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살은 타이밍”…아무때나 웃기려면 목숨 걸어야 [ES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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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살 주머니'라는 아름다운 우리말이 있다.
그런데 왜 사람들은 웃다 말다 할까? 익살이란, 웃음이란 무엇인가? 이 문제를 여러 해 고민했다.
"테르시테스가 말한 내용만 보면 영 틀린 것도 아니다. 그러나 문제는 맥락이다. 입을 열면 안 되는 때에 함부로 말한 탓이다. 예나 지금이나 익살은 타이밍이다." 호메로스의 '일리아스'를 새로 번역한 이준석 한국방송통신대 교수(문화교양학)의 지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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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살 주머니'라는 아름다운 우리말이 있다. '남을 웃기려는 마음'이라는 뜻. 나도 웃기고 싶다. 그런데 왜 사람들은 웃다 말다 할까? 익살이란, 웃음이란 무엇인가? 이 문제를 여러 해 고민했다. 책을 읽고 사람을 만났다. 알게 된 내용을 글로 옮긴다.
기록에 남은 인간 최초의 익살꾼은 누구였을까? 내가 책에서 본 가장 이른 사람은 그리스 신화의 테르시테스였다. 그런데 이 사람은 최초의 실패한 익살꾼이기도 하다. 익살에 실패하고 매를 맞았다.
호메로스의 서사시 ‘일리아스’ 앞부분에 테르시테스가 등장한다. 맥락은 이렇다. 총사령관 아가멤논은 트로이 군대와 큰 싸움을 앞두고 그리스 군대에 연설한다. 그런데 속내와 정반대로 말한다. “적을 이길 수 없을 것 같다. 짐을 싸서 고향으로 돌아가자.”
낯익은 수법이다. 정치로 치면 당대표가 휴대전화 끄고 잠적하는 꼴이요, 회사로 치면 회장님이 직원들 볼 낯 없다며 은퇴하겠다는 꼴이다. 아랫사람이 할 말은 정해져 있다. “통촉하여 주시옵소서, 열심히 하겠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중간관리자 노릇을 하던 오디세우스는 “아가멤논을 말리라”며 군대를 부추긴다. 배알이 살짝 뒤틀리는 장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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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이때 테르시테스가 등장한다. 호메로스에 따르면 그리스 군대 가운데 가장 못생긴 사람. 그런 그가 “아가멤논 말씀대로 고향에나 돌아가자”며 이죽거린다. 아가멤논과 오디세우스를 웃음거리로 만들려 한 것이다.
익살의 두 얼굴이 잘 드러나는 일화다. 첫째, 풍자의 통쾌한 면이다. 익살은 권력자를 비웃는다. 말뚝이가 양반을, 방자가 이도령을 빈정댄다. 프랑스의 고전학자 비달 나케는 이 장면에서 최초의 ‘계급투쟁’을 읽는다. 둘째, 익살의 위험한 면이다. 웃음은 공동체의 ‘가치’를 파괴할 수 있다. 테르시테스의 익살이 제대로 먹혔다면 그리스 원정대는 뿔뿔이 흩어졌을 터이다.
그러나 오디세우스가 상황을 뒤집는다. 손에 든 지휘봉으로 테르시테스의 등짝을 후려갈기고 조롱한다.(적절치 않은 익살을 하면 두드려 맞는다는 것, 익살의 세번째 측면이다). 테르시테스와 아가멤논 사이에서 흔들리던 그리스 사람들은 그제야 오디세우스와 함께 웃는다. 테르시테스가 무너지며 공동체가 단합한다.
“테르시테스가 말한 내용만 보면 영 틀린 것도 아니다. 그러나 문제는 맥락이다. 입을 열면 안 되는 때에 함부로 말한 탓이다. 예나 지금이나 익살은 타이밍이다.” 호메로스의 ‘일리아스’를 새로 번역한 이준석 한국방송통신대 교수(문화교양학)의 지적이다.
테르시테스의 수난은 이걸로 끝이 아니다. 아폴로도로스의 ‘신화집’을 보면, 분노가 많은 아킬레우스에게, 훗날 테르시테스는 농을 치다 죽임을 당했다나. 예로부터 익살이란 목숨을 거는 일이었다.
만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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