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상 이상의 존재" 임성한 작가가 전하는 시청률, 그리고 암세포[★창간19]
[편집자주] 스타뉴스가 창간 19주년을 맞이해 특별한 이야기를 준비했다. 지금은 연예계에서 톱을 찍었고, 너무나도 흔하게, 당연하게 마주하고 있고 여러 콘텐츠들로 소비되고 있는 스타들의 잘 알려지지 않았던 비하인드를 조심스럽게, 또는 재미있고 유쾌하게 꺼내보는 색다른 즐거움을 소화해보고자 한다. 이와 함께 이제는 대세가 된 스타들의 현재 모습을 재확인하고 앞으로의 모습들을 기대해보는 조명도 해본다.
[스타뉴스 | 윤상근 기자]
1. "어머님 사랑해요.며느리로서가 아니라 여자로서요."
대한민국에서는 결코 가까워질 수 없는 두 여자에게서 사랑이라는 싹을 틔우려 하다니. 이유를 불문하고 한번도 온전하게 간 적이 없다. 처음 겪었을 때는 마치 중독된 듯 자연스럽게 궁금해하고 있는 자신이 의아했었는데 계속 이런 식으로 나오니까 킹받다가도 "그래서 그 드라마는 어떻게 됐대?"라는 말은 결국 시간이 지나서 스스로 내뱉고 있다. "욕도 안티도 내가 먹어야겠다고 마음을 먹었다"라는 마음가짐으로 대본을 쓰니. 아예 작정하고 마음을 먹은 사람을 누가 당할쏘냐.
(cf. 이 대사를 소화한 배우는 윤해영으로 임성한 작가 첫 히트작 MBC '보고 또 보고'의 첫째 며느리로 등장했다. 그때는 뭔가 세련미에 살짝 백치미가 얹어진 캐릭터였는데, 25년이 지났지만 오히려 원숙미가 더욱 묻어나는 모습이다.)
임성한. 뭔가 남자 이름 느낌이 살짝 나는 이 이름은 '막장' 하면 1인자라고 치켜세워질 법한 인물이다. 참고로 이 작가의 본명은 임영란이며 활동명은 친오빠의 본명이다. 심지어 세계진출을 염두에 두고 '피비'(Phoebe)라는 영어 이름도 지었다.
임성한 작가의 다음 작품은 치정 스릴러 장르가 될 전망. 디즈니플러스 오리지널 '카지노' 제작사 아크미디어와 손을 잡고 차기작 준비에 한창이다.
2. 막장드라마의 출발점은 어디였을까
'끝장'이라는 단어에서 파생돼 (막다른 곳으로 다다랐을 정도로) 인생을 말아먹은 상황이라는 뜻이 막장의 기본적인 의미다. 또는 파장 직전의 시장, 연극의 마지막 장 등의 의미로 쓰여지기도 했다. 이 역시 공통적으로 '(어딘가의) 끝자락' 정도의 의미를 내포한다.
여기에 우리가 TV를 통해 흔히 봐왔던 드라마가 합쳐져 탄생된 막장 드라마는 국내에서만 통용되는 형태의 드라마는 아닌데 특히나 한국 드라마에서는 사내연애 또는 신데렐라 스토리로만 치중됐던 흐름에 대한 피로감이 높아지는 와중에 많은 연령대의 시청층이 유입되는 평범한 가족드라마에 이른바 출생의 비밀이나 시월드(고부갈등), 복수, 청춘 로맨스 드라마에서의 삼각관계가 발전된 불륜, 또는 결혼 반대를 유도하는 양가 집안의 재력 차이 등이 극의 주요 핵심 스토리로 깔리면서 예상을 연이어 벗어난 전개를 유도하는 데 영향을 미쳤고 방송사 간 시청률 경쟁 등도 불이 붙으면서 막장의 퀄리티마저 올라가는 모양새를 보였다.
(cf. 굳이 외국 막장 드라마와 비교를 해보자면 일본, 서구권 막장 드라마의 경우 선정적인 측면이나 한국에서는 도저히 받아들이기 힘든 정도의 도덕불감증이 깔린 전개로의 방향성을 갖고 있는 편이라고 한다. 물론 모든 해외 드라마가 다 그렇다고 볼순 없겠지만.)
막장드라마의 출발점을 정확히 언제라고 딱 떨어지게 짚을 수는 없겠으나 대체적으로 문영남 김순옥 임성한 작가를 꼽을 수 있다. 문영남 작가의 경우 KBS 2TV 주말드라마 시간대에서 자주 등장하며 주로 출생의 비밀을 깔고 고구마 100개를 먹은 듯한 전개를 풀어내는 스타일이고, 김순옥 작가는 '아내의 유혹'과 '펜트하우스'처럼 특유의 매운맛이 일품이라고 표현될 정도로 막장 요소에 화끈하면서도 스피디한 스타일의 전개를 펼쳐왔다.
그런데 임성한 작가는 이 두 작가와는 뭔가 결이 아예 다르다고 해야 할까. 다른 길을 가는 게 아니라 아예 선을 넘어버린다. 좋게 말하면 틀을 깨는 파격인데 나쁘게 말하면 상식을 벗어나서 기괴한 느낌인 것 같기도 하다. (다행히도 모든 드라마가 그러하진 않았다.)
3. 암세포도 생명이라고?
임성한 작가의 건강에 대한 철학은 그 어느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다고 자부할 수준이다. 다이어트가 세상에서 가장 쉬웠고 탈모에서 벗어나는 게 제일 어려웠으며 어린 시절 악성빈혈 증세로 고등학교도 1년 휴학을 하고 나서야 겨우 졸업장을 따냈다.
"암세포들도 어쨌든 생명이에요. 내가 죽이려고 하면 암세포들도 느낄 것 같아요. 이유가 있어서 생겼을텐데.. 원인이 있겠죠..이 세상 잘난 사람만 살아가야 하는 거 아니듯이...같이 지내보려고요. 치료해서 100% 낫는다고 하면 받아요. 내가. 그리고 우리 부모님이 겪을 운명이면 겪는 거예요."
MBC 드라마 '오로라공주' 118회에 설설희(서하준 분)가 열심히 항암치료를 받으라고 권유하는 박지영(정주연 분)의 말에 "인생은 재천이라잖아요. 죽을 운명이면 치료 받아도 죽어요"라고 답하며 했던 대사였다.
대한민국 암 환자들과 그들의 보호자들에게 대못을 박은 이 대사와 함께 임성한 작가는 다시금 대규모 안티 군단의 결집을 도모했다. 일찌감치 막장드라마의 신기원을 써내려가며 시청률 상승에 비례하는 악플과 악평 기사들을 유도해냈고 당시 드라마 작가로는 거의 최초로 안티 카페가 개설돼 절필 요구 서명 운동까지 벌어졌다.
실제로 암 환자의 보호자가 된 경험이 있던 기자 입장에서 들어도 이 대사는 분명 심각한 화를 불러일으킬 만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백번 양보를 해서 임성한 작가가 생각하는 암세포와 암에 대한 이야기를 들여다봤다.
"이 내용을 쓸때 어느 정도 예상은 했고 부정적으로 쏟아질 기사를 생각해 (대사를) 바꿀까, 어쩔까 잠시 생각했지만 암에 대해 충분한 취재와 공부를 한 입장에서 이와 같이 쓸수 밖에 없었다. 암의 원인은 오염된 공기나 담배, 식품 첨가물 등의 화학물질, 그리고 면역력 저하, 저체온이다. 1억년 전 공룡 시대에도 있었다고 하는 암세포는 신체에서 나쁜 상황이 반복돼 편법을 써서라도 지금껏 해오던 기능을 수행하려 만들어진, 계기는 기특하기까지 한 비상황 세포다. 오죽했으면 몸이 결국은 자기 자신을 죽이는 암세포를 만들어냈을까. 상처가 생기면 세포들이 복구를 하는데 힘든 상황이 계속 되면 임무를 다하기 위한 세포들의 몸부림으로 산소가 부족한 상황에서도 세포가 만들어지는 적응을 하는 데 이게 암세포다. 심장이 없는 생명체도 살아남으려는 성질이 있는 것이고 좋은 목적으로 생겨난 본분은 잊은 채 수단과 방법을 안가리고 영양분과 산소를 빨아들여 세포분열을 하게 된다." (이하 임성한 작가 '암세포도 생명 임성한의 건강 365일'에서 발췌)
임성한 작가는 "모 여배우가 유방암 3기였는데 투병기에서 암세포를 향해 "우리 같이 살자. 너도 먹고 살아. 나도 좀 살게'라고 전했고 결국 완치돼 지금도 방송 활동을 하고 있다"라며 "암세포가 생명이 아닌 죽은 거면 이미 암이 아니다"라고 글을 맺었다.
4. 임성한 작가가 말하는 시청률 이야기
임성한 작가에게 시청률은 그 자체로 스트레스였다고 한다. 드라마가 방송된 이후 다음 날 아침 7시에 일어나 시청률을 확인하고 수치에 일희일비했으며 어느날 스포츠 경기 중계가 겹쳐서 시청률이 떨어져도 속상해했다고 한다.
'신 기생뎐' 당시에도 시청률 23%를 찍었는데 역시나 부정적 시선 때문에 더 오르지 않고 정체되자 국장으로부터 "25% 부탁해요"라는 말을 듣고 "차라리 내가 욕을 먹자"라고 다짐하고 꺼낸 장면이 그 유명한 시아버지 빙의 신이었다. 여기에 시아버지의 레이저 눈과 장군귀신 장면들로 정점을 찍었던 회차는 상대 드라마의 마지막 회차였는데 여기에서마저 시청률을 빼앗기지 않으려 이러한 자극적인 장면을 앞세웠을 정도로 임성한 작가에게 시청률은 상상 이상의 존재였다. 이 극약처방으로 시청률도 올라갔지만 당연히 혹평은 더해졌는데 오히려 방송사가 이러한 여론 공분에 부담을 느꼈는지 돌연 작가 계약 해지 통보를 받았다고 임성한 작가는 말했다.
'오로라공주' 하면 떠오르는 키워드는 바로 '데스노트'. 제작진의 호평에도 본인 스스로는 만족을 못하고 있었고, 고심을 거듭한 끝에 40회 때 오빠들과 (원래 빠질 계획이었던) 올케들이 드라마에서 10회만에 아웃되는 파격 결론을 내린다. 사업이 망해서 미국으로 향한다는 설정. 작가의 의도는 이거였다고 하는데 전체 드라마 스토리를 살펴보면 극중 사망한 인물만 10명이 넘었고, 이 내용이 포인트가 돼 드라마를 안본 입장에서 "작가는 무슨 사이코냐"라는 반응이 나올 정도였다.
그럼에도, 임성한 작가는 이렇게 생각했다.
"나는 지인들에게 분별하지 말고 그냥 딱 받아들여보라고 조언한다. 언젠가 내가 쓴 드라마에서도 '비바람이 몰아칠 때 나무들이 왜 비바람이 몰아치냐고 따지지 않고 묵묵히 견뎌내면 결국 아름드리나무가 되듯 사람도 시련이 닥쳤을 때 왜 내게 이런 일이 생기냐 절망과 비탄에 잠길 게 아니라 견디고 받아들이는 게 필요하다'라고 썼다."
그리고 임성한 작가는 "내가 어떤 일이 있어도 받아들이지 않는 것 2가지는 바로 시청률 깎아먹는 것과 상대가 양아치인 것이다"라고 말했다.
6. 그리고, TMI
1) 임성한 작가가 유일하게 보조작가를 썼던 드라마는 '보고 또 보고'였다.
주 5회 분량의 대본 집필이 물리적으로 불가능해져서 펑크 위기가 났던 시점이 방송 이후 1년만이었고 잠을 줄여가며 버텼지만 결국 잠이 안오는 상태까지 오자 MBC에 도움을 요청했다. 이후 보조작가에게 일주일 분량만 집필을 맡기고 병원에서 퇴원해 서울대공원 숲길을 오전 10시부터 오후 4시까지 쉬지 않고 걷고 집에 와서 와인응ㄹ 마시고 5시간을 잤더니 글이 다시 써졌다고 한다.
2) 임성한 작가는 2014년 12월 그 유명한 인도양 쓰나미를 직접 목격했다.
지인 언니와의 푸켓 여행 마지막날 1~2미터 정도 되는 파도가 집채 높이로 밀려오는 걸 목격했다고 한다. 그 와중에 함께 간 언니로부터 "물에 빠져 죽기 전에 배터져 죽겠다"라는 농담을 들었고 겨우내 말레이시아 공항에 도착한 순간 임성한 작가는 아름답고 푸른 하늘을 바라보며 "죽어도 여한없어 글도 쓸만큼 썼고 엄마도 돌아가셨고 자식 남편도 없는데 '임성한이 '왕꽃선녀님' 100회 절필하고 MBC 부탁도 거절하고 푸켓 와서 물에 빠져 죽었다는 기사가 날까봐 X팔린다"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더 아찔한 건, 비슷한 시점에 '보고 또 보고' '온달왕자들'의 음악감독이 푸켓 휴가를 떠났다가 쓰나미가 휩쓸렸다는 사실을 귀국 이후 방송을 통해 들었다고. 당시 임성한 작가는 공항에, 그 음악감독은 리조트에 있었다.)
3) 임성한 작가는 신정아에게 '압구정 백야' 특별출연 제안을 직접 했다.
미술계 취재를 위해 만났던 신정아의 첫인상은 늘씬한 키, 다부진 체형, 그리고 초딩 입맛이었다고. 차 안에 과자가 가득한 걸 목격했고 "매일 먹어요"라는 말까지 들었는데 나중에 결국 과자를 끊고 걸그룹 각선미 체형을 뽐냈다고 한다.
자주 만나며 의외로 캐릭터 있어서 특별출연을 할 생각이 없냐고 제안했고 제안받은 인물은 육선중(이주현 부)이 사는 집의 가정부로 들어가 아내에게서 남편을 빼앗는 역할이었다. 극구 손사래를 쳤지만 어렵게 설득해 첫 촬영까지 마쳤지만 MBC 고위급 회의에서 '신정아 출연 반대'로 결론나 결국 방송에선 나오지 못했다. 임성한은 "나를 위해 성가신 취재도 도와주고 출연까지 해줬는데 되려 전국적으로 망신만 당해서 내가 얼마나 미울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라고 회상했다.
윤상근 기자 sgyo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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