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화장실 벽에 붙은 OOO”…홍대입구역 청소노동자 돼봤다
작업복 입고 화장실 가면 ‘오지 마세요’…승객에 연신 ‘죄송하다’는 노동자들
(시사저널=정윤경 인턴기자)
서울 시내에서 가장 많은 승객을 수송하는 홍대입구역. 승객들이 떠나고, 오가는 자리에는 다양한 흔적이 남는다. 누군가는 먹다 남은 커피를, 또 다른 누군가는 씹던 껌을 '그 모습 그대로' 남겨둔다. 역사(驛舍) 내 쓰레기통에서 반려동물 배변패드가 나오는 경우도 다반사다. 이 모든 일은 청소노동자의 몫이 된다.
'왜 우리나라 지하철역은 항상 깨끗할까'라는 의문의 답을 찾기 위해 8월31일 홍대입구역을 찾아 일일 '청소노동자'가 돼봤다. 서울메트로환경과 홍대입구역 담당 미화원의 협조 하에 체험하고 들여다 본 그 곳의 하루는 그야말로 전쟁이었다.
2호선 홍대입구역 여자화장실 맞은편에 있는 작은 공간. 한 번도 눈여겨 본 적 없던 곳에 청소노동자 휴게실이 있었다. 이 곳에서 안전교육과 간단한 스트레칭을 안내한 양승해 팀장은 "몸집보다 더 큰 청소 카트를 밀려면 스트레칭은 필수"라며 청소에 앞선 '몸 풀기'를 강조했다.
음식물 수거함과 재활용 봉투가 주렁주렁 달린 청소 카트를 밀고 게이트 안으로 들어갔다. 카트를 밀 때는 벽에 밀착해 조심스럽게 이동해야 했다. 행여나 승객과 부딪히면 사고가 날 수 있어서다. '실례합니다', '지나갈게요', '죄송합니다'라는 말을 연신 반복했다.
버리기는 순간이지만…치우는 건 '산 넘어 산'
겨우 도착한 쓰레기통 앞은 한마디로 '아수라장'이었다. 먹다 버린 음료 컵은 쓰레기통 위에 마구잡이로 놓여 있었고 바닥은 컵에서 흐른 음료로 끈적했다. 이태순 주임의 시범에 따라 일회용 음료 컵을 해체했다. 컵 홀더를 벗겨낸 뒤 뚜껑과 몸통을 분리하고 남은 음료를 수거함에 따랐다. 컵 바닥에 붙은 과일 알갱이가 잘 떨어지지 않았다.
최근 유행하는 간식 '탕후루'도 골칫거리였다. 자칫 날카로운 꼬챙이가 손을 찔러 다칠 수 있어서다. 청소노동자들이 아무리 손에 땀이 차도 면장갑 위에 고무장갑을 덧대서 끼우는 이유였다.
이 주임은 "음료수고 커피고 바닥에다 버려 놓는다. 금요일이나 주말 저녁이면…"이라며 모여드는 사람이 많을 수록 청소 강도도 비례한다며 쓴웃음을 지었다.
쓰레기통은 '일반쓰레기'와 '재활용품'으로 구분돼 있었지만 큰 의미가 없었다. 쓰레기통에 담긴 내용물을 하나하나 손으로 집어 다시 분류해야 했다. 분류 작업을 하는 도중 이 주임이 "잠시만" 외마디를 남긴 뒤 황급히 자리를 떴다. 한 승객이 바닥에 커피를 엎질러 놓고 가버려 다른 승객이 밟기 전에 빨리 치워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5분만 방치됐다가는 다른 승객이 밟고 돌아다녀 아주 엉망이 된다"고 했다.
끝이 아니었다. 분류한 쓰레기를 다시 집하장으로 옮겨야 했다. 75L 짜리 쓰레기봉투 8개가 나왔다. 야외 집하장으로 나가기 위해 엘레베이터를 타고 지상층으로 올라갔다. 박인순 주임은 엘레베에터 벽 끝으로 기자를 데려갔다. 1cm만 한 좁은 틈에서 미지근한 바람이 나왔다. 박 주임은 "여기가 그나마 시원하지? 그래도 잠깐 나갈 때는 바깥공기도 좀 쐴 수 있어"라고 웃어 보였다.
3칸 중 1칸은 용변 그대로인 화장실
박 주임과 이 주임은 아직 '하이라이트'가 남았다고 했다. 역내 화장실 청소였다. 들어가자마자 지린내가 마스크를 뚫고 들어왔다. 빈칸에 들어가 250m 짜리 점보 롤티슈를 새걸로 갈아 끼웠다. 주말은 60개 이상, 하루 평균 45개를 일일이 교체한다고 했다.
여자화장실 벽면에 붙은 '생리대 수거함'을 열었다. 용변이 묻은 휴지, 먹다 남은 닭강정 조각 등 온갖 오물이 들어있었다. 손으로 집어 쓰레기봉투에 담았다. 박 주임은 "애기 똥 기저귀를 (위생용품 수거함에) 넣어 놓기도 하고, 생리대를 벽에 그대로 붙여놓는 사람도 있다니까"라고 하소연했다.
3칸 중 1칸 꼴로 용변을 내리지 않은 변기가 있었다. 뚜껑을 덮고 용변을 내리고, 다시 뚜껑을 열었다. 바닥에 튄 소변을 밀대로 닦아낸 뒤에야 화장실 청소가 끝났다.
'쓰레기 치우고 사람에 치이고'…일 만큼 힘든 감정노동
일만큼 힘든 건 사람들의 차가운 태도였다.
청소용품을 들고 화장실로 들어가려 하자 한 승객은 "오지 마세요!"라며 손사래를 쳤다. 세면대에 묻은 물기를 닦다가 기자를 향해 "제가 다 쓰면 청소하시라니까요!"라며 날카롭게 쏘아대는 승객도 있었다. 박 주임은 "그런 거 다 신경 쓰면 이 일 못해. 그러려니 하고 넘어갈 줄도 알아야 해"라며 위로를 건넸다.
뜨거운 지하 작업 환경…노동자는 병원 신세
승객이 몰려 청소 카트와 기자를 밀고 지나가는 경우도 다반사였다. 출퇴근 시간이나 주말에는 승객을 비집고 갈 틈도 없다고 했다.
이번에는 밀대를 들고 지하철역 바닥을 닦는 작업을 했다. 세 발자국에 한 번씩 땅에 떨어진 쓰레기를 줍거나, 바닥에 눌어붙은 껌을 떼느라 허리를 펼 시간이 없었다. 20년째 이 일을 하는 박 주임은 근골격계 질환을 달고 살아 병원 신세를 진지 오래됐다고 했다.
홍대입구역 한 바퀴를 닦았더니 양손에 가득 쥐고도 넘칠 정도로 머리카락이 나왔다. 이날 한낮 기온은 30도. 지하는 더 더웠다. 작업복이 땀으로 흥건해진지는 오래였다. 목뒤에 붙인 얼음팩도 다 녹아 흐물거렸다. 오랜만에 낀 KF94 마스크 안에는 습기와 땀으로 흥건했다. 고무장갑에 이물질이 묻어 땀이 흘러도 닦기 힘들었다.
1시간30분씩 총 2회를 진행하고 나서야 청소가 끝났다. 이 주임은 "일이 많이 힘들죠?"라면서 기자에게 가래떡과 차가운 커피를 건넸다. 박 주임은 "일 끝나고 먹는 커피보다 맛있는 게 없어"라고 말했다. 커피를 건네는 박 주임의 손톱에는 하얀 매니큐어가 곱게 칠해져 있었다. 박 주임은 "아무리 습진이 생기고 화학약품을 만지느라 손이 터도 손톱 관리는 꼭 내가 한다"고 멋쩍게 웃었다.
이 손은 오늘도 '깨끗하고 청결한' 지하철역을 지켜낸다. 누군가 버리고 간 오물과 쓰레기가 시민들의 일상에 묻어나지 않도록 치우고 또 치운다. 첫차부터 막차까지, 어제와 오늘 그리고 내일의 지하철역이 늘 같을 수 있도록 땀을 흘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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