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G家, 장자 승계 전통에 숨겨진 가족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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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G그룹이 설립 이래 처음으로 상속 소송에 휘말리자 이번 소송을 주도하는 김영식 여사와 구광모 LG그룹 회장을 둘러싼 가족사에도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이번 소송의 배경에 숨겨진 가족사나 갈등이 존재할 것이라는 시선이 지배적이기 때문이다.
김영식 여사는 1952년생으로 박정희 정부 시절 체신부 장관과 보건사회부 장관을 지낸 김태동 씨의 딸이다. 김태동 전 장관의 집안은 충북 괴산의 수재 집안으로 유명했다. 김 여사 역시 이화여고를 졸업하고 이화여대 영문학과 재학 중이던 1972년 당시 20살에 구본무 선대 회장과 결혼했다. 전형적인 재벌과 관료 집안의 정략결혼이었다. 당시 구본무 선대 회장은 미국 오하이오주 클리블랜드 주립대학교에서 유학 중이었기에 김 여사도 결혼과 함께 유학을 떠났고 미국에서 미술 공부를 했다.
김 여사는 미국에서 한국 민화에 심취했고 상당한 실력을 지녔다고 알려져 있다. 10년 전인 2013년에는 막내딸 구연수 씨와 함께 서울 경인미술관에서 전시회를 열기도 했다. 올해 초에는 롯데칠성음료가 와인 라벨에 김 여사의 민화 작품을 적용할 계획을 밝히기도 했다.
이렇게 보면 평범한 재벌 집안 같지만 LG그룹에는 비운의 가족사가 있다.
김 여사는 1975년 장남 구원모를 낳았고 1978년에는 장녀 구연경을 출산했다. 장남 구원모는 구본무 선대 회장을 이을 차기 승계자였다. 하지만 서울국제학교(SIS)를 막 졸업할 무렵인 1994년 6월 세상을 떠났다. 이후 LG그룹에서는 구원모의 죽음에 대해 함구하고 있다.
아들을 잃은 구본무 선대 회장은 슬픔을 달래기 위해 독실한 불교 신자인 김 여사를 따라 서울 삼청동 칠보사를 자주 찾았다고 한다. 부부는 아들 구원모의 위패를 칠보사에 안치했다.
유교 사상을 바탕에 둔 LG그룹은 철저하게 장자 승계 원칙을 지켜왔다. 창업주인 구인회 회장부터 2대 회장인 구자경 명예회장, 3대인 구본무 선대 회장까지 모두 장자가 그룹을 물려받고 형제들은 이후 분가해 계열 분리를 하는 원칙을 이어왔다. 유일한 아들이었던 구원모의 죽음은 LG그룹이 더 이상 장자 승계 원칙을 지킬 수 없게 됐다는 뜻이었다.
구본무 선대 회장과 김 여사는 늦둥이라도 아들을 다시 낳기로 했다. 당시 김 여사는 중국 등지를 돌아다니며 아들 낳는 데 용하다는 명의를 찾아가 진료를 받기도 했다. 하지만 1996년 김 여사가 44살에 어렵게 출산한 아이는 아들이 아니라 딸, 구연수 씨였다. 구본무 선대 회장으로서는 51살에 얻은 딸이었다. 부부는 나이가 많았고 한 번 더 아이를 낳기는 쉽지 않았다.
LG가는 가족회의를 통해 구본무 선대 회장의 동생 구본능 희성그룹 회장의 아들 구광모를 양자로 입적하기로 결정했다. 구광모를 호적상 ‘완벽한’ 장손자로 만들어 LG그룹의 장자 승계 원칙을 지키겠다는 결정이었다. 그렇게 2004년 구광모는 구본무의 양자로 입적됐다.
졸지에 LG그룹을 이끄는 운명을 맞게 된 구광모 회장은 젊은 시절 순탄치 않은 가족사로 방황하는 인생을 보내고 있었다.
구광모 회장은 구본능 희성그룹 회장과 강세원 희성금속 사장의 딸인 강영혜 씨 사이에 태어난 유일한 혈육이었다. 그런데 고3이던 1996년 강 여사가 병으로 세상을 떠났다. 구광모 회장은 충격으로 대입 시험을 망쳤고 다음 해 한양대학교에 합격했지만 다니지 않고 미국 유학을 준비했다. 이후 미국 로체스터 공과대학교에서 컴퓨터과학을 전공했고 한동안 돌아오지 않았다.
구본능 희성그룹 회장은 사별 2년 만인 1998년 17세 연하의 차경숙 여사와 재혼했다. 차 여사는 1966년생으로 구광모와 12살 차이에 불과했다.
2004년 입적된 구광모 회장은 2006년 LG전자 재경부문 금융팀에 입사하면서 경영 수업을 시작했다. 이후 LG그룹 미국 법인에서 근무하며 2007년 미국 스탠퍼드 대학교에서 경영학 석사학위(MBA) 과정에 입학했지만 중도에 학업을 접었고 2013년 귀국했다.
구광모 회장은 2009년 10월 식품업체 보락 정기련 대표의 맏딸인 정효정 씨와 연애결혼을 했다. 4살 차이로 알려진 둘은 미국 유학 중 만난 것으로 전해진다. LG그룹은 정략결혼이 많았기에 내부에서 정효정 씨와의 결혼을 반대하는 목소리가 적지 않았다고 한다.
구본무 선대 회장은 2018년 5월 별세했고 다음 달 구광모는 LG그룹 회장에 올랐다. 그리고 2019년에는 구본무 선대 회장의 아버지인 구자경 명예회장도 별세했다.
김영식 여사는 LG그룹 안주인으로서 이러한 과정을 모두 지켜봤다. 김 여사가 남편과 시아버지를 모두 하늘로 보낸 이후에야 소송을 제기한 것을 놓고 LG그룹의 장자 승계 전통에 억눌려 평생 살아온 자신의 인생을 보상받고 싶다는 심리가 작용한 것이 아니냐는 시선도 적지 않다.
취재 : 이승용(시사저널e 기자) | 사진 : 일요신문, LG,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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