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군국주의 전범들을 분석하다 [새로 나온 책]
전쟁과 죄책
노다 마사아키 지음, 서혜영 옮김, 또다른우주 펴냄
“우리는 사실을 알려고도 하지 않는다.”
부제는 ‘일본 군국주의 전범들을 분석한 정신과 의사의 심층 보고서’다. 1944년 태평양전쟁 때 태어난 저자는 참전했던 군의관 아버지로부터 당시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 단 한마디도 듣지 못했다. 커서 정신과 의사가 된 그는 전범들에게 ‘잔인하리만큼 집요한 질문’을 던진다. “그 시대를 부인과 망각으로 넘겨버리는 자세가 얼마나 우리의 문화를 빈곤하게 만들어왔는지 고찰”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1998년 일본에서 처음 출간된 이 책을 25년이 지난 지금 대한민국에서 읽어도 별다른 이질감이 들지 않는다. 한나 아렌트가 말했듯 ‘악의 평범성’은 여전히, 어디에나 있다.
혁명과 일상
김수지 지음, 윤철기·안중철 옮김, 후마니타스 펴냄
“이 글은 북조선의 역사를 사회주의적 근대성의 일부로 파악한다.”
대통령이 8‧15 경축사에서 ‘민주주의, 인권, 진보주의로 위장한 공산주의 세력의 준동’을 경고하는 마당에 북한 관련 도서 소개가 적절할지 모르겠다. 그러나 이 책은 북한 체제 성립 초기의 개개인에게 초점을 맞춘 ‘미시사(Microhistory)’란 점만으로도 매력적이다. 한반도의 해방 전후사를 반드시 ‘남북의 체제가 어떻게 형성되어 전쟁에 이르게 되었는지’만을 중심으로 고찰할 필요가 있겠는가. 당시 북한의 개인들이 사회혁명이라는 체제적 변동을 어떻게 경험하며 자신과 시대의 정체성을 형성했고 이를 어떻게 ‘기억’하고 있는지 당대의 노획 문서와 구술을 통해 생생하게 분석한다. 미국 아시아학회에서 주는 ‘제임스 팔레 한국학 도서상’을 받은 책이다.
우리가 오해한 한국사
이문영 지음, 역사산책 펴냄
“〈환단고기〉라는 희대의 위서가 판을 치게 된 근원을 알게 되면 매우 허탈해진다.”
청(淸)나라 황실의 성은 한자로 표기하면 애신각라(愛新覺羅)다. 두 번째와 네 번째의 문자를 붙이면 신라(新羅)인 데다 ‘사랑한다(愛)’와 ‘생각한다(覺)’를 포함하고 있다. 이를 근거로 일각에선 신라의 후예인 청 황실이 ‘신라를 사랑하고 생각’한다는 의미로 자신들의 성을 애신각라로 정했다고 주장한다. 정말 그럴까? 최근 전라남북도와 광주시가 공동 발간한 〈전라도 천년사〉에 대한 왜곡 논란에서 알 수 있듯이 한국사엔 사실관계에 대한 사회적 컨센서스가 이뤄지기 힘든 부분이 지금도 많다. 삼국시대의 백제가 대륙의 요서 지역을 정말 점령했는지, 임나일본부는 한반도 남부에 실재했는지, 사도세자가 정말 노론에게 사실상 살해당한 것인지, 유사역사학 비판을 주도해온 작가가 알기 쉽게 설명해준다.
믿기자의 고심
믿기자 지음, 편않 펴냄
“30면이 넘는 일간지에 실린 지역 소식들은 왜 항상 흥미 위주인가?”
‘서울 살인사건’ 같은 단어는 들어본 적 없다. 대신 ‘밀양 여중생 사건’ ‘인천 아동학대 사건’ 같은 용어는 있다. 잔혹한 범죄는 지역을 넘나들며 발생하지만 유독 ‘비서울’은 사건명의 머리글자에 자리한다. 예산 감시 기사보다는 흥미 위주 기사가 ‘전국부’ 기사로 발탁되는 현실에 저자는 문제의식을 느낀다. “서울이 아닌 지역은 늘 그런 일들만 발생하는 곳인가?” 10년 가까이 지역 기자로 일하는 저자가 쓴 에세이다. 언론 비판에만 머무르지 않는다. 근거 없는 관공서 수수료를 폐지하는 솔루션 저널리즘부터, 지역을 중심으로 벌어진 과거사 문제 취재까지 지역 언론이기에 할 수 있는, 해야 하는 일이 많았다. 그거야말로 ‘지역 기자 하는 맛’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못생긴 서울을 걷는다
허남설 지음, 글항아리 펴냄
“사람은 스무 살이 되면 출발선에 서는데, 사람이 사는 동네는 그 순간부터 죽음을 생각합니다.”
서울이 매끈한 신도시가 되기를 꿈꾸는 사람들은 ‘마래푸’ ‘엘리트’ 따위 신조어를 대학교 이름처럼 읊는다. 이들 눈에 달동네, 빌라촌, 낡은 건물과 복잡한 도시 구조는 깨끗하게 밀어내야 할 ‘못생긴 도시의 면면’이 된다. 저자는 이들 ‘못생긴 서울’을 직접 걸으며 재개발·재건축 중심의 도시 인식이 무엇을 놓치고 있는지 살핀다. 책의 장점은 디테일이다. 단순히 마을과 옛 흔적을 지키자는 명분론을 앞세우는 게 아니라, 못생겼다는 각각의 동네가 어떻게 자생적 네트워크를 형성하고 공생하며 살아왔는지 꼼꼼하게 취재해 따진다. 하부구조를 갉아내고 밀어내는 도시의 변화를 과연 성장이라고 말할 수 있을지 되묻게 한다.
의료 비즈니스의 시대
김현아 지음, 돌베개 펴냄
"우리나라 의료는 중병에 걸려 있다. 그 병의 이름은 '인간 소외'이다."
저자의 전문 분야는 골관절염이다. 일명 퇴행성관절염이다. 짧은 시기에 인류의 평균수명이 크게 늘었기 때문에 직립보행하는 인간의 무릎은 망가질 수밖에 없다. 관절염을 바로 낫게 하는 마법 같은 치료약은 당연히 없다. 그런데도 많은 환자가 연골을 보호하는 효능이 입증된 적 없는 연골주사를 맞으러 다니고 비싼 줄기세포 주사가 효도 상품으로 등극해버렸다. 저자는 한국의 의료가 중병에 걸려 있다고 진단한다. 부제처럼 '우리는 어쩌다 아픈 몸을 시장에 맡기게 되었는지' 논쟁적이지만 생생한 현장의 고민과 이야기가 담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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