베카(Rebecca)》가 올해로 한국 초연 10주년을 맞았다. 원작은 1938년 출간된 영국 여성 작가 대프니 듀 모리에(Daphne du Maurier·1907~1989)가 쓴 동명의 베스트셀러 소설이다. 이에 매료된 영국 출신 히치콕 감독이 2년 후 미스터리, 로맨틱, 스릴러가 혼합된 독특한 질감의 영화로 발표하며 할리우드에 처음 진출한 작품이다. 2020년 영국에서 넷플릭스 리메이크 영화 버전도 제작해 여전히 인기 있는 콘텐츠임을 보여줬다.
뮤지컬은 2006년 오스트리아 비엔나 레이문드 극장에서 초연한 후 유럽과 일본에서 인기를 얻었다. 우리나라에서는 2013년 초연 이후 지난 10년간 6번의 시즌을 거치며 누적 관람객 95만 명을 모았다.
1938년 소설 출간 후 영화와 뮤지컬로 재단장
유명 작가 미하엘 쿤체와 작곡가 실베스터 르베이 콤비는 우리나라에서 오랫동안 스테디셀러로 자리매김한 뮤지컬 《모차르트!》 《엘리자벳》 《마리 앙투아네트》에서 보여준 것처럼 이 작품에서도 원작 속 강력하고 어두운 이야기의 주인공들을 무대 위에 새롭게 만들어냈다. 이들 콤비의 다른 작품들이 대부분 유럽의 실존 위인들을 다룬 '바이오그래피 뮤지컬'이지만, 이 작품은 미국 영화를 원작으로 한 만큼 가장 브로드웨이 스타일에 가깝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하지만 실제 브로드웨이 무대에서 올려지는 화려한 쇼 중심의 뮤지컬 코미디적인 요소보다는 마치 한 편의 심리극을 보는 듯한 강력한 뮤지컬 드라마의 양식이 돋보인다. 가사의 기능도 '캐릭터 내면의 목소리'라는 원칙에 충실하다. 실베스터 르베이의 힘 있는 음악은 높이 치솟는 감정과 분노, 광기 등과 더불어 사랑의 순간을 표현하는 빠른 템포의 음악들로 구성돼 있다.
이 작품의 주제는 일찍 부모를 잃고 경제적 어려움을 겪으면서도 순수함을 잃지 않는 주인공 겸 내레이터 '나(I)'의 정체성과 행복을 찾아가는 성장 스토리다. 사건 초반에는 순진하고 미숙한 여성이었던 '나'의 모습이 사건이 진행될수록 다른 등장인물 누구보다도 강하고 자기 확신에 찬 여성으로 변화하는 과정을 따라가고 있기 때문이다. '나'는 불우하고 가난하게 살다가 최상위층 귀족 남자와 우연히 만나 새 삶을 살게 된 소위 신데렐라다. 그러나 보통 신분 상승이 극의 말미를 장식하며 해피엔딩을 이끄는 반면, 이 작품에서는 그것이 시작 부분에서 이뤄진다.
막이 열리면 '나'는 황폐해진 맨덜리 저택의 잔재와 과거의 그림자들 앞에서 화려했지만 다시 돌아가고 싶지는 않은 한때를 회상한다. '나'는 갓 여학교를 졸업한 순진무구한 여성으로 부모님이 돌아가신 다음 살길이 막막해져 부유한 반 호퍼 부인의 유급 말동무 비서로 취직해 1년에 단돈 90파운드를 받으며 부인의 온갖 시중을 들고 있다. 부인의 일상에 딸린 부속물에 불과했던 '나'는 프랑스 휴양지 몬테카를로에서 부인 옆에 머물면서 그곳 호텔에서 우연히 만난 매력적인 중년의 영국 귀족 막심 드 윈터와 급격하게 가까워진다.
그는 1년 전 아름다운 부인을 불행한 익사 사고로 잃었는데, '나'는 그런 상처가 있는 그를 내면에서 사랑하게 돼 결혼까지 약속하고 달콤한 신혼여행 후 영국 콘윌 맨덜리의 대저택에 도착한다. 떠나기 전 호퍼 부인은 '나'에게 차가운 충고를 던졌다. 막심은 너를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그가 대저택에서 혼자 살 수 없기에 너를 선택한 것일 뿐이라고. 그 말처럼 일반적인 신데렐라 스토리와 달리 처절한 현실이 그녀를 기다리고 있다.
맨덜리 대저택은 사실 그 화려함과 아름다움 뒤에 엄숙한 기운과 음산한 관리인 댄버스 부인의 존재, 집 안 곳곳에 남아있는 막심의 전 부인 레베카의 흔적이 심리적으로 불편함을 만들어내는 공간이다. 작품의 타이틀롤 '레베카'는 무대에 한 번도 등장하지 않는 고인이기에 댄버스 부인의 전언으로 그 존재를 상상할 수밖에 없다. 생전의 레베카는 마력적으로 아름답고 신비로우며 무서운 비밀에 연루돼 있었다는 여러 정황이 드러난다. 관객으로 하여금 호기심을 놓지 않게 하는 부재한 존재가 상상력과 욕망을 자극하며 이 극의 긴장감을 이끌어가는 것이다.
원작 소설에서도 한 번도 이름이 불려지지 않은 '나'는 고인이 된 레베카가 여전히 진짜 주인이고 자신은 불청객처럼 느껴지는 이곳 맨덜리 저택에서 끝내 새 안주인이 되지 못한다. 오히려 서서히 그 상황을 받아들이게 되는데 그 모든 비밀은 극이 진행될수록 점차 벗겨진다.
베테랑 배우부터 아이돌까지 다양한 캐스팅
극이 말미에 이르면 관객들이 궁금해했던 레베카의 죽음, 막심의 과민 반응, 댄버스 부인의 이상 행동의 이유들이 결정적인 사건으로 인해 한꺼번에 밝혀지며 전혀 다른 속사정이 드러나는 반전이 이뤄진다. '나'와 막심의 운명은 이미 죽은 레베카가 의도한 대로 움직일 것인가, 아니면 이 모든 것을 슬기롭게 극복하는 '나'의 모습이 펼쳐질 것인가. 후반부까지도 긴장을 늦출 수 없는 드라마다.
특히 이 작품의 여주인공인 댄버스 부인의 존재감이 상당하다. 레베카가 맨덜리 저택에 처음 왔을 때부터 동행한 그녀는 레베카를 이 세상 누구보다도 잘 알고 그것이 사랑이라고 믿고 있다. 이러한 심리 상태를 가진 그녀이기에 새로 안주인으로 들어온 '나'를 한낱 애송이로 치부하며 적대적으로 대할 수밖에 없다. 특히 '나'가 레베카의 보라색 방의 커다란 창에서 댄버스 부인의 종용으로 자살 충동을 느끼는 장면은 극 전체를 통틀어 긴장감이 최고조에 이르는 순간이다. 댄버스 부인이 부르는 주제곡 《레베카》의 "레베카, 나의 레베카. 어서 돌아와, 여기 맨덜리로"라는 가사는 마치 유령을 부르는 주문처럼 작품 전체에 여러 번 반복돼 소개된다. 거대한 저택을 그대로 옮겨놓은 듯 화려한 세트와 순식간에 불길에 휩싸이는 무대 등 강렬한 스펙터클 장면들도 볼거리다.
현재 10주년을 기념하는 7번째 시즌 공연이 11월19일까지 서울 한남동 블루스퀘어 신한카드홀에서 열리고 있다. 막심 드 윈터 역에는 류정한, 민영기, 에녹, 테이가 출연한다. 이 중 테이가 이번 시즌에 새롭게 막심 역에 합류했다. 댄버스 부인 역은 신영숙, 옥주현, 리사, 장은아가 나눠 맡는다. 특히 신영숙은 초연부터 현재까지 매 시즌 출연이라는 기록을 세우는 중이다. '나' 역은 김보경, 이지혜, 이지수, 웬디(레드벨벳)로 작품에 오래 출연해온 베테랑부터 뮤지컬에 처음 도전하는 아이돌 배우까지 다양한 캐스팅을 보여준다.
Copyright © 시사저널.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생후 7일 신생아 딸 암매장한 엄마…11살 아들도 지켜봤다 - 시사저널
- 산책하던 女 풀숲 끌고가 목조른 40대…“성폭행 하려던 것 아냐” - 시사저널
- 교사에 ‘흉기난동’ 20대…범행 전 휴대폰 번호 3번 바꿨다 - 시사저널
- “이참에 낳아볼까?”…‘신생아 특공’ 10문10답 - 시사저널
- ‘황금연휴’ 생겼는데 항공‧숙박 매진 행렬…“갈 데가 없다” - 시사저널
- “인천서 여성만 10명 살해” 협박글 올린 40대男, 붙잡히고 한 말 - 시사저널
- 신혼 첫날 태국인 아내에 강간죄 고소당한 50대 ‘무죄’ - 시사저널
- 신생아 98만원에 사들인 20대女, 2시간 후 300만원에 되팔았다 - 시사저널
- “일본인 때려잡자” 거세지는 ‘혐일’에 中 ‘자제령’ 속내는 - 시사저널
- 두려운 그 이름 ‘탈모’…머리카락 건강 지키려면? - 시사저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