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의 기와집·정갈한 반찬… 품격을 맛보다 [김동기 셰프의 한그릇]
진한 초록의 잘 정돈된 풀밭 정원
구석 장독대의 정취와 잘 어울려
여러 찬 나오는 헛제삿밥 시키면
개별 접시에 나오는 모둠전 눈길
나물 비빔밥·소고깃국 환상 조합
간 절묘한 간고등어 안주로 제격
무더운 날이었다. 9월 행사를 위한 사전 미팅을 위해 서울에서 안동까지 운전하고 차에서 내리자마자 이마에 땀이 송글송글 맺히는 것이 느껴질 정도로 햇살이 뜨거웠다. 너무 더워서인지 평일 낮의 안동 하회마을에는 관광객들조차 돌아다니지 않았다. 주차하고 조금 걸어 오늘의 미팅 장소인 오래 되었지만 품격이 느껴지는 기와집으로 향했다. 100년 전 종갓집 대청마루에 앉아 맑고 푸른 하늘을 보고 있자니 정말 기분 탓일까? 소음 하나 없고 가끔씩 불어오는 여름 바람을 맞이하니 아찔하던 더위가 가시는 듯했다. 그 시간 동안은 옛날 선조님들이 선풍기 하나 없이도 여름을 날 수 있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마당 반대편 창가 너머엔 다른 세상에 온 듯한 진한 초록의 잘 정돈된 풀밭 정원이 구석 장독대의 정취와 그 파란 하늘 속 구름과 어울려 4시간 운전의 여독을 풀어주며 이 순간 자체에 빠져들게 만들었다. 사색에 빠진 달콤한 시간은 금방 지나간다. 그 여운을 마치 놓지 말라는 듯이 종갓집 종부님이 준비해 주신 오미자차는 그 맑고 붉은빛의 영롱함을 더해 한여름의 더위를 완전히 잊을 수 있게 도와주었다. 더운 날엔 아이스 아메리카노라는 몇 안 되는 내 선택지에 큰 영향력을 끼칠 것 같은 맛이었다.
저녁을 향해가는 시간이다 보니 손님들이 없었지만 날씨가 선선히 풀리는 가을 즈음엔 분명 손님들로 북적일 거 같은 분위기이다. 맞이해주는 사장님의 미소가 푸근하게 다가온다. 여러 가지 찬들이 나오고 헛제삿밥의 메인 반찬인 모둠전이 나왔다. 전은 개별 접시로 나오기에 먹다가 싸움은 나지 않을 것 같은 생각이 나 웃음이 났다. 주인공 격인 비빔밥은 커다란 그릇에 나물들이 가득 담겨 나온다. 비빔밥의 나물들은 기본적으로 간이 되어 있기에 간장은 취향에 맞게 뿌려 먹으면 된다. 사실 비빔밥이라고 하면 고추장 비빔밥을 주로 먹었는데 간장 양념에 비빈 이 나물 비빔밥은 그야말로 밥과 간장, 나물의 환상 조합이었다. 아작거리는 나물 비빔밥과 개운한 소고깃국의 조화는 과연 헛제삿밥을 만들어 먹었던 선조들의 마음을 이해할 수가 있었다.
헛제삿밥은 우리가 흔히 아는 고추장 양념 대신 간장을 쓴 비빔밥과 전, 소고기 탕 등을 올린 밥상이다. 제사를 지내고 남은 나물들을 넣어 먹는 밥이 너무 맛있어서 평상시에는 제사를 열지 못하니 제사 음식 같은 걸 만들어 비벼 먹었던 것에서 유래되었다. 1974~1976년에 안동댐 건설로 문화재와 가옥들이 현재의 안동 민속박물관 근처로 옮겨졌고 그 가옥들 일부에서 안동의 전통 음식인 헛제삿밥을 상품화해 판매하게끔 만들었다고 한다.
헛제삿밥은 우리에게 그리 익숙하지는 않다. 처음 등장했을 때만 해도 다양한 영양요소를 가지고 전통을 계승하며 스토리가 출중했지만 안동 하면 먼저 생각나는 안동 간고등어와 안동 찜닭에 서서히 밀려났다. 일단 헛제삿밥의 유래와 상차림의 구성보단 비빔밥이라는 느낌이 커졌고 손이 많이 가는 헛제삿밥의 특성상 가격도 낮지 않아 다른 메뉴에 비해 가성비 면에서 선호도가 밀려났던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재료>
전복 1마리, 무 100g, 시금치 50g, 고사리 50g, 곤드레 50g, 가지 50g, 소금 some, 간장 10㎖, 참기름 50㎖, 깨소금 some, 흰 쌀밥 1공기
<만들기>
① 전복은 손질 후 무를 넣고 약한 불에 2시간가량 삶아준다. ② 시금치와 고사리, 곤드레는 데쳐주고 가지는 1㎝ 크기로 손질해 준다. ③ 기본 손질한 나물들은 참기름에 볶아 준 후 소금간을 한다. ④ 그릇에 쌀밥을 올리고 간장을 둘러준다. 볶은 나물들을 가지런히 올려 준 후 전복을 잘라 올린다. 깨소금을 뿌려 마무리한다.
김동기 청담 그리에 총괄셰프 paychey@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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