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이별은 왜 집단적일까 – 100년 전 이별의 모습 [청계천 옆 사진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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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년 전 신문에 실린 사진을 골라 소개하고 오늘을 생각해보는 [백년 사진] 코너입니다.
1923년 9월 2일자 신문에서 이별을 표현한 사진을 하나 발견했습니다.
어쩌면 우리 민족의 이별 모습의 전형일지 모른다는 생각을 해봤습니다.
우리에게 꽤나 익숙한 장면이어서 이 사진은 굳이 사진설명을 보지 않아도 '이별'을 표현한 것이라는 것을 알 수 있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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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별이라는 단어를 들었을 때 여러분은 어떤 노래 가사나 시의 한 소절이 생각나시나요? 이별이라는 단어를 들었을 때 어떤 장면이 떠오르시나요?
100년 전 신문에 실린 사진을 골라 소개하고 오늘을 생각해보는 [백년 사진] 코너입니다. 1923년 9월 2일자 신문에서 이별을 표현한 사진을 하나 발견했습니다. 어쩌면 우리 민족의 이별 모습의 전형일지 모른다는 생각을 해봤습니다. 서울역을 떠나는 열차 창밖으로 손을 내민 사람들을 향해 플랫폼에 서 있던 사람들이 모자를 벗어 인사하거나 손을 뻗는 모습입니다.
▶ 이 사진에서 저는 지금은 뜸해진, 남북이산가족상봉 행사 후 각자의 집으로 돌아가는 이산 형제자매들이 버스 창문을 사이에 두고 손을 뻗는 사진이 떠올랐습니다. 그리고 뮤직 비디오에서 많이 나오는, 입영열차를 탄 남자친구를 차마 떠나보내지 못하는 여심을 표현하는 장면도 함께 떠올랐습니다.
우리에게 꽤나 익숙한 장면이어서 이 사진은 굳이 사진설명을 보지 않아도 ‘이별’을 표현한 것이라는 것을 알 수 있는 것 같습니다. 무슨 사연의 이별일까요? 기사를 한번 읽어보겠습니다.
[별루에 젖은, 작조의 경성역 - 가는 사람 보내는 사람 손길을 맛잡고 잘가거라 잘있거라 - 간단한 인사조차 鳴咽(명인)한 포와 동포 송별한 한 장면] 전후 두달 동안을 기차로 기선으로 고국산천을 편답하며 거츠러진 옛터에 눈물도 뿌리고 따뜻한 환영에 웃음도 치며 간 곳마다 속절없는 정을 드리여 오던 하와이학생단 일동은 마침내 예정과 같이 작일일 상오 10시 경성역을 떠나는 특별급행으로 하와이를 향하여 출발하고 말았다. 환영회의 위원 일동을 위시하여 각 단체의 대표자와 밋학생 일동의 친족이 되는 남녀 송별자가 무려 이백명에 이르러 서로서로 지친의 손을 잡고 차마 떨어지지를 못하여, 닥쳐오는 발차시간을 앞에 두고 맘을 태우며 하염없는 서운한 눈물을 흘리기 시작하더니 마침내 기차가 떠날 림시하여는 가는 사람은 차창안에서 손을 내어 밀고 보내는 사람은 뿔랫폼에 손을 잡을 ‘잘 있소!’ ‘잘 가오!’ 소리도 울음에 막히고 목에 걸려서 말을 이루지 못하며 보내는 사람의 눈물! 가는 사람의 눈물! 모든 하소연을 대신하였었다. 하와이 학생 일동은 먼저 손을 들어 서투른 어조로 열정에 넘치는 소리를 질러 ‘이천만 동포 만세!’를 부르매 보내는 사람들 편에서는 즉시…. |
▶ 별루, 작조. 지금은 쓰지 않는 표현이라 좀 어색합니다. 지금 말로 바꾸면 [이별 눈물에 젖은, 어제 아침 서울역]이라는 제목 쯤 되겠습니다. 이 기사에 따르면, 사진은 포와(하와이) 동포들이 지난 두 달간의 전국 일주 행사를 마치고 미국으로 돌아간다는 내용입니다. 띄어쓰기와 표기법이 지금과 조금 다르지만 자세히 읽어보면 기사는 한편의 이별가처럼 감성적인 표현으로 이뤄져 있습니다. 1923년 하와이 학생단의 모국 방문은 당시로서는 큰 뉴스였습니다. 일제의 폭압을 피해 미국으로 이민을 간 부모와 그 밑에서 자란 이민 1세대가 큰 세상을 먼저 배우고 한국으로 잠시 돌아와 두 달간 전국을 돌며 스포츠 문화 등을 전파하고자 했던 행사였습니다. 사진은 모국 방문단이 미국으로 돌아가는 모습입니다. 한 장의 흑백사진이지만, 당시 한국에 남아있게 될 사람과 미국으로 떠나는 사람들 모두의 안타까움과 아픔이 묻어납니다. 기사가 감성적 표현으로 점철된 이유도 현장에서 기자가 느낀 아쉬움 때문 아닐까 추측해봅니다.
▶지금 사진은 남아 있지 않지만, 우리 민족이 겪은 가장 아픈 이별의 경험 중 하나가 구 소련 스탈린 시절 있었던, 연해주 지역에 정착해 살던 고려인들이 카자흐스탄와 우즈베키스탄 등 중앙아시아로 강제 이주 당한 일입니다. 시베리아 횡단열차에 강제로 실려 아무 연고도 없는 땅으로 내몰렸던 아픈 역사인거죠. 출발지였던 블라디보스토크 역에서 누군가 사진을 찍었다면 어떤 이별의 모습 보다 슬픈 장면이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지금도 연해주 지역에 가면, 고려인들이 쫓겨나기 전 일 궈놨던 논두렁과 밭두렁의 흔적이 그대로 남아 있습니다. 우리나라 시골 농촌에서 볼 수 있었던 우물의 흔적도 있구요. 정치와 권력에 의해 누군가의 삶이 집단적으로 뿌리가 뽑히는 일이 다시는 없었으면 좋겠습니다.
▶오늘 저녁에는 ‘이별의 부산 정거장’ 노래를 틀어놓고 지나간 역사에서 우리는 어떤 이별과 상봉이 있었을까 그리고 왜 그런 집단적 이별이 반복되어 왔을까 마음속으로 따라가 볼까 합니다. 여러분은 사진에서 어떤 게 또 보이시나요? 댓글에서 여러분의 의견을 듣고 싶습니다.
변영욱 기자 cu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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