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킹맘은 집에 가라는 세상…덜 잔혹하게 만들어주는 것

한겨레 2023. 9. 2. 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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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진미의 TV 새로고침][황진미의 TV 새로고침]
티빙 ‘잔혹한 인턴’
티빙 제공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티빙 오리지널 ‘잔혹한 인턴’은 경력단절 여성을 주인공으로 한 오피스 드라마다. 라미란, 엄지원, 이종혁, 김원해 등 연기파 배우들의 호연이 극을 꽉 채운다. ‘막돼먹은 영애씨’(tvN, 2007~2019)를 만들었던 제작진의 연출이 맛깔스럽다. 특히 코미디적 요소를 적절히 활용하면서도, 현실을 깊숙이 비추는 문제의식이 놀랍다.

고해라(라미란)는 7년간 경력이 단절된 상품기획자로, 재취업을 위한 면접장에서 예전 동기였던 최지원(엄지원)을 면접관으로 만난다. 최지원은 은밀한 제안을 한다. “인턴으로 채용해줄 테니, 출산휴가와 육아휴직을 쓰려는 직원 두명에게 퇴직을 유도하면, 3개월 후 과장 자리를 주겠다”는 것.

드라마는 과거 장면을 통해 고해라와 최지원이 현재와 매우 상반된 캐릭터였음을 보여준다. 고해라는 회사 일과 자신의 성공을 중심에 둔 사람으로, 워킹맘들의 사정을 이해해주지 않았다. 오히려 ‘공사를 구분하지 못하는’ 워킹맘들로 인해 자신처럼 일에 전념하는 워킹맘들까지 욕을 먹는다며 더욱 엄격하게 굴었다. 그가 직장에 전념할 수 있었던 이유는 친정어머니가 육아를 책임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친정어머니가 쓰러지자 고해라는 퇴직을 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경력이 단절되었다.

최지원은 과거 워킹맘들의 어려움을 보살피고, 자신이 임신 포기각서를 쓰면 앞으로 다른 여성들도 불합리한 요구를 받게 된다며 저항할 만큼 여성 인권과 노동권을 아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등골을 뽑아 먹는 아비로 인해 결혼도 포기한 채 오직 회사에 매달리게 되었고, 관리자로 살아남게 되면서 의식이 바뀌었다. 그는 “출산휴가·육아휴직은 나라에선 쓰라고 되어 있지만, 회사 입장에선 맡아놓은 빈자리라 충원하기도 애매하고, 휴직 기간 중 다른 직원들에게 업무가 가중되고, 어떤 이들에겐 쓸 기회조차 없는, 불합리하고 이기적인 제도”라며 일갈한다.

티빙 제공

고해라와 최지원의 과거와 현재의 입장이 역전된 것도 흥미롭지만, 고해라가 입사 후 심경이 달라지는 것도 흥미로운 지점이다. 고해라는 최지원의 제안을 받아들여 입사했지만, 이 대리의 퇴직을 겪으면서 죄책감을 느낀다. 또한 금 과장과 관계가 두터워지면서, 차츰 업무 자체를 통해 인정받겠다는 마음이 생긴다. 고해라가 금 과장의 퇴직을 유도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휴직을 말리는 것은 최지원의 뜻을 벗어난 행위이다. 최지원은 고해라의 절박함을 믿는다고 했지만, 고해라는 남편의 퇴직이라는 더 큰 절박함이 있었음에도 금 과장을 돕는다. 그러나 이러한 주체적인 선택으로 인해 고해라는 해고된다. 그리고 상징적이게도! 워킹맘 해고 반대 시위를 하다 쓰러진 워킹맘을 구한 영웅적인 행위로 회사에 복귀한다. 첫번째 입사는 워킹맘을 잘라내는 은밀한 칼의 용도였지만, 두번째 입사는 워킹맘을 구한 워킹맘으로 갔으니, 앞으로 그의 입지가 달라질 것이다.

드라마는 일과 재생산 앞에 선 다양한 여성들의 삶을 현실적으로 보여준다. 출산휴가, 육아휴직 제도가 노동 현장에서 실제로 어떻게 작동하는지 자세히 볼 필요가 있다. 이 대리는 임신 중 힘 쓰는 일을 할 수 없고 출산휴가 쓰는 것이 동료들에게 폐가 될까 노심초사한다. 급기야 만삭의 배로 마라톤장까지 가서 “청춘을 다 바친 회사인데 아직 태어나지도 않은 아이 때문에, 이렇게 영향을 받아야겠냐?”며 동동거리다 하혈을 한다. 조산까지 한 그는 “내 발로 나갔다”며 자신의 결단을 강조하지만, 퇴직 후 그를 기다리는 것은 고해라와 친구들이 보여주고 있는 경력단절 여성의 삶이다. ‘초1맘’ 금 과장은 또 어떤가. 아들의 등하교를 챙길 수 없고, 집에 가면 엉망진창인 집구석을 마주해야 한다. 3개 국어 능력자 금 과장이지만, 육아휴직 1년을 쓰려니 복직이 될까 불안해 분열 직전이다. 아이는 금방 자라고, 잠깐의 돌봄 공백을 메울 도움이 필요하지만, 육아휴직과 퇴직 사이에 몰아놓고 무책임하다, 이기적이다 비난을 퍼붓는다.

이처럼 생생한 묘사가 단지 묘사의 나열로 그치는 것이 아니다. 이 많은 여자의 삶이 어떤 식으로든 서로 연결되고 중첩되어 있다는 역동적인 느낌을 준다. 드라마는 최지원의 제안이 상징하는 ‘여자의 적은 여자’의 구도로 출발하는 듯했지만, 다른 길을 간다. 최지원과 고해라의 과거 입장이 역전되어 있고 고해라가 내면의 갈등을 통해 다른 선택을 하듯, 일과 재생산을 둘러싼 각기 다른 여성의 입장이 있을 수 있으며 동일인의 입장도 상황과 각성에 따라 달라질 수 있음을 분명히 한다. 그러니 생각이 다르다고 적대할 필요가 없다. 고해라가 금 과장에게 그러했듯이, 내 곁의 여성을 적이나 남이 아닌 ‘과거의 나’이거나 ‘나의 친구들’과 같은 사람이라고 여기는 마음이 있다면, 연대가 가능하다. 그리하면 조금은 덜 잔혹한 삶일 수 있다.

대중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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