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마다 1000만명씩 죽는 이 나라…묘지 부족해지자 꺼내든 묘안은 [박민기의 월드버스]

박민기 기자(mkp@mk.co.kr) 2023. 9. 2. 09:12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美와 경쟁’ 중국, ‘디지털차이나’ 적극 추진
비석 세우는 ‘전통 묘지’도 점점 디지털화
작년 한해 中 연간 사망자 1040만명 달해
시신·유골 안치할 땅 부족에 정부 직접 나서
전통 방식 대비 3분의 1 가격 등 장점 많아
중국의 한 공동묘지를 찾은 조문객이 고개 숙여 인사하고 있다. [사진 출처 = 게티이미지뱅크]
전 세계를 무대로 미국과 패권 경쟁을 벌이고 있는 중국이 꺼내든 새로운 무기는 ‘디지털’입니다. 미·중 충돌이 점점 미래 산업을 위한 기술 싸움으로 번지고 있는 만큼 충분한 기술력을 확보해 앞으로의 디지털 경제를 이끌어나가겠다는 전략입니다. 중국 디지털 경제 산업 규모는 지난 2021년 45조5000억위안(약 8289조 원)으로 이미 미국에 이은 2위까지 올라왔습니다. 중국 공산당과 국무원은 오는 2035년까지 세계 최고 수준의 디지털화를 달성하겠다는 계획을 골자로 하는 ‘디지털 차이나’ 건설을 적극 추진 중입니다. 중국은 정치·경제·사회·문화·생태계 등 국민 일상과 직접 연관돼 있는 5대 영역에서 우선적인 디지털화를 추진하는 데 초점을 두고 있습니다.

최근 중국 내 디지털화가 가장 잘 진행되고 있는 분야는 경제입니다. 바이두와 텐센트 등 빅테크 기업들이 디지털 차이나 실현을 위해 인공지능(AI)과 정보기술(IT) 등 미래 산업 분야에서 괄목할 만한 성과를 내고 있습니다. 그러나 동시에 중국 사회에서도 디지털 혁신 바람이 불고 있습니다. 다만 중국 사회에 갑작스럽게 몰아친 디지털 혁신 주체는 첨단 기업이 아닌 상조 회사들입니다. 고인을 땅에 묻고 비석을 세우는 과거 전통적 형식의 장례 문화 대신 고인의 생전 사진 등을 스크린 등에 간소하게 전시하는 ‘디지털 묘지’가 새로운 장례 문화로 거듭나고 있는 것입니다.

과거 중국의 장례 절차는 까다로웠습니다. 누군가 사망하면 고인의 시신을 화장한 뒤 이를 묻고 비석을 세울 부지를 확보해야 했습니다. 이 같은 과정을 거쳐 묘지가 들어서면 유가족과 친구 등 연을 맺었던 사람들이 촛불을 밝히는 등 분향하고 고인을 기리는 것이 통상의 장례 모습입니다. 그러나 최근 중국 사회에서 새로운 장례 풍습이 생겨나고 있습니다. 고인을 화장한 뒤 땅 속에 묻는 대신 대도시 중심부에 설치된 마치 은행 금고처럼 생긴 ‘디지털 공동묘지’에 안치하는 것입니다. 고인의 디지털 공동묘지 앞에는 전통적 비석 대신 고인의 생전 사진과 생활 모습 등을 보여주는 작은 전광판이 설치됩니다.

최근 할머니를 떠나보낸 40대 중국 여성은 블룸버그와 인터뷰에서 “과거 형태의 공동묘지에 가면 비석만 덩그러니 있어서 같이 간 손주들이 고인의 생김새 등 아무 것도 알 수가 없었다”며 “그러나 디지털 묘지는 온 가족이 함께 모여 고인의 생전 모습을 보며 기억을 떠올릴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이처럼 중국 사회에서 새로운 장례 문화가 떠오른 가장 큰 원인으로는 인구 고령화와 급격한 사망자 수 증가에 따른 토지 부족 등이 지목됩니다. 중국 통계국에 따르면 지난해 중국 연간 사망자는 약 1040만 명으로 집계됐습니다. 이는 지난 2016년 사망자 수에 비해 6.7% 증가한 수치입니다. 중국 지방정부와 상조 회사들은 이 같은 문제에 직면하면서 다방면으로 새로운 방식의 장례 문화 도입을 시도하고 있습니다. 디지털 공동묘지는 이를 위한 대표적 혁신 중 하나입니다. 중국은 오는 2035년까지 전국에서 공동묘지가 차지하는 부지 면적을 현재의 약 70% 수준으로 줄여나가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유골이 안치된 디지털 묘지 내부 모습. [사지 출처 = 블룸버그]
사망자 급증으로 부족해진 부지 활용성을 높이자는 정부 취지와 소중한 존재였던 고인을 위해 조금 더 친숙하고 개인적인 장례 문화를 바라는 중국 국민들의 수요가 맞물리면서 디지털 공동묘지는 새로운 장례 트렌드로 자리 잡고 있습니다. 중국 베이징에 위치한 ‘주리 디지털 테크놀로지’는 장례 절차를 온라인 서비스로 대체하기 위해 주 정부와 협력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베이징이 디지털 장례 문화 안착을 시도한 첫 도시는 아닙니다. 지난해 8월 상하이는 상조 서비스 업체 ‘푸수위안 국제그룹’과 손을 잡고 디지털 묘지를 선보였습니다. 온라인에서도 고인을 추모할 수 있도록 고인의 생전 모습이 담긴 사진과 음성 등을 제공하면서 추억을 공유하는 형식입니다.

푸수위안의 진 레이이 부회장은 “고인의 생전 흔적을 모두 한 데 모아 유족들이 언제든 볼 수 있도록 하는 디지털 회고록을 만드는 것이 우리의 목표”라며 “이는 미래 세대가 고인이 어떤 사람이었는지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전했습니다.

디지털 묘지의 가장 큰 장점 중 하나는 바로 합리적인 가격입니다. 고인의 유가족이 만약 베이징에서 디지털 묘지를 조성하고 싶다면 평균 5만6000위안(약 1027만 원)의 비용이 필요합니다. 이는 베이징에서 비석을 세우는 전통적 방식의 묘지를 조성할 때 들어가는 비용의 약 3분의 1 수준입니다. 합리적 가격을 바라는 수요가 늘면서 올해 초부터 베이징에 준비된 약 7000개 디지털 묘지 중 500개 이상이 이미 판매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앞서 말한 것처럼 설치 공간 최소화로 전통 묘지보다 필요한 부지 면적을 대표 줄일 수 있다는 점도 최대 장점입니다. 디지털 묘지 1개당 크기가 20㎡에 그치기 때문입니다. 기존 비석과 묘지 6개가 조성될 수 있는 부지에 디지털 묘지는 약 150개가 설치될 수 있습니다.

디지털 묘지는 이처럼 중국 사회에 새로운 바람을 불러 일으키며 젊은 층의 큰 관심을 받고 있습니다. 약 14억 명 인구를 바탕으로 상조 서비스 수요 전 세계 1위를 기록하고 있는 중국시장을 디지털 묘지가 안정적으로 흡수한다면 그 어떤 산업보다 빠르게 사업을 확장할 수 있을 것으로 보입니다. 실제로 지난 2020년 2580억위안(약 47조2800억 원)이었던 디지털 묘지 시장 규모는 오는 2026년 4110억위안(약 75조3200억 원)까지 폭발적으로 성장할 거란 전망도 나옵니다. 그러나 아직 중국 국민 대다수 사이에서 죽음을 다룰 때 존중을 표하는 기존의 전통적 방식을 중시해야 한다는 인식이 만연한 만큼 이는 디지털 묘지가 앞으로 넘어야 할 숙제가 될 것으로 보입니다.

[매일 쫓기는 바쁜 일상 속에서도 알면 알수록 더 좋은 국제사회 소식. 전 세계가 주목하는 한 주의 가장 핫한 이슈만 골라 전해드립니다. 단 5분 투자로 그 주의 대화를 주도하는 ‘인싸’가 될 수 있습니다. 읽기만 하세요. 정리는 제가 해드릴게요. 박민기의 월드버스(World+Universe) 입니다.]

Copyright © 매일경제 & mk.co.kr.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