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철더미로 만든 3m 로봇, 벼 껍질 냉장고 필터… ‘지속가능성’ 기술의 향연[IFA 현장]
“독일 전역의 가정에서 쏟아지는 전자제품 쓰레기를 합쳐서 만든 로봇입니다.”
1일(현지 시간) 독일 베를린에서 개막한 유럽 최대 정보기술(IT)·가전 전시회 ‘IFA 2023’의 ‘지속가능성 마을’ 전시관 초입에는 높이 3m가량의 거대한 고철 로봇이 서 있었다. 부서진 TV와 버튼이 빠진 키보드, 고장 난 드럼세탁기 등 온갖 전자 폐기물이 로봇의 몸과 사지를 이루고 있었다. 독일 현지 보험업체인 베어트가란티(Wertgarantie)의 모리스 욀러 매니저는 “1분간 약 376톤(t)의 고철 쓰레기가 독일에서 나온다. 우린 지속 가능한 전자제품 소비를 위해 고장 난 스마트폰과 가전제품에 대한 수리 보상 보험을 운영한다”고 말했다.
● 거대한 고철 로봇·벼 껍질로 만든 냉장고 필터
올해 IFA의 최대 화두이자 꽃은 ‘지속가능성’이다. IFA를 주관하는 독일가전통신전자협회(GFU)는 홈 가전, 게이밍, 통신 등 대주제로 분류한 13개의 전시관 중 한 곳을 지속가능성 마을로 꾸몄다. 총 18개의 업체가 이 전시관에 입점했다. 나머지 2000여 개 참여기업 부스들도 모두 지속가능성을 대주제로 관통하고 있다.
IT·가전업계에서 지속가능성을 실현하는 한 방편은 재활용 소재다. 튀르키예 가전업체 베스텔가 선보인 냉장고에는 버려진 오렌지 껍질과 벼 껍질로 만든 필터가 설치됐다. 세탁기는 재활용 플라스틱으로 만들었다. 부스에 있던 직원은 “냉장고 안 달걀 트레이조차 올리브 씨앗으로 만든 바이오 플라스틱으로 만든 제품이다. 모두 땅에서 바로 분해가 가능하다”며 친환경성을 강조했다.
삼성전자와 LG전자도 각각 재활용 소재를 활용한 전시를 중점적으로 선보였다.
삼성전자의 단독 전시공간 ‘시티 큐브 베를린’에 마련된 체험 공간은 현지 어린이들로 북적였다. 각자 원하는 ‘재료 코인’을 체험 키트에 투입한 뒤 이것이 분쇄돼 소재로 바뀌어 나오는 과정을 놀이처럼 즐기고 있었다. LG전자는 관람객들이 재활용 플라스틱으로 만든 나무를 모형 산에 심고, 도심·사막·주거지 중 하나를 선택해 관람객이 LG의 식재 활동에 간접 참여할 수 있게 하는 이벤트를 진행했다.
올해 참가업체들이 앞다퉈 에너지 효율을 핵심 세일즈 포인트로 내세우는 점도 눈에 띄었다. 유럽은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인한 가스 대란으로 몇 년 새 가스비가 폭등했고 그에 따라 전기료도 크게 오른 상황이다. 유럽연합(EU) 공식 통계사이트 유로스탯에 따르면 지난해 말 독일 주택용 전기요금은 전년 대비 83% 상승했다.
독일 가전업체 밀레는 주요 제품마다 에너지 최고 효율 등급인 ‘A+++’ 마크와 함께 특정 전력량으로 세탁할 수 있는 빨랫감 물량이나 세척 식기 양까지 표시했다. 베스텔은 자사 드럼세탁기 위에 ‘85% 적은 에너지, 1회당 물 34리터(L) 사용’이라 새겨진 수건을 쌓아놓아 관심을 끌었다. 삼성전자는 이번 IFA에서 유럽 에너지 규격 최고 등급보다 전력 사용량이 40% 이상 적은 세탁기를 출시할 계획이라고 발표했다. LG전자도 에너지 효율 등급 A+++로 시장 제품 중 가장 효율이 높은 건조기와 고효율 세탁기 등을 선보였다.
이날 ‘복합 위기 시대의 지속가능성’이란 주제로 기조연설을 맡은 레베카 슈타인헤지 밀레 지속가능성 총괄은 “밀레니엄 이래 사회·경제적 혼란의 배경엔 기후 위기가 있다”며 “기업이 직면한 수많은 불확실성 속에서도 지속가능성을 향한 완전히 새로운 투자에 나서야 하는 이유”라고 말했다.
● 더 똑똑하게, 더 섬세하게… 이색 가전 향연
올해 IFA에서는 미래 인류 가정의 단면을 엿볼 수 있는 혁신 기술들도 대거 등장했다. 특히 전시장 곳곳에선 고소한 빵 냄새와 조리대에서 올라오는 열기가 퍼져 나왔다. 셰프복을 입은 부스 직원들도 눈에 띄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이후 집에서 직접 조리해 먹는 식생활 비중이 커지면서 주요 가전업체들은 ‘스마트 키친’ 경쟁에 뛰어들었다.
삼성전자 단독 전시장 ‘시티 큐브 베를린’에 전시된 스마트오븐 제품 안에 직원이 크루아상 생지를 넣자 내부의 인공지능(AI) 비주얼 센서가 작동했다. 이윽고 상부 미니 스크린에 크루아상 조리를 선택할 수 있는 화면이 떴다. 현장 직원은 “오븐이 알아서 재료를 인식해 조리법을 안내할 뿐만 아니라, 아래 위 칸에 각각 다른 조리를 한 번에 할 수 있도록 해 시간과 에너지 소모도 줄일 수 있다”고 소개했다.
LG전자와 밀레는 이번 전시에서 ‘후드 일체형 인덕션’을 처음 선보였다. 각각의 인덕션 사이에 빌트인 후드를 배치해 청소 편의와 디자인을 확보한 제품이다. 샤프와 베스텔은 칸마다 각기 다른 온도와 시간으로 설정해 서너 가지 요리를 동시에 할 수 있는 오븐으로 아예 즉석 요리 쇼를 진행해 눈길을 끌었다.
생활 속 소소한 불편을 해결해 준 섬세한 가전들도 돋보였다. 중국 로봇청소기 업체 로보락은 물걸레 겸용 로봇청소기 충전소에 세 칸으로 나뉜 박스를 설치했다. 한 칸에 깨끗한 물만 채워주면 물걸레 청소기가 알아서 걸레를 세척하고 더러운 물은 다른 칸으로 다시 빨아올린다. 나머지 한 칸은 청소기 필터 먼지를 빨아들이는 먼지 박스로, 최장 7주까지 비우지 않고도 사용할 수 있다.
독일 휴대용 태양광 패키지 업체 파워니스는 서류 가방처럼 들고 다니다 언제든 펼쳐서 충전할 수 있는 태양광 패널과 에너지저장장치를 선보였다. 웨슬리 송 파워니스 마케팅 디렉터는 “주로 가족이나 친구 단위 캠핑이나 스포츠 등 야외 활동 수요가 많다. 최근엔 우크라이나 전쟁이나 터키 지진 등 사고로 전력이 끊긴 지역이 많은 국가에서도 많이 판매됐다”고 말했다.
스타트업 전시관인 ‘IFA 넥스트’관에는 한국에서 온 스타트업들도 대거 자리를 차지했다. 고양이가 먹이를 먹는 동안 인바디를 체크해주는 서비스를 개발한 김대용 리틀캣 대표(CEO)는 “반려동물 체수분 측정을 통해 건강 상태를 알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사료 등 관련 제품 추천도 할 수 있다. 실제 해외 반려동물 사료 업체들과도 협업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총 방문객 18만여 명이 몰릴 것으로 전망되는 올해 IFA는 이날부터 5일까지 메세베를린에서 개최된다. 이색적인 제품과 혁신 기술이 각축을 벌이는 가운데 2000여 곳 참가업체들의 지향점은 ‘지속 가능한 미래’에 닿아 있었다.
곽도영 기자 now@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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