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범도 장군 흉상 철거는 불의”…당혹감·눈물 보인 고려인 후손
박따지아나 고려인 후손재단 이사장
국방부가 지난 31일 육군사관학교에 있는 홍범도 장군 흉상을 이전하기로 결정했다. 극우적 색깔론이라는 비판에도 무장독립운동사에 길이 남을 봉오동·청산리 전투를 승리로 이끈 홍 장군을 ‘소련 공산당 가입 이력’ 등을 빌미 삼아 육사에서 지워버린 것이다.
소련의 강제이주로 카자흐스탄으로 쫓겨온 홍 장군과 고락을 함께해온 독립투사들, 그들의 후손은 홍 장군을 정신적 지주로 기리며 이국땅에서 홍 장군 묘소를 돌보고, 2021년 홍 장군 유해 국내 봉환에도 발 벗고 뛰었다.
이들은 흉상 철거를 어떻게 생각할까. 카자흐스탄 알마티에 거주하는 박따지아나 고려인 독립유공자후손회장(후손재단 이사장)과 이날 서면 인터뷰를 했다. 그는 고려인 독립운동의 대부로 평가받는 최재형 선생의 증손녀다. 그는 “일제강점기에 연해주로 가서 독립운동에 참여한 애국지사들에게는 소련과 협력하는 것 외에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며 “어쩔 수 없는 선택인 소련 공산당 입당은 조국에 대한 홍 장군의 애국심을 손상할 수 없고 조선 독립을 위한 투사들의 공로와 조선 민족의 행복과 해방을 위한 사심 없는 투쟁 업적에 누를 끼치지도 않았다”고 강조했다. 박 회장은 러시아어로 답변했고 인터뷰 진행 과정에서 김상욱 알마티 고려문화원장의 도움을 받았다.
―홍범도 장군 흉상 철거 논란을 어떻게 알게 됐나요?
“한국 뉴스를 전하는 인스타그램(vsya_korea)과 러시아 타스 통신, 온라인 매체 등을 통해 알았습니다.”
―소식을 들었을 때 어떤 생각이 들었나요?
“육사에 설치한 홍범도 장군의 흉상, 또 김좌진·지청천·이범석·이회영 등 항일 독립영웅의 흉상을 철거하려 한다는 것을 알고 당혹감이 일었습니다. 재외 동포들은 한국 내부의 이념적, 정치적 문제에 어떤 식으로든 영향을 미칠 권리가 없습니다. 그러나 저는 이런 결정에 진심으로 안타까워하고 있고 이 문제에 대한 의견을 표명하고 싶습니다.”
―어떤 의견입니까?
“홍범도 장군이 공산주의자였는지 아니었는지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중요한 건 그가 조국 독립, 우리 동포의 행복과 민족의 해방을 위해 싸운 독립투사라는 점, 그가 일본군과의 여러 전투에서 승리했다는 것입니다. 봉오동 전투에서 홍범도 장군이, 독립군이 거둔 빛나는 승리는 우리 민족해방운동사에서 의미 있는 사건의 하나로 기록돼 있습니다. 항일유격대 역사상 가장 큰 승리 중 하나가 청산리 대첩인데, 김좌진 장군이 이끄는 북로군정서와 홍범도 장군의 대한독립군이 연합해 일본제국군을 상대로 대승한 것입니다. 조선 민중들의 믿음과 희망을 강화한 것은 이 전투에서 거둔 더 큰 승리였습니다. 독립운동가들은 자신의 안위와 생명을 걸고 민족해방 투쟁에 참여했다는 이유로 체포·투옥·토벌 등 고난과 박해를 받았습니다. 온갖 숙청과 탄압도 겪었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죽은 지 수십년이 지난 지금, 그들의 공로를 재평가하고 규탄하려는 시도가 일어나고 있습니다. 단지 소련에서 살았다는 이유 때문입니다. 이러한 불의를 생각하면 눈물이 핑 돕니다. 민주적이고 자주적이며 번영하는 대한민국의 건국은 이런 우리 선열들의 피와 땀 위에 세워졌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상기시키고 싶습니다. 독립을 향한 그들의 영웅적 헌신과 사심 없는 투쟁을 기억하고 그들에게 감사하고 찬사를 보내는 인간적 감정을 표출할 필요가 있습니다.”
―정부는 국군 장교를 양성하는 육사에 소련 공산당 가입 이력이 있는 홍 장군 흉상을 둘 수 없다고 하는데요?
“홍 장군이 소련 공산당에 입당한 것은 본질적인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그게 조국의 독립을 위한 전설적인 공적을 망각하는 이유가 될 수는 없습니다. 카자흐스탄에 독립운동가 후손들이 살고 있으며, 그 (조상) 중 상당수가 공산주의자였다는 점을 주목해야 합니다. 오성묵·채성룡·최고려·김미하일·최성학 등 일제강점기 연해주로 가서 독립운동에 참여한 애국지사들에겐 선택의 여지가 없었습니다. 소련과 협력하는 것 외에는요.”
박따지아나 회장은 항일 독립운동에서 큰 족적을 남겼지만 소련 공산당에 가입한 이들의 이름과 그들의 항일 투쟁 공적을 상세히 나열했다.
“연해주로 달려간 우국지사들은 조국을 일본 식민통치로부터 해방하려 러시아의 도움에 의지했습니다. 연해주 동포들과 조선에서 온 이민자들은 조선인이 동아시아 혁명과 세계 혁명 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할 것을 결정했습니다. 홍범도 장군도 일제에 맞서는 조선 민족해방투쟁의 거점이 된 러시아에서 여러 조직 활동에 참여했고, 1927년 소련 공산당의 당원이 되었습니다. 그의 공산당 입당은 독립을 위해 투사들을 지원하는 국가(러시아)의 민주주의 체제 건설에 참여하려는 열망으로 설명됐습니다. 러시아에 기반을 마련하고 살기 위해서는 소련 당국과 협력하고 그 국가의 정치, 사회, 경제 활동에 참여해야 했습니다.”
―2021년 8월, 정부(문재인 정부)는 홍범도 장군 유해를 봉환해 대전 국립현충원에 안장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역할을 하셨다고 알고 있습니다.
“홍 장군의 묘지는 그의 아내와 아들이 사망하면서 제대로 관리되지 않은 채 방치돼 있었습니다. 카자흐스탄에 사는 독립운동가 후손들은 전설적인 홍범도 장군을 기리며 민족 영웅으로 추모했습니다. 항일 유격투쟁의 공로로 홍범도 장군은 1962년 대한민국 정부로부터 건국훈장을 받았습니다. 1996년 5월엔 크즐오르다시 홍범도 장군 동상 뒤에 (소련의 정치탄압에 희생된 홍 장군을 비롯한 고려인을 기리는) ‘정치탄압 희생자 추모비’가 건립되었습니다. 해마다 대한민국 대표들이 이곳을 방문해 홍범도 장군을 추모했습니다. 저는 2019년 8월 자손재단 이사장으로서 김대식 전 주카자흐스탄 대사에게 홍 장군 유해를 모국으로 봉환할 것을 요청하는 서한을 작성해 보냈습니다. 고려인협회와 현지 고려인 동포들도 이 제안을 지지했습니다. 민족의 전설적 영웅을 합당하게 예우하기 위해, 현세대와 미래 세대가 홍범도 장군에게 고마운 마음을 갖고 그를 기억하며 살아갈 수 있도록 그의 유해를 대전 현충원에 안장한 것입니다.”
―홍 장군은 강제이주된 카자흐스탄에서 극장 문지기를 하며 노년을 보낸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1937년 8월 21일 인민위원회와 볼셰비키 전소공산당 중앙위원회의 공동 결의안 제1428-326호에 근거한 ‘극동 국경 지역에서 조선인의 추방에 관하여’에 따르면, 고려인 17만2천명이 극동 국경 지역에서 카자흐스탄과 중앙아시아의 황량한 사막과 사람이 살지 않는 지역으로 강제 이주됐습니다. 1937년 홍범도 장군은 연해주의 다른 한국인들과 함께 탄압을 받고 카자흐스탄으로 추방됐습니다. 크즐오르다시에서 극장 문지기로 일했습니다. 홍 장군의 소련 공산당 입당은 조국에 대한 애국심을 손상할 수 없고, 조선 독립을 위한 투사들의 공로와 업적, 조선 민족의 행복과 해방을 위한 사심 없는 투쟁업적에 누를 끼치지도 않았습니다. 흉상 철거 논리와 명분은 설득력이 없습니다.”
―항일 독립운동의 대부로 불리는 최재형 선생의 후손으로 알고 있습니다.
“최재형 선생은 연해주와 아무르 지역 애국지사들 사이에서 민족해방을 위한 투쟁을 이끈 지도자입니다. 저는 최재형 선생의 증손녀입니다. 저의 어머니 김올가는 최재형 선생의 딸인 최나데즈다의 딸입니다. 최재형 선생은 비록 젊은 나이에 조국을 떠났음에도 자신이 이룬 부와 사회적 지위로 늘 동포들의 운명과 조국의 독립, 민족의 자주권과 국권 회복을 위해 헌신했습니다. 1906년 포시에트에서 최초의 항일독립부대를 조직하고 돈과 무기를 모아 그들을 무장시키고 조선으로 파견해 항일 투쟁을 수행했습니다. 1919년 3월엔 대한국민회의(러시아 내 한인 애국자들이 창설한 최초의 조선 정부 기관) 외무부 장관으로 임명됐고, 1919년 4월엔 상하이 임시정부 재무장관으로 선출됐습니다”
―독립운동가의 후손으로서 정부에 하실 말씀이 있나요?
“저는 독립운동가의 역할과 의의, 공로에 대한 재평가를 위해 현재 진행 중인 (정부의) 시도가 한국 국민과 국외 동포들의 지지를 받지 못하고 있다고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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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재형 가짜 후손’ 사건으로 마음 고생
―현재 카자흐스탄의 독립투사 후손들을 하나로 묶는 공익재단 회장을 맡고 계시는데요.
“2019년에 공익재단 독립유공자후손회 회장으로 당선됐습니다. 저는 72살이지만 550여명의 카자흐스탄 독립운동가들의 후손을 하나로 묶는 후손재단의 이사장직도 맡고 있습니다. 카자흐스탄 거주 항일독립투사 후손들은 현 세대와 미래 세대에 대한 책임감을 갖고 조국의 해방에 목숨을 걸고 헌신한 영웅적인 선열들의 기억하고 선양하기 위한 활동을 합니다. 후손재단은 해마다 대한민국 보훈부의 지원을 받아 3·1운동기념일과 한국독립운동가 추모의 날을 기념하는 행사도 개최합니다.”
―최재형 선생의 유해는 아직도 발견되지 않았고 그 때문에 가짜 묘 논란 등 고통도 많았다고 들었습니다.
”1920년 4월7일, 최재형 선생과 동료들은 니콜스크-우수리스크 인근 언덕 기슭에서 일본군에 처형됐습니다. 1918~1922년에 조선인들이 묻히고, 고문·총살당했던 공동묘지에 대해서는 기록이 보존되지 않았습니다. 1935년부터 조선인 묘지 자리에 시립 석유 저장소가 세워졌습니다. 최재형 선생 유해는 아직 발견되지 않았습니다. 세상을 떠난 지 42년 후인 1962년 대한민국 정부로부터 ‘건국훈장’을 받았습니다. 8년 후인 1970년 11월17일에는 국립서울현충원 애국지사 108호에 가묘를 조성하면서 최규흠이 후손으로 등록했어요. 그런데 1995년 최재형의 딸 엘리자베스와 손자 최발렌틴이 독립운동가 후손 초청 사업의 일환으로 한국에 왔을 때, 최규흠은 가짜 후손이고 그 가짜 후손이 30년 이상 유족 후손으로서 연금을 받고 있었던 사실이 밝혀졌습니다. 그 뒤 최발렌틴이 2009년 국립서울현충원을 찾아갔는데 2006년에 108호 무덤이 철거된 사실을 알게 됐습니다. 통탄스러웠습니다. 모든 우리 최재형 후손들도 많이 속상했습니다. 최재형 기념재단과 그 후손들이 국립서울현충원 애국지사 108호에 있는 최재형 묘소를 복원해 줄 것을 정부에 요청했습니다.”
―최근 최재형 선생의 아내 최엘레나의 유해가 발견돼 한국으로 옮겨 국립현충원에 안장한 것으로 압니다.
“최재형 선생의 아내 최 엘레나 페트로브나는 스탈린의 한인 강제이주 정책의 희생자가 됐습니다. 그는 1952년 7월7일에 사망해 키르기스탄 비슈케크시의 묘지에 묻혔습니다. 오랫동안 그의 무덤은 버려지고 방치됐습니다. 최재형 기념회(회장 문영숙)는 키르기스탄 비슈케크 묘지에서 최엘레나 페트로브나의 유해를 가져오고 비슈케크에 있는 최재형 자택 뜰의 흙도 반출을요청했습니다. 그리고 올해 7월31일, 최 엘레나의 유해가 비슈케크의 묘지에서 수습됐고, 지난 8월3일엔 옛 무덤이 있던 그 자리에 기념비가 세워졌습니다. 이후 추모식과 송별식을 거행했고, 8월5일 최엘레나의 유해를 한국으로 옮겨 국립서울현충원에 최재형 부부 묘를 복원하고 안장했습니다. 최재형 선생 후손으로, 또 카자흐스탄 독립운동가의 후손들을 하나로 묶어주는 후손재단을 대표해 독립운동가들을 기억하고 존경하는 대한민국 국민 여러분께 깊이 감사드립니다. (묘 복원에) 조직적·재정적 지원을 해주신 국가보훈부에도 감사드립니다.”
신승근 기자 skshi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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