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를 위한 ‘동남아 이모님’일까

박송이 기자 2023. 9. 2. 0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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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7월 31일 열린 외국인 가사노동자 시범사업 계획안 공청회에서 한국여성노동자회 등 노동·여성단체 활동가들이 정부의 시범사업 추진 강행을 비판하는 팻말을 들고 있다. | 김창길 기자
정부가 이르면 올해 안에 외국인 가사노동자 100여명을 데려온다. 수요가 있는 공급일까? 시범사업은 최대한 괜찮은 자격조건의 노동자와 사용인들을 선발할 텐데, 그 결과를 보고 이 사업을 판단해도 될까? 이 제도가 과연 아동에게는 득일까? 성장과 비용 절감 위주의 패러다임이 악화시킨 저출생 문제에 대해 같은 패러다임의 해법을 제시하는 게 과연 옳은 걸까?

[주간경향] 저출생 원인으로 일·가정 양립이 어려운 장시간·불안정 노동, 과도한 주거비용과 사교육비, 성 불평등 등이 지목된다. 합계출산율 0.78은 저출생을 야기하는 한국사회의 패러다임 전환이 필요하다는 신호로 해석된다.

지난 7월 31일 고용노동부는 저출생 대책 일환으로 ‘외국인 가사근로자 도입 시범사업’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전문가들은 ‘외국인 가사노동자 도입’은 한국사회에 필요한 근본적인 패러다임 전환과 거리가 멀다고 지적한다. ‘비용 절감’으로 모든 걸 해결하려는 기존의 패러다임을 답습한 정책이라는 비판이다. 그 결과 ‘외국인 가사노동자 도입’은 실효성 없이 오히려 저출생을 악화시키는 정책이 되리라는 우려도 나온다.

외국인 가사노동자 도입은 지난해 9월 오세훈 서울시장이 국무회의에서 제안하면서 이슈로 떠올랐다. 지난 3월에는 조정훈 시대전환 의원이 외국인 가사노동자 도입을 전제로 최저임금 적용을 배제하는 가사법 개정안을 발의해 논란이 됐다. 지난 5월에는 윤석열 대통령이 외국인 가사노동자 도입을 주문했고, 이후 정책은 빠르게 추진됐다. 고용노동부는 비전문 취업비자(E-9)에 가사서비스 분야를 확대하고 이르면 올해 안에 필리핀 등 외국인 가사노동자 100여명을 국내에 도입하는 시범사업을 시행한다는 계획이다. 이들은 최저임금제 적용을 받으며 최소 6개월 이상 서울시 가정에서 일하게 될 예정이다.

수요 얼마나 될까

전문가들은 ‘외국인 가사노동자 도입’이 자녀를 양육하는 가구의 실제 수요에 부합하지 않는다고 지적한다. 지난해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은 전국 성인 15~59세 2만2000명을 대상으로 한 ‘2022년 전국 일-생활 균형 실태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일하는 양육자의 일-생활 균형을 위해 일하는 시간과 돌봄 시간 중 어떤 시간을 보장해주는 것이 필요한지도 조사했다. ‘양육자의 일하는 시간은 그대로 유지하고 주로 서비스나 타인의 도움을 활용하도록 지원하는 것’과 ‘양육자의 직접 돌봄이 이루어지도록 주로 일하는 시간에 대폭 변화를 주는 지원을 하는 것’ 중 어떤 것을 선호하는지 분석했다. 그 결과 ‘일하는 시간 보장’보다 ‘자녀를 직접 돌보는 시간을 보장’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응답이 성·연령·학력·소득수준과 관계없이 일관되게 더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 6월 이민정책연구원이 발행한 이슈 리포트 <‘돌봄’의 관점에서 본 외국인 가사노동자 도입>(장주영 부연구위원)은 해당 조사를 인용하며 “외국인 가사노동자 도입이라는 정책의 방향성이 자녀를 직접 돌볼 수 있는 시간을 늘려달라는 국민의 요구와 일치하지 않는다”라고 지적했다.

그러다 보니 정부와 서울시가 시행한 수요조사를 공개하라는 목소리가 나온다. 지난 8월 28일 고용지방노동청 앞에서 열린 ‘이주·가사 돌봄노동자 시범사업 저지 공동행동(공동행동)’ 기자회견에서 송미령 가사·돌봄유니온 사무국장은 “고용노동부는 ‘내국인 종사 인력 감소와 고령화가 심화되고 있어 저출산에 대응하고 여성경력 단절방지를 위해 외국인력 활용요구가 증가되고 있다’라고 했다. 어떤 근거로 그런 말을 하는 것인가”라고 비판하며 “수요조사를 했다면 그 결과를 공개해 달라”고 말했다. 고용노동부는 수요조사와 관련해 “고용노동부 외국인력정책위원회에서 공개할 방침이다”라고 밝혔다. 외국인력정책위원회는 9월에 열릴 예정이다.

수요가 있어도 일부 소수 계층에만 해당되는 정책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월 200만원 이상을 주고 외국인 가사노동자를 고용하는 가정은 현실적으로 소수에 불과하다. 이주희 이화여대 사회학과 교수는 “다른 국가들의 경험을 통해 외국인 가사노동자 도입이 출생률 제고에 효과가 없다는 것이 이미 알려졌다. 외국인 가사노동자 도입은 국가가 책임져야 할 돌봄서비스를 시장에 맡기고 지불 능력이 있는 소수 가정에만 혜택(장기적으로는 혜택이라 볼 수 없을지도 모르지만)을 주는 무책임하고 근시안적인 정책이다”라며 “대다수 다른 가정은 똑같은 시민이라도 혜택을 받을 수 없다. 출생률을 높이고, 성평등한 사회를 이루기 위해서는 복지국가의 패러다임 자체가 변해야 한다. 우리 사회가 나아가야 할 방향에 역행하는 제도다”라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필리핀 가사노동자 고용으로 자녀의 영어 교육 효과를 기대하는 수요가 있다고도 한다. 이런 주장에 대해서도 비판의 목소리가 나온다. 강은미 정의당 의원은 “그렇다 하더라도 그야말로 소수 엘리트, 일부 중산층에서 대졸에 영어를 구사하는 외국인 젊은 가사노동자를 국내 가사노동자보다 상대적으로 저렴한 가격에 고용하려는 수요다. 극히 일부의 수요를 위해 여러 가지 부작용이 우려되는 정책을 도입해야 하나”라고 비판했다.

해당 정책의 수요가 극히 제한적일 것으로 예측되면서, 서울시가 지원하기로 한 1억5000만원 상당의 외국인 가사노동자 초기 정착비용에 대한 타당성 논란도 이어진다. 신경아 한림대 사회학과 교수는 “비현실적이며 여러 가지 면에서 위험할 수 있는 정책이다. 입주 외국인 가사노동자의 경우 그의 안전을 보장하기 어렵다. 성폭력과 학대, 폭력, 장시간 노동 등 인권침해의 위험이 늘 도사리고 있다”라며 “출퇴근을 한다면 그들의 거주지는 어떻게 제공할까. 외국인 가사노동자의 주거비용을 시에서 일부라도 부담한다면, 그것이 정당화될 수 있을까. 중산층 가정에 풀타임 가사노동자를 파견하기 위한 비용을 서울시민이 부담해야 한다면 시민들이 동의할 수 있을까”라고 말했다.

노동시간 단축과 기업 책임 강화

전문가들은 저출생의 해법을 한국사회의 근본적인 패러다임 변화에서 찾아야 한다고 말한다. 앞서 보건사회연구원 실태조사가 시사하듯, 자녀를 직접 돌볼 수 있는 시간을 늘리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노동시간 단축이 필요하다.

한국사회의 ‘장시간 노동’과 ‘남성생계부양자 모델’은 저출생의 근본 원인으로 지목된다. 이주희 교수는 “저출생의 원인은 복합적이지만, 장시간 노동이 핵심 원인 중 하나다. 조직이 장시간 노동을 선호하면, 가사와 육아의 부담을 더 지고 있는 여성은 승진하기 어렵거나 심지어 경력단절이 되기 쉽다”라며 “그 결과 여성은 남성보다 훨씬 덜 일하는 불안정한 시간제 일자리밖에 재취업할 기회를 얻지 못할 수 있다. 이런 상황을 막기 위해 여성은 자녀를 낳지 않을 가능성이 커진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남성이 장시간 노동을 하고 여성이 남성을 대신해 가사와 육아를 전담하는 ‘남성생계부양자 모델’을 보편적 생계부양자 및 돌봄자 모델로 전면 개편해야 한다. 남성과 여성 모두 일과 돌봄을 병행할 수 있게 하려면 당연히 노동시간 단축이 필수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고 말했다.

오세훈 서울시장은 지난해 9월 국무회의에서 외국인 가사노동자 도입을 제안했다. | 연합뉴스

노동시간 단축은 저출생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기업의 부담과 역할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이어져야 한다. 하지만 정부와 지자체가 앞다퉈 내놓는 저출생 대책에는 기업의 책임을 유도하는 맥락은 상당 부분 빠져 있다. 정재철 강남대학교 사회복지학과 강사는 “인구위기는 국가적 접근으로 해결해야 하며, 기업 책임을 유도해야 한다는 발상 없는 지금의 위기대응은 ‘언 발에 오줌 누기’에 불과하다”고 지적했다. 그는 “지금까지 가정의 출산 및 양육으로 가장 큰 혜택을 본 집단은 기업이다. 그 같은 관점에서 보면 우리 기업은 전혀 저출생에 대한 책임을 지지 않고 있다”라고 말했다. ‘미래 노동력 확보’라는 관점에서 출산 및 양육 과정의 혜택을 기업이 과도하게 누리는 만큼 기업도 출산 및 양육에 기여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이는 단순히 개별 기업의 복리후생이나 노사협약이 아닌 국가적 차원의 패러다임 전환을 통해 이뤄져야 한다. 정재철 강사는 19세기 영국의 아동 노동착취에 국가가 개입한 사례를 설명했다. 1842년 ‘아동 노동에 대한 왕립 위원회 실태 보고서’는 가혹한 아동 노동실태를 드러냈다. 이후 영국은 탄광에서 일하는 아동노동을 규제하는 ‘광산·탄광법’을 통과시켰다. 정 강사는 “개별 기업의 입장에서 아동 노동착취는 이익이지만, 총자본인 국가의 입장에서는 노동력의 손실이다. 아동은 국가가 보호하고 길러야 하며 개별자본에 맡기면 안 된다는 게 그간의 역사적 경험이다”라며 “이런 인식은 인구정책을 미래를 위한 사회투자개념으로 봐야 한다는 ‘예방적 사회정책’의 등장으로 이어졌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아동 양육지원이라는 ‘예방적 사회정책’의 혜택은 기업이 본다. 그런 관점에서 외국인 가사노동자 도입을 비롯해 세액공제·다자녀 우대정책 등 개별적·가족적·세대적인 접근은 해결책이 못 되며, 공동체적 관점에서 기업도 책임의 주체가 될 수 있도록 패러다임을 전환해야 한다. 저출생 위기는 그 관점에서 접근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오히려 ‘저출생’ 악화할 수도

외국인 가사노동자 도입을 주장하는 쪽에서는 한국의 저출생 위기가 심각하기 때문에 다양한 정책을 시도라도 해봐야 한다고 말한다. “황무지에서 작은 낱알을 찾자는 것”이라며 외국인 가사노동자 도입을 주장하는 오세훈 서울시장이 대표적이다. 고용노동부 관계자는 “시범사업은 말 그대로 시범사업”이라며, 시범사업 결과를 보고 정책 자체를 원점에서 재검토할 수 있다고도 했다.

시민사회나 전문가들은 이와 같은 접근의 위험성을 지적하며 시범사업 자체를 막아야 한다고 반박한다. 배진경 한국여성노동자회 대표는 “일단 시범사업이 시작되면 끝이다. 이후에는 확대 추진될 수밖에 없다”라고 말했다. 시범사업 추진은 본사업으로 진행하려는 정부의 의지가 담겨 있을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시범사업이 성공적으로 진행되더라도 본사업에서 동일한 결과를 기대하기 어렵다는 지적도 나온다. 장주영 이민정책연구원 부연구위원은 “정부와 서울시는 어떻게든 긍정적인 결과를 끌어낼 수 있는 사용인(신청 가구)과 노동자들을 모집할 것이다. 최대한 경력이나 나이·언어·능력 면에서 괜찮은 자격조건을 갖춘 사람들을 데려오려고 노력할 것이고, 사용인들도 마찬가지로 선발할 것이다”라며 “그래서 시범사업이 더 위험하다고 본다. 100명을 도입하는 시범사업에 성공했다고 치자. 그렇다고 ‘이게 정말 훌륭한 제도다’라고 과연 결론내릴 수 있을까. 이 제도를 확대한 이후에도 동일한 질의 수요와 공급을 보장할 수 있을까?”라고 반문했다. 서울시는 시범사업 사용인 선정방식에 대해 “아직 결정된 것이 없다”라고 말했다. 고용노동부는 이 또한 9월에 열리는 외국인력정책위원회에서 발표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황무지서 작은 낱알을 찾자”며 시작한 외국인 가사노동자 도입이 오히려 저출생을 악화시키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는 지적도 이어진다. 출산과 가족에 대한 서울 청년의 인식을 다룬 2023년 연구보고서 <세계 대도시 시민들과 비교한 서울시민들의 젠더와 돌봄에 대한 인식>(허정원 서울대 연구교수)에 따르면 자녀를 기쁨으로 느끼는 비율보다 부담이라고 느끼는 비율이 높은 도시는 15개 국가 대표도시 중 서울과 도쿄뿐이었다. 서울시민 응답자의 81%는 자녀를 경제적 부담으로 여겼다. 아이의 성장을 보는 것이 인생의 가장 큰 기쁨이라는 응답자도 68%에 그쳤다. 특히 자녀가 기쁨이라는 긍정적 가치에 대한 태도는 무자녀 응답자가 유자녀 응답자보다 30%포인트 정도 낮게 나타났다. 장주영 부연구위원은 최근 수행한 <‘돌봄’의 관점에서 본 외국인 가사노동자 도입>에서 이 조사를 인용하며 외국인 가사노동자 도입이 젊은 층의 이러한 가치관을 더 강화시킬 수 있다고 지적했다. 장 부연구위원은 “지금 정부가 젊은 세대에게 보내고 있는 시그널은 ‘저출생이라 아이를 낳아야 하는데, 여러분은 나와서 노동을 해야 하기 때문에 아이를 돌볼 시간이 없다. 아이를 돌보는 일은 중요하지 않고 또 돈까지 드는 일이니 이를 저렴한 값에 해결해 주겠다’라는 것이다”라며 “지금 출산을 유도해야 하는 집단에 전혀 호소력이 없는 정책인 셈이다. 한마디로 ‘출산과 육아는 힘들고 보상은 낮은 일이다’라고 정부가 선언해 주고 있다”라고 말했다.

돌봄의 핵심은 ‘비용’ 아닌 ‘관계’

또 다른 문제는 준비 없는 졸속 도입이다. 정부가 빠른 속도로 ‘외국인 가사노동자 도입’ 시범사업을 추진해도 될 만큼 한국사회는 과연 충분히 준비돼 있을까. 한국사회가 ‘돌봄노동’에 대한 가치를 제대로 평가하고 있는지, 외국인노동자들을 불합리한 차별과 착취 없이 동등한 구성원으로 바라보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부정적인 평가가 앞선다.

가뜩이나 평가절하된 돌봄노동의 가치는 외국인 가사노동자 도입으로 인해 더 저평가될 수밖에 없다. 이주희 교수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무보수로 가정 내 돌봄노동을 하게 되면 시장에서 소득을 얻을 수 없고, 유급노동에 종사한다고 해도 그 소득은 감소한다. 얼마나 소득과 재산을 늘리는가의 관점으로 한 사람의 노동의 가치를 평가한 탓에 우리 생활의 질을 높이고 공동체의 장기적인 발전에 기여하는 여러 다른 형태의 노동, 즉 돌봄노동과 자원봉사, 지역사회운동 등의 가치는 항상 저평가돼왔다”라며 “외국인 가사노동자 도입은 이런 우리 사회의 유급노동 편중성과 돌봄 가치의 하락을 오히려 강화하는 계기가 될 것이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외국인 가사노동자에게 지급할 돈을 벌기 위해서라도 한 가구의 남녀 모두 장시간 더 일할 인센티브가 강화되고 돌봄은, 돈을 번다는 더 가치 있는 일을 하기 위해, 저임금을 주는 다른 노동자에게 맡겨 버릴 수도 있는 일로 더 평가절하될 수 있다”라고 지적했다.

지난 3월 열린 대통령직속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에서 윤석열 대통령이 발언하고 있다. | 김창길 기자

이주노동자들에 대한 인권침해, 차별 등이 끊임없이 사회적 문제로 대두되고 있는 상황에서 서둘러 외국인 가사노동자를 도입하면 상황이 더 나빠지리라는 우려도 나온다. 당초 오세훈 서울시장, 조정훈 의원 등은 외국인 가사노동자 도입과 관련해 최저임금 적용에서 제외하자고 주장한 바 있다. 외국인노동자에 대한 차별을 당연시한 주장이었다. 지난 8월 28일 ‘공동행동’은 기자회견에서 “안전장치 없이 단순히 비용 절감만을 목적으로 이주 가사·돌봄노동자를 확대하는 것은 외국인 차별과 착취에 앞장서는 일과 다름없다”라며 “이런 중대한 이슈가 제기된 지 1년도 채 되지 않아, 더구나 한 번의 토론회, 한 번의 공청회라는 최소한의 절차만 거친 채 시행을 앞두고 있다”라고 지적했다.

제도적으로 문화적으로 준비가 안 된 상황에서 섣불리 외국인 가사노동자를 도입하게 된다면 피해는 아동들에게 돌아갈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장주영 부연구위원은 “돌봄의 핵심은 관계이다. 다문화 수용성이 아직 확고한 사회적 가치로 자리 잡지 못했고, 특히 저렴한 돌봄노동 제공이라는 목적에서 외국인을 도입하자는 이 정책의 관점에서 외국인 대리양육자의 의사결정권과 훈육을 포함한 육아 가치를 부모가 존중하고 권한을 위임하리라고 기대하기는 어렵다”라며 “대리양육자의 권한이 존중받지 못하면 그에게 양육을 받는 아동의 애착과 신뢰 형성 등 정서적 발달에 영향을 미치고, 학령기 아동의 경우 이주민에 대한 잘못된 인식을 형성하거나, 존중의 대상이 아닌 사람에게서 돌봄을 받는 자신의 가치에 대해 의구심을 갖게 될 수 있다고 전문가들은 경고한다”라고 말했다.

이런데도 왜 하려는 걸까

정책 효과는 불투명한 반면, 부작용이나 위험성을 지적하는 목소리는 다각도에서 제기됨에도 외국인 가사노동자 정책이 정부의 저출생 대책으로 급부상하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저출생이 문제라고 다들 입을 모으지만, 정작 저출생 위기의 핵심인 ‘돌봄’에 대해서는 진지한 관심과 고민이 없는 정책 결정자들의 한계라는 지적이 나온다. 신경아 교수는 “남성 정치인이나 고위직의 정책 결정권자 중에서 돌봄에 대해 진지하게 질문하고 답을 구하는 경우를 본 적이 없다. 19세기 경제학에서 가사노동의 가치를 따지는 논쟁이 있었을 때 모든 남성 경제학자들이 가사노동을 비경제활동, 주부를 잉여인구로 분류한 것과 같은 맥락이라고 생각한다”라며 “아직도 성장과 안보가 전부라고 생각하는 이들이 저출생이나 기후변화를 얼마나 심각한 문제로 인식하고 있는지 의문이다. 중요하다고 말은 하지만, 레토릭에 불과하다는 생각이 자주 든다”라고 말했다.

그 배경에는 ‘형님문화’로 대변되는 정치권 특유의 수직적 위계질서가 있다. 이는 새로운 사회문제에 대해 안일하고 관습적인 대응만 반복하게 만든다. 신경아 교수는 “정치권의 형님문화는 한 사회의 시대적 과제와 이를 해결하기 위한 수단으로서의 정치를 철저히 ‘남성 집단의 위계서열과 그 속에서 차지하는 위치에 따른 권력의 나눠먹기’로 만들어 왔다. 이런 배타적인 조직 속에는 새로운 시각이나 문제의식을 가진 이들이 들어가기 어렵고, 그 내부의 구성원들이 개방성이나 변화를 위한 지향성을 갖기도 어렵다”라며 “동일시와 동질성, 충성심의 크기에 따라 지위와 권력이 부여되기에 다른 목소리가 나오기 어려운 것이다. 새로운 이슈가 터져나와도 이런 조직 구도에서는 그것의 심각성을 재빨리 감지하고 중요성을 인지해 해결방안을 모색하는 작업을 기대할 수 없다”라고 지적했다.

합계출산율 0.78은 저출생을 야기하는 한국사회의 근본적인 패러다임 전환이 필요하다는 신호로 봐야 한다. ‘외국인 가사노동자 도입’과 같은 정책은 ‘성장’이나 ‘비용 절감’으로 모든 걸 해결하려 했던 기존의 패러다임을 그대로 답습한다. 문제의 원인을 문제의 해법으로 내세운 셈이다. 저출생을 야기한 사회의 기반이 그대로인 상태에서 한국의 저출생 위기는 계속될 수밖에 없다.

박송이 기자 psy@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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