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컷] 좋은 사진은 한발 뒤에서 나온다
도심의 옛 풍경 사진들을 보면 가끔 당혹스럽다. 그 시절을 살았던 사람들도 사진이 낯설다. 그러나 우리들의 잊힌 기억은 사진 속에 남아있다. 박옥수 사진가의 사진을 보면 잃어버린 기억들이 소환된다. 서울이 이럴 때도 있었나 싶겠지만, 사진들은 낯선 시간으로 우리를 안내한다. 박 씨는 첫 사진집 제목을 ‘시간여행’이라고 했다.
서울엔 한강을 배로 출퇴근하던 시민들이 있었다. 뚝섬엔 드럼통을 바닥에 엮어 물에 띄운 수상 식당도 있었다. 덕수궁에는 놀이기구가 있었고, 지방에서 상경한 사람들은 빌딩 많은 서울을 보러 남산을 올랐다.
큰형의 카메라를 빌려 촬영하던 고교시절을 지나 대학에 입학한 1967년부터 서울로 올라온 박 씨는 니코마트(Nikomat) 카메라를 한 대 사서 본격적으로 사진을 찍었다. 그러다가 제대로 사진을 배우고 싶어 찾아간 곳이 현대사진연구회였다. 현대사진연구회는 1960년대 초에 이형록, 이상규, 황규태, 정범태 등이 사진에 대한 토론과 전시를 주도했던 모임이었다.
대학을 졸업하고 현대자동차 홍보실 등에서 일하던 박옥수는 서울 충무로에서 스튜디오를 차려 30년 넘게 광고사진가로 일하고 은퇴했다. 광고사진가로 일하면서도 그는 틈틈이 행사나 축제, 집회 등의 현장을 찾았고, 보통의 거리에서도 촬영은 멈추지 않았다. 요즘도 서울 명동이나 거리에서 사진을 찍는 사진가의 사연을 들어보았다.
걷다 보면 찍을 건 많다
과거엔 렌즈를 들이대도 다가와 시비 걸지 않았다. 가끔 수상한 사람으로 신고를 받은 적은 있다. 하지만 사진가는 어디서든 겸손해야 한다. 사진을 보여주고 몰카가 아니라고 말하면 대부분 이해한다. 다니다 보면 찍을 건 많다.
대학을 입학해서 내 카메라가 생기자 미친 듯이 사진을 찍었다. 1967년이었다. 당시엔 사진공모전이 유행이라서 사진을 구도에 맞춰 클로즈업으로 촬영하려고 노력했는데, 후회되는 건 더 넓게 찍지 못한 아쉬움이 많다. 사진 한 장 에 더 많이 보여줬다면 더 많은 기록이 남아있을 것이다. 그래서 언제부터인지 행사장을 가면 가장 높은 곳에서 전경부터 찍는 습관이 들었다.
한발 뒤에 물러나서 찍는 사진도 괜찮다
광고 사진은 직업이었고 내가 좋아했던 사진은 거리의 스냅 사진이다. 특히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행사장을 가면 무대 앞은 가지 않는다. 행사는 공식적으로 기록하는 사람이 있거나 중요한 뉴스는 사진기자들이 찍었다.
1971년 결혼식 사진 이후 계속 주말마다 하객들 사진을 찍었다. 2003년부터 7년 정도 촬영했다. 다비식, 수요집회도 계속 촬영한다. 집회나 행사도 많이 찍었다. 행사를 많이 다닌 이유는 여러 사람들의 모습을 한 장소에서 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사람들의 모습이야말로 최고의 사진 소재이기 때문이다.
사실 나는 항상 무대 뒤의 모습을 찍었다. 사진을 잘 찍으려면 가까이 가라고 했지만 난 한발 물러서서 찍으려 했다. 한 발 뒤에서 찍다 보면 남들이 못 본 장면도 찍는다.
사진은 단순한 기록도 시간이 지나면 역사가 된다
60년 넘게 사진을 찍었으니 오래 찍긴 했다. 하지만 사진을 오래한 것은 의미가 없다. 현재의 모습을 찍어야 한다. 카메라가 없으면 휴대폰으로 찍어라. 나이 든 사람이 오래 사진을 찍은 것이 무슨 의미가 있나? 오며 가며 현재 모습을 찍던지 과거 사진을 정리라도 해서 보여주는 게 중요하다.
나도 사진을 스캔하고 분류하려고 네이버에 블로그(박옥수의 사진이야기)를 했다. 딸아이가 요즘은 소셜미디어가 대세라고 해서 페이스북에도 1천 장이 넘는 사진을 올렸다. 두 권의 사진집을 냈지만, 아직 정리해야 할 사진이 쌓여 있다. 사진은 찍을 땐 단순한 기록이지만, 시간이 지나면 역사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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