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힘들 때에도 이중섭의 그림 편지는 밝았다[영감 한 스푼]
오늘은 2주 전 ‘이중섭, 그 사람’을 쓴 오누키 도모코 인터뷰에 이어 이중섭의 편지화에 관한 책 ‘이중섭, 편지화’를 쓴 미술사학자 최열과의 인터뷰를 전해드립니다.
최열은 이중섭에 관한 주요 문헌들을 토대로 쓴 ‘이중섭 평전’을 2014년 발간했고, 오누키 도모코가 이중섭에 관해 취재하는 과정에서도 많은 도움을 주었다고 하는데요.
이번에는 왜 이중섭의 편지화에 주목했는지, 그 특징은 무엇이었는지를 물어보았습니다.
작품이 안 된다고 생각했던 편지화
최열(열): 2015년 국립현대미술관에서 편지화를 소장품에 넣기 전에는 편지화가 작품이 아니라고 소장가들이 생각했습니다. 그 후 2016년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관에서 회고전을 할 때 이중섭이 가족에게 보낸 편지가 화제가 되면서 새롭게 조명받기 시작했죠.
이 전에는 편지화에서도 이를테면 아들에게 쓴 편지에 ‘태성군’이라고 적혀 있다면, 이 글을 지우고 마치 그림인 것처럼 표구를 하곤 했답니다. 그러다 편지화가 새로운 장르로 인정받는 것을 보면서, 이중섭의 세계가 이렇게 확장이 되는구나 저도 다시금 생각하게 됐죠.
민: 이중섭 편지화만의 특징은 무엇인가요?
열: 싸구려 재료를 사용한다는 것. 또 가족 외에는 누구도 볼 거라고 생각을 안했다는 점이에요. 또 이중섭의 그림이 그렇듯 현실에는 없는 ‘도원에서 노는 가족’, ‘사랑의 호소’ 같은 주제가 많이 드러나죠. 물감도 보면 1~3가지 색을 사용해 아주 단순해요.
열: 그렇죠. 52년 6월 이중섭을 제외한 세 명이 일본으로 가죠. 그리고 1년 2개월 뒤 첫 편지화가 나와요. 그 그림이 바로 서귀포 게잡이 그림입니다. 가난하고 먹을 것이 없어 게를 잡아다 집에서 끓여 먹었거든요. 이때 보낸 그림은 작품을 위해서라기보다는 “우리 그때 이렇게 살았지”하고 말을 거는 듯한 메시지를 위한 그림이죠.
글은 힘들어도 그림은 밝게
민: 그런데 굉장히 힘든 상황이었을텐데 그림은 무작정 어둡지만은 않아요.
열: 표면은 다 행복하죠. 사실은 슬프고 어둡고 고통스러운 상황이었는데도 말이죠. 그런데 그림 편지가 아니라 문자로 쓴 편지에는 죽겠다고 호소를 했어요. 마치 그림에서는 자기의 상황을 반대로 묘사하는 것도 같아요. 겨울에 보낸 이 편지에는 자기가 있는 실내는 무척 따뜻한 것처럼 그렸어요. 그런데 실제로는 편지에 보면 방에 불이 안 들어왔다고 하거든요. 난방기구도 없었고요.
열: 누구든 진지하게 연구하려는 분이 있다면 자료는 나눌 수 있다고 생각해요. 다만 일본이 우리 문화에 대중 음악 외에는 관심이 없는 듯했는데, 일본인이 한일 관계 속에서 이중섭과 연관된 사람을 알아보겠다고 하니 감동을 받았어요.
특히 이중섭의 아내 야마모토 마사코 여사는 과거 부정적으로 서술된 경우가 많았습니다. 또 위작 시비와 묘하게 얽혀서 일본 쪽 가족을 범죄자 취급하는 분위기도 있었죠. 나중에는 한국인들이 벌인 짓임이 드러났지만, 이중섭의 아드님이 아직도 기소 중지가 되어 있어 한국에 오지 못하는 상황이에요. 그런 안 좋은 인연이 있는 가운데 오누키 씨가 야마모토 여사의 이야기를 듣겠다고 하니 고마운 일이었죠.
열: 두 부부를 이어주는 매개가 편지이니까, 사랑을 표현할 수 있는 복숭아 그림을 골랐어요. 사실 편지는 아들 태현에게 보낸 것인데, ‘도원’이 이상향, 유토피아이듯 두 사람의 사랑도 그런 것이라고 생각해서 주제를 잘 보여준다고 보았습니다.
민: 집필 과정에서 어려운 점은 없었나요?
열: 제가 2014년 쓴 것은 작가론인데, 저는 예술과 인간이 이어져 있다고 믿어요. 작가가 나쁜 사람인데 예술 작품이 좋을 수 있을까? 저는 그렇게 생각 안 합니다. 그래서 작가 쪽에 무게를 두고 연구를 해 왔는데, 이중섭을 공부하며 작품에 빠지기 시작했습니다. 그 결과 편지화를 분류하고 그 자체에 몰입하는 과정이 즐거웠습니다.
민: 말씀 감사합니다.
※ ‘영감 한 스푼’은 예술에서 볼 수 있는 다양한 창의성의 사례를 중심으로 미술계 전반의 소식을 소개하는 뉴스레터입니다. 매주 금요일 아침 7시 발행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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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기자 kimmi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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