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앗 다 타버렸어요”...죽은 요리도 살린다는 마법소스의 비밀 [추동훈의 흥부전]

추동훈 기자(chu.donghun@mk.co.kr) 2023. 9. 2. 1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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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부전-21][브랜드로 남은 창업자들-16] 이금상

차갑게 식은 국이나 찌개를 데우기 위해 가스레인지를 켰습니다. 하필 이 때 친한 친구에게서 전화가 와서 시간 가는지 모르고 통화를 하다 보니 이상한 냄새가 납니다. 아차 싶어서 부엌으로 달려가니 국물은 전부 사라졌고 바닥은 눌어붙어 시커멓게 탄내가 진동합니다. 바닥만 긁어내고 먹을까 고민했지만 탄내가 요리에 베여 결국 버리고 맙니다.

이금기 굴소스
다들 한 번쯤은 이런 실수를 경험했을 겁니다. 따뜻한 집밥을 먹으려다 실수로 요리를 망쳐버린 건데요. 우리가 한 실수는 음식을 버리고 마는 실패로 이어졌지만 오늘의 주인공에겐 이런 실수가 세계적인 소스를 만든 기회가 됐다고 합니다.

바로 글로벌 시장 점유율 80%가 넘는 마법소스, 굴소스 제조사 이금기의 창업주 이금상의 이야기입니다. 이금기라고 하면 모르시는 분들도 계실텐데, 지금 보시는 굴소스 병을 보시면, “아 ! 이 소스”라고 알아차리실 분들도 있을 겁니다. 브랜드로 남은 창업자들 16번째 이야기 지금부터 시작합니다.

이금기 창업주 이금상
중국 남부 광둥성의 해안도시 주하이의 난수이 마을. 세계 최대의 카지노 도시인 마카오와 인접한 주하이는 해안도시답게 각종 해산물을 풍부한 곳이기도 합니다. 중국 4대요리인 광둥 요리가 발달한 지역이다보니 각종 식자재를 활용한 요리도 유명한데요. 특히 이 곳에선 바다의 우유라 불리는 굴이 무척 잘 자랐고 쉽게 구할 수 있었습니다.
이금기 로고
그렇다 보니 지역에선 굴을 이용한 요리를 내놓는 식당이 많았다고 합니다. 한집 건너 한집 꼴로 굴요리 식당이 있었다고 하는데 이금상 역시 작은 찻집을 운영하고 있었는데 마을 사람들에게 굴요리도 함께 내놓았다고 합니다. 그러던 어느 날, 웍에 굴을 넣고 불을 켜두었는데요.

하필 그날따라 너무 바빠서 이 사실을 깜빡해버리고 맙니다. 잠시 후 부엌에서 강렬한 냄새가 나기 시작했고 불을 켜둔 것이 생각났던 이금상은 서둘러 뛰어가 불을 끕니다. 헌데 웍 안의 굴 위로 짙은 갈색의 액체들이 켜켜이 쌓여 있는 것이었습니다. 처음 본 색깔에다 끈적한 질감에 호기심이 발동한 그는 귀신에 홀린듯 손가락을 찍어 맛을 보았습니다.

헌데 놀라운 맛이었습니다. 달고 짠데 감칠맛까지 느껴지는 그야말로 요리왕 비룡 뺨치는 마법소스가 등장한 것입니다. 이렇게 전 세계의 입맛을 사로잡은 굴소스가 세계 최초로 이금상의 손에서 탄생했습니다.

이금기 홍콩 본사
이는 ‘페니실린’ 탄생비화과 유사한데요. 플레밍은 깜빡하고 배양용기를 배양기에 넣지 않고 휴가를 다녀왔습니다. 그 바람에 방치된 곰팡이가 이를 오염시켜 탄생한 세계최초의 항생제가 바로 페니실린입니다. 페니실린처럼 세계 최초의 굴소스도 우연과 행운이 겹쳐 탄생한 셈입니다. 페니실린을 발견한 플레밍을 발명가가 아니라 발견자로 칭해야 한다는 말이 있듯이 이금상 역시 굴소스의 발견자라 해야 할까요?

굴소스를 발견한 이금상은 이를 제품으로 만들어 판매하기 시작합니다. 폭발적인 인기를 끌자 이금상은 굴소스 전문회사 이금기를 1888년에 설립합니다. 사실 이금기라는 브랜드 자체를 사람 이름으로 알고 계신 분들도 있을 텐데요.

창업자의 이름은 정확하게 이금상(李錦裳)입니다. 이금상의 별명이 ‘이금’이었다고 하는데 여기에다가 회사나 가게를 뜻하는 광둥어 접미사 ‘-기(-記)’가 더해져 이금기가 된 것입니다. 한국식으로 표현해보면 ‘이금상네 가게’ 정도가 될 것같네요.

초창기 이금기 로고
사실 이금기의 발음은 정말 제각기입니다. 광동어로는 ‘레이감게이’ 정도로 읽히구요 표준중국어로는 ‘리진지’가 맞다고 합니다. 한국서는 이금기, 일본서는 리킨키라고 부릅니다. 한중일 3국에서도 이렇게 불리는데, 서양권에선 더하겠죠. 실제 미국이나 유럽 등에서는 ‘Lee Kum Kee’라는 브랜드를 어떻게 발음하느냐를 놓고 서로 다른 발음을 하는지 확인해보는 영상도 유튜브에 있습니다.

동아시아권 브랜드가 가진 특유의 발음 이슈인 셈인데요. 현대자동차도 한때 현다이냐 횬다이냐 등 발음 논란이 있던 끝에 ‘현대’라고 발음해야 한다고 회사가 직접 나서 정리를 하기도 했죠.

그렇게 이금기는 원조 굴소스의 힘을 보여주며 나날이 번창했습니다. 그러던 1902년 하나의 사건이 또다시 이금기의 운명을 바꿉니다. 바로 난수이에 있던 공장에서 화재가 발생하며 공장이 사실상 전부 소실돼 버린 것이죠. 공장을 다시 지어야 할 상황에 놓인 이금상은 고심끝에 결단을 내립니다.

“본사를 마카오로 옮기자.”

당시 마카오는 홍콩의 부상으로 인해 해가 저물어가는 도시였습니다. 하지만 당시까지만 해도 굴소스 소비는 홍콩보다 마카오에서 훨씬 많았기 때문에 마카오를 선택했습니다. 난수이보다 훨씬 큰 마카오 시장으로 진출해 사업을 확장할 계획이었습니다. 그렇게 1902년 이금기는 마카오로 본사를 옮겨 ‘이금기유한공사’로 재탄생합니다.

굴소스 제조과정
보다 넓은 시장에서 치열하게 경쟁하겠단 포부대로 사업은 계속 성장했고 이금기는 마카오의 4대 굴소스 회사이자 원조기업으로 자리매김했습니다. 창업주 이금상은 1928년 숨을 거두고 그의 아들 이시우난이 경영을 이어갑니다.

이시우난은 마카오에 자리잡은지 30년 되던 해인 1932년, 다시 한번 홍콩으로 본사를 옮깁니다. 마카오 시장을 붙잡고 있기엔 홍콩의 성장세가 무시무시했기 때문이죠. 또한 홍콩을 거점으로 해 전세계로 퍼져나가는 화교들을 공략하기 위해서라도 과감한 결단이 필요했던 것입니다.

이금기 굴양식장
이러한 이금기의 전략은 정확히 주효했고 화교들 사이의 입소문 덕에 이금기 굴소스는 전세계 곳곳의 차이나타운으로 퍼져나갑니다. 이러한 전략은 예상외의 결과를 또 낳는데요.

미국, 유럽 등 굴소스를 접하지 못했던 서구권에서도 굴소스의 매력에 풍덩 빠진 것입니다. 이후 이금기는 3세대 경영자이자 ‘굴소스의 왕’이란 별명으로 이름난 이만탓이 회사 경영에 나섰고 글로벌 소스 브랜드로 자리매김합니다.

이만탓 3대 회장
이만탓은 굴소스밖에 없던 이금기의 제품군을 XO소스 등 수십 개로 확장했고 값비쌌던 프리미엄 굴소스 대신 중저가 모델인 판다굴소스를 만들며 세계화를 주도합니다.

그렇게 이금기는 전세계 굴소스 시장의 80%가 넘는 점유율을 확보하며 전세계 식당과 가정의 냉장고 한켠에 자리잡은 필수 소스가 됐습니다.

다양한 이금기 제품군
노력만큼 중요한 운의 힘. 운 덕에 지금의 이금기가 있었다고 생각할 수 있을텐데요. 이금기는 항상 ‘100-1=0’을 강조합니다. 이게 무슨 뜻이냐면 먹는 식품으로 100번을 잘 만들다가도 한번만 실수하면 모든 것을 잃는다는 뜻인데요. 그만큼 자신들의 제품에 열과 성을 다하는 노력이 있었기에 우연히 찾아온 행운을 자신의 것으로 만든게 아닐까요.
‘흥’미로운 ‘부’-랜드 ‘전’(傳). 흥부전은 전 세계 유명 기업들과 브랜드의 흥망성쇠와 뒷야이기를 다뤄보는 코너입니다. 기자페이지를 구독하시면 더욱 알차고 재미있는 이야기를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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