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만명 야영장 최악 무더위…‘유럽의 김일성’ 40년 독재 고발한 노벨상 후보 [나쁜 책]
[금서기행, 나쁜 책-8] 이스마일 카다레 ‘피라미드’
여기는 그늘 없는 노지 야영장. 10만명이 진을 칩니다. 각지에서 몰려든 이들이었습니다. 뜨거운 태양 탓에 일사병 걸리기 직전입니다. 밤마다 벌레 독침이 숙소 안 사람들 살갗을 노립니다.
이들이 모인 이유는 맨손으로 돌을 옮기기 위해서였습니다. 이건 국가 주도 사업이었습니다. 대형 건축물 피라미드 자재로 쓸 2.5톤짜리 암석 수십만 개를 사람의 힘만으로 옮기는 일이었습니다.
알바니아 작가 이스마일 카다레 1991년 소설 ‘피라미드’ 내용입니다. ‘유럽의 김일성’으로 불리는 알바니아 공산주의 40년 독재자 엔베르 호자를 직격 비판한 소설입니다.
알바니아 국영 출판사는 이 소설 출간을 불허했습니다. 그러나 당국의 검열이 계속될수록 카다레의 문학적 위상은 높아져, 그는 오랫동안 노벨문학상 후보였습니다.
이스마일 카다레는 우리나라 한강 소설가도 받은 맨부커 인터내셔널상의 1회 수상자이기도 합니다. 그의 소설 ‘피라미드’를 살펴봅니다.
속내가 읽히지 않았습니다. 이건 뭐 그저 농담인지, 신하들 떠보는 수작인지 알기 어려웠습니다.
왕궁 최고위 점성가, 늙은 고문관, 대제사장은 쿠푸를 설득하기로 합니다. 고문헌, 전승에 근거해 파라오에게 간곡히 청합니다.
그들의 요지는 이랬습니다. (압축한 내용임.)
‘피라미드는 왕권 상징 따위와는 별 상관이 없다. 오히려 그 반대다. 왕정 국가 이집트의 진짜 위기는 파라오 힘이 약화됐을 때가 아니라, 이집트의 부가 더없이 풍요로웠을 때 발생했다. 생활이 안락해지면 백성들은 독립적인 정신을 가지고 파라오의 권위에 도전하고 반항한다. 역사가 이를 증명한다. 피라미드는 ‘선택’의 문제가 아니다.’
백성들의 정신을 분산시키고, 체력을 소진시킬 인위적이고 치밀한 고통이 필요하다는 주장이었습니다. 대신들은 다시 목숨을 걸고 거듭 주장합니다.
“폐하, 피라미드는 위기의 시대에 구상된 것입니다…. 원인은 ‘풍요’에 있었습니다…. 누군가 이집트가 누리던 부의 일부를 고갈시킬 수단을 찾고자 했다는 겁니다. 규모가 클수록 백성들의 체력이 소모되고 정신이 피폐해질 터였지요. 심신을 지치게 하고 파괴하는 동시에 철저히 무용(無用)한 무엇이어야 했습니다.” (소설 13~15쪽 발췌)
첫째, 땅속 지옥으로 끝도 없는 구멍을 파게 하는 일. 둘째, 이집트 전역을 통째로 에워싸는 거대 성벽 건축. 셋째, 왕의 무덤 피라미드.
구멍 파기는 대의가 부족한 데다 말 그대로 끝도 없어 큰 원망을 살 일이었습니다(무한성). 또 성벽 쌓기는 종결이 예정된 일이어서 머나먼 미래엔 지속 가능하지 않았습니다(유한성).
반면 피라미드 건설은 유한했고 동시에 무한했습니다. 파라오마다 하나씩 완성하면서도, 후임 파라오가 세상 끝날까지 시행할 만한 일로 적합했으니까요(유한성+무한성). 게다가 눈에 보이는 성과물이 눈앞에 놓여 있었습니다.
“폐하, 피라미드는 권력입니다. 지배하고 우매화하고 의지를 꺾어놓는 무엇이며, 단조로움이요 소모입니다.” (17쪽)
크게 감화된 쿠푸는 선대 파라오도 결코 넘보지 못한, 역대 최대 크기 피라미드 건설을 승인했습니다.
가장 먼저 채찍 제작소가 반응합니다. 채찍 제조업자들이 채찍 생산량을 최대치로 끌어올립니다. 사회 공포가 극단까지 치닫습니다. 그러나 이집트 왕정 대신은 채찍 제조업자의 선견지명을 치하합니다.
이어 10만명이 숙식할 야영장부터 조성됩니다. 평지부터 다지고, 돌을 걸러냈습니다. 채석장 위치가 정해지면 도로도 깔아야 합니다. 이렇게 야영장과 접근로 조성에만 수 년이 걸렸습니다.
쿠푸 피라미드 건설 시공의 당초 추정 기간은 한 사람의 한평생. 당시 기술력으로 정확히 얼마나 걸릴 지 알 수 없었습니다. 건축 과정에서 몇 년이 연장될지 아무도 몰랐지요. 파라오 장례 전에 완공이 되기는 할지도 장담할 수 없었습니다.
심지어 한 번은 연설에서 ‘예상보다 길어질 작업시간’ 안내가 있습니다. 무려 연장되는 기간이 15년이었습니다. 너무 오랜 시간이 걸리니 사람들은 ‘완전히 끝나지는 않았어도 상당 부분 완성되었다는 느낌’까지 받습니다. 한 노인이 이렇게 말합니다. “피라미드라고? 그게 아직도 안 끝났어?”(46쪽)
정작 쿠푸 피라미드 건축은 돌 하나도 쌓기 전이었습니다.
피라미드 돌덩이 하나마다 죽음이 ‘기승’을 부립니다. 번호가 적힌 돌 하나 하나가 사람들의 피와 살점과 비명을 요구하는 것만 같았습니다.
‘1만1375번째 돌은 먼젓번 돌이 너그럽게 넘어간 만큼 사망자 몫을 메우겠다고 안달을 내는 것 같더니 급기야 돌을 나르던 사람들을 싹 쓸어갔다. 1만1377번째 돌은 관대해서 이 돌로 인한 사망자 수는 손가락이나 발가락 수를 넘지 않았다. 사망자 수는 기대치를 웃돌지 않았고, 사망의 원인 역시 필멸하는 인간이 겪기 마련인 평범한 것들이었다.’ (47~48쪽)
작열하는 태양 아래 이집트인 10만명이 단체로 미쳐갑니다. 일사병이 죽음을 불렀고 전갈에 쏘일까봐 두려운 공포의 밤이 계속됐습니다. 게다가 음모론이 사회를 덮치면서(신성한 쿠푸의 돌에 저주를 했다거나 병원균을 묻혔다는 낭설) 능지처참에 투석형이 사회를 강타합니다.
사막 더위 속 뜨겁게 달궈진 돌덩이. 썩어가는 상한 피냄새가 진동을 합니다. 돌에 깔려버린, 또 갈려버린 사람들의 비명이 들려옵니다.
‘무덤 하나 만드는 데 평생을 바쳐야 한다’는 자각 때문에 정신착란을 일으킨 사람들이 속출합니다.
급기야 진짜로 심하게 미친 사람들은 굴러 떨어지는 2.5톤 석회석을 피하기는커녕, 돌 앞에 몸을 던져 목숨을 끊어버리는 사례까지 나옵니다.
그러나 시프타흐의 계산이 사실이란 게 밝혀집니다. 그는 ‘괜한 것을 궁금해했다’는 이유로 맷돌에 산 채로 갈리는 형벌을 받습니다.
사회가 미쳐 돌아가자, 결국 한 고관은 “이제 전통과 결별하고 피라미드 건설을 중단해 파라오의 불멸을 만방에 드러내자”(54쪽)고 주장합니다. 파라오는 죽지 않는 존재이므로 무덤(피라미드)은 불필요하다는 기가 막힌 논리였지요.
하지만 역시 그도 ‘담대한 발언을 했다’는 이유로 죽습니다. 그 말을 발음한 혀부터 잘리고 그 말을 하는데 필요했던 목과 폐, 그리고 저 말을 강조하는 데 쓰인 손까지 순서대로 ‘절단’됩니다.
작가 이스마엘 카다레는 다음과 같이 또 묘사합니다.
‘아무리 넋이 나가 있었어도 사람들은 분명히 알았다. 피라미드는 천상의 종자나 빛을 빨아들인다기보다 이집트를 통째로 먹어치우는 무엇이라는 것을. 이미 세워질 때부터 피라미드는 이집트를 집어삼켰고, 이제는 반추하는 물소처럼 삼킨 걸 되씹고 있다는 주장도 있었다.’ (108쪽)
‘피라미드는 큰 사건이 있을 때면 어김없이 출현하는 전조와도 같은 일종의 유령이었다.’ (26쪽)
이해를 위해서는, 카다레가 소설을 쓰던 당시의 알바니아의 정치적 상황과 또 그를 탄압했던 한 인물부터 이해해야 합니다.
바로 작가 카다레가 평생 동안 소설로 비판했던, 알바니아 공산주의 독재자 엔베르 호자입니다.
한때는 그도 독립운동가였습니다. 이탈리아 파시즘과 독일 나치로부터 알바니아를 구했습니다. 그러나 이후 공산주의를 선택했고 알바니아 노동당 총서기로서 독재자의 길을 걷지요.
사회주의 국가, 지독한 폐쇄주의, 국민 검열과 통제, 국가안전국 시구리미(Sigurimi) 운용을 통한 국민 억압, 구금과 유배, 공개처형 등의 통치 스타일은 북한과 비슷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엔베르 호자는 ‘유럽의 김일성’이란 별칭까지 따랐습니다. 알바니아 반체제 인사에 따르면 엔베르 호자 통치기에 정치범 6000명이 처형됐고 10만명 가까운 인물이 투옥되거나 유배를 떠난 것으로 집계됩니다. (다만 엔베르 호자는 김일성과 마오쩌둥을 비판해 사이가 좋진 않았다고 외신과 역사서는 기술합니다.)
어쨌든, 이스마일 카다레는 엔베르 호자의 독재정치와 평생을 싸운 최대 공신이었습니다.
그는 문학으로 싸웠고 소설 ‘피라미드’도 그 중 하나였습니다.
알바니아의 공산주의가 패망한 뒤 이스마일 카다레는 알바니아 대통령에 추대되는데, 그는 대통령직 제안을 거절했습니다. 그는 문학의 길에 남음으로써 영원한 작가가 되었습니다.
작가 카다레는 책에서, 전체주의 국가의 피라미드 건립을 지시했던 소설 속 쿠푸의 광기가 자신의 조국 알바니아에서 재현되고 있다고 봤습니다.
엔베르 호자는 통치 기간 동안 아래 사진과 같은 벙커를 만들었습니다. 정확한 숫자는 확인이 되지 않지만 이 책에 따르면 무려 75만 개로 추정됩니다. 벙커에 사용된 철근과 콘크리트는 수천 년 전 피라미드의 피범벅된 돌덩이와 다를 바 없다고 본 겁니다.
알바니아 군사용 벙커는 지금도 콘크리트와 고철 흉물로 남겨졌습니다.
이뿐만이 아닙니다. 이스마일 카다레가 소설 ‘피라미드’ 집필을 시작한 1988년은 알바니아 수도 티라나에 괴이한 모양의 콘크리트 박물관이 세워진 해이기도 했습니다.
엔베르 호자는 그보다 3년 앞선 1985년 사망했습니다. 호자의 딸은 독재자 아버지를 기념해 호자 박물관(Hoxha Museum)을 세웠습니다. 참 묘하게도 호자 박물관은 또 피라미드 형태입니다.
이제 이렇게 정리해볼 수 있겠지요.
소설 ‘피라미드’는 고대 이집트 쿠푸 피라미드 건립과 알바니아 공산주의 독재자의 공포정치 잔재인 벙커, 그리고 공산주의 독재의 유산인 ‘호자 박물관’을 문학적으로 연결한 걸작입니다. 또 이 소설은 공산주의 독재 권력이 작용하는 방식과 백성(시민)이 고통받는 원인을 첨예하게 다룬 정치적 우화입니다.
카다레는 2005년 맨부커 인터내셔널상을 수상했습니다. 당시 후보 명단을 보면 유럽의 문학가들이 이스마일 카다레를 얼마나 존경하는지를 대번에 알 수 있습니다.
아쉬운 마음에 소개하자면 이렇습니다. 파라오 쿠푸는 피라미드가 중간쯤 올라갔을 무렵 자신이 누울 안치소의 위치를 위로 올리라고 지시합니다. 중력을 이겨내려면 이 엄청난 무게의 돌덩이 건축물 설계 자체를 바꿔야 하는 엄청난 지시였지요.
또 피라미드를 거의 다 쌓았더니 이번엔 자기 말고 다른 미이라로 속이면 안 되겠느냐는 ‘끔찍한’ 헛소리를 합니다. 독재자의 변심에 대신들은 파라오를 대체할 시신으로 자기가 지목되는 건 아닐까 두려워합니다.
심지어 건축이 거의 다 끝나가는데, 채석장에서 가져온 귀한 돌을 누군가 빼돌리고 엉뚱한 돌을 납품한 사실까지 발각됩니다. 확인 결과 돌에 적힌 번호가 이상했습니다. 사람들은 자리를 잡은 돌을 빼내라고 할까봐 좌절합니다.
우리가 반면교사 삼아야 할 정책결정의 단면과 교훈이 한 권의 책에 담겼습니다. ‘피라미드’는 164쪽짜리 짧은 장편이어서 완독에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습니다.
건축에 동원된 이들은 노예가 아니라 농부였고 이들은 정당한 임금을 지급 받았다고 하네요. 그러므로 소설 ‘피라미드’는 허구의 상상력으로 현실을 풍자한 소설적 결과물로 이해해야 하며, 소설 속 내용을 실제 이집트의 고단한 역사로 오인해서는 곤란합니다.
이제 글을 맺을 시간입니다.
문학은 정치와 동떨어진 예술로 간주되곤 합니다. 문학이 현실과 괴리되었다는 반감은 독자와 문학의 거리를 멀게 만듭니다. 그러나 문학이야말로 가장 정치적인 예술 장르이며 때로는 정치 그 이상일 수 있음을 이스마일 카다레는 삶으로써 또 작품으로써 증명했습니다.
그래서 그의 이름은 영원히 빛날 겁니다.
1936년생인 이스마일 카다레의 올해 나이 87세입니다. 올해 10월 첫째주 목요일 한국시간 오후 8시. 노벨문학상을 주관하는 스웨덴 한림원은 어떤 선택을 할까요?
※다음주에는 주제 사라마구 1991년 소설 《예수복음》을 다룹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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