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사 출신 대통령’에게 지금 필요한 것 [세상에 이런 법이]

이혜온 2023. 9. 2. 08: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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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걸 마인드'가 있어야 훌륭한 법조인이라고들 한다.

법률가로, 그것도 검사로서 최고의 자리에 오른 사람이므로, 어떠한 판단을 할 때에는 최소한 '증거로 뒷받침되는 사실인지'에 대해 엄격한 기준을 가졌을 거라고 생각했다.

어쩌면 지금 당장 대통령에게 필요한 것은 부족한 정치인으로서 경험이 아니라 검사 시절 가지고 있었을 '리걸 마인드'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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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이런 법이 어딨어.” 우리가 자주 하고 듣는 말. 네, 그런 법은 많습니다. 변호사들이 민형사 사건 등 법 세계를 통해 우리 사회 자화상을 담아냅니다.

‘리걸 마인드’가 있어야 훌륭한 법조인이라고들 한다. 리걸 마인드가 무엇이며, 어떻게 길러지는지 여전히 잘 모르겠다. 리걸 마인드란, ‘사실관계에서 법률적 쟁점을 뽑아내어 적용하고 결론을 도출하는 문제해결 능력’ 정도로 이해할 뿐이다.

주어진 사실관계에서 법률적 쟁점만 추출하면 되는 변호사 시험과 달리, 현실에서는 “사실관계를 어떻게 확정할 것인지”가 문제다. 승소율이 높기로 유명한 선배 변호사는 내게 변호사에게 가장 중요한 자질은 ‘디테일에 대한 열정’이라고 강조했다. 남들은 지나칠 수 있는 세부적 사실관계를 끝까지 파고드는 열정이 결국 승패를 좌우한다는 것이다.

광복절 경축사를 하고 있는 윤석열 대통령. ⓒ대통령실 제공

고객 입장에 공감한 나머지 격한 마음으로 서면을 쓰면 문장마다 빨간 줄을 그어 돌려보내는 선배 변호사도 있었다. ‘너무나 부당합니다’라고 쓰면, ‘너무나’는 지워버리는 식이었다. 법률가의 말과 글에 부사나 형용사, 비유는 필요하지 않다는 것이 그의 원칙이었다. 증거로 확인되지 않은 추측성 표현도 당연히 지워졌다. “지금 당장은 서면의 설득력을 높일지 몰라도, 사실이 아닌 것으로 확인되면 서면 전체의 신뢰를 깎아먹게 되므로 신중해야 한다.” “의뢰인들은 자신을 속 시원하게 대변해주는 표현에 만족할 수 있지만, 서면은 의뢰인과 변호사의 자기만족이 아니라 재판부를 설득하기 위한 것임을 잊어서는 안 된다.” 이런 마음 역시 ‘리걸 마인드’라 이름 붙일 수 있지 않을까.

검사의 말과 글은 평이하고 간결하고 명확해야

검사의 말과 글은 변호사보다 더 촘촘하게 사실관계와 증거만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검사는 공익의 대표자이며, 국민 전체에 대한 봉사자로서 그 직무를 수행하는 사람이므로, 사실관계가 뒷받침되지 않는 공소사실로 피고인을 기소해서는 안 된다. 피고인을 공소사실 외의 이유로 비판하거나 꾸짖을 필요도 없다. 미국 연방형사소송규칙은 피고인의 신청에 따라 법원이 공소장에서 과잉 기재된 부분을 삭제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는데, 이때 과잉 기재란 기소된 범죄 혐의와 관련이 없으면서, 피고인에 대하여 선동적이고 편견을 유발할 수 있는 내용을 말한다. 검사의 공소장은 범죄를 구성하는 본질적 사실에 대하여, 평이하고 간결하고 명확하며, 증거로 증명될 수 있는 글로 이루어져야 한다는 원칙은, 한국이라고 다를 이유가 없을 것이다.

광복절 경축식에 참석한 윤석열 대통령과 김건희 여사. ⓒ대통령실 제공

검사 출신 대통령이 당선되었을 때, 통합보다는 단죄의 언어에만 익숙하지 않을지, 정치인으로서 경험이 부족하지 않을지 우려가 있었다. 법률가로, 그것도 검사로서 최고의 자리에 오른 사람이므로, 어떠한 판단을 할 때에는 최소한 ‘증거로 뒷받침되는 사실인지’에 대해 엄격한 기준을 가졌을 거라고 생각했다.

기대를 버릴 때가 온 것일까. 광복절 축사에서 윤석열 대통령은 “공산 전체주의를 맹종하며 조작 선동으로 여론을 왜곡하고 사회를 교란하는 반국가 세력들이 여전히 활개를 치고 있습니다”라고 말했다. 반국가 세력이 일부 존재하는 것도 아니고 ‘여전히 활개를 치고 있다’니.

그 판단은 과연 어떤 객관적 근거에 기반한 확신일까? ‘객관적 근거 없는’ ‘선동적’이며, ‘편견을 유발하는’ 그 문장을 들으며 생각했다. 어쩌면 지금 당장 대통령에게 필요한 것은 부족한 정치인으로서 경험이 아니라 검사 시절 가지고 있었을 ‘리걸 마인드’가 아닐까.

이혜온 (변호사)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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