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REND KEYWORD 11
서울문화사 2023. 9. 2.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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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질에 충실한 실루엣, 익숙한 요소들의 전혀 새로운 시도가 덤덤하게 어우러진 가을/겨울의 키워드.
ORDINARY SKIRT
어느새 남자들의 스커트가 익숙해졌다. 마치 헐렁한 쇼츠를 입은 것처럼 그들의 스커트는 요상하거나 유난스러울 것 하나 없이 편안해 보였다. 대체로 무릎 아래의 길이. 어린 시절 노스탤지어에서 영감을 얻은 에트로 컬렉션은 타탄 체크무늬, 양모 소재 등 담요를 두른 듯 투박한 실루엣의 스커트에 벌키한 니트 양말, 클로그를 매치해 이질감 없이 푸근한 무드였다. 땅에 닿을 듯 좁고 긴 포멀한 디자인의 스커트에 스포티한 럭비 셔츠를 거리낌 없이 매치한 구찌 룩도 눈여겨볼 부분. 꾸레주, 질 샌더와 같이 동일한 소재나 색의 팬츠와 레이어링하거나, 데님 팬츠 위에 킬트 스타일의 롱스커트를 무심하게 두른 에트로의 스타일링이라면 지금 당장이라도 어렵지 않다. 이제 루도빅의 아찔한 미니스커트, 비범한 오라의 릭 오웬스 미디스커트도 제법 놀랍지 않은 수준.
NEW CLASSIC BOMBER
오버사이즈 보머 재킷을 새로운 클래식이라 칭해도 과언이 아닐 거다. 이번 시즌엔 특히 새로운 오리지널 스타일의 풍만한 볼륨감을 기반으로 소재와 형태를 다양게 매치한 보머 재킷들이 눈에 띄었다. 대표적으로 프라다는 오렌지색 안감, 올리브 그린과 짙은 네이비 컬러의 지극히 클래식한 밀리터리 보머 재킷을 커다란 풍선처럼 부푼 오버사이즈 디자인, 혹은 아슬아슬하게 허리에 닿는 쇼트 형태로 선보였는데, 폭이 좁고 매끈한 블랙 팬츠를 매치해 볼륨감을 더 강조했다. 구찌의 보머 재킷도 유난히 짧고 빵빵한 볼륨감을 살린 밀리터리 디자인. 그런가 하면 릭 오웬스는 뾰족하게 솟아난 어깨, 오버사이즈, 빅토리아 시대의 꽉 막힌 잣대가 엿보이는 의복에서 착안한 날카로운 어깨와 높고 꽉 끼는 허리 실루엣 등 정체성을 두루 반영한 기묘한 모양새의 보머 재킷들을 선보였다.
LONG & LEAN
바닥에 닿을 듯 길고 우아하게 흐르는 롱 코트, 모델들의 가느다란 보디라인을 아슬아슬하게 감싼 튜닉 드레스 등 생 로랑의 절제된 실루엣의 검은 오라는 실로 강렬했다. 비로소 이불을 뒤집어쓴 것 같던 오버사이즈를 탈피하고, 좁고 긴 실루엣에 주목해야 함이 명백해졌다. 드레스 형태의 튜닉, 땅에 닿을 듯한 코트 등 상의에서 발끝까지 간결하고 길게 이어지는 실루엣이 주를 이뤘다. 보테가 베네타는 단정하게 타이업한 셔츠 위에 튜닉 형태의 니트 드레스를 레이어링했고, 그 외에도 구찌, 프라다, 릭 오웬스 등 다수의 컬렉션에서 좁고 긴 코트, 종아리를 훌쩍 덮는 튜닉이 대거 등장했다.
PURPLE RAIN
대담한 빨간색과 파란색의 서늘한 고요가 혼재한 보라색이 이번 시즌 가장 뜨거운 컬러가 될 전망이다. 대표적으로 엠포리오 아르마니 컬렉션에서는 시어링 재킷과 피코트 같은 고전적인 아우터에 의외로 쨍한 채도의 보라색을 입혔다. 이브닝 무드의 벨벳 블라우스와 턱시도 재킷에는 침잠한 보라색에 반짝이는 스톤 장식을 촘촘하게 채워 특유의 중후한 무드를 자아냈다. 키코 코스타디노브와 JW 앤더슨 컬렉션에 등장한 퍼플 룩은 한편으로는 고루하다 느껴졌던 보라색에 대한 선입견을 환기시키기에 충분했다. 그럼에도 무작정 시도하기엔 난이도가 상당하다. 드리스 반 노튼, 릭 오웬스 컬렉션에 등장한 룩처럼 비슷한 톤의 퍼플과 브라운의 매치가 현실적인 대안이 될 테니 참고할 것.
MATRIX COAT
워쇼스키 자매의 SF 영화 <매트릭스>는 영화뿐 아니라 패션에도 고전적인 코드로 작용한다. 아스팔트 도시에 무심하게 나부끼는 디스토피아적 롱 코트는 이번 시즌 눈에 띄는 아이템. 블랙 선글라스에 가죽 장갑, 가죽 트렌치코트까지 치밀하게 올 블랙으로 완성한 돌체앤가바나의 룩은 누가 봐도 비밀요원처럼 보였고, 생 로랑의 페이턴트와 가죽 트렌치코트 역시 등장만으로 압도적이었다. JW 앤더슨과 로에베, 베르사체, 프라다에서도 근미래를 배경으로 한 누아르 영화에서 영감을 받은 것 같은 묵직하고 수상한 코트 룩을 소개했다.
THE POWER PUFF
기록적인 더위에 시달린 여름 이후에는 혹독한 추위가 기다리고 있을 거라는 어떤 암시. 이런 잔인한 속삭임에 응답한 걸까. 런웨이 곳곳에선 따뜻하고 포근한 퍼프들이 더욱 볼록하게 부풀어 올랐다. 로에베와 생 로랑은 이불 품에 안긴 것 같은 푸퍼 패딩을 선보였다. 남다른 부피지만 일상에서도 가뿐하게 입을 수 있는 디자인으로. 몇몇은 상상력을 불어넣어 존재감을 커다랗게 드러냈다. 마치 쿠션을 입은 듯한 프라다부터 보디 필로를 연상시키는 릭 오웬스의 패딩, 악몽을 꾼 소년처럼 아예 베개를 끌어안고 등장한 JW 앤더슨까지. 아늑한 침대를 해체한 것 같은 파워 퍼프가 풍성한 판타지를 잔뜩 싣고 겨울의 문을 두드린다.
THE GRUNGECORE
기본에 충실하고 담백한 올드머니 스타일, 콰이어트 럭셔리에 대한 양극단의 트렌드 그런지코어 역시 대세다. 구찌 런웨이에 등장한 늘어진 니트, 체크무늬 플란넬, 빈티지한 청바지는 영원한 젊음의 상징, 커트 코베인의 록 시크 스타일을 떠올리게 했다. 와이프로젝트, 디젤, 준지 컬렉션은 공통적으로 난해할 정도로 찢어진 데님, 표백된 후디와 뒤틀린 실루엣까지 온전한 것이 하나도 없는 반항적인 룩들을 내세웠다. 소재와 패턴의 믹스 매치가 능란한 지방시 컬렉션은 불규칙하고 투박해 보이지만 치밀한 레이어링 공식을 유지했다는 점이 흥미롭다. 옷장에 오래 묵혀 있던 플란넬 체크 셔츠와 올 풀린 카디건, 찢어진 청바지를 발굴했다면 기존의 문법에서 벗어난 대담한 스타일링이 핵심이다.
STEREOTYPE TAILORING
프라다 컬렉션은 남성복의 본질과 형태에 집중했던 기존의 아카이브를 다시 런웨이에 올렸다. 카디건과 수트부터 라프 시몬스의 아카이브인까지 현실적인 아우터들에 사소한 기교를 곁들인 룩들로 채운 프라다 쇼의 오프닝은 블랙 테일러링 수트가 장식했다. 이처럼 간결하고 만듦새 좋은 테일러링은 다수의 브랜드에 만연했다. 지방시의 절도 있고 단단한 블랙 수트, 빈틈없이 유려한 에르메스와 알렉산더 맥퀸의 수트, 조르지오 아르마니와 보테가 베네타의 클래식한 타이업 수트까지 각기 다른 매력의 완전무결한 블랙 수트가 가장 대표적이었다. 펑크적이고 휘황한 비비안 웨스트우드조차 정제된 블랙 수트를 내놓았으니 분명 지금은 정통한 테일러링으로 회귀해야 할 때다.
GARNISH BEANIE
머리카락이 쭈뼛 서는 매서운 추위엔 옷깃을 여미는 대신 비니를 쓴다. 기능성과 심미성을 두루 갖춘 이 아이템은 사시사철 쓸모 있지만 그중 으뜸은 역시 겨울이다. 추운 날에 즐겨 입는 모든 소재와 잘 어울리고 어떤 스타일도 쉽게 흡수하는 소화력을 지녔기 때문이다. 구찌는 컬렉션의 반 이상을 짧은 쇼트 비니와 함께해 비니 활용의 진수를 뽐냈으며, 겐조와 아크네 스튜디오는 이어 플랩을 더해 보온성은 물론 귀여움까지 장착한 비니를 선보였다. 조금 더 개성 있는 디자인을 원한다면 키코 코스타디노브의 물결 모양 비니를 골라보는 것도 좋겠다. 색색의 고명처럼 머리에 비니를 얹으면 룩에 확실한 마침표를 찍어줄 것이 틀림없을 테니까.
COLOSSAL COLLARS
칼라의 활약은 1970년대를 풍미하던 디스코 시대에 멈춰 서 있었다. 게다가 레트로 패션이 유행한 몇 년 전에도 두각을 드러내는 편은 아니었고. 그리하여 이번 시즌 복고의 기운은 반쯤 줄이고 크기는 잔뜩 키워 돌아왔다. 이전과 비슷한 방식으로 셔츠의 칼라를 강조한 찰스 제프리 러버보이나 카사블랑카의 룩은 그다지 새롭지 않았지만, 탈착이 가능한 날렵하고 기다란 칼라를 카디건과 재킷에 장식한 프라다는 단연 돋보였다. 이외에도 에비에이터 재킷에 널따란 시어링 칼라를 더한 아미, 터프한 바이커 재킷 위에 복슬복슬한 퍼 칼라로 존재감을 과시한 구찌도 눈에 띄었다.
THE HEFTY SHOULDER
가느다란 실루엣, 맨살이 드러나는 시어한 소재, 길이와 형태를 막론한 스커트 등 여성복의 트렌드가 주류의 틈 사이를 비집는 가운데, 갑옷처럼 우람한 어깨를 지닌 아우터가 이를 가로막듯 쏟아진다. 널찍하고 직선적인 형태는 비슷했지만 이를 대하는 태도는 꽤 달랐다. 발렌시아가는 곡선을 배제한 더블브레스트 재킷으로 마치 거대박 박스처럼 강직한 느낌을 완성했다. 반면 생 로랑과 에곤랩은 너른 어깨와 대비되는 좁다란 팬츠를 매치해 실루엣의 반전을 꾀했다. 이는 극적인 느낌을 고조시키고 브랜드 특유의 젠더리스 분위기를 강조했다. 어깨 너머에서 한바탕 펼쳐진 여성성과 남성성의 활극이란 바로 이런 것.
Editor : 최태경, 이다솔, 이상 | Photography : 쇼비트 | Assistant : 박소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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