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이초 교사 사망 사건은 왜 피의자가 없을까 [폴리스라인]
고인 아이폰은 포렌식 아직 못 해
학부모 직업, 수사에 영향 없지만
법조계 "처벌 가능성 매우 낮다"
학부모 갑질 고소 사례도 드물어
"그나마 협박죄 적용될 가능성"
경찰 이어 검찰도 최근 수사 착수
서이초 교사 사망 사건과 관련해 수많은 의혹이 난무하고 있지만 현재까지 수사를 통해 경찰에 입건된 피의자는 단 한 명도 없다. 경찰이 약 한 달 가까이 조사를 진행했지만 아직까지 범죄 혐의점이 발견된 게 없어서다. 여기다가 현재까지도 고인의 휴대전화가 포렌식 되지 않으면서 수사 결론까지 난항이 이어지고 있다.
2일 서울교사노조 등에 따르면 경찰은 현재까지 학부모 10여명과 동료 교사 등을 불러 고인 A씨와 관련된 진술을 받았다. 이 중에는 올해 A씨가 개인 휴대전화 등으로 직접 연락을 주고받은 학부모들과 ‘연필 사건’ 관련 학부모 등이 포함된 것으로 파악됐다.
특히 경찰은 A씨의 개인 휴대전화 번호가 노출되면서 학부모들이 이 번호로 A씨에게 전화해 악성 민원을 퍼부었다는 의혹에 대해 조사해왔다. 이는 A씨가 담임을 맡은 학급 학생이 지난달 12일 연필로 다른 학생의 이마를 긋는 일이 있었고, 이와 관련해 A씨가 학부모로부터 큰 스트레스에 시달렸다는 의혹이 제기된 데 따른 것이다.
이에 대해 경찰 관계자는 “동료 교사들에 따르면 고인이 연필 사건의 학생 뿐 아니라, 다른 학생들 때문에 힘들었다는 말도 있어서 다른 건도 조사했지만 특별하게 확인된 부분은 없다”고 밝혔다. 경찰은 고인 사망 직전 한 학부모가 “선생 자격이 없다”는 취지의 폭언을 했다는 의혹도 조사했으나 범죄 혐의는 없다고 판단했다. 고인의 업무용 메신저·아이패드에 담긴 통화 기록 등을 종합했을 때도 결론은 마찬가지였다.
경찰은 현재까지 수사 과정에서 확보한 진술 및 자료 등을 정리 및 종합하는 단계를 밟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다만, 논란은 여전히 존재한다. 경찰이 이른바 ‘부실 수사’를 했다는 의혹과 관련해서다. 특히 서울교사노조 측은 경찰이 이번 사건과 상관 없는 지난해 학교폭력 사건 관계자를 불러 조사하는 등 수사를 제대로 하지 않았다고 주장한다.
경찰은 고인이 생전 사용하던 내선전화, 업무용 컴퓨터, 아이패드 등에 대해 포렌식을 완료했지만, 이번 사건의 핵심 단서라고 볼 수 있는 고인의 아이폰은 아직까지 포렌식을 시작조차 하지 못한 상태다.
경찰은 이 휴대전화에 담긴 통화 내역·통화 녹음 일체·메시지 내역 등을 확보한다면 학부모들이 고인에게 악성 민원을 이어왔다는 의혹을 풀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지만, 현재까지도 잠금 장치를 풀지 못했다. 사건을 수사 중인 경찰 관계자는 “최신 기종 아이폰은 포렌식 복구가 어렵다”면서 “한동훈 법무부 장관의 아이폰 역시 잠금 장치를 풀지 못해 돌려준 적 있지 않느냐”고 답했다.
일각에서는 연필 사건의 가해자 학부모 직업이 경찰, 검찰 직원이라는 점이 수사에 영향을 미친 것 아니냐고 주장한다. 이들이 직업적 지위를 앞세워 수사에 영향력을 행사했다는 의혹이다.
그러나 경찰은 이같은 의혹을 완강히 부인했다. 서초경찰서 관계자는 “학부모 직업이 수사에 영향을 미친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말이 안된다”면서 “오히려 더 면밀히 보면 봤지, 수사에 영향은 없다”고 해명했다.
또 다른 경찰 관계자 역시 “학부모의 직업은 본 사건과 관련이 없고 개인 정보이기 때문에 (말하기) 곤란하다”면서도 “학부모 직업이 수사 역량에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고 말했다.
법조계에서는 학부모들의 혐의가 입증될 가능성은 물론, 이들이 실질적으로 처벌 받을 가능성 또한 매우 낮다고 설명한다.
이창현 한국외대 로스쿨 교수는 “지금까지 정황상 (갑질 의혹 학부모들에게) 적용할 수 있는 가능성이 가장 큰 것은 협박죄”라면서도 “형법상 협박죄는 ‘너를 죽이겠다’거나 ‘교사를 못하게 만들겠다’는 등 사람의 생명·신체에 대해 위협을 가하는 말을 했을 때 적용이 가능한데, 설령 이런 말을 한 게 입증이 되더라도, 이런 말로 인해 죽음에 이를 것이라고 예상하긴 어려우므로 사망에 대한 책임을 묻기는 어려워 보인다”고 말했다.
모욕죄 역시 인정되기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이 교수는 “모욕죄가 성립되려면 ‘공연성’이 인정돼야 하는데, 전화 통화는 사인 간 소통이라 공연성이 없다”고 설명했다.
서울교사노조 관계자는 “학부모가 교사에게 협박 등 혐의로 고소당해 처벌 받은 사례는 알려진 바가 없다”고 말했다.
국내 1호 학교폭력 전문 변호사인 노윤호 법무법인사월 대표변호사 역시 “선생님이 고소를 해서 실제 학부모들이 처벌까지 갔던 사례도 있기는 하지만 극히 예외적”이라면서 “아무래도 학생이나 학부모를 대상으로 신고를 한다는 사실이 학교와 선생님 모두에게 부담이 되는 일이다 보니, 감내하다가 도저히 못참겠다든지 모욕·욕설 등을 들었을 때가 되어서야 조치를 취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형사 고소까지 진행하는 경우는 더 드물다”고 말했다.
이어 노 변호사는 “고소를 한다면 즉각적인 (갑질) 중단의 효과는 있겠지만, 당사자인 선생님도 몇 개월 동안 이 사건에 매달려야 하고 스트레스도 받다 보니 실익이 없다”면서 “교사가 학부모들의 행위에 부당함을 느꼈을 경우에는 ‘교권 침해’로 신고하는 것 정도가 현실적인 방안”이라고 말했다.
법원은 타인을 협박해 사망에 이르게 한 피의자에 대해 징역형 집행유예를 선고하는 등 비교적 중한 판결을 내리고 있다.
실제로 지난 5월 익명으로 교감의 전과를 폭로한 교직원을 찾아내서 수차례 협박해 죽음으로 내몬 학교 교사는 징역 6개월에 집행유예 1년을 선고받았다. 당시 가해 교사는 피해 교직원에게 수차례 협박성 문자를 보낸 혐의로 1심에서 벌금형에 처해졌으나 2심에서 집행유예로 형이 가중됐다.
이에 대해 광주지법 형사3부(재판장 김성흠)는 “A씨는 자신에게 불리한 내용의 민원을 제기했다는 이유로 피해자에게 공포심, 불안감을 유발하는 문자메시지를 반복적으로 보내 그 비난 가능성이 크다”면서 “피고인이 피해자의 극단적 선택을 예상하지 못했다고 하더라도 결국 피해자의 사망이라는 중한 결과가 발생해 유족들의 정신적 고통과 충격이 클 것으로 보인다”고 판시했다.
경찰이 수사 막바지 단계를 거치면서 ‘악성 민원’ 의혹 학부모들에 대해서는 ‘범죄 혐의가 없다’는 결론을 낼 것으로 보이지만, 서울시교육청은 이번 사건에 대해 재조사 계획이 없는 것으로 전해졌다. 시교육청 관계자는 “교육청 자체 조사 결과는 경찰에 모두 넘어갔다”고 공을 넘겼다.
이런 가운데 유족 측은 최근 “고인이 극한의 업무 스트레스를 받던 도중 학부모의 민원이 계속되면서 퇴근도 하지 못한 채 교실에서 사망했다”고 순직 처리를 신청했고, 교원단체인 실천교육교사모임은 서이초 학부모 4명을 검찰에 고발했다. 서울중앙지검은 해당 사건을 형사7부(부장검사 김형석)에 배당하고 수사에 착수했다. 경찰에 이어 검찰까지 수사에 본격 착수하면서 갑질 의혹이 제기된 학부모의 구체적인 혐의 등이 밝혀질지 귀추가 주목된다.
김남명 기자 name@sedaily.com정유민 기자 ymjeong@sedaily.com이승령 기자 yigija94@sedaily.comCopyright © 서울경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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