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농증·복통 치료제로 이걸…'독재자' 히틀러 몰락 부추긴 마약 중독
[편집자주] 무소불위의 독재자부터 영향력 있는 지도자까지 세계사의 주요 페이지를 장식한 이들은 세상을 평정한 '권력자들'이었다. 견고한 성(城)처럼 보인 그들의 권력은 다름 아닌 '질병' 앞에서 무너지는 경우가 많았다. '세월 앞에 장사 없다'는 옛말처럼 제아무리 힘 있는 권력자도 건강을 잃으면 무릎을 꿇을 수밖에 없는 법. 근·현대사에서 권력을 쟁취한 이들이 권력을 내려놓기까지의 건강 이야기를 연속해서 탐독한다.
제2차 세계대전을 일으킨 전쟁범죄자로 평가받는 그는 국가사회주의 독일 노동자당(나치당)의 지도자로서 독일의 민주주의 체제를 무력화해 '나치 독일'(나치당 치하의 독일)을 수립했다.
그는 1945년 만 56세에 두개골 총상으로 사망했다. 권총을 이용한 자살로 알려졌지만, 러시아 국가기록보관소가 보관한 '히틀러의 두개골'이 히틀러가 아닌, 40대 미만 여성의 것이라는 주장도 있어 사망원인에 대해서는 논란이 있다.
히틀러는 만성질환이던 축농증을 치료하기 위해 코카인을 눈에 투여하다가 이후 코로 직접 흡입했다고 한다. 그러다 코카인에 중독돼 코카인을 주기적으로 맞았다. 코카인은 사람을 흥분시켜 활력이 넘치도록 만든다는 이유에서 예로부터 오랜 시간 농장에서 일하는 노예, 월스트리트 투자자들이 자주 애용해왔다. 일상에서 히틀러의 아침은 각성제 투여로 시작됐다. 마약 투여가 일상화한 것이다. 그는 신경성 복통에 시달릴 때마다 아편계 약물인 모르핀을 맞았다.
독일의 패배가 임박한 1944년 9월부터 히틀러의 건강 상태는 심각해졌다. 몇 번 쓰러지고, 왼팔을 벌벌 떨며, 몸은 마비를 겪었다. 의학적으로는 몸에서 도파민을 분비하는 신경세포가 파괴된 파킨슨병의 초기 증상이거나, 코카인·필로폰 같은 각성제를 과다 투여해 생긴 부작용으로 추정된다.
도파민 활성도가 높아진 마약 중독자는 보상(마약)을 찾아다니고 획득하려는 '욕망기'를 거쳐 실제로 마약을 찾아내 소비하는 '완료기'를 거친다. 완료기를 경험한 사람은 또 다시 보상을 찾아다니는 욕망기로 이행한다. 마약으로 인해 도파민이 활성화하면서 욕망기와 완료기를 반복하는 악순환의 굴레에서 점차 벗어나기 힘들어진다.
히틀러처럼 우울감과 불안장애가 있는 사람은 일반인보다 마약에 더 쉽게 손을 대는 경향이 있고, 이들이 마약에 빠지면 또 다른 마약에 빠질 가능성이 커진다. 예컨대 우울한 사람이 필로폰에 중독되면 코카인을 찾아 중독될 위험이 매우 커진다는 것이다.
마약을 '단기간' 투여하면 뇌 구조 이상은 없지만 마약 종류에 따라 호흡이 억제되거나(아편계) 살이 찌는(대마초) 등 증상이 나타난다. 마약을 끊지 못해 장기간 투여하면 뇌가 치매 환자처럼 쪼그라드는 등 구조적 이상이 발생할 수 있다. 또 1회 투여자보다 다회 투여자의 마약 중독 치료 기간이 길어진다. 뇌의 조절 능력이 떨어지고 마약에 대한 내성이 생겨서다. 손대지 말아야 하지만, 한 번 손댔다면 더는 손대지 말고 빠르게 치료받아야 하는 이유다.
마약 중독에서 벗어나려면 약물 치료만으로는 안 된다. 정신 사회적 치료, 인지행동치료, 재활치료 등을 병행해야 한다. 아편계 마약의 효과를 차단하는 날트렉손의 경우 마약을 끊고 금단증상이 모두 지나간 후에야 사용할 수 있다. 금단증상이나 공존하는 정신 증상을 치료하기 위해 항불안제, 항우울제, 향정신병 약물, 기분안정제 등의 정신과 약물이 사용될 수 있다.
마약을 찾게 된 원인을 찾아 해결하는 노력과 함께 심리검사, 중독상담, 단약 동기 프로그램 등이 정신 사회적 치료의 예다. 마약 중독 치료법도 진화해 최근엔 마약 중독자의 인지행동을 치료하는 새로운 대안으로 디지털 치료제가 떠오른다. 미국 식품의약국(FDA)은 리셋-오(reSET-O)라는 소프트웨어 앱을 디지털치료제로 허가했다.
도움말=조서은 가천대 길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노성원 한양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참고 서적=『히틀러의 주치의들』(드러커마인드 출판)
정심교 기자 simkyo@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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