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섯 살 아들 옆에 인형을 묻어줬다"…숨겨진 비밀 뭐길래 [성수영의 그때 그 사람들]
10월 9일까지 국립중앙박물관
요절한 신라 왕자 길동무부터
웃음 자아내는 '개돼지 토기'
BTS RM도 반한 '신라의 피에타'까지
한국인과 죽음에 관한 이야기
“엄마, 캄캄해서 무서워요. 괴물이 나오면 어떡해요….”
어둠을 무서워하는 꼬마였을 겁니다. 잠이 오지 않는 밤마다 엄마아빠에게 쪼르르 달려가 이렇게 말하며 이불 속으로 파고드는 사랑스러운 아이였겠지요. 아이는 말(馬)을 참 좋아했을 겁니다. 간혹 아빠나 다른 아저씨들이 말을 태워줄 때면 통통한 볼을 발그레 물들였을 테지요. 나이는 대여섯 살에 키는 90cm 남짓. 1500년 전(6세기 초) 요절한 신라의 어린 왕자, 경주 금령총의 주인 얘기입니다.
뭐가 그리 급한지, 짧디짧은 세상 나들이를 마치고 먼 길을 떠나버린 어린 왕자. 비탄에 젖은 신라 왕과 왕비는 차가운 땅속 관에 왕자의 작은 몸을 누입니다. 그리고 왕자가 타고 갈 말 인형과 길을 안내해줄 하인 인형, 아이를 지켜줄 말 탄 무사의 인형을 함께 묻었습니다. 옆에는 배 모양의 그릇도 놓았습니다. ‘저승의 강을 조심히 건너가기를.’ 어두운 길을 가면서 행여 왕자가 무서워할까, 불을 밝힐 수 있는 등잔 모양의 그릇도 챙겨줬습니다.
작별 인사를 마치기 전, 부모는 마음속으로 간절하게 빌었을 겁니다. 세상 그 무엇보다 사랑했던 우리 아가. 먼 길 조심히 살펴 가렴. 그리고 혹시라도 이 세상에 다시 온다면, 또 한 번 내 아들로 태어나주렴.
님아, 그 강을 무사히 건너가오
오늘은 사랑하는 이를 떠나보내야 했던 신라 사람들의 이야기를 풀어 봅니다. 서울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열리고 있는 특별기획전 ‘영원한 여정, 특별한 동행’을 통해서인데요. 전시장에는 모두 330여점(국보·보물 15점)의 유물이 나와 있습니다. 신라시대의 토기(흙 그릇)와 토우(흙 인형)가 주된 전시품입니다.
앞에서 언급한 금령총의 유물 중 이번 전시에 나온 건 말 탄 사람 토기(기마인물형 토기)와 배 모양 토기, 등잔으로 쓸 수 있는 토기입니다. 참고로 금령총에 묻힌 인물이 5~6살의 신라 왕자라는 사실은 함께 나온 유물의 종류와 크기 등을 분석해 내린 결론입니다. 예를 들어 생전의 키는 ‘머리(금관의 장식 끝부분)-허리-발(발찌 추정 구슬)’을 잇는 장신구 간격이 90㎝ 정도라는 점에서 유추했지요. 또 이 무덤에서는 말 모양으로 만든 토기가 유독 많이 나오는데, 어린 왕자가 말을 아주 좋아했기 때문이라는 해석이 있습니다. 요즘 아이들이 자동차를 좋아하는 것처럼요.
이렇게 무덤에서 나온 유물들을 잘 들여다보면 죽은 사람이 누구였는지, 당시 사람들은 죽은 이를 어떻게 떠나보냈는지, 사후세계에 대해 어떻게 생각했는지를 함께 알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배 모양 토기는 ‘사후세계로 가는 길에 물을 건넌다’는 이미지가 있었다는 뜻을 담고 있습니다. 그리스 신화에서 스틱스강이 이승과 저승의 경계로 등장하는 것처럼, 세계 각지에서 흔히 찾아볼 수 있는 인식입니다.
수레 모양을 본떠 만든 토기, 짚신 모양의 토기도 비슷한데요. 저승에 도착하려면 먼 길을 가야 한다는 생각이 반영된 것입니다. 사랑하는 이를 떠나보내던 신라 사람들은 이렇게 생각했겠지요. ‘먼 길 조심히 가세요. 도착한 곳에서는 평안하시기를….’
밥 굶지 마시고 행복하기를
이처럼 뭔가의 모양을 본떠 흙으로 만든 그릇을 상형 토기라고 합니다. 이렇게 만든 상형 토기는 장례 및 제사용 그릇으로 쓰거나, 아니면 세상을 떠나는 사람이 저승에 가져가 사용하라는 의미에서 무덤에 함께 묻어주는 용도였습니다. 그래서 상형 토기 중에는 죽은 사람의 영혼을 사후세계로 인도해주는 역할을 하는 동물을 표현한 것들이 많습니다. 예를 들어 새 모양이 그렇고요. 5세기 이후 신라에서는 말이 그 역할을 대신했습니다.
사후세계에서도 현생에서처럼 풍요롭게 살라는 의미에서 넣어준 그릇들도 있었습니다. 예를 들어 집 모양 토기나 창고 모양 토기가 그렇습니다. 죽은 사람의 영혼이 사후 세계에서도 현세와 동일한 삶을 계속 이어간다는 사상(계세 사상)이 반영된 것입니다. 등잔 모양의 토기도 마찬가지입니다. 기름을 넣고 심지를 붙이면 바로 불을 켤 수 있는 물건들인데요. 사후 세계의 어둠을 이 등잔으로 밝히며 편안하게 지내라는 의미가 담긴 것으로 해석됩니다.
눈에 확 띄는 이 ‘동물 모양 토기’도 마찬가지입니다. 관람객들에게 아주 인기 있는 작품이라고 합니다. 코 모양은 돼지를 연상시키지만 앞 발가락은 5개, 뒷발가락은 4개여서 갯과 동물로 보는 시각이 많은데요. 그래서 ‘개돼지’라고 부르는 사람도 있다네요. 죽은 이가 생전에 아끼던 반려동물이 아니었을까 추측하는 시각이 있습니다. 밥 잘 먹고 순한, 돼지를 닮은, 어딘가 웃는 듯한 얼굴을 한 반려견. 주인이 부르던 이름은 ‘돼지’가 아니었을까요. ‘네가 정말 좋아하던 돼지를 닮은 토기를 함께 묻었어. 그곳에서도 돼지와 함께 행복하게 지내렴.’
죽음에 대하여
전시는 토우로 이어집니다. 토우는 사람이나 동물 등의 모양을 단순화한 흙 인형들인데요. 발굴 과정에서 떨어진 경우가 많기는 하지만, 원래는 그릇 위에 붙어있었던 것들입니다. 이렇게 토우가 붙어 있는 그릇은 신라시대 무덤 중 일부에서만 나온다고 합니다. 제사장 등 특별한 일을 하던 사람들의 무덤에 묻었던 게 아닐까 추측되고 있습니다. 토우 중 대부분이 장례나 사후세계와 관련돼 있거든요.
절하는 건 물론이고 춤을 추거나 악기를 연주하는 모양도 많은데요. 요즘 사람들은 이런 모습이 장례와 거리가 멀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한반도에서는 옛날부터 시끌벅적하게 축제 느낌으로 장례를 치르는 문화가 있었습니다. 중국 역사서에는 “고구려 사람들이 상을 당하면 처음에는 슬피 울다가 장사를 치를 때는 북을 치고 춤을 추며 악기를 연주했다”는 기록이 있고, 신라에 관해서도 마찬가지 기록이 있습니다. 성종실록(1472년)에도 장례식과 관련해 “밤에 술과 음식을 후하게 베풀며 사람들을 모아 풍악을 울렸다”는 기록이 있고요. 30~40년 전만 해도 초상집은 아주 시끌벅적할 때가 많았지요.
한편으로는 동물 모양 토우들도 많습니다. 호랑이를 비롯한 육상 동물부터 망둑어와 불가사리까지 다양한 생물이 존재하는데요. 대충 만든 것 같지만, 생각보다 완성도 높은 ‘작품’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얘깁니다. 예를 들어 동물 모양 토우를 관찰하고 분류한 황의욱 경북대 교수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처음 토우를 봤을 때는 어린아이가 만든 것처럼 조악해 보였다. 하지만 면밀하게 관찰하고 분석하는 과정에서 신라 사람들이 대상의 행동과 핵심 특징을 놀랍도록 정확하게 포착해 표현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또 하나 눈에 띄는 건 임신과 출산을 비롯해 노골적으로 성(性)을 다룬 토우들도 많다는 점입니다. 죽음과 출산을 연결하는 사상이 담겨있는데요. 죽음으로 인한 마이너스(-)를 새로운 생명의 탄생이라는 플러스(+)로 극복하고, 한편으로는 죽은 사람이 또다시 새로운 생명으로 태어나 우리 곁에 돌아오기를 기원하는 당시 사람들의 인식이 반영됐다는 설명입니다.
헤어짐의 축제
이런 유물들을 통해 우리는 한국인들의 마음속 깊은 곳에 자리한 원초적인 ‘죽음의 이미지’를 살펴볼 수 있습니다. ‘토우장식 긴목 항아리’는 이를 한눈에 보여주는 유물인데요. 첫 번째 부분에서는 한 남자와 새가 등장합니다. 죽은 남자의 영혼이 새에 이끌려 저승으로 향한다고도 볼 수 있겠지요. 이어서 남녀가 사랑을 나누는 모습과 함께 각종 동물이 등장하고, 마지막에는 임신한 듯한 여성이 악기를 연주하는 모습과 함께 동물들이 등장합니다.
전시의 모든 정보를 종합하면 당시 신라 사람들의 사후세계에 대한 생각은 이렇게 요약할 수 있습니다. ‘저승길을 떠난 사람은 저세상에서 다시 새로운 생명을 얻어 태어나는 게 우주와 생명의 원리다. 그 모든 과정은 하나의 축제다.’
하지만 이런 전통적인 사상은 신라가 선진 문물과 함께 불교를 받아들이면서 점차 자취를 감추게 됩니다. 사후세계에 대한 세계관이 불교에서 말하는 환생 개념으로 바뀌었거든요. 이후 나온 간소한 유물들을 보면서, ‘잘 만들긴 했는데 재미가 없어졌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토우가 가진 약간 어설프지만, 날것의 독특한 매력이 사라졌다는 아쉬움 때문일 겁니다.
전시의 마지막은 이 토우가 장식합니다. 이때까지 나온 모든 토우 중 ‘죽음을 슬퍼하는 모습’을 직접적으로 다룬 건 이것 하나뿐인데요. 여성이 얼굴에 천을 덮은 사람을 내려다보고 있는 모습으로, 성모 마리아가 십자가에서 내려진 예수를 무릎에 안고 있는 피에타와 비슷한 구도라서 ‘신라의 피에타’라고 부르는 사람이 많습니다. 방탄소년단(BTS)의 RM이 인스타그램에 업로드해서 화제가 되기도 했습니다.
아주 단순한 모양을 한 작디작은 흙 인형이지만, 1500년 넘는 세월이 지난 지금까지도 사랑하는 사람을 보내는 사람의 심정이 절절하게 느껴지는 작품입니다. 죽은 이가 어디서든 잘 살아가기를, 죽음이 영원한 이별이 아니기를, 언젠가 또 다른 삶에서 우리가 다시 만나기를 바라는 간절한 마음 말입니다. 이들의 소망이 이뤄졌기를, 우리 모두도 그럴 수 있기를 바라고 싶어졌습니다.
*이번 기사는 국립중앙박물관 전시 도록 ‘영원한 여정, 특별한 동행’, 국립중앙박물관의 윤상덕 고고역사부장과 이민진 학예연구관, 이상미 학예연구사의 도움을 받아 작성했습니다. 사진자료 역시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제공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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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수영 기자 syou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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