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물 사이에 피어난 장미' 하이키···원래 '애슬레저 돌'이었다고? [허지영의 케해석]
주목할만한 케이팝 아티스트, 허지영 기자가 케-해석 해봤습니다!
'그냥 가던 길 좀 가 / 어렵게 나왔잖아 / 악착같이 살잖아 / 나는 건물 사이에 피어난 장미'
지난 3월 역주행에 성공한 '건물 사이에 피어난 장미'는 차갑고 어려운 도시에서 꿈과 희망을 품은 이에게 전하는 응원과 위로의 메시지를 담은 곡이다. 곡은 서정적인 가사 말과 울림을 주는 멜로디로 많은 이에게 사랑받았다. 하이키는 이 곡으로 '중소의 기적'이라는 타이틀을 달았다. 그러나 하이키가 데뷔할 때부터 이처럼 감성적인 무드로 대중의 마음을 어루만지겠다는 포부를 내세운 건 아니었다. 아름다움을 위해 '운동'을 외치던 하이키가 내면을 들여다보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멤버 한 차례 변경 후 4인조로 고정...그림체 다른 얼굴 매력 = 하이키(H1-KEY)는 지난해 1월 데뷔한 4인조 걸그룹이다. 2021년 설립된 신생 기획사 GLG엔터테인먼트 소속으로, 그룹명은 '밝은'이라는 뉘앙스를 가진 영어단어 'high-key'에서 따왔다. 본디 데뷔 멤버는 서이(23), 리이나(22), 옐(18), 시탈라(27)였으나, 지난해 5월 개인 사정으로 시탈라가 탈퇴했다. 이후 맥시 싱글 '런(RUN)' 때부터 휘서(21)가 합류해 지금의 4인조로 정착했다.
6인 이상의 다인원 그룹이 아니다 보니 멤버들 각자의 매력도 뚜렷하게 드러나는 편이다. 특히 네 멤버 각각의 비주얼 개성이 돋보인다. 리더 서이는 뚜렷하고 큰 눈, 부드러운 인상으로 팀 내 비주얼 멤버로 꼽힌다. 서이가 '온미녀'라면 리이나는 '냉미녀'다. 리이나는 흰 피부, 짙은 쌍커풀, 큰 키로 팬들에게 '배우상'으로 불린다. 휘서는 서이와 리이나에 비하면 귀여운 인상이지만, 눈초리를 활용한 짙은 메이크업을 잘 소화해 다양한 이미지 변화를 주는 멤버다. 막내 옐은 옆으로 길게 트인 눈매와 웃을 때 시원하게 벌어지는 입이 매력 포인트로 꼽힌다.
하이키의 또 다른 비주얼 특징은, 멤버들 모두 상당한 장신이라는 점이다. 멤버 중 휘서가 제일 키가 작지만, 이마저도 169cm다. 세 멤버가 모두 170cm가 넘는다. 덕분에 무대에서 튀는 멤버 없이 조화로운 안무 동선이 완성된다. 이들이 추구하는 건강미와도 잘 어울린다. 테니스에서 착안한 안무와 의상을 활용한 활동곡 '런' 의 무대는 마치 네 명의 테니스 선수가 춤을 추는 듯한 느낌을 줬다. 네 명 모두 운동 선수급의 우수한 피지컬을 가진 덕이다.
◇애슬레저 콘셉트 내려놓고 내면에 집중...영케이 만남 '신의 한 수' = 하이키는 1년여 만에 콘셉트가 크게 바뀐 그룹이다. 데뷔 당시 이들의 콘셉트는 '당당하고 건강한 아름다움'이었고, 이를 표현하기 위해 선택한 수단이 '운동'이었다. 데뷔 싱글 '애슬레틱 걸(Athletic Girl)'은 이들의 콘셉트를 아주 명확하게, 직관적으로 보여줬다. '운동하는 여성'이라는 곡 제목, 브라톱, 바이크 쇼츠 등 운동복을 연상시키는 의상, 스쿼트를 하는듯한 안무, '키워 맘의 muscle / 땀방울 흘러 내려올 때 얼핏 드러난 body silhouette' 등 가사도 운동에 맞춰져 있다.
두 번째 앨범인 '런'에서도 이 같은 콘셉트는 유효했다. 테니스 라켓, 농구 유니폼, 스포츠 아대 등 안무, 음악, 스타일링 모든 면에 스포티함이 묻어났다. 조깅을 주제로 한 동명의 타이틀곡과 더불어 수록곡인 '캐치 앤 릴리즈(Catch 'n' Release)'는 탄탄한 몸매와 다이어트에 관한 고민을 가사 말에 녹여내, 하이키의 정체성을 더욱 뚜렷하게 제시했다.
그러나 이런 콘셉트는 분명히 한계가 있었다. 건강미를 추구한다는 점에선 정체성이 뚜렷했으나, 퍼포먼스, 스타일링 등 외적인 콘셉트를 스포츠에 맞춰버리다 보니 변주가 쉽지 않았다. 하이키는 정체성을 지키며 다양한 변화를 시도하기 위해 초점을 바꿨다. 데뷔 때부터 가져가던 '건강한 아름다움'이라는 메시지의 초점을 외면이 아닌 내면에 맞춘 것이다. 그 결과 탄생한 곡이 지난 1월에 발매된 미니 1집 '로즈 블러썸(Rose Blossom)'의 타이틀곡 '건물에 사이에 피어난 장미'(이하, '건사피장')다.
결과는 성공적이었다. 발매 직후 '정주행'한 건 아니지만, 노래가 나온 지 두 달 정도 됐을 지난 2월 말 국내 음원 스트리밍 사이트 멜론의 '톱100' 차트에 들어섰다. 3월에 접어들면서는 멜론·지니·플로 등 주요 음원 사이트의 10~20위권까지 올라오더니, 10일경에는 벅스에서 실시간 순위 1위를 기록했다. 계기는 러블리즈 이미주의 홍보였다. 이미주는 지난 1월과 2월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건사피장'을 추천하는가 하면, 어반자카파 조현아가 운영하는 유튜브 채널에 출연해 "'건사피장'을 듣고 눈물을 흘렸다. 정말 위로를 받았다"라고 극찬한 바 있다.
그러나 '건사피장'이 역주행할 수 있었던 가장 큰 힘은 음악성이다. 쉬운 멜로디와 따뜻한 가사말이 대중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좋은 음악으로 하이키의 성공적인 변화에 크게 일조한 인물은 '건사피장'을 만든 작곡가 홍지상과 데이식스(DAY6) 영케이(YoungK)다. 두 사람의 조합은 팬들에게는 '믿고 듣는' 조합으로 유명하다. 데이식스의 데뷔 연도인 2015년부터 '예뻤어', '한 페이지가 될 수 있게', '행복했던 날들이었다' 등 데이식스의 숱한 히트곡을 만들어 낸 조합이다. 완성도 높은 작가진과 함께한 하이키도 크게 성장했다. 이들은 건강한 이미지와 뭉클한 위로를 동시에 가져가며 성공적인 콘셉트 변주를 이끌어 냈고, 이는 '중소의 기적', '역주행'으로 이어졌다.
◇신보 '서울 드리밍'...내실 다진 하이키의 단단해진 희망 = 30일 발매한 미니 2집 '서울 드리밍(Seoul Dreaming)'은 '건사피장'의 감정을 잇는다. '건사피장'이 현재 맞닥뜨린 고난을 어떻게든 버티고 이겨내는 단계라면, '서울 드리밍'은 그 터널의 끝에서 찾은 소중한 희망을 지켜 나가는 단계다. 타이틀곡은 '서울 (Such a Beautiful Day)', '불빛을 꺼트리지 마 (Time to Shine)' 두 곡이다. '서울'은 실재하는 도시 서울을 직접 제시해 몰입감을 유도했다. 하이키는 이 곡을 통해 치열한 도시에서 살아가는 모든 이를 위로하겠다는 목표다. 또 다른 타이틀곡 '불빛을 꺼트리지 마' 역시 '괜찮아'라는 위로를 전하는 곡이다. 리이나의 표현에 따르면 '서울 야경의 잔상이 남는 듯한' 곡이다.
두 곡 모두 '건사피장'으로 시너지를 입증한 홍지상과 영케이가 작업했다. 특히 '서울'은 하이키가 의도하는 뭉클한 감성이 잘 드러난다. 레트로한 감성을 불러일으키는 신스팝 사운드와 발랄하면서도 아련한 느낌의 신시사이저 음이 잘 어우러져 아련하면서도 산뜻하다. '지키고 싶은 희망을 자꾸 재우고 있어 / 모든 게 반짝여 홀릴 듯이 / 난 그 불빛을 따라 춤을 추네' 등 눈앞에 보이는 듯 선명하게 쓰인 영케이의 가사, 깔끔한 하이키 네 명의 보컬이 어우러져 담백하게 리스너의 마음을 달랜다.
멤버들의 무대 소화력도 '건사피장'보다 발전했다. 2년 차 아이돌이지만 제각기 내공이 쌓인 덕이다. 특히 Mnet '퀸덤퍼즐'에 출연한 멤버들의 성장이 기대된다. 휘서는 시원시원한 보컬 실력을 인정받아 '퀸덤퍼즐' 최종 순위 1위에 오르는 겹경사를 누리기도 했다. 리이나는 중도 탈락했지만, '퀸덤퍼즐'로 인해 무대에 임하는 태도 자체가 달라졌다며 이번 컴백을 남다른 마음가짐으로 준비했다고 밝히기도 했다. 무엇보다 멤버들은 '건사피장'을 통해 '우리가 노래를 부르며 받은 위로를 대중에게도 전해주겠다'는 단단하고도 명확한 목표점을 설정했다. '중소의 기적'이 '우리 모두의 기적'으로 느껴지는 이유다.
허지영 기자 heol@sedaily.comCopyright © 서울경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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