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비' 글로벌 흥행에도 한국에선 들리지 않는 '통합' 메시지
그레타 거윅의 '바비', 워너브라더스 글로벌 최고 흥행작 올라
한국은 냉담… 바비 관객 57만 불과, 오펜하이머는 2주만에 230만
가디언 "페미니스트 낙인 두려운 한국, 가부장제 비판 불편해해"
전문가들 "정서적 차이도 있어… 한국에 큰 울림 주긴 어려운 소재"
[미디어오늘 박재령 기자]
글로벌 흥행 기록을 쓰고 있는 영화 '바비'가 한국에선 유난히 조용하다. '해리포터'를 제치고 워너브라더스의 최고 글로벌 흥행작이 됐지만 한국 대중을 설득하는 데는 실패했다. 한국의 '페미니즘 반발'이 부진 원인 중 하나로 꼽히는 동시에 '바비 인형'을 받아들이는 문화적 차이도 있다는 지적이다. 세계를 강타한 영화의 '통합' 메시지는 반발과 무관심에 갇혀 한국에서 논의조차 되지 않는다.
그레타 거윅 감독 연출의 영화 '바비'가 역사를 쓰고 있다. 북미 지역 매출만 5억9000만 달러(약 7800억 원)로 올해 미국 최고 흥행작이 된 데 이어 '해리포터와 죽음의 성물 2부'의 전 세계 매출(13억4200만 달러)을 지난 27일(현지시간) 뛰어넘어 제작사 워너브라더스의 최고 흥행작이 됐다. '역사상 가장 큰 박스오피스 히트작'이라는 찬사가 현지에서 계속 이어진다.
반면 한국은 냉담하다. 지난달 18일 개봉했지만 28일 기준 관객수가 57만 명에 불과하다. 지난 15일 개봉한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오펜하이머'가 2주 만에 누적 관객수 237만 명을 넘긴 것과 대비된다. 북미에선 오히려 '바비'가 '오펜하이머'를 압도하고 있다.
'바비'는 페미니즘을 주제로 한 영화다. '바비'를 연출한 그레타 거윅은 그간 '레이디 버드', '작은 아씨들' 등 여성 서사에 탁월한 감독으로 인정받았다. '바비'도 여전히 사회에 만연한 남성 중심 가부장제를 신랄하게 비판하며 다양성을 유지한 채 생존하려는 여성의 정체성을 고민한다. 글로리아 역을 맡은 아메리카 페레라가 여성이 사회에서 걸어야 하는 '줄타기'를 독백처럼 쏟아내는 장면은 영화의 상징과도 같은 장면이다.
이러한 영화 주제가 저조한 성적의 원인이라는 지적이다. 한국이 유난히 페미니즘 반발이 심하다는 것이다. 지난 2일 영국 가디언은 '페미니스트로 낙인찍히는 것의 두려움은 현실: 한국의 바비 흥행 실패' 기사를 냈다. 여성 권익 운동가 심해인씨는 가디언에 “페미니스트 유머가 담긴 여성 중심의 영화는 여전히 (한국에서) 금기시되는 주제라는 점을 '바비'가 분명히 보여준 것”이라며 “페미니즘이라는 말은 한국의 많은 개인에게 더러운 단어로 여겨지고, 사람들은 이 사회를 오랫동안 이끌어온 것이 뿌리 깊은 가부장제라는 사실을 대면하기를 불편해한다”고 했다.
실제로 네이버 기준 평점을 보면 성별 평점 차이가 극명하다. 29일 기준 남성 6.18, 여성 9.21을 유지하고 있다. 한줄평도 '페미 묻은 영화', '저급한 갈라치기', '역한 남성혐오' 등 극단적이다. 유튜브, 커뮤니티 등 SNS에서도 '바비' 관련 글엔 '페미는 믿고 거른다'는 댓글이 큰 호응을 받기 일쑤다.
윤성은 영화평론가는 미디어오늘과 통화에서 “페미니즘에 대해 극단적인 거부 반응을 보이는 사람들이 있다. 북미에선 페미니즘 주제라고 해도 남성 사회와 여성 사회의 대비, 바비랜드와 LA 차이 등 영화가 오락적으로 받아들여지는 측면이 있었지만 한국에선 그렇지 못했다”며 “아직은 페미니즘이 한국에서 '엔터테이닝'한 요소가 될 수 있다고 여겨지지 않는다. 영화가 메시지를 전달하는 방식이 한국 관객들에겐 조금 강압적이지 않았나 생각한다. 그런 문화적 차이가 클 것”이라고 말했다.
흥행 부진 이유를 페미니즘에서만 찾을 순 없다는 목소리도 있다. '바비 인형'이 어필하는 정도가 나라별 차이가 있다는 것이다. 권김현영 여성현실연구소장은 통화에서 “(바비가) 서구권에서 어마어마한 인기라는 맥락은 알겠지만, 한국 페미니스트들에게 바비가 주는 메시지가 강렬하기는 좀 어렵지 않나 생각한다”며 “'바비 인형'을 가지고 놀았던 세대는 현재의 30, 40대일 것인데, 한국 상황에서 이들에게 큰 울림을 주기는 어려워 보였다. '82년생 김지영' 같은 영화는 페미니즘 영화여도 관객수가 많았다”고 말했다.
이윤소 한국여성민우회 성평등미디어팀 활동가는 “복합적인 것 같다. 페미니즘에 대한 '백래시'(반동)가 지속되는 상황에서 페미니즘 이슈 자체에 피로감을 가진 사람도 많을 거다. 한국에서 페미니즘을 생각하는 사람들이 외국보다 많은 건 아니니까 영화에 대한 이해나 흥미가 더 잘 형성되지 않을 순 있다”면서도 “영화를 보지도 않고 욕하는 사람이 많지만 '백래시'가 한국에만 있는 건 아니다. 페미니즘 반발을 한국의 특수성으로 보긴 어렵다. 바비 인형을 친숙하게 느끼는 문화의 사람들과 생각의 차이가 우선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반발'과 '무관심' 속 영화의 메시지는 수면 아래 가라앉았다. 온라인상에서 나오는 극단적인 반응과 달리 영화는 사회 '통합'을 강조한다. 여성뿐 아니라 남성 또한 '가부장제'의 피해자로 나온다. 영화 초반엔 '바비'에 집중하지만, 후반엔 '켄'에 감정이입하는 식이다. 그레타 거윅 감독은 뉴욕타임스 인터뷰에서 “제 바람은 모두가 파티 일원이 될 수 있도록 영화가 '초대장'이 되는 것”이라며 “그 초대장이 남성으로서든, 여성으로서든, 우리를 반드시 돕지만은(serving) 않는 것들을 내려놓을 수 있게 만들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윤성은 평론가는 “성별로 갈라진 영화가 아니다. 영화에서 강조하는 건 결국 '너 자신이 돼라'(Be Yourself)는 이야기”라며 “너 자신대로 살면서 서로의 자유를 침범하지 않는, 공존하는 세상이 메시지다. 뻔한 이야기 같지만 BTS가 같은 주제로 노래해도 많은 이들이 감동을 받고 10대들이 영향을 받지 않나. 너무 자연스럽고 당연한 것들이 힘을 가질 때가 있다. 그렇게 살지 못하고 있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다. 그 메시지를 나쁘다고 할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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