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英 왕실과 악연' 억만장자 모하메드 알 파예드 별세

김태훈 2023. 9. 2. 10: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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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해러즈 백화점 회장과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EPL) 풀럼FC 구단주를 지낸 억만장자 모하메드 알 파예드가 94세를 일기로 별세한 사실이 뒤늦게 전해졌다.

알 파예드는 영국 국왕 찰스 3세의 전 부인 다이애나 비(妃)의 연인이었던 도디 알 파예드(1955∼1997)의 부친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비록 사망 당시 다이애나는 영국 왕실과 무관했으나 고인은 얼마 전까지 왕세자비였던 여성이 아랍계 남성과 사귀는 것을 싫어한 왕실이 음모를 꾸민 것이란 의구심을 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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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러즈 백화점 회장·풀럼FC 구단주 등 지내
아들 도디, 찰스와 이혼한 다이애나 사귀어
1997년 佛 파리에서 교통사고로 함께 사망

영국 해러즈 백화점 회장과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EPL) 풀럼FC 구단주를 지낸 억만장자 모하메드 알 파예드가 94세를 일기로 별세한 사실이 뒤늦게 전해졌다. 알 파예드는 영국 국왕 찰스 3세의 전 부인 다이애나 비(妃)의 연인이었던 도디 알 파예드(1955∼1997)의 부친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1일(현지시간) 영국 BBC 방송에 따르면 모하메드 알 파예드는 지난 8월30일 부인과 자녀, 손주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노환으로 타계했다. 유족은 성명에서 “고인은 노년에 사랑하는 이들과 함께 유유자적한 은퇴 생활을 즐겼다”고 밝혔다. 고인은 지난 약 10년 동안 런던 남서부 잉글랜드 서리주(州)의 자택에 칩거하며 공개석상에 거의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모하메드 알 파예드(1929∼2023). 이집트에서 태어나 영국에서 기업인으로 활동하며 커다란 부를 일궜다. AP연합뉴스
고인은 1929년 이집트 알렉산드리아에서 태어났다. 거리에서 음료수를 파는 것으로 시작한 고인은 중동을 대표하는 해운업자로 성장하며 커다란 부를 일궜다. 40대 중반이던 1974년 영국으로 이주한 그는 프랑스 파리의 리츠 호텔을 인수하며 유럽에서 주목을 받는 기업인 반열에 올랐다. 1985년에는 런던에 있는 세계적 명소인 해러즈 백화점을 사들이고 그 회장이 됐다.

고인은 1997년 잉글랜드 프로축구팀 풀럼FC를 인수해 구단주가 되었다. 풀럼FC는 한때 축구선수 설기현이 뛰어 우리에게도 낯익은 구단이다. 고인의 적극적인 후원 아래 풀럼FC는 잉글랜드 3부리그를 전전하던 처지에서 벗어나 EPL 팀으로 성장했다.

하지만 무엇보다 고인을 유명하게 만든 건 아들인 도디 알 파예드와 다이애나의 연애였다. 찰스 3세가 왕세자이던 시절 그와 결혼하며 일약 신데렐라로 떠오른 다이애나의 부부생활은 전혀 행복하지 않았다. 1996년 이혼과 동시에 영국 왕실과 결별한 다이애나는 이듬해인 1997년 8월31일 파리에서 파파라치들한테 쫓기던 중 교통사고로 사망했다. 함께 차에 타고 있던 애인 도디 알 파예드도 목숨을 잃었다.

고인은 아들의 죽음에 큰 충격을 받았다. 비록 사망 당시 다이애나는 영국 왕실과 무관했으나 고인은 얼마 전까지 왕세자비였던 여성이 아랍계 남성과 사귀는 것을 싫어한 왕실이 음모를 꾸민 것이란 의구심을 품었다. 고인은 2000년대 들어서도 이같은 음모론을 꾸준히 제기하며 “내 아들은 영국 왕실이 죽인 것”이라고 주장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모하메드 알 파예드(오른쪽)가 1997년 5월 열린 한 경마 행사에서 당시 영국 여왕이던 엘리자베스 2세와 함께한 모습. 그로부터 불과 3개월 뒤 모하메드 알 파예드의 아들 도디 알 파예드와 엘리자베스 2세의 옛 며느리 다이애나 비가 교통사고로 함께 사망하는 비극이 벌어진다. 도디와 다이애나는 연인 사이였다. AP연합뉴스
억만장자였으나 영국 국적을 얻으려는 고인의 시도는 번번이 실패로 끝났다. 1990년대 중반 고인은 “영국 국적 취득을 위해 보수당 내각의 장관들한테 금품 로비를 했다”고 폭로하기도 했다. 이 일로 영국 정가가 발칵 뒤집혔고 뇌물을 받은 것으로 지목된 해당 장관들은 결국 사임해야 했다.

김태훈 기자 af103@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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