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골 초원 위 텐트 안으로 바람 살랑살랑 [ESC]

한겨레 2023. 9. 2. 1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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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C : 캠핑의 정석]캠핑의 정석 몽골 초원
한국인 방문 하루 2천명 ‘인기’
국립공원 깔끔한 ‘전통 게르’
날짜 안 맞아 은하수는 못 봐
몽골 테렐지국립공원의 전통 게르.

몇 해 전에 우연히 몽골에서 찍은 밤하늘의 은하수 사진을 보았다. 같은 해 어느 잡지를 읽었는데, 몽골 유목민들은 길을 가다가 ‘어워’(몽골의 성황당)가 나오면 마치 탑돌이를 하듯 그곳을 중심으로 세 바퀴를 돌며 기도한다고 한다. 신에게 자신의 소원을 들어달라는 게 아니라 꿈을 향해 나아가겠다는 간절한 다짐이라고. 나는 그때 몽골의 은하수와 어워를 꼭 만나리라 다짐했다.

글을 쓰며 전 세계를 여행해 왔다고는 하지만 아직 마음에 담아 둔 여행지가 몇 곳 있는데 그중 하나가 몽골이었다. 특히 밤하늘의 별을 좋아하는 내게 몽골은 언제나 로망이었다. 최근 예능 프로그램 ‘나 혼자 산다’에서 소개된 이후 더욱 폭발적인 인기를 얻으며 하루 2000명의 한국인이 몽골로 입국한다고 한다.

끈적임 없는 바람

몽골은 겨울이 길고 여름이 짧기 때문에 딱 9월까지가 여행하기 좋은 성수기다. 태풍 카눈이 대한민국을 관통하던 지난 8월11일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정확히 3시간 뒤 울란바토르 칭기스칸 국제공항에 도착했다. 공항은 생각보다 작았다. 우리 일행을 마중 나와 있던 현지 가이드는 한국말이 유창했다. 오후에 도착해 관광이 애매한 시각이었다. 먼저 마트에 들러 생필품과 먹거리, 식재료 등을 잔뜩 구입하고 숙소로 향했다.

차에 탑승하니 후끈한 열기에 숨이 막혔다. 뜨거운 햇빛에 달궈진 버스 실내는 없던 땀도 비 오듯 흐르게 했지만, 창문을 열고 조금 달리자 금세 시원해졌다. 에어컨도 있었지만, 습도가 높지 않아 끈적임 하나 없는 몽골의 바람 덕분이었다. 초원에서 한가로이 풀을 뜯는 젖소들, 갈색의 튼튼한 근육질 말들, 하얀색 양 떼가 차창 밖으로 스쳐 지나갔다. 얼마 지나지 않아 몽골식 성황당 ‘어워’에 버스가 멈췄다. 이번 여정이 무사하기를,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이 언제나 행복하기를, 그렇게 하기 위해서 나도 마음을 다하여 노력하리라 기도하면서 어워를 세 바퀴 돌았다. 온화한 바람에 머리카락이 나부꼈다. 눈을 감고 숨을 깊게 들이쉬고 천천히 내뱉었다.

우리가 묵을 숙소는 테렐지국립공원에 있는 ‘전통 게르’였다. 요즘 인기가 많은 ‘현대식 게르’는 우리나라의 글램핑처럼 게르 안에 독립적인 샤워 시설과 화장실이 깔끔하게 갖춰져 있다. 우리는 예약이 늦어 현대식 게르 대신 전통 게르로 가야 했다. 크기도 작고 외부에 별도로 마련된 공용 욕실과 화장실을 써야 한다고 돼 있어 걱정했다. 하지만 전통 게르도 시설이 좋았다. 공용 욕실과 화장실도 깔끔하게 관리돼 있었고 뜨거운 물도 잘 나왔다. 무엇보다 전통 게르는 실제 몽골인들이 사용하는 형태에 가까워 개인적으로 더 마음에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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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원 위 라면 정찬

다음날 우리는 아침 일찍 일어나 공동 식당에서 식사했다. 차와 식빵, 버터와 잼 그리고 삶은 양고기와 밥, 미역국이 제공됐다. 아침밥을 푸짐하게 먹는 한국 사람들에겐 그리 넉넉한 양은 아니었지만, 간단히 요기하기에는 부족함이 없었다. 식사를 마치고 야생화 언덕으로 올라가 트레킹을 시작했다. 왕복 3시간 정도면 다녀올 수 있는 가벼운 코스였다. 가는 길에 자유롭게 풀을 뜯는 말의 무리를 가까이서 보았다. 언덕으로 오르니 눈 닿는 곳마다 장쾌한 풍경이 압권이었다. 자연의 광활함은 과연 어디까지인지 짐작할 수 없었다. 사진만으로는 결코 다 표현되지 않는 거대한 자연의 미학이었다.

내려오는 길 적당한 자리에 짐을 풀고 텐트를 쳤다. 아침을 가볍게 먹어서 금세 허기가 졌다. 스토브에 물을 데워 울란바토르 마트에서 사 온 즉석밥과 컵라면을 먹었다. 양배추와 오이로 샐러드를 만들었다. 여기에 몽골 레몬 맥주를 곁들여 한 끼의 점심을 완성했다. 소박한 음식이지만 몽골의 광활한 초원에서는 더없이 훌륭한 정찬이었다. 몽골의 태양 아래 지은 2평짜리 작은 집은 그야말로 훌륭했다. 텐트가 그늘을 만들고, 바람이 내내 텐트를 드나들었다. 적당히 따뜻하고 적당히 시원했다. 엎드려 책을 조금 읽다가 까무룩 잠이 들었다.

몽골 초원의 말들. 홍유진 제공

눈을 떠 보니 일행들이 벌써 저녁 준비에 한창이었다. 김치찌개가 바글바글 끓고 있었다. 몽골 돼지고기를 넉넉히 썰어 넣은 김치찌개다. 한국에서 가져온 김까지 꺼냈다. 자연에서 느끼는 그 맛이 기가 막혔다. 저녁 식사를 끝내고 정리를 마치니 어느새 해가 졌다. 운전기사는 몽골 노래를, 몽골 가이드는 아리랑을 흥얼거렸다. 텐트의 아늑함과 초원의 고요함이 조화로운 밤. 하늘을 수놓은 별들의 향연을 보기에 완벽한 공간이었다. 그러나 이게 웬걸. 밤하늘에 무겁게 구름이 내려앉았고 별은 보이지 않았다. 달빛이 희미한 그믐을 전후해 열흘 동안 은하수를 볼 수 있는데 날짜도 맞지 않았다. 은하수를 보려던 계획은 아쉽게도 다음을 기약해야 했다. 그래도 괜찮다. 몽골의 초원에 누워 자연의 소리를 들으며 잠들 수 있었으니까. 멋진 자연과 여유로운 사람들, 끝도 보이지 않는 아득한 초원 지평선과 맞닿은 하늘, 덜컹거리며 때 묻지 않은 자연 속에서 종횡무진 몽골을 누비던 모든 순간은 그렇게 잊지 못할 추억이 되고 있었다.

[알아 두면 좋아요]

1. 몽골은 강렬한 태양이 내리쬐기 때문에 자외선지수가 매우 높고 건조하다. 자외선 차단제와 선글라스는 반드시 지참해야 한다.

2. 몽골 초원에서 캠핑을 하려면 엘이디(LED) 충전식 랜턴과 헤드랜턴 등이 있어야 한다. 밤하늘의 별빛 외엔 이렇다 할 조명이 없어 야간이동이 어려울 수 있기 때문. 따로 충전할 곳이 없으므로 보조배터리도 충분히 준비해야 한다.

3. 몽골은 일교차가 크다. 심할 때는 야간 체감온도가 영하로 뚝 떨어지므로, 겨울용 침낭과 에어매트, 패딩을 챙기면 좋다. 가시풀이 많아 트레킹화도 필요하다.

4. 몽골 사막이나 초원, 오지에서 캠핑할 때는 화장실이 따로 없으므로 에코 삽을 꼭 챙겨야 한다. 흔적 없이 최대한 깔끔하게 처리하는 게 관건.

5. 물을 구하기가 어려우므로 물티슈를 넉넉히 챙겨야 한다. 손이나 식기류 세척에 요긴하게 쓰인다.

6. 식재료는 울란바토르 마트에서 준비하자. 한국 마트와 매우 유사하므로 쌀, 라면, 고추장, 김치, 물 등 필요한 식료품을 충분히 구할 수 있다. 고기는 진공 팩 포장된 것으로 구입한다.

홍유진 여행작가

1년의 절반은 타지에 살며 그곳에서의 삶을 기록한다. ‘오늘부터 차박캠핑’, ‘보통날의 여행’, ‘나만의 여행책 만들기’, ‘시크릿 후쿠오카’, ‘무작정 따라하기 오사카. 교토’ 등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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